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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의 아름다운 호칭 : 여무사
정진명(온깍지궁사회)
1. 머리말
최근에 활터에 나타난 변화는 그 앞 세대의 변화와는 여러 가지로 많이 다르다. 숨가쁜 사회의 변화에 비하면 활터의 풍속은 전혀 변하지 않고 100여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일제 강점기부터 유입된 서구 문물에 익숙해져 그 전부터 이어져오던 모든 것들이 오히려 낯선 것으로 변해버렸다. 공원이니 집사니 하는 말들이 옛날에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던 흔한 말이었는데, 요즘 들어보면 아주 낯선 말처럼 들리는 것이 우리 사회가 변화했음을 피부로 느끼는 증거이다.
이런 숨가쁜 사회 변화 가운데서 100여년 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곳은 우리 사회에서 그다지 많지 않다. 향교나 절 같은 곳에 가야만 그런 변화 이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을 정도이다. 활터는 격심한 근대화 과정에서도 그런 변화를 크게 겪지 않은 곳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100여년 변하지 않은 모습이, 이미 변한 사회 구성원들의 눈에 낯설게 느껴지면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활터에서는 일반 사회에서 쓰이지 않은 아주 특수한 용어가 많이 쓰이는데, 그런 말에 대한 정확한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어렴풋한 추정과 억측으로 그 용어를 기피하거나 쓰지 말라고 강변하는 어이없는 사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런 현상에 직면한 '여무사'라는 말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고, 그에 따른 활터의 현 상황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2.한국 사회에서 활터가 차지한 독특한 위치
우리 사회에서 활터는 아주 독특한 환경과 위치를 점하고 있다. 사두, 교장, 행수, 권무, 장무...... 이런 말들을 쓰며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데, 활터 밖의 사람들이 보면 아주 독특한 현상으로 인식된다. 그렇지만 이런 말들이 활터에서는 여전히 살아서 우리말의 박물관 같은 노릇을 톡톡히 한다. 이런 말들은 100여년 전에는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쓰던 흔한 말들이었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이런 말에 대해 이상하게 느끼고 낯설게 여긴다면 그것은 사회 전체가 우리의 전통 문화를 이상하게 느낄 만큼 큰 변화를 겪었다는 뜻이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변화를 겪은 당사자들이 이미 죽고 그런 변화 이후의 세대들이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을 이룸으로써 나타난 현상이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낯설게 느끼는 이런 용어에 대해서 그 용어를 쓰는 당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회에서 익숙한 말로 용어를 바꾸어야 하는가? 아니면 전해온 그대로 써야 할 것인가? 이것은 언뜻 당연한 질문 같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질문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들어온 제도와 기구에 모든 것을 맡겨 자주성을 잃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남의 눈에 낯설다고 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은 창씨개명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이런 특수성이 우리 자신을 확인하는 계가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우리의 본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활터는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특수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따라서 활터의 주인인 활량들은 이런 상황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활터 용어에 대한 인식 또한 이런 연장선에서 접근해야 한다.
최근 국궁계 일각에서 '접장'에 대한 논란이 잠시 일었다가 가라앉았다. 접장을 옛날 보부상들이 쓰던 용어라서 활터에서는 쓰면 안 된다는 괴상한 논리가 인터넷 상에서 떠돌다가 류근원 명무의 논문 <활터의 평등한 호칭, 접장>이 <국궁논문집9>에 실리면서 그것이 디지털 국궁신문에 소개된 후에야 '접장'은 비로소 제 자리를 되찾았다. 이런 과정을 보면 전통에 대한 몰이해는 그렇다 쳐도 그런 무지를 합리화하기 위해 궤변을 떠벌이는 파렴치한 자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문제는 인터넷이라는 편한 매체를 통해 그런 궤변들이 광범위하게 퍼질 때, 그렇잖아도 사회 전반의 흐름에서 고립된 활터에 치명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전통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로 자신들의 빛나는 전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류근원 명무의 글은 자칫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뻔한 '접장'을 현실 속으로 되돌려놓은 훌륭한 논문이다. 국궁계에서 전통에 대한 사랑과 자신들의 활터 풍속에 자부심이 조금만이라도 있었다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었다는 점에서, 활터 풍속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상처가 되고도 남을 사건이었다. 잘 해야 본전인 이런 맥빠지는 일들이 활터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활터의 위기가 현실로 닥쳐왔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어이없는 것 중의 하나가 또 나타나는 중이니, '여무사'라는 용어에 대한 몰상식한 혐의가 그것이다. 네이버 카페 <온깍지 아카데미>에 여무사가 활터의 아름다운 호칭이라고 올렸더니, 젊은 여무사들 중에서 그 말을 꺼려 하여 쓰기 불편하다는 댓글이 달린 것이다. 그래서 잘 해야 본전에 지나지 않는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무사'는 활터에 존재하는 모든 용어 중에서도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전통 용어'라는 것이다.
