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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의 경영/경제 자료실 원문보기 글쓴이: 렛츠 고
책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제대로 정리하려니 무지 힘드네요.. ^^
지식 경영법 (포켓 북)
목차
머리말 : 공부를 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 : 왜 지금 와서 공부법인가?
1부 :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2부 : 공부한 내용을 어떻게 정리 할 것인가?
3부 : 정리된 자료를 어떻게 평가하고 다듬을 것인가?
머리말 : 공부를 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 : 왜 지금 와서 공부법인가?
우리는 매일 매일 공부를 하지만 그 공부한 것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잘 하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경향이 많았고 습관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는 경우가 대부분 이였습니다. 이런 공부는 비효율적 이였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방향성에 대한 혼란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주견을 먼저 세우십시오. 생각을 붙들어 세우십시오. 그런 뒤에 책을 읽으십시오.
탁상공론으로는 안 됩니다. 현장에 쓸모없는 지식에 탐닉하여서도 안 됩니다. 항상 공부에 앞서 쓰임새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작정 하고 본다는 식으로 공부를 해서는 미로 속을 헤매는 생쥐 꼴이 되기 쉽습니다. ‘하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는 착각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거둘 성과가 없습니다. 처음엔 비슷해도 중반 이후에는 정보가 뒤얽혀서 손댈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맘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알맹이가 있어야 합니다. 또 그 알맹이는 속이 꽉 찬 것이라야 합니다.
공부를 위한 공부는 접어두어야 합니다. 실제에 적용해서 힘을 발휘할 수 있어는 공부라야 합니다.
실용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는지, 어디에 소용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대답해야합니다.
그러할 때만이 우리는 공부를 통해 성취의 기쁨과 창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치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실제에 적용할 수 없다면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실제와 동떨어진 이치는 이치가 아닙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른 데서 아무리 좋아도 지금 여기에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시대에 맞게, 장소와 사람에 맞게 항상 적용할 수 있도록 유연한 자세를 견지 하여야겠습니다.
세상에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공부는 없습니다. 실용을 강구한다는 말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자는 뜻입니다. 아무리 저 좋아 하는 일이라도 목표 없이는 안 됩니다. 어떤 문제를 밝히거나 해결하는 것은 그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디딤돌이 됩니다. 그 자체로 합목적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나에게 말미암은 공부가 미루어 남에게까지 확산될 때 비로소 그 학문이 보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배움이 학문의 절반이요 가르침이 학문의 절반입니다.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그 힘으로 남까지 감염시키는 공부를 하여야 합니다. 세상이 꼭 필요로 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모르는 것을 하나씩 알아나가고, 그 속에 깃든 이치를 따져 내 삶을 향상 시켜가는 것, 이것이 바로 공부하는 보람이요 기쁨인 것입니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는 것이 공부입니다. 남들은 못 봐도 나는 보는 것이 공부입니다.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이를 통해 내 삶이 송두리째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공부입니다. 마지못해 쥐어짜며 하는 공부 말고, 생룡활호(生龍活虎)처럼 펄펄 살아 날뛰는 그런 공부가 공부입니다.
2부 :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쓸모를 따지는 일에서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나의 이 공부가 무엇에 소용될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이 공부를 하는지, 이 일을 무엇 때문에 하는지 자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그저 학위를 받기 위해 하는 공부는 해서는 안 됩니다. 돈만 벌자고 하는 장사로는 돈도 벌지 못합니다. 잿밥은 염불을 열심히 외울 때 저절로 생깁니다.
잿밥에만 신경 쓰면 염불도 안 되고 잿밥도 없습니다. 끊임없이 본령을 떠올려야 합니다. 끊임없이 쓸모를 강구하십시오
정존(靜存)은 조용히 따지고 살펴 그 깨달음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을 뜻합니다. 동찰(動察)은 이를 실제에 적용하여 맞는지 맞지 않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면밀히 따져 관점을 세운 후, 비로소 실제에 적용해야합니다. 이때 주경과 궁리의 태도가 요구됩니다. 주경이란 성심을 다해 주제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궁리는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탐색의 과정입니다. 문제는 항상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라야 합니다. 구름 잡는 이야기는 안 됩니다. 정존의 과정이 잘못되면 항상 동찰의 적용단계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항상 정존에서 동찰로 이어지고, 동찰이 다시 정존으로 환원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두 가지가 따로 놀면 안 됩니다.
글을 지으려는 사람은 먼저 독서의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물을 파는 사람은 먼저 석자의 흙을 파서 축축한 기운을 만나게 되면, 또 더 파서 여섯 자 깊이에 이르러 그 탁한 물을 길어냅니다. 마침내 물을 끌어올려 천천히 음미해보면, 그 자연의 맛이 그저 물이라 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또다시 배불리 마셔 그 정기가 오장육부와 피부에 젖어듦을 느낍니다. 그런 뒤에 이를 펴서 글로 짓습니다. 이는 마치 물을 길어다가 밥을 짓고, 희생을 삶고, 고기를 익히며, 또 이것으로 옷을 빨고, 땅에 물을 주어 어디든지 쓰지 못할 데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고작 석자 아래의 젖은 흙을 가져다가 부엌 아궁이의 부서진 모서리나 바르면서 우물을 판 보람으로 여기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입니다. 바른 독서는 그저 글의 껍질만 읽어 축축한 흙을 얻은데 만족해서는 안 되고,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달고 찬 샘물을 길어 올리는 데 이르러야 합니다.
문리가 터진다는 말은 어려운 글을 줄줄이 읽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물의 행간을 읽고 맥락을 소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천지 만물이 모두 책입니다. 이 살아 생동하는 텍스트를 읽지 못하고 고작 벌레 먹은 옛 책을 외우는 것만 독서로 연긴 대서야 공부의 보람이 참 무색할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입니다. 둘째,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이 들떠 날리는 게 문제입니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입니다. 대저 둔한데도 계속 천착하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집니다. 답답한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하게 됩니다. 천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뚫는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네가 어떤 자세로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합니다. 부지런 하고 부지런 하고 부지런 하십시오. 그러면 못 할 것이 없습니다.
부지런히 노력하십시오. 성심으로 노력하십시오. 복사뼈가 세 번 구멍 나고 벼루가 여러 개 밑창 나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십시오. 공부해서 무엇에 쓰겠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공부는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책을 안 읽고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백 년도 못되는 인생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살다 간 보람을 어디서 찾겠습니까?
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푹 젖어야 책과 내가 융화되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푹 젖지 않으면, 읽으면 읽는 대로 다 잊어버려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이 별 차이가 없어지게 됩니다.
서로 맞춰보고 꿰어보아 따져 살피는 공부를 하고, 그치지 않는 뜻을 지녀, 푹 빠져 스스로 얻음에 이르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오로지 빨리 읽고 많이 읽는 것만을 급선무로 한다면, 비록 책 읽는 소리가 아침저녁 끊이지 않아 남보다 휠 씬 많이 읽더라도 그 마음속에는 얻은 바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는 조금만 땅을 파면 오히려 마른 흙인 것과 한 가지 이치입니다. 깊이 경계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파의 껍질과 속살을 구분해내려면 아홉 자 우물을 파야 합니다. 석자 파다 그만두고 다른 데서 또 파려 들면 부뚜막 바르는데 쓸 젖은 흙밖에 얻을 게 없습니다. 쓸데없는 파 껍질만 수북이 쌓아놓게 됩니다. 부단한 노력만으로도 안 되고, 꼼꼼한 정리나 관련 자료의 섭렵만으로도 안 됩니다. 물론 그것 없이는 더더욱 안 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실마리를 잘 잡아야 합니다.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는 단서를 잡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거듭되는 훈련과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무릇 온갖 경전과 제가백가의 책에 나오는 사물의 이름이나 많은 목록은 모두 고운 구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꿰미로 이를 꿰지 않는다면 또한 얻는 족족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공부에서 실마리를 잡지 못하면, 그저 글 잘 짓고 많이 외우는 것이 공부인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실마리를 잡는 일은 이것을 옳게 분별하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이 분간을 잘못하면 귀가 엷어집니다. 쉽게 갈수 있는 지름길이 있는데 왜 그 고생을 하느냐고 하면 금방 솔깃해집니다. 그래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을 건너 뛰어 버립니다. 당장에는 남보다 빨라 보여도 결국은 더 늦게 됩니다. 분명히 될 것 같았는데 끝내 안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단사설에 빠져 인생을 탕진합니다. 자신의 무능력과 불성실을 회피하기 위한 합리화의 논리가 이단사설입니다. 그래서 그까짓 것 때문에 내가 이렇게 아등바등 할 것이 뭐 있겠느냐며 파던 우물을 버려두고 딴 곳에서 새 우물을 파기 시작합니다. 이런 것이 모두 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껍질과 속살을 구분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교육의 목표는 지혜의 샘을 열어 주는데 있습니다. 일단 구멍이 한번 뚫리면 사시사철 맑고 차고 단 샘물이 펑펑 솟아납니다. 수돗물은 쓰고 나면 꼭지를 잠가 아껴야 하지만, 샘물은 조금도 아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많이 퍼갈수록 더 많이 솟아납니다.
