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터의 평등한 호칭 , 접장
류근원 ( 청주 우암정 사범 )
1. 머리말
2. 사전에 정의된 ‘ 접장 ’
3. 활쏘기 문헌상의 증거
4. 활터 현장의 증거
5. 전통의 의미와 접장의 쓰임
6. ‘ 접장 ’ 을 기피하려는 심리에 대한 추론
7. 맺음말
1. 머리말
1) 들어가며 : 전문 분야의 호칭
역사가 오래된 어떤 분야이든지 그 분야에는 고유한 호칭이 있게 마련이다 . 그 호칭을 통해서 그 분야에서 오랜 세월 닦아온 공력을 인정해주게 된다 . 예를 들어 집을 짓는 건축분야에서 아무런 전문 기술이 축적되지 않는 보통 노동자에게는 전문 호칭이 없지만 , 일단 그 분야의 전문기술을 갖춘 후에는 ‘ 목수 ’ 라는 일반적 호칭을 쓰게 되고 , 더 나아가 ‘ 소목장 ’, ‘ 대목장 ’ 으로 불리는 사람도 특별한 사람도 있게 된다 .
만약 절에 가면 흔히 만나는 재색 빛깔 한복을 입은 여자 분에게 ‘ 아주머니 ’ 라는 사회의 일반적인 호칭을 쓰면 어떠할까 ? 그것은 그런 용어를 쓰는 사람이 사찰문화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지만 ,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다 . 사찰문화에 대해서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 그 여자 분을 ‘ 보살님 ’ 또는 ‘ 여거사님 ’ 이라고 부를 것이다 .
어느 분야에나 아직 정식으로 입문하지 않은 사람과 정식으로 입문한 사람 , 그리고 초보자 단계를 지나서 전문가가 되거나 고급단계에 이른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있는 것이고 , 이러한 호칭은 일반적인 사회의 호칭과 달리 그 분야 사람을 구별해주는 호칭이며 , 또 그 분야에서 축적한 소양을 인정해주는 호칭인 것이다 .
한 분야의 이러한 호칭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 어느 분야에 고유한 호칭과 전문용어가 있다는 것은 오랜 전통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 활터의 호칭에도 이와 같이 오랜 전통이 있다 . 사두나 사백 , 사장 , 행수 , 교장 , 장무 , 권무 등은 오랜 역사성이 있는 용어이다 . 직책을 나타내는 용어 이외에도 활터에서 상대에 대한 일반적인 존칭인 ‘ 접장 ’ 과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 사말 ’ 이란 용어도 오래 쓰인 말이다 .
교회에서 서로 ‘ 형제님 ’, ‘ 자매님 ’ 이라고 부르며 서로 같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나타내듯이 , 절에서는 ‘ 거사님 ’, ‘ 처사님 ’, ‘ 보살님 ’ 이라 부르면서 그들이 속세를 떠난 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 활터에도 그런 호칭이 있어서 , 활쏘기에 정식으로 입문한 사람은 ‘ 접장 ’ 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다 . 각 분야의 이런 용어는 그 분야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며 , 간직하여 전해야할 문화 자산이다 .
교회나 절에서 이미 있는 전문적 호칭을 버리고 누구에게나 ‘~ 씨 ’, ‘~ 부인 ’, ‘~ 양 ’ 이란 호칭으로 부를 수 있을까 ? 가능이야 하겠지만 , 이것은 문화적인 퇴보이다 .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분야에 대해서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 이것을 평등사회로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마찬가지로 활터 고유의 용어를 버리고 일반 사회에서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 ‘~ 님 ’ 으로 활터사원을 호칭한다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 문화발전에 역행하는 일이다 .
2) 연구 방법
이 글에서는 먼저 사전에 정의된 접장의 의미를 파악한 다음에 , 활쏘기 관련 서적에 나타난 용례를 알아보고 , 활터 현장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가 하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접장의 정확한 의미를 정리하려고 한다 .
2. 사전에 정의된 ‘ 접장 ’
먼저 각종 사전에서 ‘ 접장 ’ 이 어떤 뜻으로 규정되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이 논의의 첫 번째 순서일 것이다 .
