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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에서 전통을 생각하다
정진명(온깍지궁사회 사계원)
1) 몸이 아픈 사람들
주변에 몸 아픈 한량들이 많습니다. 팔꿈치나 어깨 같은 곳이 그렇고 심지어는 무릎이이나 골반이 아픈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게 활병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팔꿈치나 어깨가 아프면 혹시나 활하고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고 의심을 한 번 해볼 수 있겠지만, 무릎이나 골반 아픈 것은 활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연결짓기가 힘들기 때문에 애써 활 때문에 아픈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약국에 가서 진통제나 소염제 사먹으며 오늘도 꿋꿋하게 설자리로 나섭니다. 참 눈물 겹습니다.
저도 처음 활 배울 때 그랬습니다. 남들 흉보는 게 아닙니다. 활터에서 맞닥뜨리는 엄연한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행히 온깍지로 바꾼 뒤에는 그런 증상이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증상이 없어지고 난 뒤에야 '아하, 그 증상이 전통사법을 버려서 그런 것이로구나!'하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서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다들 신음소리를 내면서 활을 쏩니다. 심지어 강궁을 쏘는 사람 옆에서 쏘다보면 화살이 한 발 나갈 때마다 쾅쾅 하는 충격이 땅바닥을 타고 저한테까지 전해옵니다. 옆의 저한테까지 전해오는 충격을 해일처럼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몸은 어떻겠습니까?
활을 열심히 쏘는 사람일수록 더욱 빨리 그리고 더 확실히 몸이 망가집니다. 전국대회를 휩쓸고 다니던 시수꾼이 어느날 갑자기 활터에서 증발합니다. 궁금해서 물어보면 몸이 아파서 잠시 쉬는 것입니다. 한 1년 쉬다가 다시 나타나서 활을 잡아봅니다. 그러다가 며칠 후에 또 사라집니다. 통증이 해결이 안 되어 다시 떠난 것입니다. 같은 사법으로 쏘면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기 때문에 피해갈 수 없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자신의 사법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활터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활터를 떠난 사람만이 아픈 것은 아닙니다. 활터에 남은 사람들도 10년이 넘으면 모두 앓습니다. 활 쏘면 몸이 괴로우니 이제는 활을 덜 쏩니다. 활을 많이 쏘지 않으면서, 딴 짓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각궁을 손 보는 것은 양반이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심지어 화투를 치며 소일하는 경우도 많고, 괜히 모여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라는 게 제 자랑 아니면 남 헐뜯기죠. 열심히 쏘는 신사들 뒤에서 하루종일 서너 순 내고는 입만 놀리는 것입니다. 사법 얘기라도 나오면 박사급 지식을 자랑합니다. 활을 몸으로 쏘지 않고 입으로 쏩니다. 그래서 후배들이 '구사'라고 입을 삐죽거립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사는 오래 되었다는 뜻의 구사(舊射)가 아니라 입 구 자 구사(口射)입니다. 입으로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오늘날 사람들은 얼른 5단 따서 명궁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5단 자격은 오로지 시수로 따집니다. 그 사람의 궁체가 전통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고, 질문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니 자연스럽게 과녁 잘 맞추는 '가장 빠른 방법'을 추구하게 됩니다. 단 제도가 실시된 것이 1970년대 초반이니 벌써 40년이 흘러 한 세대가 지나갔습니다. 그 세월 동안 전통을 묻지 않는 단 제도 때문에 사법은 자연스레 '전통'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과녁 잘 맞추는 것이 전통이라면 오늘날 명궁들의 궁체가 정답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사법은 과녁 잘 맞추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몸을 다치지 않는 것이죠. 옛날에 무과 시험을 치르는 사람들은 몸을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결과를 위해 모험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반이나 선비들은 그런 목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심신수양 수단으로 활쏘기를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궁술> '역대의 선사'라는 부분을 읽다보면 선비 중에서 다른 호반 출신보다 활을 더 잘 쏘았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나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의문 하나가 풀립니다.
몸 다치지 않는 사법이 시수를 희생시켜서 얻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입니다. 옛 사람들이 몸 안 다치게 하려고 맞추는 것을 소홀히 하여 만든 것이 우리가 얘기하는 '전통' 사법이 아닐까 하는 의문 말입니다.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이 바로 위의 내용입니다. 위의 내용에 따르면 전통 사법은 몸을 위해 시수를 희생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몸을 안 다치면서 동시에 시수도 잘 나는 사법을 만들었다는 결론이 위의 사례에서 분명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궁체를 익히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입니다. 제가 온깍지 학교를 운영하면서 배우는 분들을 살펴보니 아무리 빨라도 10년 이상 걸립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배우면 결코 시수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간 온깍지 궁체로 명궁의 반열에 오른 분들이 꽤 많다는 것으로도 입증이 된 사실입니다. 조영석(광주 무등정), 윤득수(창원 강무정), 이석희(부산 사직정), 이자윤(경남 진해정). 이분들만이 아니라 그 전에도 초절정의 엄청난 시수를 내던 명무들은 모두 온깍지 궁체였습니다. 금산의 박병일, 여수의 이방헌, 장단의 장석후, 대전의 박문규, 예를 들자면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분들의 입문 과정을 얘기 들어보아도 활 공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과녁만 보고 몸이 어찌되든 생각하지 않은 채 맞추기에만 골몰한 결과로 만들어진 사법과는 다릅니다.
온깍지에 대한 큰 오해 중의 하나가, 깍짓손입니다. 깍짓손만 크게 뻗으면 온깍지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허긴 '온깍지'라는 이름은 그래서 붙은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옛 사람들이 온깍지로 손을 뻗었다는 것은, 손 동작만을 '온깍지'로 했다는 것과 다릅니다. 그 분들은 깍짓손을 온깍지로 뻗었으면서 동시에 전통 사법을 배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통사법이 사라진 오늘날에는 손을 뻗는다고 해서 과연 온깍지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절로 듭니다. 온깍지 사법의 완성은 손 뻗는 모양이 아니라 전통 사법에 있습니다. 따라서 깍짓손 크게 뻗는 것을 온깍지라고 부르는 것이 틀린 바는 아니겠으나, 온깍지라고 해서 모두가 전통 사법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온깍지의 진수는 그런 겉모습에 있지 않습니다. 내면의 원리에 있습니다.
온깍지궁사회가 출범할 때 온깍지에 대한 규정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앞서 말한 그런 내면 원리를 온깍지라고 해야 하는데, 그것을 배워서 내면화하고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그런 방향성을 취한 동작의 최소공배수를 우리는 깍짓손의 모양에서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깍짓손을 크게 뻗으면 온깍지의 범주로 두고 그 내면 원리는 차차 배우면서 익혀가자, 라고 결론을 내리고 온깍지궁사회의 입회 조건을 그렇게 최소한으로 제한한 것입니다. 이 최소제한이 오늘날 깍짓손 크게 뻗는 모든 동작에 대해 '온깍지'라는 적용을 불러온 것입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확히 맞지도 않는, 정말 흔하디 흔한 말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온깍지궁사회와 온깍지활쏘기학교에서 활 쏘는 사람들은 이 차이를 분명히 압니다. 첫눈에 보고서' 아, 저 사람은 진짜 온깍지구나, 아, 저 사람은 가짜구나!' 하고 판별할 줄 압니다. 이것을 아는 눈은, 앞에서 말한 전통 사법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신의 몸을 단련했을 때 나타나는 몇 가지 증상을 겪고서 저절로 열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내용물을 확인해보면 쉽게 드러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물으면 저런 답이 나와야 하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깍짓손의 모양에만 있지 않습니다. 깍짓손의 모양이 함의하는 내면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 증상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똑같은 용어를 완전히 다른 용어로 쓰게 됩니다. 똑같이 온깍지라고 말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온깍지를 머릿속에 떠올리게 됩니다. 적도에 사는 사람이 북극에 사는 원주민을 만나서 바나나에 대해 얘기 나누는 것과 똑같습니다. 대화는 되겠지만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죠.
