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우리는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는 제목이 재미있는 책을 보았다. 흑인들이 깨우치고 나서 그들을 속여 온 백인들을 향하여 쓴 것이었다.
순진하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단순하다는 말도 되고 극단적으로 나쁘게 표현하면 단세포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순진이 좋기는 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삶에 어려움이 초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흔히 영화나 소설에서 한번 정을 준 사람과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만 하는 줄로 믿는 순진한 시골 처녀가 떠돌이 방랑객과 결혼을 해서 일생 동안 속을 썩이면서 사는 이야기가 그런 것이라고 하겠다.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은 마치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 같이 양순해야 한다.”(마태10:16)
예수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양과 이리는 정반대의 품성을 가진 동물이다. 뱀과 비둘기 역시 속성이 전혀 반대되는 생물이다. 그런데 예수는 이리떼 사이에서 사는 양을 보고 뱀같이 살기도 하고 비둘기 같이 살기도 하라니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가 세상이 본질을 꿰뚫어 보신 까닭에 내릴 수 있었던 가장 정확한 처방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순서가 문제다 . 비둘기 같은 순결이 먼저가 아니고 뱀 같은 지혜가 먼저다. 한 마디로 양이 이리들 가운데 살려면 통박 잘 굴려야한다는 뜻이다. 양이 이리를 만나서는 당할 재간이 없듯이 순진한 사람은 교활한 사람을 만나면 당할 재간이 없는 것이다. 교활한 상대방의 먹이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방어력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이리떼가 들끓는 이 세상에서는 종종 순진한 것이 자기를 파멸의 고비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교활한 자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본질을 빨리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 밖에 없다.
예수는 사랑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을 할 정도로 순진한 이가 아니었다. 예수는 사랑타랑을 하신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유치원같이 단순한 사회에서는 선상님 말씀만 잘 들으면 된다. 유치원에서는 아이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예수의 말을 오해하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니? 원수는 미워할 뿐 아니라 복수를 해야 당연한 것이 아닌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은 유대인들에게 “원수?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아. 갚을 수도 없으면서. 공연히 약자를 대상으로 쓸데 없는 원수나 만들지나 말아라.’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유대인들은 극도의 배타성을 가지고 이방인, 사마리아인들을 원수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예수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지만 나는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하지만 구약이나 어떤 유대의 문서에서도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는 부분은 없다. 이 부분은 예수가 강조를 하기 위해서 뻥튀기를 한 것이다. 맷떡 같이 이야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고 그러니까 예수의 이 말은 '"너희는 보통 원수는 미워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너희들은 너희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누구나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너희 인간들이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원수로 생각하지 않는다.’ 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좀 폭 넓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예수는 마치 경건을 전매특허 낸 것 같이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당시의 직업 종교인들에게
“웃기지 마라. 네가 사랑할 만한 사람만 사랑하면서 그 정도를 가지고 사랑한다고 하느냐? 적어도 너희가 민중들의 선생으로서 사랑을 이야기한다면 원수를 사랑할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하신 것이다.
힘이 센 애와 힘이 없는 애가 싸워서 힘이 없는 애가 죽으라고 두들겨 맞고 있는데 점잖은 어른이 나타나서 손목을 억지로 끌어당기며 “자, 사이좋게 놀아야지, 싸우면 쓰나? 악수하고 화해해라”하는 식의 화해는 진정한 화해가 아니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사이에서 하는 짓거리다. 그것은 힘센 자 편에서 볼 때의 화해는 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약한 자 편에서 보면 비굴한 굴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화해란 수틀리면 언제든지 힘센 자가 한 대 때릴 수 있는 임시변통의 위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는 그런 식으로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니다. 예수의 가르침이 그런 식으로 해석 될 때 피가 통하지 않는 가르침이 되는 것이고 인격과 정신을 해방 시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내리누르는 무거운 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예수 제대로 믿는 것은 사람이 똑똑해지는 것이다.
첫댓글 예수 제대로 믿는 것은 사람이 똑똑해지는 것이다.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이 조직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뱀같이 지혜롭게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