문제를 회피하지 마십시오. 정면으로 돌파하십시오.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탐구해 들어가십시오. 처음에 우열을 분간 할 수 없던 정보들은 이 과정에서 점차 분명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거기서 실마리를 잡아야 합니다. 얽힌 실타래도 실마리를 잘 잡으면 술술 풀리게 마련입니다. 더 이상 파 껍질을 붙들고 씨름하지 않게 됩니다. 실마리를 잡지 못한 채 자꾸 들수셔 놓기만하면 나중엔 아예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핵심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실마리를 잡아야 합니다.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요령을 잡는 것입니다.
달사에게는 괴이한 것이 없지만 속인에게는 의심나는 것이 많습니다. 이른바 본 것이 적을수록 괴이한 것도 많아지는 법입니다. 대저 달사라 하여 어찌 물건마다 직접 눈으로 보았겠습니까? 하나를 들으면 눈에 열 가지가 그려지고, 열 가지를 보고 나면 마음에 백 가지가 펼쳐집니다. 천만 가지 괴이한 것이 도로 사물에 부쳐져서 자기와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은 한가로워 여유가 있고, 응수하는 것이 무궁합니다. 본 것이 적은 자는 백로를 가지고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의 짧은 다리를 보고는 학의 긴 다리를 위태롭게 여깁니다. 사물은 절로 괴이함이 없건만 공연히 제가 성을 내고, 한 가지만 자기가 아는 것과 달라도 만물을 온통 의심합니다. 달사(達士)는 통달한 선비입니다. 지혜의 샘이 활짝 열려서 식견이 툭 터진 사람입니다. 이것을 보면 문득 저것이 떠올라 저것을 통해 이것을 이해합니다. 그러니 처음 보는 사물도 하나 낯설지가 않아 그때그때 대처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달사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그 열을 통해 백을 이해하는, 증폭되고 확산되는 효율성 높은 공부를 합니다. 속인은 반대입니다. 하나를 들으면 그 하나만 고집해서 다른 것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둘을 배우면 그 둘 때문에 붙드는 고집이 하나 더 늘어납니다. 달사는 배울 때마다 툭툭 터지고 활짝 열리는데 속인은 배울수록 꽉 막히고 굳게 닫힙니다.
비록 만 섬이나 되는 구슬을 얻었다 해도 꿰미로 이를 꿰지 않는다면 어딜 가도 잃어버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 모서리를 들어 나머지 세 모서리를 뒤집어야 합니다. 툭 건드려 오성을 활짝 열어주는 방식입니다. 혼자서도 한 모서리를 들어 탁자 하나를 쉽게 뒤집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굳이 넷씩 달려들어 네 모서리를 다 붙들고 뒤집으려 하면 공연히 번잡하고 힘만 빠집니다. 한 솥의 국 맛은 한 숟가락만 떠 먹어봐도 알 수 있습니다. 통째로 다 마셔봐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책을 초록해 적는 것은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는 방법과 같습니다.
젊은 사람은 혈기가 안정되지 않아 늘 낯설고 신기한 것에 눈을 팝니다. 그들은 종종 오래된 것과 낡은 것을 착각하고, 새로움과 괴상함을 혼동합니다. 남들이 많이 간 길은 거들떠보지 않고 생전 처음 보는 길로 모험을 떠나기를 즐깁니다.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변해야 할 것과 변해서는 안 될 것도 있습니다. 동서남북은 내가 어디에 있든 변화지 않고, 변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상하좌우는 내가 선 위치에 따라 수시로 바뀝니다. 가변적입니다. 동서남북을 상하좌우로 알 때 문제가 생깁니다. 상하좌우를 동서남북으로 착각해도 비극입니다.
바탕을 다지는 일은 동서남북을 배우는 일입니다. 현실에 적용하고 실제에 응용하는 것은 상하좌우의 분별과 관련됩니다. 상하좌우만 알아서는 방향을 잃었을 때 집을 찾아갈 수 없지만 동서남북을 알면 길을 잃고 헤매지 않게 됩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동서남북은 경전의 말씀입니다. 말씀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기면 마음속에 호연한 기상이 생겨납니다. 가슴이 쭉 펴지고 눈빛이 맑아집니다. 역사책은 상하좌우와 같습니다. 어떤 때는 동쪽이 왼쪽이 되고 남쪽이 위쪽이 되기도 합니다. 좌우가 바뀌고 상하가 요동칩니다. 그 흥망성쇠의 득실과 치란을 살펴보면 사람이 가야 할 바른 길이 환하게 들여다보입니다. 그때 비로소 세상에 보탬이 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말겠다는 다짐이 걷잡을 수 없이 올라옵니다. 공부를 그저 출세의 수단으로만 여겨서는 공부도 잃고 나도 잃습니다. 사업을 단지 돈벌이의 방편으로만 생각하면 결국엔 패가망신하게 됩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이런 물음에 수시로 자답해보아야 합니다. 좌표를 설정하지 못하면 망망대해에서 나침반 하나 없이 떠돌다 풍랑을 만나 좌초하고 말 것입니다. 등등하던 기세가 막상 작은 시련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경우와 같습니다.
터를 굳게 다져 바탕공부에 힘쓴 사람과 한때의 가벼운 재주로 세상의 명망만 좇은 사람은 역경의 순간에 확연히 갈라집니다. 바탕공부가 되어 근기가 있는 사람은 역경에 쉽게 좌절하지 않고 순경에 교만해지지도 않습니다.
기둥을 세우기 전에 터를 굳게 다져야 합니다. 주추를 놓기 전에 터를 굳게 다져야합니다. 진도를 빨리 나가려 들지 말고 터를 굳게 다져야 합니다. 단청이 마르기도 전에 기울고 벽이 갈라지는 집은 아예 짓지도 말아야합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터를 굳게 다져야합니다. 달구질을 오래 할수록 터가 단단해집니다. 그 굳건한 토대 위에 주추를 놓고 기둥을 세워 들보를 얹어야 합니다. 천년 세월에도 기울지 않을 그런 집을 지어야 합니다.
가는 것은 까맣게 잊고 수레의 치장에만 온통 정신을 쏟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은 죽을 때 까지 고달프게 노력해도 자기가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입니다. 부지런하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 엉뚱한 데다 노력을 쏟아 부으면 고생은 고생대로하고 성과는 하나도 없게 됩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속은 하나도 없고, 처음에는 그럴싸해도 나중에는 한참 뒤떨어지게 됩니다.
뿌리가 든든해야 양분을 끌어 올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웁니다. 뿌리가 도덕이라면, 문장은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꽃에 불과합니다. 꽃이 아름답지만 아름다움의 근원은 뿌리에서 왔습니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되는데, 사람들은 거름을 주어 뿌리의 힘을 돋울 생각은 않고, 꽃만 피우겠다고 난리입니다.
경전이 원리를 제시한다면 역사는 그 원리의 적용과 변화를 이해시켜줍니다. 이 순서를 뒤집으면 안 됩니다. 학문에는 자기를 위하는위기지학과 남을 위하는 위인지학이 있습니다.
경전공부는 상학하달의 공부입니다. 옛 경전을 먼저 읽고, 주석과 풀이를 읽습니다. 원리와 본질을 먼저 알고 하는 공부입니다. 내게서 말미암아 사물로 나아가는 원심적이요 연역적 방식입니다. 역사와 경제 공부는 하학상달의 공부입니다. 하나하나 깨우쳐 원리를 깨달아 마침내 미혹을 돌려 깨달음에 도달하는 구심적이요 귀납적 공부입니다. 이 두 가지 공부가 앞에서 쓸어주고 뒤에서 훑어줄 때 안목과 식견이 비로소 열립니다.
지름길은 사실은 바른길입니다.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고 짧은 기간에 거저먹는 방법을 지름길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름길이 아니라 망하는 길입니다. 요행이 한두번은 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은 안 됩니다. 바른 길은 처음엔 느려 보여도 결국은 더 빠른 길입니다. 돌아가는 길이 첩경입니다. 바탕을 다지는 것이 질러가는 방법입니다. 처음에는 느려 보여도 초반 이후
에는 그 가속도가 엄청납니다.