온깍지 사법은 활을 보내고 난 뒤에 활에 남은 충격을 몸이 덜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진 사법입니다. 당연히 처음엔 불편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궁체를 만들면 몸으로 들어오는 충격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이렇게 자잘한 충격을 마저 없애는 것이 각궁입니다. 반깍지로 쏘는 분들도 각궁으로 쏘면 충격이 한결 덜합니다. 만약에 반깍지로 쏘는 분이 몸을 다치지 않고 계속 활을 쏜다면 그것은 사법 덕이 아니라 각궁 덕입니다. 각궁 덕을 사법 덕으로 오인하면 알래스카 원주민이 자신의 스키 실력을 환경이 아니라 자신이 잘 난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게 되죠.
문제는 이런 오인 끝에 끝까지 자신을 속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각궁 덕에 근근히 아픈 상태에 진입하지 않는 자신을 두고, 자신의 사법이 훌륭해서 그렇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착각은 정말 질깁니다. 몸이 분명히 아픈 데도 사법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분명히 어제 어깨 아파서 병원 가서 진단 받고 약국에 가서 약을 사다 먹으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사법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 속에는 자신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 어렴풋함이 또렷함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사람에게는 있습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뻔뻔해지면 이렇게 됩니다. '반깍지가 잘못되었음이 충분히 입증된다면 그때 가서 온깍지로 바꾸어도 늦지 않다!'
겉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구사(口射)가 된 경우가 많습니다. 쏘면 몸이 아프니 입으로 쏘는 즐거움을 느끼며 위안 삼는 거죠.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과오만 인정하면 끝날 일이, 그렇게 하지 못해서 수많은 분란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결국 자신에게 솔직하고 진리 앞에 정직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끝 없이 자신을 속이면서 요리조리 답을 피해갑니다. 남들 눈에는 빤히 보이는 자신의 단점을 굳이 안 보려고 몸부림 치면서 답을 찾아 헤맵니다. 이런 사람에게 이게 바로 답이다, 라고 선언하고 나타날 답이 있을까요? 이게 답이니 배워봐라, 하고 말해줄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이런 사람은 가르쳐주어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답이 빤히 코앞에 있는데도 그것이 답일 리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것은 저의 추정이 아니라 온깍지궁사회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입니다. 온깍지궁사회 활동을 할 무렵에 우리가 추진하던 큰 사업 중의 하나가 그 지역의 해방 전 구사들을 초청하여 옛 활쏘기에 대해 듣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세미나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습니다만, 세마나보다는 사랑방 분위기였습니다. 궁금한 것을 묻는 우리에게 옛날에는 이렇게 했다는 식의 회상을 해보는 식이죠. 소박한 말로 표현하는 그 구사들의 말에는 분명히 정답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에 구사의 말이 정확히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구사들이 해주는 말을, 자신의 현재 동작과 현재 깨달음에 맞추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정말 많았고, 실제로 그 후에도 그런 선입견이 여전히 작용하고 일어났습니다.
온깍지궁사회는, '전통'에 대한 독점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뭘 독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옛 사람들과 요즘 사람들이 말이 다르니 왜 그렇게 된 건가? 하는 의문을 풀려고 활동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모든 일에 대해 실시간에 가깝게 공개했습니다. 그것은 공개활동이 끝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패를 감춘 적이 없습니다. 모든 패를 까보였습니다. 이미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다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공식 활동을 끝낸 사계 온깍지궁사회에 대해 공개 질의를 하는 황당한 사태까지 벌어지곤 합니다. 이런 사태의 배경에는 바로 그런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선입견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온깍지궁사회가 발표한 자료에는 모든 답이 다 있고, 온깍지궁사회가 더 가진 패도 없습니다. 그렇게 답이 온천하에 드러났는데도 그 답을 보지 못하는 것은, 온깍지궁사회 탓이 아니라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자신들의 선입견임이 분명해지는 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우리가 책임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답을 피해다니는 사람들은 답을 고전에서 구하지 않고 자신의 몸에서 구합니다. 제 몸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게 옛 글에 있다고 믿고, 그것을 찾아서 자신의 동작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해석이 옳다고 믿고, 몇 백 년 전의 글쓴이가 자신의 동작을 보고 설명했다고 여깁니다. 저 또한 그런 적이 있습니다. 집궁 6개월 쯤에 <조선의 궁술>을 읽었는데, 모두 다 이해되었습니다. 1년 뒤에 다시 읽었는데, 전에는 보지 못하던 내용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제가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이 신기한 현상 때문에 저는 1년에 1번씩 꼭 <조선의 궁술>을 다시 읽습니다. 20년 넘게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조선의 궁술>이 잠잠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옛 글을 제 멋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해석이 그 글의 진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학문의 기본이 무엇인지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발상입니다. 그런 부실한 기초위에 세운 이론은 모래위에 지은 집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석한 몸동작을 인간의 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구현했다고 믿고 떠드는 것은 혹세무민에 해당합니다.
무예나 믿음은, 책을 통해서 전달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그 글을 쓴 사람만이 그 글의 뜻을 가장 정확히 압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전등이라는 말을 씁니다. 등불을 전한다는 뜻입니다. 등불 자체는 조건과 다름 없이 빛나는 것이지만, 그것을 들고 전해주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라는 것이죠. 활을 배우다 보면 이 말의 적실성을 절감합니다. <조선의 궁술>을 읽고서 옛 사람처럼 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쏘아온 '짓'이 있기 때문에 그 '짓'의 연장선에서 동작을 이해하고 풀어냅니다. 그래서 못 배우는 것입니다. <조선의 궁술>과 자신의 잡된 동작이 섞인 것은 <조선의 궁술>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그 무엇이 섞인 <조선의 궁술>은 <조선의 궁술>이 아니라 잡된 사법이고 주먹구구 사법일 뿐입니다.
'전통'이 '전통'이 된 이유는 오랜 세월 검증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그 검증은 몸으로 하는 것이지 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해서 아프지 않은 전통을 꾀로 해석하면 몸이 천천히 가르침을 줍니다. 오늘날 활터에서 갑자기 증발하는 시수꾼들이나, 구사(口射)들을 보면 왜 진리기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를 알게 됩니다. 진리는 그 자체가 어려워서 전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선입견 때문에 전해지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활쏘기에서 또 한 번 깨닫는 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덕(悳)이란 한자말은 直과 心으로 이루어졌는데, 활에서 입 아프게 말하는 관덕의 덕도 바로 그것이니, 곧은(直) 마음(心)이 아니면 몸이 괴롭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몸이 무슨 죄입니까? 활로 시름시름 아픈 몸은 주인 잘못 만난 죄밖에 없습니다.
주변에 몸 아프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어디 아픈 데가 생기면 이게 활에서 온 거 아닌가? 하고 저를 한번 돌아봅니다. '발이부중 반구저기'가 아니라 '몸 아프면 반구저기'입니다.
'쏩니다'라는 분의 댓글이 길게 달렸기에, 여기로 옮깁니다. 이곳의 메뉴는 일정 등급 이상만 올릴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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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활을 배우는 입장이라 의견을 낼 처지가 아니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적습니다. 전 작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온깍지 궁체를 익히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정진명, 류근원 교두님께 직접 배운 후 차츰 변하는 것 중 가장 큰 게 바로 깍지손 떼임입니다. 그게 온깍지 사법의 정수라 믿고 부단히 비슷해지려고 노력했으나, 어느 날부터 전 제 깍지손이 어떻게 떨어지는지 모를 정도로 신경을 안 쓰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배워서 할 것은 깍지손 뿌리기가 아니라, 활을 낼 때 내면을 채우고 편안한 몸이 되어야 함을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깍지손 떼는 동작은 그 한 부분일 뿐 전체에서는 작은 부분 같습니다.
