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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비전공하』의 격의 궁술론
정진명(온깍지궁사회 사계원)
중국사법서인 『사법비전공하』가 오늘날 한국의 활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 영향의 일부에 저의 책임도 있기에 여기 간단히 정리하여 활 공부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인도불교는 달마를 통하여 중국으로 전래되어 6조 혜능에 이르러 완전히 정착합니다. 초기 불교의 내용을 잘 정리한 <아함경>과 6조 혜능의 어록인 『육조단경』을 읽어보면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다른 느낌은 어디서 오느냐면 불교의 교리를 접하고 그것을 설명하려는 사람들의 태도가 다른 데서 오는 것입니다. 외래사상인 불교가 중국에 밀려들자,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쓰는 언어를 통해 외래 사상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용어를 통해 원래의 말에는 없던 새로운 뜻이 추가됩니다. 그 말을 쓰는 당사자들은 그런 줄을 모르고 이해하게 됩니다. 원래의 불교 사상이 중국 사람들이 쓰는 용어를 통해 중국의 옷을 입고 새로운 뜻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불교학에서는 <격의>라고 합니다.
1997년 이후 한국의 활터에는 이런 격의 현상이 하나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른바 『사법비전공하』가 그것입니다. 이 사법비전공하를 단양의 젊은 한량들이 공동 번역하여 『평양 감영의 활쏘기 비법』이라는 책으로 엮어냈고, 몇 달 뒤 어떤 분이 이것을 좀 더 추려 번역한 『활쏘기의 비결』이라는 책이 연달아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사법비전공하는 활터의 큰 화두가 되어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사법비전공하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용달 옹의 번역본이었습니다. 1994년에 조규정과 이용달이 공동 번역을 하여 낸 책이었는데, 이것은 번역한 당사자들이 보려고 만든 책이에서 시중에는 시판되지 않았습니다. 이 번역본에 사용된 판본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잠자던 것이었는데, 누군가 복사하여 돌림으로써 마치 무슨 무공비급이라도 되는 양 국궁계에 떠돌았던 책이었습니다. 이 판본을 들고 제가 청주고인쇄박불관의 황정하 박사를 찾아가서 고증해달라고 한 결과 정조 22년에 평양의 기영에서 간행한 목판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러고 있자니 이용달 사범이 또 다른 판본을 건네줍니다. 중국인민해방군 편찬위원회에서 낸 중국병서집성의 일부로 들어가 있는 판본이었는데, 추적을 해보니 육사의 김기훈 교수가 중국에서 복사해온 것이었고 그것이 이용달 사범을 거쳐서 저에게 이른 것이었습니다. 두 판본의 비교 검토는 『평양 감영의 활쏘기 비법』 해설에 나와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책을 번역할 당시 단양에서 활을 배운 혈기왕성한 한량들은 대부분 경력 4~5년의 신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배운 사법을 전제로 해서 우리 활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고 번역에 도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번역본에는 중국의 사법이 적용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법이 적용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즉 중국의 사법서를 우리의 궁체로 해석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상황은 앞서 말한 불교 용어에서 정확히 <격의>에 해당합니다. 이후 이 '격의궁술'은 우리나라의 활터를 지배하는 중요한 이론의 하나로 자리잡습니다.