일반적인 학습과정의 지름길은 경전을 먼저 배우고 나서 그 다음에 역사서를 읽는 방법입니다. 즉 사서를 내 몸에 깃들게 하고 육경으로 내 식견을 넓히며, 여러 사서로 고금의 변화를 통달하는 순입니다.
지름길을 찾으십시오. 더뎌 보이는 길이 지름길입니다. 무슨 답답한 말이냐고 하지 마십시오. 해보면 그게 휠 씬 빠르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듯 하는 공부는 백날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단계를 밟아 차근차근 규모를 세워야 합니다. 갈림길에서 헤매지 않으려면, 덤불 속에서 방황하지 않으려면, 돌밭에서 목마르지 않으려면 지름길을 찾아야 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언제나 생각이 명징하고 흐트러짐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선 눈앞에 펼쳐진 어지러운 자료를 하나로 묶어 종합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비슷한 것끼리 갈래로 묶고 교통정리를 하고 나면 정보간의 우열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요긴한 것을 가려내고 긴요하지 않은 것을 추려내는데, 이 과정이 바로 종핵입니다. 꼼꼼하고 면밀하게 따져서 쭉정이는 솎아내고 알맹이만 남겨야 합니다. 그 다음은 남은 알맹이에 날개를 달아주는 과정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를 것들은 마고할미의 긴 손톱으로 가려운 데를 쏙쏙 긁어주듯 명쾌하게 설명을 보태고, 어지러워 혼동되기 쉬운 것들은 흐트러진 머리칼을 참빗으로 빗듯 깔끔하게 교통 정리합니다.
공부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이하는 절차입니다. 공부는 깊게 들어가서 얕게 나와야 합니다. 세게 공부해서 쉽게 풀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고수들의 말은 쉬워 못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수들은 말은 현란한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읽을 때는 뭔가 있을 것 같다가도 읽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그저 읽기만 하면 비록 하루에 천 번 백 번을 읽는다 해도 안 읽은 것과 같습니다. 무릇 독서란 매번 한 글자라도 뜻이 분명치 않은 곳과 만나면 모름지기 널리 고증하고 자세히 살펴 그 근원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차례차례 설명하여 글로 짓는 것을 날마다 일과로 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한 종류의 책을 읽어도 곁으로 백 종류의 책을 함께 들여다보게 될 뿐 아니라. 본래 읽던 책의 의미도 분명하게 꿰뚫어 알 수가 있습니다.
격(格)이란 밑바닥까지 다 캐낸다는 뜻입니다. 밑바닥까지 다 캐지 않는다면 또한 유익되는 바가 없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말과 만나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완전히 알 때까지 끝장을 보아야 합니다. 뿌리를 캐들어 가면서 방증이 될 만한 지엽적인 자료들을 수집하여 수렴과 확산의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문제의식이 심화되고 본질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격물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물의 의미에 대해 끝장을 보는 것입니다. 격물을 통해 앎으로 나아가는 것이 격물치지입니다.
공부는 누적되고 확산되는 방식이라야 합니다. 확산이라고 해서 오지랖 넓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공부를 하라는 말입니다. 이때 확산은 심화의 과정과 긴밀하게 맞물려 따로 놀지 않습니다.
모르던 것을 하나씩 깨쳐나가는 동안 앎이 내 안에 축적되고, 그 앎은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 지혜가 됩니다. 격물치지란 무엇을 먼저하고 나중 할지를 아는 것입니다.
복잡하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정보를 정돈해서 정보가 제 스스로 말하게 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모으고 그 다음에 나눠야 합니다. 그런 뒤에 그룹별로 엮어 다시 하나로 묶으십시오. 갈래를 나누고 무리를 지어 한눈에 바로 볼 수 있도록 종합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옥석을 가릴 순서입니다.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차례 짓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변별하며, 먼저와 나중을 자리 매겨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누가 들어도 귀에 쏙 들어오도록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헝클어진 것을 빗질해주어야 합니다.
교통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입니다. 서랍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입니다.
공부는 가닥을 잡는데서 시작되고 끝납니다. 하늘 아래 새것은 없습니다. 있는 것을 참작해서 새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틀을 만들고 골격을 세워야 합니다. 새 자료를 꼼꼼히 검토하고, 기존의 성과를 면밀히 점검해야합니다. 다 보여주려 들지 말고 핵심을 찔러야 합니다. 자료를 널리 모아 갈래를 나눠야 합니다.
끊임없이 읽고 공부한 것을 간추려서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정리하는 습관을 몸에 배게 하고 핵심을 파악하는 역량을 기르며, 한 분야의 지식이 다른 부분으로까지 확산되게 하여야 합니다.
큰 학자는 우연히 얻은 반 권짜리 책의 한 귀퉁이에서도 정신이 번쩍 드는 깨달음을 건져 올립니다. 도는 어디 먼 곳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공연히 아득한 곳에서 있지도 않은 도리를 숭상하면서, 제가 딛고 선 자리는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들은 결코 이런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시시콜콜히 다 배우려 하지 마십시오. 한 모서리를 들어 전체를 뒤집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를 들어 열을 아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하나를 배워 하나만 아는 공부는 공부가 아닙니다. 큰 공부를 하려면 안목이 열려야 합니다. 식견이 툭 터져야 합니다. 앞뒤가 꽉 막힌 채 책만 붙들고 있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통째로 보고 핵심을 잡아야 합니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소한 것에서도 의미를 붙들어야 합니다. 삼라만상이 모두 책입니다. 자신의 오성을 활짝 여십시오.
먼저 정보를 발췌하는 주체의 주견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 책을 읽는가? 이 책 가운데에서 어떤 정보가 유용한가? 왜 그 정보를 필요로 하는가? 이런 물음들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마련한 뒤라야 카드작업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주견이 서야 저울질이 가능해 집니다. 취할 것인가? 버릴 것인가? 이 판단의 근거가 바로 주견입니다. 무조건 책 읽다가 좋은 구절에 밑줄만 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에 끝이 있는가? 공부에는 끝이 없습니다. 마음을 푹 담가 한 우물을 들이파야합니다. 살펴보고 따져보고 또 살펴보고 따져보아야 합니다. 이쯤 되면 되겠지.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이 정도면 괜찮겠지. 그런 것도 없습니다. 장벽을 만나거든 자신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십시오. 잠시도 놓지 말고 석연하게 투득(透得)하십시오. 그래야 자신이 하는 말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 하려면 식견이 열려야 합니다. 깨달음이 없으면 여기서 이 말 듣고 저기서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귀가 얇아 듣는 대로 의심이 나고, 배우는 대로 의혹만 커집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합니다. 입과 배를 위해 애쓰지 말고, 자신의 영혼의 각성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안 됩니다. 차근차근 따지고 살피고, 곁에서 일깨워주어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생각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단도직입도 좋지만 공부에서는 안 됩니다. 증거를 아끼고 논리를 절제해서 꼭 말해야 할 때 말하고, 써먹을 데 써먹어야 합니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꼭 반대로 합니다. 논문을 쓰라고 하면 자기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다 늘어놓습니다. 꼭 필요한 말만 하지 않고 저 할 말을 다 합니다. 글이 길어질수록 논리는 엉기고, 말이 많아지면서 생각도 뒤죽박죽이 됩니다. 저만 알고 남은 모르게 됩니다. 잔뜩 말했는데 하나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기미를 미리 알아 미루어 헤아려 준비해야 합니다. 일이 닥친 후에 대처하면 너무 늦습니다. 미루어 짐작하고 헤아려 예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소의 공부는 기미를 파악하고 미리 준비하기 위한 수련과정일 뿐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허둥지둥하지 않으려면 달사(達士)의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행간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안 보이는 것까지 보아야 합니다. 공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와 삶은 별개의 무엇이 아닙니다. 따로 놀면 안 됩니다.
무릇 한권의 책을 얻더라도 내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은 채록하여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백 권의 책이라도 열흘 공부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초서야 말로 책을 효과적으로 빨리 읽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학문에 보탬이 될 내용만 추려내고,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은 건너뛰며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할 경우 백 권의 책도 열흘이면 다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또한 독서에 메모의 습관을 들이면, 그 핵심내용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시너지효과가 생겨납니다. 전에 무심히 읽었던 내용이 다른 텍스트와 교차/연결되면서 정보들 사이에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전에 없던 새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옛것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좋은 모범을 찾아야 합니다. 훌륭한 선례를 본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됩니다. 바꿔야 합니다.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합니다. 실정에 맞게 변경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것은 걷어내고, 안 맞는 것은 버리고 없는 것은 보태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옛것에서 배울 것은 생각하는 방법뿐, 내용 그 자체는 아닙니다. 옛사람의 발상을 빌려와 지금에 맞게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쇠를 두드려 황금을 만들어야 합니다. 옛길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나만의 색깔로 나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나입니다.