부득이하게 '기'를 언급해야 하는 이야기로 흘러가네요. 어제 활 내시는 분이 제가 42파운드로 활 내는 걸 보시더니, 그런 좁은 발자세로는 하체가 단단하지 못해 힘을 못 쓴다 하십니다. 저야 배우는 처지라 아직 궁력이 딸려 강궁은 못 당깁니다 하였더니, 그보라며 비교를 보이시려 52파운드를 한 번 늘 쏘는 자세로 당겨보라 하시더군요. 저도 그런 강궁은 무리 같지만, 손에 건네주시니 당겨 보았습니다. 제 7치 반 만작 길이에서는 52파운드가 60파운드 언저리임을 알지만 그래도 습사 자세로 당겼습니다. 수욱 들어와 십 초 가량 미동도 없이 버텨도 무리가 없었습니다. 너무 활이 물러 이거 제 42파운드랑 별 차이 없는데, 52파운드가 맞냐고 물으니
그 분도 놀라서 산 지 몇 년 되어 약해진 것 같다며 다른 활을 주십니다. 54파운드 활도 온깍지 습사 자세로 만작하여 버티는데 무리가 없었습니다. 이건 저도 놀란 부분입니다. 과거 양궁 쏠 때도 전 45파운드 이상을 안 쐈고, 그 이유가 몸에 무리가는 것과 함께 그 만큼 불필요한 힘이 들 뿐 충격만 더한 것이었죠. 42파운드 당기다 50파운드 당기면 그 단단함이 급격히 느껴지는 걸 잘 알고 있었는데, 어제 그런 게 전혀 없어서 스스로도 깜짝 놀란겁니다.
그제야 시수 상관없이 우선 기를 쓰는 법을 배우기위해 나름 노력한 게 궁력을 몰라보게 키워준 것 같기도합니다. 그래도 앞으로 45파운드 이상의 개량궁은 안 잡을 거긴 합니다. 암튼 온깍지 사법의 정수는 깍지손 떼기가 아니라, 내면을 채우고 바르게 몸을 쓰는 것임을 자각했습니다. 그 분은 강궁이래야 살고가 낮아져 표 잡기가 쉽다고 갑자기 화제를 바꾸시더군요^^; 그래도 전 제 연궁으로 우주까지 뚫고 갈 기세로 올려 쏘는 살고로 추구하는 내면의 실함을 위해 일 년이고 십 년이고 계속 수련할랍니다.
그리고 온깍지 사법이 시수 안 난다는 말도 틀린 것 같습니다. 7단 명궁 두 분과 같이 서서 제 비린내나는 온깍지사법(배운 지 2달째)으로도 현저히 차이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옆에 분들이 관중을 연달아 못 하면 괜히 그 분들 기분 상할까봐 슬쩍슬쩍 덜 쏠 때도 있었답니다. 이건 제가 모자른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지만, 아무튼 그 분들 몰기할 때 전 4중까지 하고 그런 걸 보면 온깍지 사법도 시수 잘 납니다^^ 안타깝게도 가장 단수가 높으신 분께서는 어깨가 아파, 본문 내용처럼 활을 못 내고 계셨죠... 마침 어제 그런 일을 겪은지라 모자른 식견과 경험을 적어봤습니다.
2) 개밥그릇과 소나무 잣나무 구별법
한 3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수몰지구가 생기고 인테리어 장식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유행을 타던 시절에, 골동품 장사들이 시골을 뒤지고 다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떤 골동품상이 허름한 시골집을 지나가다가 개밥그릇 하나를 집주인에게 팔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개밥그릇을 큰 돈 주고 산다기에 웬 미친놈인가 하고는 모른 척하고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나중에 경매에서 몇 억에 팔렸습니다. 고려청자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 동네 사람들이 개밥그릇으로 쓰거나 장독대에서 몇 십 년 째 눈비 맞던 고려청자 비스무리한 것들이 모두 대청마루나 안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게 과연 고려청자였을까요?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볼 눈썰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낯선 문화권의 사람들이 우리들의 가치를 더욱 알아보고서 높게 평가하여 새롭게 조명되는 수가 많습니다. 김치도 그렇고 훈민정음도 그렇고, 그런 사례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열등감이 강한 나라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며칠 전에 일본 궁도를 오래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이 우리 활을 배우려고 하기에 만난 것이고, 일본 궁도를 오래 하셨기에 우리가 하는 설명을 빨리 알아들었습니다. 아무리 얘기하고 글로 설명을 해도, 글은 읽지 않고 제 주변머리로 남의 얘기를 깎아듣는 사람들만 만나던 저로서는, 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그 분의 태도가 오히려 신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 될 중요한 얘기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실하면 말 하는 사람은 저절로 입이 열립니다.
그 분에게 제가 위에서 말한 개밥그릇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고려청자를 개밥그릇으로 쓰다가 골동품상의 얘기 한 마디에 안방으로 모셔들이는 일 말입니다. 일본 궁도는 이미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청자입니다. 이미 세계화가 진행되었고,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배울 수 있을 만큼 일정한 형식과 격식 나아가 절차며 내용까지 완전히 갖추었습니다. 거기에 비한다면 한국의 활은 아직도 개들이 핥아대는 밥그릇 신세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설명해주니 그 분도 대번에 알아듣더군요.
우리 활의 가치를 몰라보는 것은 전세계 사람들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뿐입니다. 일본 궁도를 수련한 사람에게 우리 활의 원리를 1시간만 설명해주면 개밥찌꺼기 속에 파묻힌 그 빛나는 비취빛 고려청자를 대번에 알아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면 도대체 들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대상을 보는 지표가 현재의 수준과 겉모습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에 불려서 조금만 닦아내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황홀한 빛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 활은 고려청자보다 더 빛나는 보석입니다. 게다가 순도 100% 우리 것입니다. 다른 문화재의 경우 모두 외제를 수입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경주 석굴암이 그렇고 팔만대장경이 그렇습니다. 다 외국에서 들어와서 우리의 것으로 정착한 것입니다. 그러나 활은 태생부터 우리 것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가 그것을 말하고 주몽신화가 그것을 말합니다. 석기 시대부터 점차 우리 겨레와 더불어 발전해온 것입니다. 그런 것이 또 기능으로 보나 내면의 원리로 보나 세계 최고입니다. 우리의 전통 중에서 어떤 것이 이런 게 있을까요? 자랑스런 우리 문화재 중에서도 좀처럼 이런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문화와 우리 사회에서 우리 활의 꼴은 정확히 개밥그릇 신세입니다.
나아가 정작 활을 쏘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색안경을 끼고 보는 까닭에 활의 실상을 보지 못합니다. 전통을 버린 눈으로 전통을 보고는 가짜라고 하고 자신의 왜곡된 전통을 진짜라고 착각합니다. 활량이 아닌 일반인들은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국제종목에 없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국위선양을 할 기회 자체가 없고, 그에 따른 보상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매년 들려오는 소리가, 전국체전 종목에서 제외 시키겠다는 협박성 뜬소문들입니다. 남의 나라 사람들만이 우리 활의 엄청난 세계에 대해 감탄합니다. 고려청자를 개밥그릇으로 쓰는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 민족이 언제나 제 정신을 차릴까 탄식을 하며 세월을 보내는 중입니다.