1) 포털사이트 ‘ 다음 ’
- 어학사전 : 접장 ( 接長 ) 명사
1.‘ 교원 1 ( 敎員 )’ 을 얕잡아 이르는 말 .
2. 서당에서 나이와 학력이 가장 높은 사람으로 뽑히어 글방 선생을 돕던 사람 .
3.[ 역사 ] 동학 ( 東學 ) 에서 접 ( 接 ) 의 우두머리 . 유의어 접두 ( 接頭 ), 접주 ( 接主 )
4.[ 역사 ] 보부상의 우두머리 .
- 백과사전 : 접장 ( 接長 )
접장 ( 接長 ): 조선 시대에 접 ( 接 ) 의 우두머리를 일컫던 말이다 . 접 ( 接 ) 은 글방 학생이나 과거에 응시하는 유생 ( 儒生 ) 들이 모여 이룬 동아리이다 . 그럼으로 서당의 우두머리 즉 현대의 반장에 해당한다 .
접장 ( 接長 ) : 조선 시대에 , 접 ( 接 ) 의 우두머리를 일컫던 말로 서당의 우두머리 혹은 보부상의 우두머리등을 표현 할 대 쓰는 말이다 .
접장 ( 接長 ) : 보부상의 우두머리
2) 포털 사이트 ‘ 네이버 ’
- 어학사전
접장 ( 接長 ) 명사
1 . < 역사 > 보부상의 우두머리 .
2 . < 종교 > [ 같은 말 ] 접주 ( 接主 )(2. 동학에서 , 접 ( 接 ) 의 우두머리 ).
- 교육학 용어사전
접장 ( 接長 ) : 규모가 큰 서당에서의 학생의 장 . 비교적 규모가 큰 서당에서는 훈장 ( 訓長 ) 한 명만으로는 다수의 학생을 훈도할 수가 없으므로 , 학생들 가운데서 나이가 많고 학력이 우수한 자를 학생장으로 세워 접장이라 불렀다 . 직접 학생과 가까이 지내며 교유 ( 敎諭 ) 하는 까닭에 서당 풍기에 미치는 영향이 훈장보다 큰 경우가 많았다 .
- 소설 토지 용어사전
접장 ( 接長 ) : 교원 ( 敎員 ) 을 낮잡아 일컫는 말 . " 누가 누군지 빤히 알고 있는 용정에서 풀려나왔으면 접장 감투는 멀찌감치 벗어놓고 ," " 아직은 그래도 꽥 소리는 하는구먼 . 좀더 두고 보자 . 접장 후취자리도 감지야 덕지야 할 테니 ."
- 문화 콘텐츠 닷컴
접장 ( 接長 ) : 조선 시대에 접 ( 接 ) 의 우두머리를 일컫던 말이다 . 접 ( 接 ) 은 글방 학생이나 과거에 응시하는 유생 ( 儒生 ) 들이 모여 이룬 동아리이다 . 그럼으로 서당의 우두머리 즉 현대의 반장에 해당한다 .
이런 설명의 끝에 근거자료를 제시하였다 . 다음과 같다 .
접장의 자격과 대우
접장은 오늘날의 조교와 같은 성격을 지닌 일종의 보조교사이다 . ' 접 ' 이란 원래 ' 무리 ' 라는 뜻을 지녔지만 , 서당에서는 동급의 학도를 지칭한다 . 고려시대의 사학에서 접장제도가 발달하였다 . 접장제도는 비교적 규모가 큰 서당에서 훈장 한 사람으로는 많은 학도를 일일이 가르칠 수 없을 경우에 학도 가운데서 나이와 지식이 많은 자를 뽑아 ' 접 ' 의 장으로 세웠는데 , 큰 서당에서는 접장의 수가 2, 3 명도 되었다 . 접장은 서당의 수학자 가운데 성적도 제일 좋고 나이도 비교적 많은 사람에게 맡겼다 . 접장은 스스로 훈장에게 수업을 받는 한편 , 훈장이 서당을 비울 때에 자신이 속한 ' 접 ' 의 하급생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언행 · 예절 · 학습태도 등을 지도하였다 . 말하자면 훈장의 대리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 접장은 학동들을 장악하고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 항상 학동들의 모범이 되었기 때문에 학동들이 스승 못지않게 어렵게 여기거나 존경하는 경우도 많았다 . 따라서 접장은 하급생들에게 있어서 학업담당교사이자 훈육담당교사이고 , 동문의 사형이 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접장이 서당 풍기에 미치는 영향은 훈장보다 큰 경우가 많았다 . 접장의 보수는 무료였으나 학비가 면제되기도 하였다 .