기존에 있던 것을 참고하여 새것을 만들어 내면 되는 것입니다.
눈으로 입으로만 읽지 말고 손으로 읽어라. 부지런히 초록하고 쉴새없이 기록해라. 초록이 쌓여야 생각이 튼실해진다. 주견이 확립된다.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기억에서 사라진다. 당시에는 요긴하다 싶었는데 찾을 수가 없게 된다. 열심히 적어라. 무조건 적어라.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메모하여 기록하십시오. 생각은 쉽게 달아납니다. 붙들어 두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생각을 붙들어두는 방법으로 메모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제아무리 열심히 해도 방법이 잘못되면 거둘 보람이 없습니다. 생각에 발전
이 없고 나날이 성장하지 않으면 잘못된 공부입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을 뿐 네 것과 내 것은 없습니다. 부족한 것은 익히고 필요한 것은 배우십시오. 배우는 자리에서 체면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남의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의 나쁜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남의 것을 받아들이더라도 그대로는 안 됩니다.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합니다. 실상에 맞게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있고, 발전이 있습니다.
부족한 것을 끊임없이 고치고 다듬어서 완성된 상태로 끌어 올리십시오. 모든 일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처음 단계에서는 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고, 빼고 보태야 할 내용이 눈에 띄게 마련입니다. 이때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서슴없이 고치고 기꺼이 바꾸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첫술에 배부른 법은 없습니다. 작은 문제를 키워서 큰 문제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내게 들어오는 정보를 그냥 흘리면 안 됩니다. 갈래를 나눠 저장고에 비축해야 합니다. 씨앗 하나가 자라서 풍성한 이삭을 맺습니다. 스쳐지나가는 생각 하나가 책 한 권으로 자랍니다. 작은 메모하나가 수정과 윤색을 반복하는 동안 큰 프로젝트로 변합니다. 되새김질하며 거듭 음미하십시오. 실용에 기초해 생각에 날개를 달아야 합니다. 그 처음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 할 것입니다.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다잡아 일에 몰두할 것.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정성이 없이는 안 됩니다. 요행으로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성의가 없으면 그 성공은 곧 그를 교만에 빠뜨려 좌절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습니다. 정성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마음을 확고하게 붙들어 오롯이 집중해야 합니다. 설렁설렁 건들건들 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마음을 다잡아 매진해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행위는 중요한 부분을 초록하고 의미가 맺히는 대목에는 자신의 생각을 메모해가면서 지적인 성장과 인간의 성숙을 함께 이루어가는 행위입니다. 한번 구멍이 뻥 뚫리면 다시는 막히지 않습니다. 아무런 거침이 없게 됩니다. 하지만 깨우침 없이 무조건 읽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맹목적이고 무모한 독서를 배격하고, 끊임없이 중요한 부분을 베껴 쓰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메모하는 방식의 독서를 해야 합니다. 책을 베끼는 한편으로 그때그때 생겨나는 의문은 반드시 글로 남겨 질문하거나 스스로 의문이 해소 될 때 까지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학문은 남을 따르기를 기뻐하지 않고 자득코자 해야 합니다. 경전의 본문과 주석사이에서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생각하고, 생각하여 얻으면 이를 빠르게 써두어야 하며, 얻지 못하면 뒤에 다시 생각하여 기필코 얻고 그만 두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백리 길을 가는데 한사람은 수레와 말을 갖추고 하인과 마부가 앞장을 서서 하루 만에 당도하였고, 한 사람은 옆길을 찾아 가면서 곤란을 겪은 뒤에 비로소 도달하였다고 합니다. 만일 이들로 하여금 다시 그 길을 가게 한다면, 길을 찾아가며 다닌 사람은 정확히 알아, 길잡이를 앞세우고 간 사람처럼 갈림길이나. 네거리에서 헤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주석만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마음으로 체득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되풀이해서 다져보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특히 경전공부와 역사사실의 고증에서 반복 참정이 요구 됩니다. 논문을 쓸 때면 가설을 세우고 사업을 추진하면서는 결과를 예상합니다. 그러나 자료의 검증과정에서 당초의 가설이나 예상이 뜻대로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가설이 잘못되었거나 분석이 충분치 않은 것입니다. 이때는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가설을 다시 검증하고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여 재분석해야 합니다.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정리를 마쳤는데도 시원스럽지 않고 뭔가 찜찜한 기분이 있다면 아직도 따져보고 잘못된 부분이 남았다는 뜻입니다.
공부는 따지는 데서 시작해서 따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자료가 아무리 많아도 이를 꿸 끈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꼼꼼히 따지고 낱낱이 따져야 합니다. 그저 보아 넘기거나 대충 넘어 가지 말아야 합니다. 비교해 보고 대조해보고 견주어보고 흔들어보아야 합니다. 선명한 길이 뚜렷이 드러날 때까지 따지고 또 따져야 합니다.
앞에다 자료를 산처럼 쌓아놓는다고 당면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름 사람이 하는 것을 본떠 해봐도 풀리지 않습니다. 독한 마음을 품고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해결의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아직 일의 가닥을 잡지 못한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어찌하는가? 이럴 때는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는 몰두와 침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공부가 본 궤도에 오르면 이것과 저것 사이의 간격이 허물어집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생활에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 따로 생활 따로는 아직 공부가 덜되었다는 말입니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증거입니다.
일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예방하며, 일이 생기면 합리적으로 처리해서 뒷말이 없게 해야 합니다. 정보를 장악하여 생각으로 미루어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찔러야 합니다.
한번 지나간 버스는 세울 수가 없습니다. 기회는 불시에 찾아옵니다. 두 번 오지 않습니다. 소 잃고 나서 외양간 고치지 말고, 미리 헤아려 대비하여야 합니다. 변죽만 울리지 말고 핵심을 찔러야 합니다. 맥락을 읽고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글을 읽지 말고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껍데기만 쫓지 말고 알맹이를 캐내야 합니다.
고인 생각을 흐르게 하십시오. 남의 생각에 끌려 다니지 말고, 내 목소리 내 생각으로 이끌어 나아가십시오. 권위에 주눅 들어 그 그늘에 숨지 마시고. 주체를 확립하여 내가 권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시비를 판별하는 냉철한 안목과 속셈을 두지 않는 공정한 시각을 갖춰야 합니다.
자극 없이 똑같은 일상 속에서 창의적인 역량은 발휘되지 않습니다. 늘 하던 대로만 해서는 새로운 성취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생각을 바꾸고 방법을 바꾸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평범한 것에서 비범한 의미를 이끌어내고 늘 보던 것에서 처음 보는 것을 끄집어냅니다. 역경과 위기에 쉽게 침몰하는 대신 이를 기회로 돌릴 줄 알아야 합니다.
공부의 길에는 옳고 그름이 있을 뿐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도탑게 살피고 엄정하게 타져서 옳으면 행하고 그르면 내칠 뿐입니다. 이 눈치 저 눈치 보고, 못 본 듯이 지나치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잣대를 똑바로 들이대서 내 목소리를 올바로 내야 합니다. 이리저리 눈치 보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 좋다는 소리나 들으려거든 공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장을 세우려거든 근거를 찾아야 합니다. 모든 사실이 다 진실은 아닙니다. 덮어놓고 앞선 기록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행간을 살펴 현상에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독창성과 창의성은 객관성의 바탕 위에서만 빛납니다. 앞뒤를 따지고 진위를 가려서 객관적인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의미는 이것과 저것의 ‘사이‘, 여기와 저기의 ’중간‘에 있습니다. 갈래를 나누고 견주고 가늠해서, 현상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고, 문제의 핵심을 장악해야 합니다.
상식과 타성을 걷어내십시오. 자신만의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하던 대로 하지 말고 새롭게 하십시오. 관습에 전 타성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습니다. 생각의 각질을 걷어내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져야 합니다. 듣고 나면 당연한데 듣기 전에는 미처 그런 줄 몰랐던 것이 창의적인 것입니다. 들을 때는 그럴 듯한데 듣고 나면 혼란스러운 것은 괴상한 것입니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깨달음은 평범한 것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것을 읽어내는 안목을 길러야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굳세게 나아갈 것. 옳다는 확신이 서면 어떤 권위 앞에서도 주눅 들지 말 것. 힘 있게 주장하고 강단 있게 밀어붙여 자신의 입장을 세울 것. 누가 한마디 한다고 위축되어서는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턱도 없이 목청만 높여서도 안 되겠지만, 공부의 길에서 끝내 제 목소리 한번 낼 수 없다면 공부하는 보람이 없게 됩니다.
공부는 의문에서 시작되고 그 의문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때 조심씩 나아갑니다.