고려청자를 개밥그릇으로 쓰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개밥그릇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국궁계의 내부 현실은 더욱 암담한데, 바로 전통의 문제에서 우리 활의 개밥그릇 신세를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전통은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물이 아니더라도 엄연히 뼈대가 있고 살이 있고 형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치 동상이나 조각을 보듯이 우리는 전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전통이라고 하지, 주먹구구로 제 생각 속에서 만들어낸 것을 전통이라고 주장해도 그게 아님은 주장하는 사람 빼고는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압니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구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소나무는 잎사귀가 2개이고, 잣나무는 3~5개입니다. 따라서 서로 비슷하게 닮았지만, 잎사귀를 하나 뽑아서 헤아려보면 대번에 소나무인지 잣나무인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별법을 무시하고 모양이 소나무 잎사귀를 닮았다고 해서 잣나무 잎사귀를 들고, '이거 봐라, 이게 소나무가 아니면 뭐가 소나무란 말이냐?'면서 소나무론을 펼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말싸움은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옳으니 그르니 떠들면서 싸움박질을 하겠지요. 그리고 그런 싸움박질에다가 '전통 논쟁'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서 논문으로 작성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은 와, 무언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착각도 할 것입니다. 그런 터무니 없는 주장을 인터넷에 도배해 놓으면 외국에서도 무식한 동호인들이 '마스터!' 어쩌구 하며 엄지를 척 하고 세워줄 것입니다. 이제는 말많은 자신이 우리의 전통을 세상에 알리는 줄로 착각하죠. 전통을 실컷 왜곡해놓고서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논쟁은 아무리 그럴 듯해도 허무한 일입니다. 우리가 소나무냐 잣나무냐를 두고 싸워봤자 소나무냐 잣나무냐를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잎사귀를 뽑아다가 식물학자에게 보여주면 10초도 걸리지 않고 결정날 일입니다. 그걸 두고 식물학자를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떠들면 그게 과연 논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건 말장난이지 논쟁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활에서 소나무냐 잣나무냐 하는 것은 무엇일까오? 그건 전통입니다. 전통의 문제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전통이냐 아니냐를 결정할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전통은 이미 오랜 세월에 결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실체가 있습니다. 그 실체를 무시하고 내가 주장한다고 해서 결정될 사안이 아닙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게 전통이 맞느냐고, 전통을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다고 말하면 그런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물어보면 간단할 것을,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이것이 전통일 것 같다고 말하면서 남의 전통 이야기를 깡그리 무시한다면 그게 미치 놈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통은 타협이나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더더욱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미 실체가 있는 것이니 거기에 맞추어서 맞느냐 안 맞느냐를 판단해야 할 일입니다. 그 적용과 판단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준을 놓고서 적합 부적합 여부를 결정할 때 논쟁이 발생할 수는 있어도 전통이 자기 머릿속에서 나온다는 식의 주장은 거론할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국궁계에서 전통의 기준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글쎄요? 한 번 대답해보시죠. 남의 말을 훔쳐먹지만 말고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씀해보시죠.
이 질문을 처음으로 한 단체가 온깍지궁사회입니다. 세기가 바뀌던 2000년의 일입니다. 누구에게 했을까요? 해방 전후에 집궁한 분들에게 했습니다. 대상이 23명이었습니다. 이분들에게 전화로 혹은 직접 찾아뵙고 여쭈었습니다. 그래서 2007년 무렵에 일정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전통 활쏘기 기준은 <조선의 궁술>이다!
이제는 여러분이 말할 차례입니다. 여러분이 대답해보시죠. 전통 활이란 어떤 것인가? 여러분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전통은 분명한 실체가 있는 것으므로, 그것을 자기 멋대로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을, 그게 전통이 맞느냐고, 전통을 아는 분들에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주장하는 전통이 제대로 된 전통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 전통 어쩌고 주장하는 것은 앞서 말한 소나무 잣나무 구별법을 전문가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겠다는 발상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러쿵저러쿵 하도 말이 많길래 제가 전통을 확인할 수 있는 설문지를 하나 만들어드렸습니다. <'조선의 궁술'을 공부하는 분들께 드리는 몇 가지 질문>이라는 글이었는데, 그 글을 두고 또 말들이 많더군요. 2000년 이후 <조선의 궁술>을 입에 담는 사람들은 사기꾼이라고 제가 좀 독한 말을 했는데, 스스로 사기꾼임을 선언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요새는 좀 웃픕니다. 사기꾼이 사기꾼임을 감추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해서 사기치는 것입니다. 제가 그 사기꾼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까지 알려드렸는데, 사기를 치는 사람이나 그런 사기꾼의 말을 계속해서 듣는 사람이나, 참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3천년 전 노자가 한 고민을 3천년 후의 제가 하고 있으니, 3천년 후에 또 누군가가 저와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노자와 같은 항렬이란 얘기는 아닙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하하하.
그러니 전통이 궁금한 분은, 스스로 전통의 기준을 만들어서 판단하지 말고, 전통을 아는 분들에게 물으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그 정도의 성실성은 보여주어야 사람들이 믿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전통을 확인해줄 사람들이 있어야겠죠? 한 번 주위를 둘러보시죠. 그런 분들이 계신가? 없을 겁니다. 다 죽었죠. 안타깝게도 국궁계에서 이게 전통이다, 라고 말씀을 해주실 분들은 벌써 다 입산하셨습니다. 전통의 꼬리뼈에서 활을 쏘시던 분들은 2000년도에 우리가 만난 것이 끝이었습니다. 그 당시 해방 전후에 집궁했던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70이 넘었고, 지금은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살아있다면 90 중반쯤이실 겁니다. 그러니 온깍지궁사회에서 정리한 '전통'이 아니꼽거든 얼른 그분들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다 돌아가셨지만 마치 기적처럼 여러분을 기다리며 아직도 100세 넘게 살아계실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온깍지궁사회의 결론이 아니꼬와서 아직도 못 돌아가시는 분이 어딘가에 살아계실지 모르니 얼른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의 논거에 사람들이 코딱지만한 믿음이라도 줄 것입니다. 온깍지궁사회를 해치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시 그런 어른을 찾지 못하여 고민 중이신 분은 저에게 연락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아직도 살아계신 분이 몇 분 계시니 제가 연락처를 알려드리지요. 의정부 대전 부산 정도에 그런 분이 아직 살아계십니다. 참, 저한테는 손전화 없으니, 메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 주장을 뒤집어엎을 방법을 몰래 알려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참고로, 개밥그릇 사건 이후 골동품상들이 하도 뒤지고 다녀서, 개밥그릇으로 쓰이는 고려청자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소나무냐 잣나무냐를 두고 싸우지 마세요. 식물학자에게 물으면 됩니다.