그 첫번째 주자는 광주의 조영석 명궁입니다. 조 명궁은 우리가 번역하기 전에 벌써 이용달 사범의 번역서를 보고 거기서 중요한 내용을 간추려 사법 지도를 위한 팜플렛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뛰어난 조 명궁의 사법에 그 이론이 적용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조명궁 자신도 이 점을 의심치 않았고, 조 명궁의 궁체를 보는 저 또한 그것이 사법비전공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임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후 국궁계에서 벌어지는 사법 논쟁을 들여다보면 사법비전공하의 영향이 알게 모르게 많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중국활에 대한 정보가 많아졌습니다. 그 영향은 중국 활과 우리 활을 비교하여 중국 사법을 통해 우리 활의 비밀을 풀어보려는 시도로 나타났습니다. 지금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사법 논쟁의 많은 부분은 중국활 이론의 영향이 큽니다. 그 중의 가장 강력한 영향이 사법비전공하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평양에서 간행되었다는 귀속성 때문에도 더욱 영향이 컸습니다. 사법비전공하가 군대의 교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 전통 사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법이었다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까지 벌어진 수많은 논쟁거리에서 이 지점이 지적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당연히 사법비전공하와 우리 활이 같은 조건과 맥락에서 논의되었을 거라는 전제 하에 논쟁을 진행해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법과 중국의 사법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중국의 활보다 우리 활이 훨씬 더 짧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만약에 중국의 사법과 우리의 사법이 같다면, 몽골의 사법과 우리의 사법이 같다고 해도 됩니다. 결국 몽골에 가서 우리 사법을 배워와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해놓고 나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절로 따라붙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우리 활이 세계 최고라는 믿음에 금가는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창 일본의 칼 조선의 활이라는 세상의 평가가 그런 자부심의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중국이나 몽골에 가서 사법을 배워온다면, 전혀 얼토당토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쩐지 우리로서는 손해본다는 느낌이 자꾸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실제로는 우리가 몽골의 사법이나 중국의 사법보다 한 수 위라는 막연한 전제를 무시하는 처사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몽골은 사법서가 없으므로 중국의 사법서가 문제입니다. 중국의 사법서를 보며 재구성하는 오늘날의 <격의궁술>은 과연 그 정당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이에 대한 대답을 얻은 다음에 <격의>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자면 우리 활과 중국의 활이 사법 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가 하는 것을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 전제 없이 진행되는 사법논의는 정말 혼돈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법비전공하를 공부하며 드는 의문들을 몇 가지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법비전공하를 중요한 원리로 이해하는 분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법비전공하의 판본과 중국 내 전래과정은 어떤가?
-중국의 사법은 어떤 식으로 변해왔으며 각 시대별 사법서는 어떤 것이 있는가?
-중국의 사법서와 그것이 쓰인 시대의 사법은 일치하는가?
-명나라 사법과 송나라 사법은 동일했는가?
-기효신서의 사법과 그 후의 사법은 동일한 논리인가?
-이들 사법서와 사법비전공하의 관계는 어떠한가?
-사법비전공하는 실제로 중국의 사법으로부터 유추된 것인가?
-우리나라의 기영에서 펴낸 사법비전공하는 중국의 어느 판본을 보고 베낀 것인가?
-사법비전공하를 감영에서 실제로 병사들에게 가르쳤는가? 아니면 과거용으로 참고만 했는가?
-사법비전공하에는 몇 가지 사법이 있는가?
-그 사법들은 이론상 서로 충돌하지 않는가?
-그 사법들 중에서 조선의 사법에 영향을 준 것은 어느 것인가?
-<조선의 궁술>과 사법비전공하의 사법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조선의 궁술> 편찬자들이 사법비전공하를 참고했는가?
-<조선의 궁술>에서 사법비전공하의 영향이 느껴지는 내용을 뽑아낼 수 있는가?
-사법비전공하의 발자세는 어떤 것인가?
-발자세가 <조선의 궁술>과 어떻게 다른가?
-그것이 두 사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 것인가?
-사법비전공하는 활쏘기하는 사람들의 글인가? 아니면 다른 무술을 한 사람들의 글인가?
-사법비전공하에 들어있는 다른 무슬의 원리는 어떤 것이 있는가?
-활쏘기에서 얻을 수 없는 무술의 원리가 사법비전공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다른 무술을 통해서 활쏘기를 유추한 내용들은 어떤 것인가?
-그런 무술의 이론들이 사법 정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사법비전공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조선의 궁술>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조선의 궁술>이 설명할 수 없는 사법비전공하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지금 언뜻 떠오르는 것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앞으로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생기는 의문을 추가하여 올리겠습니다. 이밖에도 우리의 사법으로 들어오면 더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조선의 궁술>에 보이는 사법에서 '궁체의 종별'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부분의 사법과, 사법비전공하에 나오는 동작 묘사 부분을 추려서 정리해야 합니다. 즉 이런 도식이 되겠지요.
<조선의 궁술> | <사법비전공하> |
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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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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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거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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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심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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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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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덜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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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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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지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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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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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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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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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설에 따라 『사법비전공하』의 내용을 추리고 난 뒤에, 『조선의 궁술』에 묘사된 동작과 어떻게 다른가를 분석하여, 그 차이점을 찾아내고, 사법의 원의에 비춰볼 때 어느 쪽이 더 발전된 사법인가를 확인하면 우리가 무엇을 따라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저절로 드러날 듯합니다.