다른 사이트의 자료를 찾아보아도 뜻은 대동소이하다 . 어학사전을 찾아보면 네이버보다는 다음이 잘 정리되었지만 그에 따른 증빙자료를 보면 다음보다 네이버가 더 자세하다 . 이 둘의 자료를 종합하면 접장에 대한 궁금증은 거의 다 해소된다 . 위의 인용문에서 동학이나 보부상들이 쓴 접장이라는 용어는 아주 특수한 모임의 용어이므로 오히려 서당에서 쓰인 접장이란 말이 흔한 경우라고 하겠다 . 당시 일반 사회에서 흔히 쓰이던 용어가 동학의 조직이나 보부상의 조직으로 흘러가서 통용된 경우라고 보면 된다 . 서당의 경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
3) 서당에서 쓰인 예
서당은 고구려 시대부터 ‘ 경당 ’ 으로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승되어 더욱 발전된 민중교육기관으로 신교육이 실시될 때까지 존속해온 가장 보편화된 교육기관이었다 . 서당은 훈장 , ‘ 접장 ’, 학도로 되어 있었다 . 학도는 7 ∼ 8 세에서부터 15 ∼ 16 세에 이르는 연령층이 중심을 이루었으나 20 세 전후의 관자 또는 그 이상의 연령층이 있는 경우도 많았다 .
규모가 작은 서당에서는 훈장 한 사람이 가르쳤으나 비교적 큰 서당에서는 훈장 혼자 많은 학동을 가르칠 수 없었으므로 학도들 가운데서 나이가 들고 학력이 우위인 자를 ‘ 접장 ’ 으로 내세워 그보다 하급과정의 학동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 ‘ 접 ’ 이란 곧 단체의 뜻으로 같은 서당에서 수업하는 동료를 ‘ 동접 ’ 이라 하고 , 이 접의 우두머리 격이 곧 접장이었다 .
오늘날 활터에서 쓰는 접장이라는 용어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 문과급제를 지망하는 사람은 서당에 가서 글공부를 하게 되는데 , 이곳에서 훈장을 대신하여 학동을 가르치는 사람이 접장이다 . 마찬가지로 무과를 지망하는 사람은 활터에 가서 활쏘기를 배우게 되는데 , 그런 사람을 한량이라고 했고 , 활터에서 교장을 대신해서 신사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 접장 ’ 이었다 .
4) 동학에서 쓰인 예
동학에서는 모든 신분계층을 가리지 않고 서로의 호칭을 접장 ( 接長 ) 으로 통일해 부르게 하였다 . 자신을 스스로 부를 적에는 하접 ( 下接 ) 이라 하였다 . 접장은 보부상의 최소 단위의 책임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여 왔는데 이를 원용한 것이다 . 접장은 가장 평등한 호칭이었다 . 이런 만인평등 사상에 따라 “ 동학에 들면 누구나 양반이 된다 ” 는 소문이 퍼져 당시에 동학에 입도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다 .
5) 보부상에서 쓰인 예
각 읍의 군수나 현감 등 지방관청의 장들이 상거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보부상단의 우두머리를 접장으로 임명하였다 . 이들의 선생안도 전해오는데 , 그 내용은 역대 ‘ 접장 ( 接長 )’ 의 명단으로 , 133 년에 걸친 엄청난 기록이다 .
6) 민속놀이에서 쓰인 예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 가마를 이용하여 벌이는 민속놀이로 가마싸움이 있는데 , 매년 추석에 하는 놀이로 의성 읍내의 남부에 봉강 ( 鳳岡 ) 서당 , 성무청 ( 盛武廳 ) 서당 , 삼일재 ( 三一齋 ) 서당 , 향청 ( 鄕廳 ) 서당 , 북부에 규모가 큰 덕록 ( 德麓 ) 서당이 있었고 , 남과 북 양편으로 가른 학동들이 서당학동들이 편을 갈라 노는 놀이이다 . 이 행사의 대장 격으로 뽑히는 사람을 ‘ 접장 ’ 이라고 했다 .