3) 접장과 사범
활터는 오랜 역사와 풍속이 살아 숨쉬는 현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활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어떤 결정을 할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으로 활터의 질서를 재배치하는 순간, 단순히 눈앞에서 꼴보기 싫은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칫하면 몇 백년 이어온 훌륭한 풍속이 나의 편벽된 판단과 어리석은 행동으로 뭉턱 잘려버리는 수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활터에 권력을 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중입니다. 활터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일까요? 표면으로 드러난 특별한 지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과녁 맞추기 경향이 짙어진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로 접어들면 한 가지 뚜렷한 증상이 더 추가됩니다. 승단입니다. 즉 누구나 승단을 하여 명궁이 되는 일이 활터의 가장 중요한 지표로 떠오릅니다. 5단을 따고 명궁이 되면 활쏘기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이 됩니다. 따라서 활터에서 모든 기준이 이 명궁으로부터 나옵니다. 이에 대한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명궁들은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더 해야 합니다. 명궁들이 활을 잘 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명궁들은 활터의 전통문화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일까요? 과연 그들의 지식이 활터의 사풍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활터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도 장밋빛일 것입니다. 우리 활은 수 백년 이어온 전통을 앞으로도 똑같은 모습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명궁 덕택입니다. 활터의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렇게 흘러온 역사를 알아서 앞으로 우리 활의 미래에 필요한 풍속을 정비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사풍의 기준을 세우는 조정자 노릇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명궁에 대해 그런 기대를 하기 힘듭니다. 명궁들의 사람 됨됨이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명궁이라는 제도를 운영하는 방법이 그런 내용을 기대할 수 없게 짜였기 때문입니다. 요즘의 명궁은 승단대회에서 일정한 맞추기 실력을 입증하면 됩니다. 활터에서 큰 문제를 일이키지 않는 사람이면 활터 임원의 추천을 거쳐서 대부분 명궁에 임명이 됩니다. 그들이 우리 활의 전통에 대해 어떤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는지 테스트하지 않습니다. 자정에서 배운 대로 활을 쏘다가 잘 맞추면 누구나 명궁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명궁들의 존재는 실제로 활터 현장에서 사풍을 왜곡하는 심각한 사태를 곳곳에서 유발합니다. 무식한 명궁들의 잘못된 신념이 활터 현장의 사풍을 일그러뜨리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제가 아는 활터에서 최근에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해가 바뀌면 임원 개편이 일어나고, 한 활터에서 임원이 바뀌었습니다. 사범도 따라서 바뀌었는데, 명궁이었습니다. 이 사범이 바뀌자마자 온깍지로 쏘는 사원을 불러서는 온깍지 사법은 잘 맞지 않으니 자신이 가르쳐주는 대로 바꾸라고 하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대답하니까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면서 차차 상담을 통해서 해결하자고 하고는 만날 때마다 한 마디씩 한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2000년 무렵부터 전국의 활터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상사가 되었습니다. 전에 제가 잠시 속했던 활터에서도 사범이 바뀌자 마치 완장 찬 듯이 행세를 하면서 사범인 자신의 말을 사원들이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공개석상에서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정말 무식이 극에 이르면 이럴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 활터에서 거의 날마다 벌어집니다. 사범이 제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것입니다. 사범이 된 자는 나설 때와 나서서는 안 될 때를 구별하는 것부터 배워야 하고, 그런 사람을 사범에 임명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활터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각궁을 쓰던 시절에는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각궁을 만져주는 사람이 있었고, 그 각궁을 가지고 사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무리 각궁 얹어주는 사람이 있더라도 각궁을 스스로 얹어 쏠 정도는 배우는 것이 한량의 기본 자세였습니다. 각궁을 얹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화초한량'이라는 우스개소리가 돌아왔습니다. 온실의 꽃처럼 모양만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각궁을 얹을 정도는 배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각궁이 그렇게 쓰이도록 배우는 데는 아무리 빨라도 겨울을 두어 번은 넘겨야 합니다. 즉 3~4년이 걸린다는 말입니다. 그 사이에 선배 한량들로부터 사법을 배웁니다. 이렇게 되면 3~4년 정도가 되어야 신사를 면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활터에서 배우는 것은 단순히 사법만이 아닙니다. 자정의 전통도 배우고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예절과 사풍을 저절로 몸으로 터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5년쯤 되면 신사를 완전히 면하고 당당한 활터 구성원으로 서게 됩니다. 이것이 옛 활터의 법속이었습니다.
몰기하면 접장 칭호를 준다는 것은 바로 이런 과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물론 자정에서 활을 얹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빠른 사람은 몇 달 만에 할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 접장이라는 칭호는 활터의 풍속과 사법을 어느 정도 배워서 홀로 활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몇 달이 아니라 1년 또는 몇 년이라는 기간이 적합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활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몰기를 하고 접장 칭호를 받으면 더 이상 그의 행실과 사법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접장이 되었기 때문에 상하 관계가 사라진 것입니다. 접장이 되는 순간 상하관계에서 선후배 관계로 바뀝니다.
활터에서 활터 관리하고 한량들 각궁 얹어주는 사람을 '사범'이라고 불렀고, 활터에서 사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을 '접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접장은 활터의 평등한 호칭입니다. 몇 년 전부터 접장이 천한 보부상들이 쓰던 용어라며 활터에서는 쓰면 안 된다는 궤변을 퍼뜨리던 사람들이 있어 한 때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습니다만, <국궁논문집 9>에서 접장이라는 용어를 정식 논문으로 다루어 제자리로 돌려놓은 어이없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한두 사람의 악의가 사풍에 어떤 왜곡을 일으킬 수 있는지 절감한 사례였습니다. 접장은 활터에서 남을 대접해줄 때 쓰는 호칭입니다. 그 짝말은 사말로, 자신을 낮출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풍 전반을 관리감독하는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당연히 사두 부사두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부사두급에 해당하는 교장이 그런 위치였습니다. 신사가 들어오면 교장은 활터 전반에 대한 교육을 하고 사법지도를 접장 중에서 활터에 자주 나오는 사람을 점지해서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활터 전반의 사풍은 교장이 조율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교장이 사법에 시시콜콜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같은 사법, 즉 온깍지 사법으로 가르치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사범이 접장을 불러서 그렇게 쏘면 안 맞는다느니 하는 식의 간섭은 정말 어이없는, 옛날 같으면 활터에서 쫓겨날 만한 일이었습니다. 사범 주제에 접장에게 이렇게 쏴라 저렇게 쏴라 말을 한다는 것이, 오늘날 사풍이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궁도 몇 단인 명궁이 그러고 있으니, '궁도'라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건 '궁도'를 하는 분들께나 할 짓이지 '국궁'을 하는 분들에게는 그래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렇지만 궁도 고단이자 명궁이신 분이 그렇게 하시는 데는 딱히 그 분만을 욕할 수도 없는 배경이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개량궁이 등장했습니다. 개량궁 얹는 것은 1시간이면 배웁니다. 3~4년 걸리던 교육과정이 1시간으로 압축된 것입니다. 장비가 이렇게 바뀌면 과녁 맞추는 것은 6개월이면 끝납니다. 6개월이 지나면 더 이상 배울 게 없습니다. 이것이 요즘 교육과정입니다.
이렇게 초고속으로 접장이 된 사람은, 활에 대해서 무식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딱히 활터에서 교육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정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귀동냥으로 들으면서 세월만 흘러갑니다. 10년이 지나면 어느덧 구사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시수까지 나면 5년쯤만에 5단이 됩니다. 그리고 활터에서 크게 밉보이지 않으면 명궁 추천을 받고 명궁이 됩니다. 그때부터 그의 머리 위에는 하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곧 법입니다. 제가 말을 하면 사원들이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궁도' 명궁이 탄생합니다.
문제는 이런 무식한 명궁들이 활터 곳곳에서 폭력에 가까운 사풍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궁도 고단인 명궁께서 이미 접장이 되어 잘 쏘는 사람을 불러서 이렇게 해야 잘 맞는다느니, 그렇게 쏘면 잘 안 맞는다느니 하는 참견은 몇 단 명궁의 분수에 걸맞은 지식을 갖추지 못한 결과에서 오는 참극입니다. 자신의 무식을 남에게 강요하면서 남들까지 무식하게 만드는 자를 사범으로 임명한 활터 임원들의 수준도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범은 사범의 일을 해야 합니다. 사범은 신사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신사를 가르치는 일에 그쳐야지 이미 접장이 된 사람들에게 이래랴 저래라 하는 것은 정말 주제 넘은 짓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완장을 차면 정말 하루 아침에 활터의 사풍이 무너집니다.
저는 활터에서는 될수록 한복을 입고 활을 쏘려고 합니다. 전통 한복을 다 갖추기 어려우면 생활한복이라도 입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두루마기를 입게 됩니다. 옛날에는 궁대를 두루마기 속에 찼습니다. 즉 바지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궁대를 찬 다음에 그위에 두루마기를 걸쳤습니다. 그러면 화살은 어떻게 차야 할까요? 당연히 두루마기 속에 차기 때문에 화살깃은 두루마기의 솔기로 나옵니다. 촉이 두루마기의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촉에 묻은 흙이 옷에 묻지 않도록 궁대 끝에 마구리를 달아서 거기에다가 촉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촉끝의 마구리는 깍지나 보궁 넣어두라는 주머니가 아니라 흙 묻지 말라고 촉을 넣는 곳입니다. 그러면 날이 더울 때 두루마기를 벗으면 어떻게 차야 할까요? 그대로 찹니다.
