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터에 떠도는 착각과 무지 7
-『조선의 궁술』로 돌아가자-
정진명(온깍지궁사회)
앞서 몇 차례 연재를 통해서 오늘날 활터에서 무슨 문제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런 문제들의 밑바탕에는 어떤 착각과 무지, 그리고 오해가 깔려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하면 걷어낼 수 있을까요? 과연 그럴 수가 있기나 한 걸까요? 이런 고민을 누구나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이 혼란이 걷힌다고 해도 무심코 자각 없는 한 세월이 지나면 우리가 오늘 그러했던 것처럼 또 다시 혼란에 휩싸일 것입니다. 이런 혼란이 닥쳐왔을 때 이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난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지난 날 우리 선배들은 어떻게 이런 상황에 대처했는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우리 선배들은 언제 이런 상황에 맞닥뜨렸을까요?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강점하고, 그 통치가 점차 공고해져갈 무렵인 1920년대가 바로 그런 혼란기였습니다. 나라는 망했고, 독립할 희망은 3.1운동의 좌절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결국 일본의 통치가 공고화되면서 활쏘기도 그 안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그러자면 체질개선을 해야 합니다. 그때까지 활쏘기란 전쟁무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전쟁무기로 존재해온 활쏘기를 스포츠로 환골탈태 시키는 일만이 조선의 활쏘기를 살아남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이런 고민은 1928년의 조선궁술연구회 결성으로 결실을 봅니다. 이 모임의 성격은 체육단체인데 이름이 조선궁술연구회인 것이 특이합니다. 조선궁술회가 아니라 '연구회'인 것입니다. 무엇을 연구한다는 뜻일까요? 당연합니다. 전통 활쏘기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왜 연구할까요? 방향을 잡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1년 뒤인 1929년에 5천년 활쏘기의 역사를 총정리한 책이 나옵니다. 『조선의 궁술』이 그것입니다. 이 책 속에는 위기감에 휩싸인 당시 지식인들의 고민이 가득합니다. 활의 나라가 일본제국주의에 망하면서 그 정신인 활쏘기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먼저 정확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라고 인식했음을 조선궁술'연구회'와 『조선의 궁술』이라는 책이 아주 잘 보여줍니다.
『조선의 궁술』은 우리 활쏘기의 역사부터 풍속과 사법까지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정리했습니다. 이 책만 있으면 나라가 망해도 백성이 살아있는 한 언제든지 일관된 모습으로 자기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책이 나온 뒤인 1932년에 이 모임이 <조선궁도회>로 이름을 바꾼다는 사실만을 보아도 조선궁술연구회가 무엇을 하려고 한 단체인지는 분명해집니다. 단순한 스포츠단체이기 이전에 그 전에 내려오던 활쏘기의 성격을 정리하여 당대의 이념과 미래에 맞는 근대스포츠로 환골탈태시키려 한 의도가 돋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도가 그 이후 별다른 수정사항 없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이런 것은 조선궁도회의 후신인 대한궁도협회에서 1986년에 낸 『한국의 궁도』라는 책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은 『조선의 궁술』을 현대어로 번역하여 낸 대한궁도협회의 공식 교범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활터를 돌아보면 『조선의 궁술』에 기록된 내용과 굉장히 많은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활쏘기의 핵심인 사법은 반깍지사법으로 바뀌어 국궁이라고 하기 힘들 지경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반깍지 궁사들은 양궁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사람들을 찾아가서 비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일그러진 오늘날의 모습으로 우리의 '전통'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풍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의 궁술』은 물론이고 『조선의 궁술』에도 없던 것들이 얼토당토 않게 생겨나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활터 곳곳에 스며든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강제성을 띠면서 그럴 의사가 없는 사람들한테까지 강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활터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해 상위단체의 논리를 들이대어 개인에게 이유도 없이 강요하는 상황입니다. 사풍의 경우, 『조선의 궁술』에는 없는 것은 사이비 사풍이 분명한데도 마치 무슨 대단한 명분이나 필요가 있다는 듯이 강요합니다. 특히 구사들이 신사들을 길들이려는 아주 나쁜 의도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도 없이 강요하는 것은 독재체제에서나 가능한 일인데, 그런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활터의 현실입니다.
만약에 이런 사이비 예절이나 사풍이 활터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 그 전의 기준과 비교하여 필요성을 설득하고 논리화하여 검토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거짓을 꾸며가며 오늘날의 왜곡된 활터 풍속을 기정사실화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괴상망측한 짓으로 변하고, 결국 그것은 상식에 기초한 일반 시민들의 반발에 부딪힐 것입니다. 그것은 활터의 고립으로 이어져 자멸로 치달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혼란에 쌓인 시대일수록 과거를 돌아봐야 하고, 그 과거로부터 현재의 기준을 끄집어내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활터의 혼란을 정리하려면 이미 과거에 우리 선배들이 정리해놓은 『조선의 궁술』을 기준으로 하고, 우리 활의 앞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하는 미래의 전망을 설정한 뒤에, 그 두 가지 사이에 있는 현재의 모든 것들이 과거와 미래 사이의 징검돌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만약에 징검돌이 아니라 쇠사슬이라면 걷어내야 합니다. 굳이 <조선의 궁술>에도 없는 것들을 손목 발목에 주렁주렁 걸고 힘겨운 발걸음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활터에서 해야 할 일은, 되지도 않을 똥고집으로 왜곡된 현실을 정당화하는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고 『조선의 궁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잠시 여러분의 생각을 어지럽힌 이 글들은 모두 『조선의 궁술』로 돌아가야 한다는 단 한 마디를 전하기 위해서 한 말들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의 궁술』은 우리 활의 영원한 고향입니다.