가마싸움에 이긴 서당에서는 그해 과거시험에 급제하는 학동이 많이 나온다는 속신이 있어 학동의 부모들은 더욱 열렬히 응원하기도 한다 .
7) 접장의 뜻
따라서 ‘ 접장 ’ 은 근대화 이전의 우리 사회 곳곳에서 두루 쓰이던 용어였지만 , 시대가 바뀌면서 아주 특수한 용어처럼 인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활터에서 쓰이는 ‘ 접장 ’ 이라는 용어도 현대사회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특수한 것처럼 보이지만 , 이렇게 그 역사를 찾아보면 옛 시대에는 아주 흔히 쓰이던 용어였음을 알 수 있다 .
결론은 , 접장이라는 말이 작은 모임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손색이 없는 아주 중요한 단어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3. 활쏘기 문헌상의 증거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접장이라는 말은 우리 옛 시대에 흔히 쓰이던 말이었다 . 이런 말이 활터로 흘러드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 그 결과 활터에서는 접장이라는 말을 , 신사를 벗어난 사람을 예우하는 말로 썼다 . 접장 본래의 뜻에 가장 부합하는 말이다 . ‘ 접장 ’ 이라는 용어가 문헌으로 확인되는 자료는 아주 많다 .
1) 『 한국의 활쏘기 』 의 ‘ 접장 ’
1999 년에 발간되어 국궁 입문 필독서로 자리 잡은 『 한국의 활쏘기 』 에는 접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
접장은 활터에서 한량을 좋게 대접해주려고 할 때 쓰는 말이다 . 원래 접은 여럿을 하나로 묶어서 부를 때 쓰는 말이다 . 같은 또래를 동접 ( 同接 ) 이라고 하고 , 마늘도 한 묶음을 접이라고 한다 . 그래서 활터에서는 사접 ( 射接 ) 이란 말도 쓴다 . 활 쏘는 사람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부를 때 쓰는 말이다 . 순우리말로 바꾸자면 ‘ 활 쏘는 동무들 ’ 이 될 것이다 . 따라서 접장이란 그 접을 이끄는 우두머리라는 뜻이니까 다른 사람보다 더 높여 부르는 것이다 .
‘ 동접 ’ 이나 ‘ 사접 ’ 같은 말도 우리말 사전에 다 나오는 말이다 . 아울러 이 책에는 각주까지 달아서 접장이 우리 사회에 두루 쓰이던 말임을 기록하기도 했다 . 각주 14 번의 글에는 이렇게 쓰였다 .
접장이란 말은 옛날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쓰이던 말이다 . 서당은 물론 각종 단체에서 쓰이고 , 보부상 모임에서도 쓰였다 .
어느 사회든 높임말이 있으면 낮춤말도 있는 법이다 . 옛날에 양반들 앞에서 종들이 자신을 ‘ 소인네 ’ 나 ‘ 쇤네 ’ 라고 부르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 접장이 높임말이라면 자신을 낮추는 말은 ‘ 사말 ’ 또는 ‘ 하말 ’ 이다 . 그러니 접장이란 말이 활터의 전통과 상관이 없는 말이라면 그와 짝을 이룬 말인 사말이나 하말이라는 말도 버려야 한다는 뜻이 된다 . 이것은 논리로나 전통 관습으로 보나 말이 안 되는 결론이다 . 이 한 구절만 봐도 ‘ 접장 ’ 이 활터의 전통을 아주 잘 담고 있는 말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이런 내용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뒤에 나오는 여러 책들의 내용이다 . 『 이야기 활 풍속사 』 와 『 국궁논문집 』 에서 해당 구절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
2) 『 이야기 활 풍속사 』 의 ‘ 접장 ’
성낙인 ( 서울 황학정 ) : 이야기 활 풍속사 23 쪽 .
정 : 접장이라는 건 어떤 말인가요 ?