그렇게 하면 지금 화살 차는 방향과는 정반대가 됩니다. 지금은 깃이 앞으로 오도록 차는데, 두루마기를 입으면 깃이 옆으로 나오거나 오히려 뒤로 가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활터와 한복 때문에 생긴 풍속입니다. 깃이 앞으로 오도록 차는 것은 두루마기를 입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생긴 일이고 정확히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부터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편의상 그렇게 한 것입니다.
'편의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편의상을 '법률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활터에서 남 가르쳐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명궁쯤 되고 사범이라는 완장이라도 차면 '편의상'을 '법률상'으로 착각하여 사명감에 휩싸여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뜯어고치려고 합니다.
살깃이 앞으로 오도록 한 것은 협회에서 대회 진행의 편리를 위해 선택한 차선의 방법입니다. 만약에 두루마기를 입고 화살을 차면 어떻게 할까요? 화살 깃이 앞으로 오도록 찰 수 없으니 그러면 활터에서는 두루마기를 입지 말라고 기준을 정해두어야 할까요? 만약에 그런 규정을 둔다면 그게 활터라고 할 수 있을까요? 화살 차는 방향이 솔기 사이로 나오게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점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활터에서 사범 노릇하면서 완장 차고 설쳐댑니다. 자신이 애꾸눈인지도 모르고 너는 왜 눈이 두 개냐고 호통치는 것과 같습니다. 너는 눈이 두 개짜리 병신이니 성한 사람 되어야 한다고 한 쪽 눈 뽑으라고 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내 눈깔 하나를 뽑으면서까지 활을 쏴야 할까요? 이런 한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활터에서 활쏘는 일 자체가 모욕인 이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견디어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이런 무식한 명궁들이 착각하는 것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명궁은 협회의 명궁이지 활터의 명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명궁은 협회에서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활터는 협회의 것이 아닙니다. 활터에는 협회게 가입한 사람도 있지만, 그런 데 가입하지 않고 혼자서 활 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협회에서 준 명궁을 완장처럼 내세우며 협회의 지도이념을 활터에 퍼뜨리면 그게 협회 회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의 폭력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명궁 행세는 자정에서 하지 말고 협회에 가서 할 일입니다. 자정에서는 1/n에 해당하는 한 사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걸 잊고 설쳐대는 것 자체가 명궁의 자격에 미달되는 것임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활터 풍속을 무시하고 협회의 규칙을 강요하는 버릇은 너무나 오래 되고 익숙해져 이제는 판별하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화살 차는 방향도 협회의 대회 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는데도 어느 덧 옛날부터 그래 온 양 변질되어버렸고, 또 좌우 발시교대도 협회의 대회 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는데 이제는 자정에서도 으레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진행합니다. 이 모두가 협회에서 얻은 감투를 쓰고 활터에 와서 자행한 폭력의 결과입니다.
세상을 뒤집어보면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사람들이 불편합니다. 활터가 먼저이지 협회가 먼저가 아닙니다. 협회는 활터 사람들 중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상위단체입니다. 활터에 대고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주제가 못 됩니다. 본말이 뒤집힌 현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자격 미달의 증거입니다.
류근원 접장이 <국궁논문집 9>에서 접장이 왜 푸대접 받는 일이 발생하였는가 하는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애초에 존칭어이던 접장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것은, '명궁'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명궁이라는 호칭이 등장함으로써 '접장'이라는 호칭이 낮은 느낌을 주면서 접장이라고 불리는 것을 '명궁'들이 싫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부 무식한 명궁들이 자신을 접장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존칭으로 불러줘도 그것이 존칭임을 모르고 비칭으로 받아들여 '명궁'이라는 모욕에 가까운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일은 해프닝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명궁도 흔해져서 어딜 가나 명궁입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명궁으로 불리는 것도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러면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런 한심한 고민의 끝에서 나온 것이 '신궁'입니다. 이제는 신궁으로 부르고 불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50시 중 49시을 맞추고 일부러 마지막 한 발을 뺀 정조대왕도 자신을 명궁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움이 뭣인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은, 참 괴로운 일입니다.
몇 백 년 이어온 사풍속에는 명궁이 없습니다. 접장만이 있죠. 그런 이유가 다 있습니다. 그 이유가 소멸될 때 비로소 다른 용어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활터에서는 아직 그 용어의 존재이유가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4) 서당 개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모든 기술 분야에서는 옆에서 구경하는 것이 반은 배우는 것입니다. 어떤 스포츠든 실력 좋은 사람 옆에서 그 사람과 생활을 하면 그 사람의 어느 정도 수준까지 따라갑니다. 활도 마찬가지여서 곁에서 어떤 사람들이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수준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합니다. 훌륭한 구사 옆에서 활을 쏘면 곁눈질로 그것을 배우며 저절로 궁체가 잡혀가기 마련입니다. 이미지 트레이닝이 저절로 되는 것이니, 서당 개 3년이면 활을 쏠 수도 있는 거죠.
그렇지만 서당 개 신세는 거기까지입니다. 서당 개가 3년이면 풍월을 읊을 수는 있겠지만 3생을 윤회해도 배울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아무리 서당에서 오래 생활해도 개는 개일 뿐,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려면 마음 그릇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합니다. 개의 마음 그릇으로 사람인 훈장님의 마음 그릇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활이 꼭 이와 같습니다. 곁에서 곁눈질을 하면 겉 모습은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왕왕 전통이라는 것은, 한두 세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몇 세대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 속살을 보여주고 이치를 말로 설명해주기 전에는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습니다 천재가 나타나도 고려청자의 비색은 되살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천재들의 솜씨에 여러 대를 걸쳐온 내면의 원리까지 덧보태져야만 청자의 비색은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이미 고려청자의 비색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그것을 쓸 만한 사람들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사용자와 기술자가 사라진 이 시대에 청자의 비색을 누가 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럴 수 없다는 암담함이 우리의 활터에 가득합니다. 불과 한 세기 전에는 누구나 다 알던 <조선의 궁술>의 비의가 이제는 몇 명을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무공비급이 되었습니다. 빤히 보여주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서당 개는 개일 뿐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풍월을 아무리 잘 읊어도 도달할 수 없는 세계가 있습니다. 반깍지로 아무리 10몰기를 하고 20몰기를 해도 전통사법이 아닌 건 변하지 않습니다. <조선의 궁술>에는 눈으로 전할 수 없는 세계가 있습니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건너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 세계를 부인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리고 간편하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궁체가 고려청자의 비색이 아닌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잘 알면서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일 뿐이죠. 고려청자가 아닌 것을 갖다 놓고 고려청자라고 한들 그게 고려청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압니다. 그러면서도 굳이 고려청자가 없다고 주장해야 하는 운명이 그들 앞에 놓였습니다.
활에는 수많은 단계가 있습니다. 손끝으로 쏘는 단계, 죽머리로 쏘는 단계, 가슴으로 쏘는 단계, 몸통으로 쏘는 단계, 허리로 쏘는 단계, 허벅지로 쏘는 단계, 발바닥으로 쏘는 단계, 엄지발가락으로 쏘는 단계...... 여러분은 지금 어느 단계의 활쏘기를 하는 중입니까? 반깍지 사법으로는 아무리 잘 쏘아도 가슴으로 쏘는 단계에서 더 깊어질 수 없습니다. 혹시 반깍지 천재가 나타난다면 몸통으로 쏘는 단계까지는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천재도 허리, 허벅지, 발바닥, 엄지발가락의 단계가 어떤 것인지는 전혀 짐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단계를 넘어서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 단계가 무엇인지 여러분이 말해보시기 바랍니다. 가서 맛보지 않으면 좀처럼 말로 나타낼 수 없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 단계를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베트남에 스키부대로 갔다왔다고 말해야 하는 신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언어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여러분이 그런 세계에 대해 말을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고, 또 그것이 왜 거짓인지 알아볼 수는 있습니다.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드러낼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드러나는 말을 통해서 그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알려고 하는 사람에게, 혹은 그 전에 알던 것을 모두 내려놓은 사람에게 <조선의 궁술>이 길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완성은 어렵습니다. <조선의 궁술>을 말하던 사람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내용이 <조선의 궁술> 행간에 있기 때문입니다. 고려청자의 비취색은 바로 그곳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전통의 위대한 힘입니다. 서당 개의 풍월은 아무리 듣기 좋아도 개소리일 뿐입니다.