지, 인, 용 삼덕 가운데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용입니다. 목표를 정해 그와 꼭 같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 몰두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적당히 현실논리에 타협하고 남들 하는 대로 답습해서는 결코 큰 성취를 이룰 수 없습니다. 반드시 공부를 할 때는 한 사람을 목표로 정해 그와 나란해지는 것을 기약한 뒤에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권위에 압도되어 위축되어서도 안 됩니다. 굳게 붙들어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그저 물러앉아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만 해서는 끝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마음이 굳세어야 외물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들은 것만 고집하여 바꾸지 않아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입장을 세우고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목표를 정해서 그를 뛰어넘을 때까지 정진하고 정진해야 할것입니다.
도탑고도 엄정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합니다. 말의 힘은 화려한 수사나 능수능란한 임기응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재치만으로 한두 번 통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됩니다. 힘 있는 제 목소리를 내려면 바탕공부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말의 무게는 겉꾸밈만으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듣는 이를 압도하는 묵중함은 평소에 쌓아온 온축(蘊蓄)의 힘에서 비롯됩니다.
도탑고도 엄정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않고 태만하고 경박함을 따른다면 아무리 훌륭한 말을 해도 아무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바른 몸가짐으로 드러나는 위의가 있어야 사람들은 그의 말에서 힘을 느낍니다.
제 한 몸도 옳게 추스르지 못하면서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날뛰는 무리는 경멸의 대상입니다. 한편 엄정한 기운을 세운 뒤에는 이러쿵저러쿵하는 세상의 뜬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공부는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는 과정입니다.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들고 산만한 것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남의 것을 빌려와 실정에 맞게 변화시켜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입니다.
실용에 기초하여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아이디어를 모으고 발상을 바꿔야 합니다. 하던 대로 하지 말고 나름대로 하고 되는 대로 하지 말고 제대로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서 해결책을 명확히 제시해야 합니다. 해결책은 이미 있는 것들 속에 숨어 있습니다. 엉뚱한 데 가서 기웃거리지 마십시오.
남의 좋은 것을 얻어다가 내게로 옮겨 오십시오. 남의 좋은 점을 가져다가 내게 적용함으로써 나를 향상 시켜야 합니다. 너무 긴 것은 자르고 아주 짧은 것을 보태어 알맞게 가져다 쓰면 내게 큰 유익이 됩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남의 장점을 금방 포착하여 내 것으로 만들 줄 안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무조건 배워올 뿐 자존심은 필요 없습니다. 나보다 나은 것은 꼼꼼히 살펴 옮겨와야지 허세가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허명공평의 공부는 간결함에서 나옵니다. 마음을 텅 비워야 억지를 부리지 않습니다. 집착을 버려야 객관적인 시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리 지르지 마십시오. 목청만 높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편견을 버리고, 선입견을 버리고 추종과 타협을 거부하십시오. 텅 빈 마음을 돌아 나와 긴 울림을 주는 진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에 대해 앞선 연구가 많으면 많다고 투덜대고 없으면 없다고 한숨 쉽니다. 많으면 더는 새로 연구할 것이 없을 것만 같고, 없으면 막상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할 수 있는 연구가 없고 돈 벌만한 장사가 없습니다. 모든 자료는 방향과 시각을 바꿔 보면 모두 새롭습니다. 어느 것이고 전인미답의 경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남들이 추수하고 간 논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고, 별것 아니라고 내버려둔 자료에서 가공하지 않은 원석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빈틈을 헤집어 새로운 시각을 찾아내고 남들이 보고도 못 본 사실을 탐색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남들 하는 대로 하고 남이 가는 길로만 가서는 큰 성취를 이룰 수 없습니다.
3부 : 공부한 내용을 어떻게 정리 할 것인가?
지식 경영자들은 무엇이든 흥미가 생기면 즉각 자료수집에 착수합니다. 무턱대고 모우는 것이 아니라 목차와 범례를 세워놓고 단계를 밟아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들 저작을 관통하는 저술원리는 한 가지입니다. 널려 있는 정보를 수집/배열해서 체계적이고 유용한 지식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쳤는데 기러기가 걸리면 이를 버리겠느냐며, 이 작업을 하다가 저 작업에 착수하고, 저 작업을 하면서 또 다른 작업을 벌였습니다.
세계의 정보를 필요에 따라 정리해낼 줄 알아야 지식 경영가라 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필요에 따라 정리해 내기 위해서는 먼저 필요에 기초하여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관련 있는 자료를 취합하고, 명확하게 판단해서 효과적으로 분류해야 합니다. 분류된 자료를 통합된 체계 속에 재배열 한 후 작업은 여럿이 역할을 분담하여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진행 되도록 해야 많은 정보를 제대로 취합하고 정리 할 수 있습니다.
작업을 하기 전에 핵심가치를 세워야 합니다. 작업에 바탕이 되는 뜻이 본의이고, 작업의 의미와 의의를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 본령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본의와 본령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애만 쓰고 보람은 없는 헛수고가 되기 쉽습니다. 아킬레스건을 꽉 잡아야 합니다. 핵심가치를 잊으면 안 됩니다. 저술은 재미있어서 하거나 하다 보니 한 권 분량이 되어 엮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방향과 목적을 가지고 진행한 결과입니다. 본의와 본령은 작업의 이유이자 목적에 해당합니다. 이일을 왜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여기에 따라 작업의 방향이 결정되고 목표가 정해집니다.
수많은 정보를 앞에 두고 처음에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가치판단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과연 유용하고 가치 있는 정보인가? 믿을 수 있는가? 혹은 믿어야 하는가? 쓸모없는 정보를 믿고 거기에 얽매이다가는 큰일을 그르치고 맘니다. 가치 있는 정보를 그냥 지나쳐 흘려보내서도 안 됩니다. 지나고 보면 분명한데 그때는 아직 주견이 서지 않고 비교할 근거가 없어서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계속해서 껍질을 벗겨내다 보면, 다시 말해 하루도 끊임없이 궁구하고 살피다 보면, 어느 순간 버려야 할 껍질과 먹을 수 있는 속살이 구분 되는 시점이 옵니다.
파의 껍질을 계속해서 한 겹 한 겹 벗겨나가는 것은 실마리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실마리를 잡아야 얽힌 실타래가 풀립니다. 실마리를 잡지 않고서 실타래만 들쑤셔놓으면 나중에는 완전히 뒤엉켜서 수습할 수조차 없게 됩니다. 먼저 핵심개념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갈라 낼 수 있습니다. 핵심을 잡으려면 안목과 식견이 서야 합니다. 안목과 식견은 어떻게 갖출 수 있는가? 일단 옥석을 가리지 말고 따져보고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언제나 문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큰 문제는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구멍 저 구멍 기웃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공연히 실꾸리를 여기저기 들쑤셔 놓아서는 점점 더 상황이 나빠져 수습할 수 없게 됩니다.
본의와 본령은 무엇인가? 어떤 책 또는 작업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핵심가치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내 글과 남의 글을 명확히 갈라 구분하여 표시를 나누고 조례 또는 의례를 분명히 세우면 됩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작업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해야합니다.
편집형식의 초점이 없는 비망록은 책을 저술하기 위한 참고자료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 자체가 책은 될 수 없습니다. 본의와 본령의 열쇠를 세워 삼엄한 건장궁의 천문만호를 일시에 열어 젖혀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어합니다. 이 열쇠가 없으면 아무리 해박한 식견과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쓸모없는 책이 되고 말 것입니다. 본의를 세워 제 뜻대로 깎아내서 발췌하십시오.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솎아내서 알맹이만 남겨 놓으십시오.
아는 것을 다 자랑하려 들면 본의를 세울 수 없습니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본령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내 글과 남의 글을 뒤섞어도 안 됩니다. 계통을 세워 알맹이로 채워야 합니다. 잡화상처럼 늘어놓기만 하면 못씁니다.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감 없이는 절제할 수 없습니다. 목표를 정확하게 세워야 합니다. 눈높이를 맞춰야 합니다.