3.무사의 뜻
무사(武士)는 문사(文士)와 짝을 이루는 말이다. 조선이 양반사회라는 것은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양반이란 문반과 무반을 가리킨다. 두 반이기 때문에 양반이라고 부른 것이고, 그것이 그대로 지배층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진 것이다. 이 양반이란 말은 과거제도에서 온 것이다. 과거제도는 크게 두 분야로 이루어진다. 문과와 무과가 그것이다.(잡과는 이 둘을 위한 보조 인재를 뽑는 과정이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문과를 출세하려는 사람을 문사라고 하고, 무과로 출세하려는 사람을 무사라고 한다. 혹은 출세한 사람까지 아울러 그렇게 부른다. 그러니까 문사나 무사란 그 방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고 사는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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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활터의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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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활터란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다. 그래서 활터는 활쏘는 곳만이 아닌 무예 수련장이었고, 활쏘는 사람들은 궁사가 아니라 한량이었다. 한량은 활이 주를 이루지만 다른 무예도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마침내 활은 무술을 대표하는 말로 떠오른다. 무예라른 말 대신에 사예 궁예라는 말이 쓰이고, 궁사라는 말 대신에 무사라는 말이 쓰이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런 말들 속에 들어있는 뜻은 활이 곧 무(武)라는 것이다. 무사는 다른 무슬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활을 쏘는 사람을 뜻한다. 활이 곧 무술을 뜻한다. 무술이 사술이 되고 궁술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무사란 곧 조선을 지탱한 한 쪽 반인 무반의 주체이며, 활쏘기를 잘 하는 사람이란 자부심이 들어있는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 쓰는 무사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뜻을 지닌다. 한량이란 말이 활터 밖의 사람들에게 놀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비쳐진 반면에 무사란 조선시대의 반쪽인 국방을 담당하거나 할 사람이라는 뜻이 함축돼있다. 무사라는 말에는 궁사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활로써 무예 전체를 감당하던 조선시대 무인들의 자부심이 들어있는 말이다. 활을 쏘면 다른 무예도 저절로 하게 되는 그런 시대를 산 사람들의 자긍심이 들어있다. 무사란 이렇게 고귀한 말이다.
5.활터의 여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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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여무사의 위치
활터는 단순한 체력단련장이 아니다.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조선시대의 활터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바람이 실현되는 곳이다. 즉 무과 출신을 위한 공간이 활터인 것이다. 거기에는 이미 출신하여 고위관리가 된 사람들도 있었고, 이제 막 벼슬길에 올라선 사람도 있었으며,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무과 후보생인 한량들도 있었다. 이런 공간이 조선시대의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다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현상이다.
활터의 무과 기능은 맞추기 위한 방편을 익히는 곳이지만, 사람이 날마다 그런 긴장 속에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갖가지 다양한 생활 형태가 나타난다. 그런 요소 중에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방법이 많다. 전통이 살아있는 오늘날의 활터를 보면 어렵지 않게 이런 다양한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고풍이라는 것도 있고 편사도 있으며 백일장, 똑띠기 같은 수많은 놀이들이 있다. 이런 놀이 중에 옛날 일제 강점기까지 화려하게 존재했던 풍속이 바로 편사였다. 편사는 기생과 악공까지 동원하여 벌이는 모의전쟁이다. 획창이 동원되고 4~5명의 기생이 반주에 맞춰 소리를 한다. 이런 소리를 기생획창이라고 한다. <조선의 궁술>에는 그 방법까지 자세히 정리했고, 인천지역에는 지금도 그 편사의 흔적이 남아서 매년 봄에 편사놀이를 하며, 장호원 뚝방터에서는 매년 서울 터편사를 계승한 온깍지 편사를 한다.
이런 놀이 현장을 가보면 남자와 여자가 하는 기능이 각기 따로 있고, 그런 서로 다른 기능이 어울려서 만들어내는 조화와 균형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남자 중심의 사회에서 여자가 보조하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조선시대는 부부를 남자 중심으로 구성하여 설명했지만, 애를 낳는 것은 그런 관념과는 상관이 없는 자연 본래의 기능이다. 활터에서 여무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런 것이다. 결코 남자에 딸린 부속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무사 스스로 활터 안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서 활터라는 '전체'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존재한다.
오늘날 활터에서 여성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활을 쏠 수 있게 된 것은 이런 전통의 영향이다. 앞선 시대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면 오늘날 여자들이 요즘처럼 자연스럽게 활을 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골프에서는 LPGA를 따로 한다. 그렇지만 활터에서는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조건에서 한다. 요즘은 시수도 남자 못지 않다. 이런 것이 처음부터 그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활터에서 자신의 위치를 당당하게 차지 했던 옛날 여자 무사들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활터에서 여자들의 지위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오늘날의 여무사는 무사와 다를 것이 없는 당당한 활량이다. 활터보다 더 남녀가 평등한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만으로도 '여무사'라는 말은 국보급 용어이다. 활터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찾으라면 '여무사'를 꼽을 것이다.