5) 전통과 문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운 글이 있습니다. 역사학자 이기백의 <민족문화의 전통과 계승>이라는 글입니다. 그 글에서는 전통과 인습을 구별하고, 창의성에 기여하는 요소를 전통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백번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이 글을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활터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결과를 놓고보면 연암 빅지원의 글과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같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유산으로 남은 것들이 당시에는 불에 태워버릴 위험에 처한 위험한 것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을 예로 들면서 자신의 사법을 정당화 하기 위하여 <조선의 궁술> 속 사법을 옛 것이라고 몰아부치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맞다면 <조선의 궁술>이 전통이 아닌 인습이어야 합니다. <조선의 궁술>속 온깍지 사법이 전통이 아닌 인습임이 분명히 입증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사법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과연 <조선의 궁술> 속 사법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안 맞는 인습일까요? 그래서 버려야 할 대상이 분명해진 것일까요?
최근 인터넷에서 새로운 사법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까요? 저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조선의 궁술> 속 사법이 어떤 세계이며 어떤 수준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모르는 그 세계에 대해서 경험도 없이 옛것이라고 규정해놓고 자신의 주먹구구 사법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사용하면, 머지 않아 자신도 똑같은 방식으로 공격당할 것임을 모르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기백의 글에서도 그랬듯이 전통 문화란 몸에 밴 어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로 이렇다고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몸으로 하는 활쏘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활을 쐈으며 어떤 이유로 그렇게 쐈는가 하는 점이 먼저 해명되어야 합니다. 이 점이 전혀 해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주장을 펴면 자신이 딛고 있는 자리를 부인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출발한 모든 논의는 하루아침에 무너집니다.
예컨대 최근에 나타난 반깍지 사법 중에서 명궁 사법을 정당화하기 위한 디딤돌은 시수입니다. <조선의 궁술> 속 사법은 시수에 불리하기 때문에 시수에 유리한 명궁사법이 정당하다는 논리 같은 것 말입니다. 요즘 온깍지 사법에 대해서 명궁들이 자신의 사법을 버티는 유일한 논리는 시수에 좋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생각하면 <조선의 궁술> 속 사법으로 쏘는 온깍지 사법은 자신들보다 시수가 떨어진다는 뜻이죠. 그러면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시수로 입증해보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궤변에 빠져있으면서도 그것이 궤변인지차 모릅니다.
<조선의 궁술>에 기록된 사법은 완전사법에 가깝습니다. 잘 맞추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 좋은 사법입니다. 쏘면 쏠수록 몸이 좋아집니다. 시수는 정조의 기록이 증명하고, 하인리히 독일 황태자가 방문했을 때 4중 5중을 땅땅 맞히었다는 신문 기록이 증명합니다. 온깍지 사법의 시수를 증명하는 기록은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묻습니다. 오늘날 명궁들 중에서 몸 안 아픈 사람이 있습니까? 먼저 대답해보십시오. 솔직히 말하십시오. 나는 몸이 아프지 않다!
그러나 그 대답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시수만 좋고 몸에 안 좋은 사법은 <조선의 궁술>이 비하면 발가락의 때만도 못한 사법입니다. 그런 사법을 만들어놓고서 마치 옛 전통이나 인습을 극복했다는 듯이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자신과 주변사람을 망가뜨리고 잘 전해오는 전통마저 인습으로 몰아가는 짓입니다. <조선의 궁술>은 결코 인습이 되지 않습니다. 고려청자보다 더 영롱한 빛을 발하는 인류 최고의 사법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조선의 궁술>을 버리고 자신의 사법이 최고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뿐입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활터에 널렸다는 것이죠. 그런 사람들이 이기백의 문화 창조론을 자신의 것에 갖다 붙여 그에 대한 대척점으로 전통사법을 위치 시키려 합니다. 이 어리석음을 올바로 보지 못하면 우리의 전통은 창조는커녕 몇 십년 몇 백년 뒷걸음질 칠 것이고, 우려대로 벌써 30년째 뒷걸음질쳐왔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뒷걸음질 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은 활터 사람들의 선택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궁술>을 무시하거나 주먹구구로 해석하는 한, 그 나락의 끝은 맨 밑바닥일 것입니다. 갑자기 5천년 전의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조선의 궁술>이 절망스러운 것은, 낡은 옛것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게 낡은 옛것인데도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법이 앞으로도 인류에게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활로는 그 이상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없습니다. 마치 한 번 잃고는 영원히 만들 수 없는 고려청자의 비색처럼.
머잖아 우리는 활터에서 또 다른 고려청자를 잃을 것입니다. 곧 사라질 그 비취색을 살찌가 허공에 그리는 반구비에서 가끔 봅니다.
6) 전통 계승의 최선과 차선
전통은 단절되었느냐 계승되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가닥처럼 가늘게 이어져도 끊어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살아날 수 있는 것이 전통입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몸짓의 흔적이기 때문에 끊어지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되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 좋은 본보기가 바로 태껸입니다. 태껸은 조선 후기 서울에서 유행하던 무예인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습니다. 그렇지만 황학정의 사원이던 송덕기 옹이 그것을 알고 있었고, 다행히 그것을 배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접어들어 태권도가 국기화 되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 무예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결국 태껸은 태권도 이전의 우리 본래 무예로 인정을 받아서 중요무형문화재가 되었고, 마침내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문화가 되었습니다.
태껸에서 보듯이 전통은 완전히 끊어지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살아난 것이 그전의 것과 똑같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남은 그것을 통해서 얼마든지 그 전의 모습을 유추하고 채워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면에 격구는 태껸과 달리 완전히 끊겼습니다. 송덕기 옹은 구한말 군인 출신으로 격구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송덕기 옹의 죽음과 함께 조선의 격구는 완전히 끝장난 것입니다. 이후에 격구를 한다면 그것은 창작 격구이기 때문에 '전통'이라는 말을 쓸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격구를 오늘에 되살리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때 만들어진 전통은 '최선'이라고 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차선'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외국의 격구를 살펴보고, 그것을 토대로 우리 측의 격구 자료를 참고하여 격구를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창작된 격구가 옛 격구와 얼마나 가까워지는가 하는 것이 전통성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하고 성실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창작과 계승의 아주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그것을 정직하게 인정한 다음에 한 걸음 한 걸음 전통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창작된 격구가 옛날의 기록과 가까울수록 우리는 그것을 '전통'으로 인정할 수 있는 단계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끊어진 전통에 대해서는 무한 방치할 수 없다면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도 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공자사당에 제향을 치르기 위해 우리나라의 종묘에 와서 제례악을 배워간 것은 바로 '차선'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선'이 없다면, 그래서 '차선'이라도 우리의 모습을 복원하고 싶다면 이런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고, 충분히 평가해줄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활터로 옮겨보겠습니다. 그렇다면 활터에서 최선이란 무엇일까요? 당연히 <조선의 궁술>을 말합니다. 제 멋대로 해석한 <조선의 궁술>이 아니라, 1940년대에 실제로 그렇게 쏘던 사람들의 동작을 토대로 재해석한 <조선의 궁술>입니다. 이것이 실낱같이라도 살아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전통 활쏘기로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전통 계승의 '최선'에 해당하는 방법이죠.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우리의 전통 사법은 변했습니다. 이미 4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명궁 사법이 국궁계를 장악하여 더 이상 전통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전통'의 문제에서 우리는 최선을 택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이런 의문에 가장 정직하게 답하고 대응한 단체가 온깍지궁사회입니다. 온깍지궁사회는 처음부터 전통의 계승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구사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7년 동안 전국을 쑤시고 돌아다녔습니다. 구사가 있다는 곳이면 어디든 갔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궁술>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확신은 막연한 추정이 아니라, 온깍지궁사회 회원들의 이같은 답사 체험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구사들의 이야기와 동작,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사법의 세계가 <조선의 궁술> 속에 그대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한 것입니다. 이 강렬한 체험은 그 어느 주장이나 이론과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전통에 대한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잠시 왔다가 결국은 떠났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활동을 중지할 무렵에는 9명만이 남아서 끝까지 이런 신념을 유지한 채 사계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때의 답은 이랬습니다. 우리 활의 전통은 <조선의 궁술>이 정답이다!
