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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어렵고 알파벳은 쉽다. 정말일까?”(1)
“한글은 24개이고 알파벳은 26개인데 비하여, 한자는 수천 개나 되니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어요!”라는 하소연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과연 맞는 것일까요? 한글(Korean alphabet)의 /ㄱ/․/ㄴ/…과 영어 알파벳의 /a/․/b/…에 대응되는 한자가 있을까? 없습니다. /ㄱ/․/ㄴ/이나 /a/․/b/는 음소(phoneme)의 음을 나타내는 것인데 비하여, 한자는 음절(syllable)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니 1 대 1로 대응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한자 「山」에 대응되는 한글은 무엇이며 알파벳은 무엇일까요? 한글 /ㅅ/ 알파벳 /m/에 대응된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됩니다. 한자 「山」에 대응되는 것은 한국어 ‘뫼’와 영어 ‘mountain’이라고 하면 말이 됩니다. 한자 낱낱은 하나의 단어(word; vocabulary)인 셈이니, 한국어와 영어 가운데 뜻이 같은 단어를 찾아 대비해 보아야 한자가 쉬운지 어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美」라는 글자(총 9획)가 획수가 많아 쓰기 어렵다고 하면 한국어 ‘아름답다’(21획), 영어 ‘beautiful’(16획, beauty 11획)과 대비한 결과로 판단해 보아야 마땅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영어 ‘mountain’에 비하여, 한자 「山」에는 표음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읽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물론 한자 「山」에는 [산]이라 읽어야 할 정보나 힌트가 없습니다. 그런데, 영어 ‘mountain’의 발음 정보는 완벽한 것일까요? 어처구니없게도 이것은 [모운타인]이라 적어 놓고 [마운틴]이라 읽어야 하는 모순이 있습니다. 읽기 어렵기로 말하자면 彼此(피:차) 큰 차이가 없습니다.
종합하자면, 한글이나 알파벳에 비하여 한자는 어렵다는 말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표음문자인 한글과 알파벳을 표의문자인 한자와 비교하는 것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숟가락과 포크의 우열을 가늠하려는 것만큼 우매한 일입니다. 한자는 기본적으로 영어나 한국어의 단어와 대비해 보아야 말이 됩니다(다음 호에 계속). - 전광진 드림(성균관대 명예교수/속뜻사전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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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어렵고 알파벳은 쉽다. 정말일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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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26개를 익히면 단어 26개를 알게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가 구성 요소로 쓰인 수백, 수천 개 단어에 대하여 상당한 의미 힌트를 확보한 것과 같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 학습한 한자가 부수로도 쓰이는 것이라면 그것이 표의 요소로 쓰인 수많은 한자의 뜻을 암시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26개 알파벳을 익히면 영어 단어 몇 개를 아는 셈일까요? 기껏해야 부정사 ‘a’나 1인칭 대명사 ‘I’ 정도가 고작일 것입니다. 따라서 영어의 알파벳과 한자를 그대로 대비하여 그 어려움을 논하는 것은 語不成說(어불성설)입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쓰인 적이 있는 한자를 모두 모은다면 약 5만 자 정도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 교양인들이 그 모두를 알 필요는 없습니다. 일상 어문에 쓰이는 것으로는 2,000자 정도면 충분합니다. 한자 2,000자 정도를 학습하는 것은 영어 단어 2,000개를 익히는 정도의 어려움과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각도를 달리하여 보면, 한자 2,000자의 위력은 영어 단어 2,000개를 훨씬 능가합니다. 美(아름다울 미)자를 알면, 美術(미:술)․美人(미:인) 같은 유형의 합성어휘 72개, 優美(우미)․讚美(찬:미) 같은 유형의 합성어휘 43개, 총 115개 어휘의 의미 정보를 얻게 됩니다. 반면에 영어 ‘beauty’와 결합 되는 것은 ‘beauty art’(미용술)․‘beauty sleep’(초저녁잠) 같은 유형의 합성어휘 9개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山」과 ‘mountain’, 「美」와 ‘beauty’, 「一」과 ‘one’, 「二」와 ‘two’, 「三」과 ‘three’를 대비하면 한자가 대응되는 영어 단어에 비하여 훨씬 쉽습니다. 상용한자는 1,800자 - 2,000자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익히는 것은 영어 단어 2,000개를 익히는 정도의 힘과 노력이면 쉽게 익힐 수 있습니다. 요약건대, 한자 학습은 생각 여하에 따라 ‘식은 죽 먹기’입니다. ‘한자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바꾸어야 한자 공부를 잘할 수 있습니다.
- 전광진 드림. (문의 환영 : jeonkj@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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