그 다음에 반드시 밑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전체 설계도면을 갖고 얼개를 짠 후 맥락을 파악해야 합니다. 지금 하는 작업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왜 하는 것인지를 꼼꼼히 점검 하여야합니다. 이때 질문은 단순할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공격 목표가 명확해 집니다. 그 다음은 이 목표를 공략하기 위한 세부의 구성 단계입니다. 이것은 작업 때마다 달라지므로 일괄해서 적용하면 안 됩니다. 통변(通變 )과 운용의 묘가 필요합니다. 처음에 터를 잘 다져놓고 출발하면 진행이 빠릅니다. 그냥 마구잡이식으로 하면 중반 이후에 뒤죽박죽되어 마침내 엉망진창이 되고 맘니다.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문목, 즉 목차를 먼저 정하십시오. 논문을 쓰든 저술을 하든 아니면 어떤 과제를 정리하든. 가장 먼저 할 일은 목차와 개요를 세우는 것입니다. 목차를 세우려면 우선 머릿속에 전체 얼개가 짜여야 합니다. 내 앞에 놓인 자료를 장악하지 않고 목차를 짜기란 불가능합니다. 전체의 계획을 세워 맥락을 놓치지 않고 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평생을 두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어떤 작업을 하든지 우선 목차와 범례를 확정하여 책의 목적과 목표, 전체 골격을 완전히 구성한 뒤에 착수 해야 합니다. 이것은 완벽한 설계도면을 그린 후 건축에 들어가는 이치와 같습니다. 뼈대가 제대로 서지 않으면 작업을 진행해나갈 수가 없습니다. 목차가 정연하지 않으면 생각도 덩달아 왔다 갔다 합니다. 범례를 꼼꼼히 검토해서, 혹시 작업 중에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합니다. 목차는 생각의 지도입니다. 범례는 생각의 나침반입니다. 지도와 나침반 없이 먼 항해를 떠날 수 없듯이, 제대로 된 목차와 범례 없이 큰 작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무슨 일이든 따져 살펴서 그 일에 가장 알맞고 효율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합니다.
머릿속에 어떤 체계가 가동되고 있지 않으면 배워보았자 안 배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좀처럼 질서를 보여주지 않는 잡다한 정보의 덩어리들을 갈래지어 구분하고, 등위에 따라 배열하며, 차례에 맞게 순서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논문을 쓰거나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도 구슬 꿰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대개 이 과정은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지식을 편집하고 경영하는 안목에 있었습니다.
명확한 목표 관리와 체계적인 단계수립, 여기에 효율적인 작업진행, 조직적인 역할 분담이 더해져야 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잘 추슬러 창조적인 작업으로 연결 짓는 역량이 중요합니다.
한 주제가 떠오르면 그에 관한 단편적인 기록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틈틈이 그 기록에 자신의 생각을 보태고, 의문을 덧붙이시기 바랍니다. 이 자료와 저 자료를 비교하고, 앞뒤가 서로 안 맞는 내용을 따져보는 동안 자료의 분량이 많아지고 덩달아 생각도 많아집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 방향을 드러냈을 때 자료와 생각을 정리하여 초고를 작성 하십시오. 그리고 그 결과를 주변 사람에게 보내 충고와 조언을 받으십시오. 이런 과정에서 처음에는 막막했던 원리가 어느 순간 눈에 들어 올 것입니다. 고립적으로 존재하던 파편적인 기록들이 체계적으로 통합되면서 연계망을 갖게 될 것 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정보들도 갈래별로 나누고 성질에 따라 분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생각의 갈래를 나누는 데 시간이 많이 듭니다. 생각이 정돈되면 글 쓰는 일은 대개 손가락 아래의 일입니다. 하지만 생각이 정돈되지 않으면 자료를 다 모아놓고 몇 년이 지나도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맘니다.
갈래를 나누고 종류별로 구분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무질서 속에서 질서가 드러납니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묶어서 생각하고 미루어 확장하십시오. 그저 그러려니 해서는 안 됩니다. 보이지 않는 질서를 찾아내야 합니다. 계통을 확립해야 합니다. 지리멸렬, 각개격파로는 적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일사불란하고 명약관화해야 합니다.
사물이나 일과 만나 시비가 맞붙고 이해가 서로 드러나게 되면, 내가 마음속에 자옥하게 쌓아둔 것이 큰 바다가 넘치듯 한바탕 세상에 내놓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 형세를 능히 가로막을 수 없게 되면 드러내려 했던 것을 한바탕 토해놓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를 본 사람들이 이것을 문장이라 말합니다. 이런 것을 일러 문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문장은 결과일 뿐 목적이 아닙니다. 문장은 얼굴 위에 오른 불콰한 낯빛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문장을 지님은 초목에 꽃이 피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 심는 사람은 처음 심을 적에 뿌리를 복두어 줄기를 안정시킵니다. 이윽고 진액이 돌아 가지와 잎이 돋아나. 이에 꽃이 피어납니다. 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습니다. 정성을 쏟아 바른 마음으로 그 뿌리를 북돋우고, 도타운 행실로 몸을 닦아 그 줄기를 안정시켜야 합니다. 경전을 궁구하고 예법을 연구하여 진액이 돌게 하고 널리 듣고 예를 익혀 가지와 잎을 틔워야 합니다. 이때 깨달은 바를 유추하여 이를 축적하고 축적된 것을 펴서 글을 짓습니다. 이를 본 사람이 문장이라고 여기니, 이것을 일러 문장이라 합니다. 문장이란 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사실을 글로 쓰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종합해야합니다. 어느 한편의 자료만 가지고 대충 가늠해 쓰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습니다.
종합은 흩어진 것을 모으고, 핵심은 중요한 것을 추리는 것입니다. 모으기만 해서는 안 되고 잘 추려내야 합니다.
글을 쓸 때는 가닥을 잘 잡아야 합니다. 적절한 예시와 알맞은 인용은 글의 설득력을 강화합니다. 무작정 늘어놓아서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 흥분하면 독자들은 외면합니다. 쓰는 사람이 말이 많으면 글에 힘이 빠집니다. 조목을 갖춰 실례를 얹어야 글에 힘이 붙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먼저 핵심개념을 잡아야 합니다. 덮어놓고 가지 말고 갈 길을 알고 가야 합니다.
구체적인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기존의 성과를 점검하는 일부터 착수 하십시오. 이 과정에서 작업의 방향을 결정하고 자료를 정리해야 합니다.
보완하고 반박하며 의문을 제기하고 증명하며 대조하는 여러 단계를 거쳐 독자적인 해석체계를 구축해 나가십시오.
하나하나 따져서 유용성을 점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보의 가치를 결정해야 합니다. 논단의 과정을 거쳐 일단 선택된 정보는 엄정한 편집기준과 미리 정해둔 문목에 따라 재배치하여 뒤엉킨 잡초더미 사이에 말끔한 새 길을 냈습니다. 많은 정보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에서 유용한 자료를 취하고, 쓸모없는 자료를 버릴 수 있어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 반대로 하여 유용한 자료를 버리고 쓸모없는 자료를 취하게 되면 차라리 손대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려면 객관적인 분석과 명석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자료가 혼란스러워 갈피를 못 잡겠다고 투덜대지 마십시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레 겁먹지도 마십시오. 하나하나 따져서 진위를 헤아리고 정보의 값을 매기십시오. 문제는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료에 있지 않습니다.
문자가 생긴 것은 만물을 분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형상과 뜻과 일을 가지고 반드시 종류별로 접촉하여 곁에까지 통하게 해서, 같은 부류를 다 이해하고 다른 것과 구별하게 한 뒤라야 정리가 찬연해져서 문심혜두가 개발됩니다.
자료를 모아 분류한 다음, 종류에 따라 다시 한데 묶어 정리하여야 합니다. 논문을 쓸 때도 그렇고 시장의 타당성을 조사할 때도 그렇고, 작업은 방대한 자료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일단 정보가 집적되면 이것을 다시 갈래별로 나눠 교통정리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뒤죽박죽으로 섞인 정보를 갈래별로 나누면 비로소 흩어진 정보들이 하나의 방향을 지시하기 시작합니다.
갈래별로 쪼개어 나눈 정보는 다시 큰 묶음으로 모아 하나의 질서 속에 편입시켜야 합니다. 이때 다시 통합된 하나는, 분류하고 취합하기 이전의 산만한 하나와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계통이 서서 구획이 나누어진 전체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실천이 없는 가르침은 빈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평소에 축적해둔 초서의 항목들을 그때그때 필요한 예시로 활용하면 좋습니다.
초서의 방법은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하고 내가 쓸 책의 규모와 절목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 후에 책에서 뽑아내면 바야흐로 일관되게 꿰는 묘미가 있다.
<초서의 사례>
필자의 경우도 지금 문목을 세워놓고 초서의 방식으로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산시문집을 펼쳐 놓고 몇 차례 통독하여 대강의 문목을 세웠다. 그러고는 읽다가 요긴한 대목들을 발췌해서 그때그때 초록한다. 각 항목의 끝에는 해당문목을 표시한다. 1차 초서작업이 끝난 뒤 문목에 따라 항목들을 재배열 한다.