고맙습니다.
2016년 가을, 청주시 남일면 활터(장수바위터)에서
사말 정진명
첫댓글 활터의 나침반 같은 글입니다.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주셨네요..고맙습니다~^^*
조선의 궁술대로 쏘면서 깍지팔을 180도 다 뻗는게 온깍지라면.
90도 절반 펴는 것은 반깍지.
깍지손을 제자리 떼는것은 봉뒤가 맞습니다.
양궁식 사법 차용해서 턱밑살대로 고이고 쏘는 것은 국궁과 상관없으므로 반깍지 사법이라 칭하면 용어의 모순입니다.
양궁사법 차용 시수내기 궁체는 "게발깍지"로 불리는게 합당합니다.
언어는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이리저리 규정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정우씨가 설명하는 반깍지와 봉뒤, 게발깍지의 구분은 처음 듣습니다. 전통은 창조가 아닙니다.
처음 듣다니요?
책 “조선의 궁술”에서 조선의 궁술로 쏘면서 깍지손을 제자리에서 떼는 것을 봉뒤라 하여 병증으로 분류하고 있지 않습니까?
온깍지 궁사회가 조선의 궁술대로 쏘면서 깍지팔을 180도 펴는 것을 온깍지라 하니, 절반 90도만 펴면 반깍지가 되는게 당연지사인데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활터에서 과녁을 신체 옆으로 두고 서서 죽머리 집어넣고 막줌에 턱밑살대로 쏘는 “게발깍지”를 조선의 궁술로 쏘는 것이라 인정 안하시면서 반깍지라 이름 짓는다면, 조선의 궁술로 쏘면서 깍지손을 90도로 떼는 것을 무엇이라 명명해야 합니까?
조선의 궁술대로 쏘면서 깍지손을 180도 떼는 것을 온깍지라 하시면서,
조선의 궁술대로 안쏘면서 깍지손만 180도 떼면 온깍지가 되는 것입니까?
조선의 궁술대로 쏘면서 깍지손을 제자리 떼는 것을 봉뒤라 나와 있으니, 깍지손을 90도 떼는 것을 반깍지라 이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과녁을 신체 옆으로 두고 막줌에 뼈로 버티면서 죽머리 집어넣고 턱밑살대로 쏘면 조선의 궁술대로 안쏘는 것이고 이렇게 쏘는 것을 세상에서 게발깍지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리저리 규정해서 만든것도 아닐뿐만 아니라 세상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찬찬히 살펴보면 답이 다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혼한 엄마가 재혼을 하면 홍길동을 반길동으로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과 같다.
책 “조선의 궁술”같이 쏜다고 이야기 하면서 조선의 궁술같이 안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조선의 궁술같이 안쏘면서 권위는 조선의 궁술에 기대는게 현 활터의 모습일 것입니다.
“책 조선의 궁술같이 쏜다”는 의미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조선의 궁술을 설명하다 보니 온갖 가닥길이 나와서 어지러울 뿐, 조선의 궁술은 우리몸과 우리활 속에 있지 다른데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천년활을쏘아온민족이 꼭온깍지로 쏘는것만 전통이라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릴때 55년전에제가본 반깍지로쏘는어른들은 엉터리로 활를내고있다는말일까요
자유게시판에올린 제글을 참고히시길바랍니다
다늘어진 각궁으로 최대한의효과를 낼려고 깍지를채는것으로 제눈에는보입니다
제가 온깍지 카페가 마음에 드는 이유가, 원형을 보전하려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전통이란게 원형에 대한 왜곡이나 훼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하는 것이라고 보면,
온깍지 궁사회가 그런 노력을 하는 극소수의 단체라는 것이죠.
온깍지와 반깍지의 의미는 아마도 심신단련 목적의 장거리 습사가 주종인 평시와
긴박한 전투가 벌어지는 단거리 살상용 전시에 구분되어 사용되었을 터인데,
오늘날 전시의 무기가 아닌 생활체육이나 전통보전의 목적이라면 온깍지가 더 맞지않나 생각되네요.
정진명님의 고견에 동의하는 입장인데요. 요즘 국궁을 하시는 분들중에 과녁에 잘맞추는게 장땡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그럴러면 정확도가 높은 양궁을 하지 왜 국궁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국궁은 전해내려오는 원형에 따르고 맞추는데 목적을 두기보다 살을 내는데 목적을 두어야 하는게 아닐런지요. 그러려면 좀 더 전통사법에 대한 연구와 그 속에 담겨있는 건강학적,수련적 의미를 찾아내는 연구가 필요하겠지요.
유목민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온깍지든 반깍지든 나름 고유 명칭를 득하고 있고 다수에 궁도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사법임에 존재 가치는 모두 있다고 봅니다. 전통성에 대한 입증과 전 하려는 노력은 감사하나 반깍지를 부정적으로 전하려는 노력함은 正 함이 아닌가? 합니다.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