성 : 그건 처음 배운 사람을 대접해 주려고 하는 말이야 .
김복만 ( 울산 청학정 ) : 이야기 활 풍속사 186 쪽
정 : 그러면 활을 가르치는 사람은요 ?
김 : 그건 접장이 했지요 . 접장 중에서 한가하고 저거한 사람이 했지요 .
권영구 ( 예천 궁장 ): 이야기 활 풍속사 295 쪽 .
권 : ( 현충사 대회에서 박 대통령의 각궁을 올려야 하는데 ) 심재관이도 하라니까 내빼면서 날더러 권 접장 , 권 접장 , 나 좀 살려줘 . 그러더라고 .( 그래서 내가 올렸지 .)
작고한 예천활 권영구 궁장과 부천활 김박영 궁장은 두 사람 다 본인을 어떤 칭호로 불러드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 접장 ’ 이라고 불러준다면 고맙겠다는 답변을 하였다 . 이를 통해서 ‘ 접장 ’ 이라는 칭호가 상당히 높여 부르는 칭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활터에 갓 입문하여 5~6 개월 지나 첫 몰기를 한 신사에게 ‘ 접장 ’ 이란 칭호를 준다고 하여 , 접장은 겨우 일년 정도의 신사에게나 쓰는 호칭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그릇된 주장이다 .
3) 『 국궁논문집 』 의 ‘ 접장 ’
2001 년부터 꾸준히 발간되어 8 집에 이른 국내 유일의 국궁 전문 학술지 『 국궁논문집 』 에도 해방 전후의 구사들과 나눈 대담록이 매 호마다 실렸다 . 거기에도 ‘ 접장 ’ 용어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나온다 . 이 책에 실린 대담록에서 접장 부분만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
윤준혁 ( 부산 수영정 ) : 국궁논문집 제 1 집
윤 : 이 ! 그 , 나가 질 츰에 활 배와갖고 .
정 : 다섯 배네요 ?
윤 : 이 ! 활 배와갖고 접장님 뫼시고 가갖고 사십 원 주고 활 두 정 샀어 . 장기홍이 활얼 . 그래 가지고 우리 접장님 한 장 드리고 내가 한 장 갖고 ,
이종수 ( 고흥 문무정 ) : 국궁논문집 제 2 집
이 : 노장에서는 큰 상 한 상을 채려가지고 . 기념품하고 상하고 몰기혔다고 대접을 해준단 말여 . 해갖고 , 그 상을 받고 대접을 받어야 인자 접장 칭호를 받게 돼 .
백남진 ( 대전 대덕정 ) : 국궁논문집 제 5 집
정 : 그러면 가르치는 사람은 뭐라구 그랬어요 ?
백 : 가르치는 사람은 사벰이죠 . 접장이라구 하는 데가 있구 , 사범이라구 하는 데가 있구 .
박문규 ( 대전 대동정 ) : 국궁논문집 제 8 집
정 : 저기 , 제가 고문님이라고 불러야 되나요 ? 아니면 접장님이라고 불러야 되나요 ?
박 : 아 , 접장님이 좋지 .
이상을 보면 해방 전후에 집궁한 사람들의 의견이 한결같이 ‘ 접장 ’ 이란 말을 활터에서 몰기 한 후 활을 가르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 여기에서 채록에 응한 사람들은 해방 전후에 집궁한 분들로 , 어느 한 지역에 사는 분들이 아니라 전국에 걸쳐 흩어져 사는 분들이고 , 따라서 ‘ 접장 ’ 이란 어느 한 지역의 사투리도 아니고 활터에서 아주 흔히 쓰이는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접장의 이런 성격을 아주 잘 설명한 글이 최근에 나왔다 . 다음의 설명을 보면 ‘ 접장 ’ 이 어떤 성격인가를 아주 잘 알 수 있기에 소개한다 .