하지만 막상 각 항목의 집필에 들어가면 어느 항목은 관련내용이 너무 많고, 어떤 항목은 관련내용이 너무 적다. 내용이 빈약할 경우 다시 다산시문집을 펼쳐들어 그 항목에 뜻을 두고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읽다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내용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때로 항목의 안배 때문에 문목이 달라지는 카드도 생긴다. 여기서 말해도 좋을 것을 저기서 말하기 위해 아끼는 경우도 생긴다. 이 항목을 쓰기 위해 카드 작업을 하다가 생각지 않게 다른 항목에 꼭 맞는 대목과 만나기도 한다. 이때는 하던 작업을 잠시 접어두고 그 항목에 카드를 보충한다. 또 카드 작업 중에 필요를 느껴 문목을 변경하거나 새로 첨가하기도 한다.
역사와 각종 문집의 사례뿐 아니라 직접 듣고 본 실례까지 그때그때 초록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책에 포함 시키십시오. 주견이 서 있으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하나하나 모두가 책에 요긴한 사례가 되고 사료가 됩니다.
끊임없이 메모하고 생각하고 정리하는 메모광, 정리 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 메모가 밑거름이 되어 수많은 저작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메모도 해봐야 요령이 생깁니다. 처음엔 두서가 없다가도 나중에 방향이 생깁니다. 방향이 생겨야 집중력도 생기고, 작업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수많은 비슷비슷한 학설과 주장에 치여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고 침잠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오면서 마음에서 의심이 가시는 순간과 만나게 되는데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메모해야 합니다. 이런 즉각적인 메모 방법을 질서(疾書)라고 합니다. 읽다가 떠오른 의문과 생각을 그때그때 기록해두고, 그것을 바탕으로 저술을 남기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매진하십시오. 쉬지 말고 적으십시오.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집니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으십시오. 메모는 생각의 실마리입니다. 메모가 있어야 기억이 복원됩니다. 습관처럼 적고 본능적으로 기록하십시오.
규모가 큰일은 혼자서는 다 감당해 낼 수가 없고, 한다 해도 시일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듭니다. 이럴 때는 집체작업이 필요합니다. 특출한 개인이 각자 작업하는 것보다는 부족한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팀워크를 이루면 작업의 효율성이 배가됩니다. 혼자 다 하지 않고 훈련과정을 거쳐 함께 작업하면 전체가 서서히 함께 향상됩니다. 처음에는 느려 보여도 나중엔 천하무적이 됩니다.
훌륭한 조직은 리더의 탁월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성원간의 단단한 팀워크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팀워크의 힘은 리더가 없을 때 단박에 드러납니다. 리더가 없을 때 비틀거리는 조직은 큰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작은 위기에도 갈팡질팡해서는 큰 시련을 견디지 못합니다. 효율적인 협동을 통해 능률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리더 없이도 저절로 굴러갈 수 있도록 팀워크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그 과정에서 리더십을 기를 수 있어야 합니다.
훌륭한 리더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그들의 최고치를 도출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개성을 무시하고 평준화시키는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부분의 합이 늘 전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상이 되려면 역량에 따라 안배해 협동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해야 합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습니다. 혼자 다 하려 들지 마십시오. 능률은 오르지 않고 힘만 빠집니다. 다만 집체작업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구성원을 적재적소에 배치 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저마다 잘할 수 있는 일을 골라 믿고 맡겨야 합니다. 중간 중간 점검하고 체크 하면서 부족한 점을 채우고 넘치는 것을 덜어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한번 갖춰진 팀워크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확대 재생산됩니다. 가속도가 붙습니다.
목표를 세워 전체 규모를 장악해야 합니다. 목표는 하루단위로 쪼개 확실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달성하지 못할 목표는 세워서는 안 됩니다. 작업의 방향을 정하고 전체 작업량을 예상한 후 가능한 일자를 가늠하면 하루에 할 일의 분량이 나옵니다. 이것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야 합니다. 차질 없이 밀어붙여야 합니다.
만약 규모와 절목 외에 뽑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따로 한 책을 갖추어 놓고 얻는 대로 적어 나가야 바야흐로 힘을 얻을 곳이 있게 됩니다. 물고기 그물을 쳤는데 기러기가 걸리면 어찌 버리겠습니까?
추수 끝난 들판에 여기저기 이삭이 떨어져 있어 이루 다 주울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 하고 있던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새로운 생각이 사라지지 않도록 별도의 공책에다가 끊임없이 초록하고 메모해야 합니다. 내 눈을 거쳐 간 정보들을 얼마나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어떻게 적재적소에 요긴하게 활용하느냐가 학문의 길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관건입니다.
저작은 그 목차만 보더라도 생각의 길과 방향이 명료하게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단계를 뒤섞으면 안 됩니다. 다루려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먼저 밝히고 이것이 왜 중요한가를 검토한 뒤에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도 예상외의 상황을 상정하여 만일의 경우까지 대비해야 합니다.
자칫 이것저것 집적거리기만 하면 잡학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다양한 관심사에 대해 긴장을 놓지 않으면서 정밀함을 유지하려면 평소에 생각의 날을 벼리고 정리를 습관화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초서하고 틈만 나면 정리하십시오.
열흘쯤에 한 번씩 집안에 쌓여 있는 서찰을 점검하여 번잡스럽거나 남의 눈에 걸릴만한 것이 있거든 하나하나 가려내어, 심한것은 불에 태워버리고, 덜한 것은 노를 꼬고, 그 다음 것은 찢어진 벽을 바르거나 책표지로 만들어, 정신을 산뜻하게 해야 합니다.
주제별로 수없이 많은 초록용 공책을 만들어 놓고 쉴새 없이 초록할 것. 잊어버리고 초록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정보들이 오롯하게 집적될 것입니다. 그 사이에 생각에 날개가 달리고, 정보가 제 스스로 갈래를 잡아주어 어렵지 않게 한권의 책이 만들어 질것입니다.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난관에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자료가 고갈되고 생각이 꽉 막히면 더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신경도 덩달아 예민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할까? 어떤 문제에 대해 궁리하다가 생각이 막히면 그 자리에서 끝장 볼 생각을 하지 말고, 그 문제를 잠시 옆으로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다른 문제에 집중하여 잊어버리고 있다가 나중에 다시 살펴보면 어느새 문제가 해결되어 있기 쉬운데 이것이 바로 궁리의 활법입니다. 하나가 막히면 다른 문제에 몰두하고 그러다가 다시 본래문제로 돌아오십시오. 탐구 중에 새로운 문제에 관심이 생기면 또 새로운 공책을 만들어 초서를 시작하십시오.
정리는 체계적으로 작업은 능률적으로 하십시오. 시스템만 갖추어지면 동시다발적인 작업도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초서하고 쉬지 말고 정리 하십시오. 작업의 목표를 수시로 점검하고, 계속해서 효율성을 제고하십시오. 정보에 휘둘리지 말고 정보를 장악해야 합니다. 자료에 끌려 다니지 말고 자료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일을 진행 할 때 현재하고 있는 작업의 성격과 특성을 명확히 파악해 거기에 맞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말로 써야 하는 작업이 있고 이런저런 자료를 모아 편집하고 배열하기만 하면 되는 작업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료를 단순히 모으기만 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생각을 보태야 합니다. 이와는 달리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그때그때 필요한 논거를 끌어와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례에는 이 작업을 어떤 쓰임을 염두에 두고 진행 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저술의 성격에 따른 구분
저(著) :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편 것
술(述) : 경전의 의미를 풀이하고 해설한 것
편(編) : 산만하고 복잡한 자료를 편집하여 질서를 부여한 것.
집(輯) : 여러 사람의 견해나 흩어진 자료를 한데 모아 정리한 것
편차(編次) : 주제별로 엮어 차례를 매긴 것.
유설 : 책을 읽으면서 그때 그때 초서해둔 비망기를 모아 주제별로 분류해서 자신의 설명을 덧분인것
독서든 저술이든 전체를 장악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부분이나 지엽말단에 얽매여 큰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정리자가 사안별로 갈래를 나누고 맥락을 드러내줌으로써 읽는 이들은 예상을 하고 독서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각 항목마다 쟁점이 되는 사안별로 정리가 가능해 집니다. 사실 이 쟁점의 사안별 정리 자체가 연구자의 안목과 수준을 드러내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자료를 참작하여 정수만을 가려 뽑으십시오.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고 여기와 저기를 견주며. 관련 있는 정보를 망라하여, 쓸모에 맞게 꼭 필요한 핵심만을 간추려 내는 것입니다. 이것과 저것을 근거 없이 뒤섞거나 저기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앞뒤 가리지 않고 여기에다 적용하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모래를 체로 쳐서 정금을 가려내듯 쇠를 두드려 황금으로 변화시키듯 있는 것 가운데 새것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4부 : 정리된 자료를 어떻게 평가하고 다듬을 것인가?