그리고 사법비전공하 말고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퍼진 중국의 활쏘기 이론은 여러가지입니다. 향사례와 대사례의 사법이 있고, 또 조선후기 실학 시대로 접어들면 백과사전 편찬이 유행처럼 번져 그런 류의 여러 책에도 활쏘기가 소개됩니다. <임원경제> 같은 책에 실린 활쏘기 이론이 그런 것이지요. 대부분 비슷한 논조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중국 본래의 사법인지 아니면 그것을 우리식으로 정리한 것인지 그것도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니 서유구의 유예지 부분에 쓰인 <사결>을 읽어보면 중국의 사법서를 간추려 소개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사법비전공하』를 번역한 적이 있는 제 머릿속의 한자 문구와 닮은 부분이 많고, 또 사법 부분에서 우리의 활과 어울리지 않는 구절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렇게 짐작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먼저 정리되지 않으면 사법의 혼란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미 1997년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시점(2017)에서는 20년간 사법비전공하가 영향을 주어 <격의궁술>이 성행하는 중입니다. 중국활이 우리 활에 영향을 주는 일을 나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활 자체만을 놓고 볼 때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우리 활의 사법이 우리 활만 못한 중국의 사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자칫 전통 사법의 뒷걸음질로 이어질 수 있기에 오늘날 그것을 이용하는 우리가 이 문제를 검토해야 합니다.
『조선의 궁술』에 묘사된 사법이 어떤 것인지도 모를 상황을 맞은 오늘날, 과연 『사법비전공하』와 『조선의 궁술』을 비교하여 해석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도 듭니다. 『조선의 궁술』을 잃은 뒤에는 오히려 사법의 혼란에 빠져, 오늘날 자신의 사법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의 병법서와 사법서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으로부터 자신이 벗어나기 위해서도 오늘날 행해지는 격의궁술의 본모습을 잘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호 무림의 질정을 기다립니다.
첫댓글 어느 것이 우리 것이고 어느 것이 다른 나라의 것인지 알고 서로 비교해서 보아야 전통을 알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겠군요. 자신이 가진 것을 무시하고 남의 것에서 아무리 찾아보아야 참된 것에 이르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문제점을 지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중국이나 몽골의 사법이라고 통칭되는 사법이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활이 세계최고라고 하는 자부심만 내세우는 자세가 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서 발전시켜왔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배우고자 하는 분야에 있는 훌륭한 것은 자기것이 아니라도 배우고 기록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갖는법이니 한국사람은 선대로부터 누구나 편하게 배우고 익혀서 잘쏘기 때문에 별도로 기록하지 않았을수도 있다고 볼수도 있고, 오히려 우리보다 못한 나라 사람들은 훌륭한 솜씨를 발휘하는 한국사람들이 사용하는 사법을 배우려고 그 모든 기법을 보고 묻고 배워서 기록으로 남겼을수도 있지 않을까요? 타국사람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무조건 그나라 사람들의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각 사법들이 추구하는 점을 분석해본다면 서로 공통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오히려 그 공통되는 부분이 바로 우리가 찾는 핵심이 아닐까요? 저만의 왜곡된 시각일까요?
통상 기록을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이랄수 있는것이 어떤 특정한 분야를 특출나게 잘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그 기법이나 비법을 기록보다 구전하거나 전인으로 전수하는 방법으로 내림하는 경우가 많고 또한 특정분야를 특별히 잘하는 민족이나 국가는 그 분야는 누구나 다 잘할수 있는 통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별도로 연구하거나 기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도 들었습니다.
@윤성근 그리고 구사들중에 조선의 궁술을 모르면서도 궁체를 보면 조선의 궁술과 똑같은 궁체를 구현하고 있다고 하신것을 보면 조선의 궁술을 저술하기 전부터 우리 궁사들은 우리만의 궁체를 구전으로 몸으로 배우고 전수해왔고 그것은 활터나 활쏘는 사람들은 당연히 배우는 기본적인 요소였기에 별도로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또한 전쟁에서 활쏘는 기술은 전력의 한 분야이므로 활쏘는 비법을 타국에 알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별도의 기록으로 남겨 전하지 않은것도 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의견은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생각과 판단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소견을 올려봅니다.
@윤성근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