활터에서는 첫 몰기가 끝나면 ‘ 접장 ’ 칭호를 줍니다 . 접장이란 스스로 자기 길을 가라는 격려입니다 . 그래서 옛날 활터에서는 사범의 직위가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 신사들에게 잠시 활을 가르쳐주는 임시직 비슷한 것이었죠 . 오히려 부사두급인 교장이 활터의 교풍을 책임지는 위치였습니다 . 그때의 교장이란 스승이 아니라 , 활터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직책을 말하는 것입니다 . 활터는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유치한 사제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당당한 어른들의 사회에서 인격을 갖춘 사람들끼리 모인 모임이었습니다 . 그래서 그런 분위기에서 문제가 생길 때 그것을 조정하고 지시하는 직책이 있었던 것이고 , 그것이 바로 교장이라는 직책이었습니다 . 화살이 과녁 맞히는 그따위 잔재주를 가르쳐주며 스승 노릇하려고 하는 것은 오목 가르쳐주고 바둑 스승 노릇하겠다는 발상과 똑같은 것입니다 . 오히려 사두나 교장 같은 분들이 존중받고 그런 것은 어른들 사회에서도 본받을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 마음으로 섬기는 그런 분들이 오히려 스승인 것입니다 . 그래서 활터에서는 사범이 아니라 앞선 선배와 구사를 존경하는 마음이 면면히 흘러왔던 것입니다 . (온깍지아카데미 카페)
4. 활터 현장의 증거
호남칠정은 100 여년의 역사를 지닌 활터이다 . 일제강점기 때부터 ‘ 호남칠정궁술경기회 ’ 를 추진하여 지금까지 대회를 꾸준히 실시해온다 . 이곳에서도 ‘ 접장 ’ 에 대한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 호남칠정은 여러 가지로 국궁계에서는 주목할 만한 활터이다 . 풍속이 독특하고 아주 잘 살아있어서 여러 모로 본받을 만한 사례가 많다 . 그 중에 접장도 있다 .
군산 진남정과 강경 덕유정에서는 활터를 대표하는 직책이 ‘ 사두 ’ 가 아니라 , ‘ 사백 ’ 이다 . 낱말은 다르지만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 그런데 부사백을 뜻하는 직책 용어가 덕유정에서는 ‘ 접장 ’ 이다 . 그래서 사백을 비롯하여 임원 대표가 매년 백중일 ( 음력 7 월 15 일 ) 에 역대 임원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사를 ‘ 접장잔치 ’ 라 하여 활터 덕유정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긴다 . 이때는 사원들만이 아니라 역대 사백과 접장의 후손들까지 초청하여 제사를 치른다 . 이것은 실제로 온깍지궁사회에서 현지답사를 통하여 확인한 사실이기도 하다 .
만약 ‘ 접장 ’ 이 별로 좋지 않거나 낮은 말이라면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 어떤 경우에도 접장은 높임말이고 전국 곳곳에서 두루 쓰였다 . 활터에서 접장이 남을 대접해주는 말로 쓰이는 것은 결코 낯선 일이 아니다 . 당연히 만나는 사람을 ‘ 접장님 ’ 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오랜 전통을 지닌 활터의 주요 관습이다 . 이런 엄연한 사실을 부인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 그런데도 굳이 시빗거리를 만들어 문제 삼는 것에는 분명히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볼 밖에 없다 .
5. 전통의 의미와 접장의 쓰임
1) 전통이 중요한 이유
접장과 관련하여 전통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 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한다 . 만약에 활터에서 남에 대한 존칭인 ‘ 접장 ’ 이란 말이 없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를 상상해보면 전통이 얼마나 중요하고 편리한 것인가를 알 수 있게 된다 .
만약에 접장이란 말이 없다면 남의 정에 가거나 남의 정 한량이 우리 정에 놀러올 때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 첫 인사로 악수를 한 다음에 바로 “ 제가 뭐라고 호칭해야겠습니까 ?” 라고 물어야 한다 . 상대가 사회에서 불러주는 사장이라면 사장이라고 불러야 하고 , 한 직장의 과장이나 대리라면 성을 붙여서 김 대리 , 김 과장이라고 불러야 한다 .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제일 먼저 뭐라고 불러야 할지 그 직책명이나 품계명을 물어서 그가 원하는 대로 불러줘야 한다는 결론이다 . 만약에 그런 저런 직책도 없는 백수라면 ‘ 씨 ’ 를 붙여서 김 씨라든가 이 씨라고 불러야 한다 . 이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일 것인가 ?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불러줄 간편한 호칭이 없다면 그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게 된다 .