6.활터를 빛내는 여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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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수중발레나 체조 같은 영역에서 남성보다 여성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것은, 여성만이 지닌 몸의 특별한 건강미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활에서는 각궁의 미립이 여성의 건강미와 아주 잘 어울린다. 이것을 백자의 곡선미에 비교한 글도 있다. 게다가 남성들이 살생을 목표로 활을 쏜다면 전쟁에 나갈 일이 없는 여성들은 주로 건강을 위해 활을 쏘게 된다는 점에서 오늘날 활쏘기의 기능에 딱 부합한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옛부터 여무사에 관심을 갖고 조형물을 만들고 사진을 찍기 즐겨했다. 다른 분야와 다르게 활터에서 여무사는 활쏘기의 본래 기능과도 아주 잘 어울리는 그런 존재들이다. 이런 것이 무의식 중에 작용하여 활터가 무기와 양생의 두 기능이 공존하던 시절에 여성에게 그들만의 독특한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이 점을 아주 잘 보여주는 말이 '여무사'이다. 그러니 여무사란 자랑스럽게 이어받아야 할 우리 활터 풍속의 핵심어라고 할 수 있다.
여무사라는 말과 비슷한 말로 여궁사가 있다. 그렇지만 여무사는 여궁사로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한 말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에 활쏘는 사람을 궁사라고 하지 않고 무사라고 한 것은, 활쏘기가 다른 모든 무예를 대신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사를 궁사로 바꾸는 것은 활쏘기가 무예의 대표가 아니라 무예에 포함된 하위단위로 의미가 축소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 전통 사회에서 무사라는 말에는 활쏘기가 모든 무예를 대표하고 모든 무예의 위에 있는 무술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어떤 경우에도 궁사가 무사를 대신할 수 없다. 무사는 궁사보다 훨씬 더 큰 말이다. 앞에 '여'가 붙는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양궁에는 활터에서 보는 이런 전통이나 배경이 없다. 그러므로 궁사나 여궁사라는 말이 적절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활터에서 활을 쏘는 사람들은 단순히 궁사에 머물지 않는다. 무예를 대표로 우뚝 선 우리의 전통 활쏘기를 하는 사람들은 궁사가 아니라 무사이다.
문제는 과연 오늘날 우리의 활쏘기가 전통 활쏘기이냐 하는 것에 달렸다. 그저 단순히 과녁 맞추는 오락 차원의 활쏘기라면 전통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고, 무사라는 말을 쓸 수도 없다. 그러니 궁사라고 써야 할 판이다. 그러나 내가 하는 활쏘기가 전통을 잘 계승한 것이라면 궁사가 아니라 무사가 더 적절한 말이다. 그러니 궁사와 무사를 같은 무게로 다루면 안 된다. 만약에 궁사와 무사를 같은 무게로 다룬다면 그것은 고장난 저울이 분명하다. 궁사는 결코 무사와 똑같은 말이 될 수 없다. 여궁사와 여무사는 더더욱 그렇다.
7.맺음말
활터는 전대미문의 전환기를 겪는 중이다. 수천년간 묵묵히 전해오던 풍속이 주인을 잃으면 박물관이나 책 속에만 남는다. 활터의 주인이 주인의식을 잃고 자신의 것을 이상한 것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활터의 풍속은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왜곡된다. 그런 우려는 최근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접장을 헐뜯어서 소란을 일으킨 사건에서 극명하게 나타난 바다.
이는 비단 접장이라는 낱말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활터에 전해오는 용어는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는 낯선 말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낯섦에 익숙지 않은 일부 사람들이 그 용어에 대한 타당성을 물을 때 그에 적절한 답을 해주어야 하는데, 세대교체가 빨라진 요즘 풍토에서는 그런 정확한 정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요즘의 개념으로 옛 용어를 추론하여 엉뚱한 의미를 갖다 붙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여무사라는 용어도 그런 말 중의 하나이다. 활터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어에 분명한 이해 없이 근거 없는 의구심을 덧입혀 스스로 무사의 정신을 포기한 채 궁사로 대체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서 활터의 구사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여무사가 꺼림칙한 용어라면 그 어떤 활터의 용어도 살아남을 수 없다.
그 말에는 반드시 주인이 있다. 주인이 그 말을 쓰지 않으면 그 말은 사라지는 것이 언어의 생리이다. 활터에는 아름다운 전통을 지닌 말들이 정말 많이 살아있다. 그런 말들이 후손에게 이어지며 활터의 정신을 살려가는 것이 되게 하려면 먼저 그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 관습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렇게 형성된 까닭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느 한 순간에 잘라버리면 안 된다. 그렇게 된 사연을 구사들에게 묻고 그 타당성을 검토하여 이어야 할 것과 다듬어야 할 것을 찾아서 활터의 현실에 맞게 써야 한다. 활터 밖 사람들에게 낯설어도 활터에서 낯익은 것은 우리 민족의 숨결이 깃든 것이어서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활터 용어이고, 여무사라는 말이다.
여무사는 활터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칭이자 이름씨이다.
<활쏘기의 어제와 오늘, 고두미, 2017>
첫댓글 좋은말씀 감사드립니다.
십여년 전, 활사랑회에서 철릭을 입고 대회나 행사에 나섰을 때,
"무슨 무당들이 들락거린다"는 비아냥을 들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참~ 헛웃음만 나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