'전통'이 아니라면 몰라도 적어도 전통이라면 지금의 활터에서 유행하는 명궁 사법은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차선이라고 할 수밖에 없고, '최선'이 있는 한 '차선'은 '전통'의 문제에서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최선을 놔두고 차선을 선택하여 전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온 백성을 우롱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전통 자체에 대한 모독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활터에서는 아무도 이런 점에 대해 말하고 그것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모습이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입이 없다고 해서 그 일이 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은 실체가 있는 것이고 그것은 이기백의 말마따나 몸 속에서 전해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기억하는 그 어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조선의 궁술>을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신념을 양보할 수 없습니다. 명궁 사법이나 반깍지 사법으로 해석된 <조선의 궁술>이 아니라 1940년대에 활을 쏘던 한량들의 눈에 비쳐 해석된, 온깍지궁사회 활동을 통해서 확인된 <조선의 궁술>을 말합니다. 활쏘기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전통'의 '최선'이 있고, 그 최선은 바로 <조선의 궁술>입니다.
그러면 마사법은 어떨까요? 마사법은 이미 끊겼습니다. 이것도 송덕기 옹의 죽음과 함께 전통이 끊어졌습니다. 그런데 요즘 말타기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활쏘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충분히 되살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습니다. 이 경우는 어떨까요? 마사법에서 전통을 논하려면 '최선'은 없고 '차선'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마사법을 복원하려 한다면 마사와 보사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확인해야 하고, 그러자면 마사와 보사를 서로 분리시켜야 합니다. 보사는 <조선의 궁술>이라는 '최선'의 전통이 있습니다. 따라서 마사에서는 '최선'이 아닌 '차선'이 되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보사를 통해 마사를 재구성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보사를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보사를 부인하여야만 마사가 전통이 될 수 있다면 이건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사는 마사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차선'이 유일한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당연히 차선은 최선을 참고합니다. 보사의 원리를 마사에 적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마사는 보사에서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것은 '차선'을 택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자산이 됩니다. 이런 자산들이 모여서 우리가 옛 마사법에 가까이 간다면 그것이 곧 '마사법의 전통'으로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이 가능성을 무시하고 고증도 제대로 되지 않은 엉터리 마사법을 성급하게 '전통'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털도 안뜯고 닭을 먹겠다는 어리석은 발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마사법을 엿볼 수 있는 자료는 적지 않습니다. 정조의 지시로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에 보면 수많은 마상재 동작이 나옵니다. 저는 그것을 1990년대 말에 제주도에 가서 몽골 서커스단이 하는 것을 보고 깜짤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상재 동작이 무예도보통지에서 보던 그림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동작에 활쏘기를 결합하면 거의 완벽하게 마사법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전율했던 적이 있습니다. 말타는 원리과 활 쏘는 원리가 조선시대와 우리 시대의 동작이 다를 수 없을 것입니다. 숙달하면 거의 똑같은 동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 이미 끊어졌지만 마사법을 복원하면 원판과 99%까지 가까워질 수 있다는 확신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복원된 마사법은 전통일까요?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복원된 마사법을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을 통해 복원된 것이라도 '최선'이 없기 때문에 전통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단, 고증이 엄밀하고 그 고증을 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오랜 세월 연마한 사람들이 있다면 말입니다.
따라서 '차선'에 의한 전통의 복원은, 그것이 복원이라는 설정과 그 복원에 최선을 다했다는 성설성이 '전통'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아마도 이런 차원에서 지정된 문화재는 청주에서 직지를 찍는 '활자장'이 본보기일 것입니다. 직지는 활자만 있지 그것을 만드는 전통은 끊기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전통 주물 기법으로 그 기술을 복원했고, 지금은 국가무형문화재가 되었습니다.
마사법은, 보사가 활터에 생생히 살아있기 때문에 충분히 복원 가능한 전통입니다. 그러자면 앞서 말한 두 가지, 즉 복원 가능성과 복원 노력의 성실성이 열쇠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기준으로 마사법에 대한 전망을 살펴보면 암담하기 그지 없습니다. 마사를 정당화 하기 위하여 보사를 마사에서 온 사법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특정 그림에 나타나는 궁체를 보고 마사법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일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전통 복원의 가장 기초가 되는 '성실성'을 위배하는 짓이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아집이 자신들을 전통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는 짓입니다. 그런 작업에 들이는 공과 노력이 아깝지도 않은지 저는 참 의아스럽습니다. 성실성에 기초하면 얼마든지 '전통'으로 인정 받을 기회가 앞으로 올 것도 같은데, 오히려 자신들의 욕심으로 다른 전통을 공격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마사법이 탐난다면 이제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위에서 말한 '차선'의 전통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만 언젠가 지난 세월 동안 들인 공과 노력이 미래에 큰 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사법에 관심있는 젊은 분둘에게 제안합니다. 최선과 차선을 혼동하지 말고, 차선에서부터 출발하여 하나씩 한 걸음씩 자신의 체험을 기록하고 옛 기록을 연구하여 옛 사람들의 몸짓에 가까워진다면 언젠가는 '전통'으로 인정받을 날이 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자면 먼저 보사와 마사를 흔들어서 '최선'과 '차선'을 뒤섞는 일부터 멈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흔든다고 해서 전통이라는 '사실'이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혼란만 거듭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혼란의 책임은 반드시 추궁당합니다. 오늘날 어떤 주장은 반드시 어디엔가 흔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터넷은 아무리 무명으로 글을 써도 반드시 어딘가에 자취가 남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숨을 곳이 없습니다.
한국의 마사법은 언젠가는 복원되어야 마땅합니다. 지난 5천년간 우리 조상들이 해왔던 동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활쏘기를 감안하면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노력에 집중하여 자신의 체험을 기록하고 옛 기록에 가까워지려는 방향을 취하는 것이 '차선'을 전통 복원의 열쇠로 하여 자신의 희망을 열어가는 일일 것입니다. 마사법은 먼 훗날 충분히 무형문화재가 되고도 남음이 있는 일입니다. 건전한 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통 복원의 창시자가 되어야지, 기존의 '최선'을 흔드는 사기꾼이 되어 자자손손 사기꾼이라는 오명을 자초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7)활터에서 편사를 생각하다
8)애기살 복원 그후
9)<사법비전공하>의 격의궁술론
10)반도체와 활
첫댓글 저는 다른분들 호칭할때 아저씨 이모라고 부르다가 접장님이나 명궁님이란 호칭을 많이 쓰게 됬는데 명궁님이란 호칭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
언제부터인지 황학정 정관에도 스스로 궁도협회 하부기관임을 명시하는 문구가 생겼습니다
모든 것이 궁도협회에서 결정한 것을 따르도록 하고있습니다
참 한심한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국궁 일번지라고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활 배우는데 있어 많은 도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