바로 이런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 문화와 전통의 기능이고 , 활터에서는 사풍이 그 역할을 맡았다 . 그래서 활터의 풍속은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오랜 실수와 오류를 줄이면서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고 닦여온 것이다 . ‘ 접장 ’ 도 당연히 그런 풍속 중의 하나이다 . 접장이란 말이 있음으로 하여 비로소 활터에서는 상대가 누군지 몰라도 스스럼없이 부르며 어울릴 수 있는 상황이 가능해진 것이다 . ‘ 접장 ’ 이란 말이 얼마나 편하고 고급스러운 말인지는 이런 기능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 오히려 이런 것을 보면 접장이란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아주 잘 살아있는 훌륭한 말임을 알 수 있다 .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각 활터에서는 접장이라는 말이 쓰인다 . 접장이라는 말은 유래도 분명하고 , 현실에서도 쓰이는 말이다 . 굳이 거기에다가 개인의 왜곡된 견해를 붙여서 아름다운 풍속을 훼손시킬 이유가 없다 .
2) 평등한 호칭 , 접장
대한민국은 평등사회이고 평등사회이어야 한다 . ‘ 접장 ’ 이라는 용어는 활터에서 쓰는 일반적인 존칭이므로 모든 사원에게 두루 쓰이는 평등한 용어이다 . 일반 사회에서 ‘ 과장님 ’, ‘ 부장님 ’, ‘ 실장님 ’ 이던 분들이 활터에 와서 모두 ‘ 접장 ’ 이 된다 . 사회에서 쓰이던 호칭을 그대로 활터에서 쓰면 그것은 오히려 불평등한 활터를 만드는데 일조하게 된다 . 저 사람은 ‘ 가 ’ 회사의 부장이고 나는 ‘ 나 ’ 회사의 계장인데 , 저 사람이 나보다 높은 사람이란 말인가 ? 일반 사회에는 나름대로 직급이나 직종의 차이가 있다 . 그 호칭을 그대로 살려서 활터에 끌어들이는 것은 활을 새로 배우는 사람 본인에게나 , 그 사람을 끌어안고 함께 지낼 구사들에게나 서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 사회에서 ‘ 회장님 ’ 을 지냈던 사람도 , 잠시 ‘ 회장님 ’ 칭호를 벗어버리고 ‘ 신사 아무개 ’ 가 되어야 활터 예절을 제대로 아는 것이고 , 제대로 된 마음으로 활을 배울 수 있다 .
접장이 일반적인 존칭이라고 해서 , 누구에게나 ‘ 접장 ’ 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 활터를 위해서 일하여 활터에서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있다 . 이러한 사람들을 그냥 ‘~ 접장 ’ 이라고 부른다면 그 사람들의 수고를 무시하는 처사가 된다 . 봉급도 없이 봉사하는 사람들을 인정해주어야 하고 , 그래서 ‘~ 사두님 ’, ‘~ 총무님 ’ 이라고 불러야한다 .