여러 정보 가운데 가치 있는 것만 추려내어 다시 하나하나 타당성을 따져보고 검토 하여야 합니다. 단락마다 고금의 여러 학설을 비교하고 대조하여 그중 타당한 것을 가려 뽑고, 그 가운데 의견이 서로 엇갈려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생각으로 논단하여, 마침내 더는 보충 할 것이 없다 싶을 정도가 되게 하는 게 첫 단계입니다. 초고를 쓰면 이것을 빈 공책에 정리해 써서 초본을 만드십시오. 그 초본에 수정과 첨삭을 거듭하십시오. 잘못된 것은 지우고 새로운 생각은 여백에 채워 넣고, 그래도 부족하면 별지를 덧붙이시기 바랍니다. 너무 어지러워 지저분해지면 다시 중간본을 만들고 그러고 나서도 계속 질정하고 수렴해서 마지막 최종 본을 만드십시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남에게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비판하는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잘못된 부분은 다시 고쳐야 합니다.
설득력을 강화하려면 문제를 단계별로 명확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교통정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쟁점을 마구 섞어 한꺼번에 처리하려 들면 논리가 뒤엉켜 문제의 서열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생각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단계별로 하나하나 따져서 판단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단도직입도 좋지만 공부에서는 안 됩니다. 증거를 아끼고 논리를 절제해서 꼭 말해야 할 때 말하고 써 먹을데 써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중에게 설득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덮어놓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통째로도 안 됩니다. 단계별로 분석해서 낱낱이 파헤쳐야 합니다. 목청만 높인다고 설득력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만 쓴다고 납득되는 것도 아닙니다. 핵심을 찔러야 합니다.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생각의 지도를 정확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독단에 빠지지 않으려면 남에게 비판을 요구하여야 합니다. 작업의 효율을 높이려면 중간 중간 방향을 점검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비춰볼 때 안 보이던 문제들이 드러나고, 토론의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이 분명해집니다. 정당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고 확신이 서면 끝까지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매섭게 비판해도 인간에 대한 애정마저 망각하면 안 됩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여럿이 낫습니다. 남의 말에 귀를 막고 있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질문하고 대답하는 가운데 논란이 있던 문제에 대해 의견을 수렴해 나아 갈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질의와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토론입니다. 토론도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면 토론이 있고 글을 주고받으며 하는 서면 토론이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해주면 이를 받아들여 원고를 수정하고 승복 할 수 없을 경우 다시 편지를 보내 납득될 때까지 논의를 계속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토론을 하다 말고 중간에 대충 얼버무리거나 멈추면 안 됩니다.
“붕우가 모여 성사(聖師)의 가르침을 서로 살펴 돕는 것은 후학이 반드시 힘쓰지 않을 수 없다. 혹 한가롭게 지내며 혼자 있을 때는 논할 만한 것이 한둘이 아니고 의문 나는 것도 몹시 많다. 그러다가 갑자기 엄한 스승이나 좋은 벗과 맞닥뜨리면 마음과 입이 서로 호응하지 않아 궁금한 점을 하나도 펴지 못하고 만다. 이것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근심이다. 마땅히 일마다 메모를 남겨, 이해하기 힘든 곳에는 의문 나는 점을 적어놓고, 나름대로 얻은 바가 있는 곳은 그 말을 기록해두어, 훗날 강학의 거리로 삼는다. 혹 서찰로 질문하여 더불어 밝게 살핀다면 깊고 은미한 뜻을 얻는 데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 정자는 편지야 말로 선비의 일에 가장 가깝다고 했다. 대현께서 분명 깨달은 바가 있어 말씀 하신 것이다.”
편지의 세가지 유익함 점 :
1. 의문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깊은 뜻을 점차 깨닫게 해주는 것
2. 질문에 답하는 사람 또한 감히 쉽게 주장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 두 번째 유익함
3. 글상자에 남겨두어 뒷날에도 잊지 않게 해주는 것이 세 번째 유익함이다.
맞대면해서 논란하는 것이 좋긴 해도 항상 미진한 것이 남습니다. 베껴써서 편지로 부쳐 집중해서 찬찬히 살펴보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 대개 말은 하기는 쉬워도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편지는 신중히 생각하고 궁구하므로 깊은 경지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메모하고 정리하십시오. 그리고 그 내용을 글로 써서 질문하고 토론하십시오. 공부는 토론을 통해 발전합니다. 남김없이 질문하고 가차 없이 비판하십시오. 토론의 자리에서는 인정사정 볼 것 없습니다. 체면을 갖추는 것은 토론이 아닙니다. 한쪽이 꺾일 때지 토론하십시오. 승복할 때까지 논란 하십시오.
서로 의견이 합치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본 바가 참으로 희기에 희다고 하는 것이지, 속으로는 검은 줄 알면서 억지로 희게 하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음의 일이 이러하다면 이는 저와 마음이 같은 것입니다. 이미 마음이 같은데 말이 어긋나는 것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다만 이 일은 학문의 핵심과 관계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감히 한 차례 되풀이하여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그래도 합치되지 않는다면 마땅히 입을 닫고 혀를 묶어 남은 봄날을 보낼 뿐입니다. 반드시 감히 옛사람이 했던 것처럼 두 번 세 번 편지하지는 않으렵니다. 대개 뒤끝이 좋지 않을까 염려해서입니다.
한번 칼을 빼들었거든 끝장을 보아야 합니다. 중간에 어정쩡하게 물러서려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은 변명 없이 깨끗이 수긍하십시오. 비판은 겸허히 받되 끌려 다녀서는 안 됩니다. 물러 설수 없는 지점은 절대로 양보하지 말고 증거를 들이대 반박하십시오. 한 사람 보다는 여러 사람과 토론하여 객관성을 높여야 합니다. 매도 미리 맞는 것이 낫습니다. 여러 사람의 안목을 거치는 것이 안전합니다.
느닷없는 한 차례의 망치소리에 놀라 생긴 병은 백번 천 번 거듭 들려주면 쉽게 낫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뜬금없는 비방에 놀라 주눅 들고 위축된다면, 망치소리 듣고 무서워 병난 자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잘못이 있으면 스스로 돌아보아 과감히 고칠 일이요, 떳떳하면 누가 말을 해도 굳세게 지켜 밀고나갈 뿐입니다.
서로 덕담이나 주고받자는 태도로는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남을 칭찬하는 것이야 나쁠 게 없지만 공부의 자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겸손이 미덕이긴 해도 토론의 자리에서는 안 됩니다. 학문의 문제로 토론하는 자리에서는 돌 바늘로 뼈를 찌르고, 쇠칼로 각막의 백태를 긁어내는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비판이 있을 뿐입니다.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불퇴전의 기상이 있을 따름입니다.
송두리째 의심하고 남김없이 파헤쳐서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토론과 논쟁에서 가치판단의 최종근거는 확실한 논거나 증거입니다. 논거 없이 무조건 목소리만 높여서는 상대를 설득 할 수 없습니다. 증거 없이 인정에 호소한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아무리 명백하고 분명한 일이라도 달리 증거가 없으면 재판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글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확실한 증거에 바탕 해야 합니다.
주장을 함부로 내세우면 안 됩니다. 증거 없이 말을 하여도 안 됩니다. 논거가 없으면 논리도 없습니다. 학문의 길은 가설을 세우고 논거를 찾아 이를 입증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재판에서는 증거가 없으면 꼼짝없이 집니다. 학문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상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 증거를 들이 대어야 합니다. 막연한 추정이나 도덕성에 호소하는 것은 공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주장을 입증하려 거든 증거를 찾아야합니다. 논쟁에서 이기려거든 논거를 제시해야합니다.
억지를 부려서는 상대를 설득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말할 때 저것을 증거로 끌어와 옆구리를 찔러서 절을 받아야합니다. 증거가 없다고 투덜대지 말고. 논거를 못 찾겠다고 답답해하지 마십시오. 보는 방법만 바꾸면 널린 것이 증거요 논거입니다. 억지 부리지 말고 근거로 말하고. 증거로 설득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증거가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합니다.
잘못된 선입견은 일을 쉬이 그르칩니다. 선입견은 잘못된 권위를 맹종하게 하여 비판의식을 말살 합니다. 왜곡된 편견을 조장하여 오류를 답습하게 합니다.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냉정한 비판의식과 합리적인 판단력입니다. 순수하게 객관적인 증거에 기초하여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편견은 학문의 독입니다. 옳다고 확신하는 것을 객관적인 논거에 바탕 해 주장해야지 막무가내로 우기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선입견을 버리려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거울처럼 비고 저울처럼 공평해야 합니다. 귄위에 편승하지 말아야 하며. 나이로 누르고 서열로 누르면 안 됩니다. 아랫사람의 견해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며. 패거리저어서 짓밟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