6. ‘ 접장 ’ 을 기피하려는 심리에 대한 추론
그런데도 자꾸 ‘ 접장 ’ 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서 그 말의 가치를 훼손시키려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이에 대해 추정을 해보면 정말 엉뚱한 것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 그것은 명궁의 등장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
1970 년대 들어 입 , 승단 제도가 실시된 뒤로 1980 년대부터 명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그리고는 1990 년대로 접어들면 명궁이 일반화되기 시작하여 활터에서도 권력을 장악하는 계층으로 등장했다 . 그래서 호칭 중에서 존칭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 성 뒤에 ‘ 명궁 ’ 을 붙여주면 좋아하는 풍토가 만들어졌고 , 그러다보니 ‘ 접장 ’ 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허영심이 결국 ‘ 접장 ’ 을 ‘ 명궁 ’ 의 대칭어로 인식하면서 접장을 기피하고 명궁으로 불러지기를 바라는 심리가 서서히 생긴 것이다 . 그것이 2000 년대로 접어들면 전 한량의 명궁화가 이루어져 활터마다 명궁이 넘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 그러자 몰기를 하면 대접해주는 어정쩡한 ‘ 접장 ’ 보다는 협회로부터 공인 받은 ‘ 명궁 ’ 을 훨씬 더 명예롭게 여기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고 ,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보상심리로 접장을 깎아내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이렇게 추정하지 않으면 접장이 옳지 않은 용어라는 주장의 등장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
그렇지만 , 이런 발상은 대단한 오해이고 몰지각한 것일 수밖에 없다 . 명궁은 최근에 발생한 것인데 , 그것이 주는 심리적 피해의식을 근거로 해서 몇 백 년의 전통을 지닌 용어를 버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궤변이다 . ‘ 접장 ’ 의 짝말은 ‘ 명궁 ’ 이 아니라 ‘ 사말 ’, 또는 ‘ 하말 ’ 이다 . 그러니 자신을 뜻하는 말로는 ‘ 사말 ’ 을 써야지 제 이름 뒤에 ‘ 명궁 ’ 이라고 붙여서 스스로를 높이는 것은 무식의 극치를 달리는 일이다 . 세월이 바뀌어 아무리 염치가 사라진 시대라고 해도 자신의 성 뒤에 ‘ 명궁 ’ 을 붙이는 것은 낯 두꺼운 철면피의 짓이다 . 아무리 염치없는 세대라고 해도 자신의 성 뒤에는 ‘ 사말 ’ 이나 ‘ 하말 ’ 을 붙이는 것이 예의이고 , 겉으로라도 겸손을 흉내 내는 것이 예의의 기초이다 .
7. 맺음말
1) 요약
이상을 통하여 접장의 쓰임을 알아보았다 . 이를 토대로 접장의 뜻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첫째 , 접 ( 接 ) 은 조선시대에 쓰이던 한 묶음을 뜻하는 말로 , 접장이란 그런 단위를 대표하는 사람을 말한다 . 낯익은 동학의 조직인 접주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 그리고 이것은 조선시대에 흔히 쓰이던 말이었다 .
둘째 , 접장이란 말은 옛날부터 활터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었고 , 그것은 남을 대접해주려는 의미가 있는 말이었다는 것이 여러 책과 여러 사람들의 말을 통해 확인되었다 .
셋째 , 실제로 활터에서도 접장이라는 말이 직책 명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 강경 덕유정의 경우 대표를 사백이라고 하고 부사백을 접장이라고 칭하여 접장 잔치를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로 여긴다 .
넷째 , 이를 통하여 접장이란 활터 풍속의 아주 중요한 구성요소임이 확인되었다 .
따라서 접장이란 활터에서 쓰는 아름다운 용어로 활터 풍속을 규정하는 중요한 용어이며 , 이에 대해 다른 의미를 부여하여 왜곡하는 것은 활터의 오랜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
2) 나가며
‘ 접장 ’ 이란 호칭은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니고 오랜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용어이다 . 또한 이는 활터 사람들 간에 불리던 존칭이다 . 이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활터가 다른 사회 공간과 다른 공간임을 나타내주며 , 사회적 신분을 떠나서 활터의 일원으로서 평등해진다 . 따라서 소중한 언어유산을 잘 지켜서 후세에 물려주어야 한다 .
[국궁논문집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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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의 평등한 호칭, 접장[국궁논문집9]
온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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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556
16.10.19 14:37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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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직 용어도 너무나 생소하고 정에 가서도 아직 다른분들을 어찌 불러야는지 몰라서 어려웠습니다
가르침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자세한해설에대한 설명 감사합니다, 늘 좋은글 감사히잘보고있습니다
활배웁니다.
활터의 민주주의 평등 다시한번 배웁니다.
이런 전통을 자정의 고문님이나 임원들, 또는 선배님들이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자정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좌지우지 하니 전통이 자꾸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사라지려 하는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신사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하는 게 다름아닌 활쏘기 보다는 전통에 대한 공부를 먼저 시키고 후에 활쏘기를 가르쳐도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활쏘기는 우주와 닮았다를 시작으로 예법, 사법, 활쏘기를 시작했습니다. 사범님께서 자신의 온 것을 다 주시려고 했던 정성이 지금도 고맙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멀리 계신 분을 그려봅니다. 공부 잘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