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열우당이 일본 육사 졸업생을 친일파로 규정하는 친일청산법을 제정하였던바, 이처럼 조국의 역사에 대해서 너무 무식한 것도 일종의 매국 행위이다. 아니, 일제시대에 우리 민족에는 일본 육사 입학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조처 몰랐다는 말인가? 입학을 전혀 못하는데, 어떻게 일본육사 졸업생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나라에 일본육사 입교생이 있었던 시절은 구한말 대한제국 시절로서 1983년부터 1910년 한입합방되던 해까지 신식군대 육성을 위한 국비 유학생으로 입학하였다. 그리고, 한입합방과 동시에 일본은 조선인에게는 일본육사 진학 자격을 주지 않았다.
공산주의 계열에는 독립군이 한 명도 없었으며, 민족주의 계열에만 독립군이 있었는데 일본육사 출신들이 독립군을 창군하였다. 한일합방이 되면서 일본육사의 조선인 학생들의 입장이 난처하여졌기 때문에 탈출하여 독립군을 창군하였는데, 러시아령으로 탈출한 항일운동가 이갑 장군이 일본 육군사관학교 15기생이었다. 그런데 KBS의 역사 왜곡 드라마 서울1945와 내용과 달리 그는 공산주의 계열이 아닌 민족주의 계열 항일운동가였다.
만주에서 동북항일연군이란 명칭의 중국 마적단 졸개로 있다가 러시아군의 앞잡이로 북한에 들어온 가짜 김일성이 아닌 진짜 김일성 장군은 육군사관학교 23기 기병과 출신이셨다. 진짜 김일성 장군은 일본육사는 김광서(金光瑞, 본명 金顯忠, 김경천)라는 이름으로 졸업하셨다.
그리고, 한일합방 직전에 일본 육군사관학교 26기생으로 입교한 이들 중에 홍사익(洪思翊). 이응준(李應俊,체신부장관 역임). 김정렬(金貞烈). 신태영(申泰榮,국방부장관 역임). 이청천(池晴天) 등이 있었는데 항일운동가 이청천이 일본군을 탈출하여 조국 땅과 결별을 고할 장소인 압록강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였다고 표현한 것이 바로 晴天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제시대 36년간 단 두 명만 일본육사에 입교할 수 있었는데 드라마 서울1945에서 석경이가 12살 소녀였던 시절에 49기생으로 채병덕(菜秉德). 이종찬(李鍾贊) 등이 입교하였다. 그 외에는 박정희처럼 만주군관학교에서 일본육사 3학년으로 편입한 경우인데, 이 경우 일본편에서는 일본육사 동문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전혀 일본군인이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3학년메 편입학하였기 때문이다.
만주국에 당시 조선족이 2백만 명이었기 때문에 조선인이 만주군관학교에 진학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했으나, 만주족, 조선족, 한족, 일본족 순으로 인구수에 비례하여 아주 극소수의 조선족 학생만 선발하였다. 그리고, 성적이 좋아야만 부의 황제의 추천을 받아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육사 3학년에 편입학 유학할 수 있었다. 다행히, 박정희처럼 진학의 문을 연 분들이 계셨기에 해방 조국이 국군을 창군할 수 있었으며 한국전쟁 때 조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KBS의 역사 왜곡 드라마 서울1945와 내용과 달리 실은 여운형이 미군정청과 사이가 좋았고 이승만 박사는 미군정청은 물론 미국과도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미국이 이승만 박사에게 준 상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본 전범 재판에서 진짜 전범들이 빠지고, 조선인들이 전범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한일합받 직전에 일본육사에 입교한 분들 모두에게 탈출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은 아니다. 구한말 인사인 홍사익(洪思翊)도 이승만 박사가 구명 운동을 벌였던 인물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승만 박사의 구명 운동으로 몇몇은 전범 누명을 벗었지만 홍사익은 끝내 누명을 벗지 못하고 연합군에게 사형당하였다.
OSS 광복군 작전으로 어렵게 승전국의 지위를 확보하였던 우리 민족은 여운형 같은 자들 때문에 갑자기 전범국 위치로 전락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하지 중장이 조선을 일본과 같은 나라로 보았던 이유도 전범 명단에 조선인이 여러 명 포함되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항복직후 일본인들은 바로 자기네 장성들 구명 운동에 들어갔다. 그래서 그들은 전범 누명을 조선인 장교들에게 뒤집어 씌웠다. 홍사익은 소장까지 올랐으나, 포로수용소 소장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간악한 일본인들은 일본인들이 잔혹함에 대한 모든 누명을 조선인들에게 뒤집어 씌웠다.
여운형이 미군정을 드나들면서 사교하던 시절에 이승만 박사는 전범의 누명을 쓴 조선인 변호 운동에 전념하였다가 여운형 등으로부터 친일파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조선인들이 가만있을 뿐만 아니라, 여운형같은 자들이 조선인 출신 일본 장교들은 사형당하여야 한다고 하니 연합국은 일본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홍사익 등을 사형시키고, 그 대신 여러 명의 일본인 전범들이 구명되었다.
그러니 애국시민은 열우당과 드라마1945의 여운형에게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일본인들이 전범 누명을 조선인 장교들에게 씌워 사형당하게 되었을 때에 누명 쓰고 사형당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면서 무슨 친일 청산인가? 처단해도 우리 민족 손으로 해야지 왜 연합국이 전법으로 몰아 사형하게 하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왜 진짜 일본인 전범들을 구명시키면서까지 우리 동포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내버려두었느냐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 좌익의 시야가 짧은 문제이다. 이승만 박사의 노력으로 몇명을 구할 수는 있었지만 홍사익 장군 등이 전범으로 몰려 사형당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 민족 손으로 친일파로 처단하는 것과 일본인 전범 대신 전범 누명을 쓰고 연합국에 의해 전범으로 사형당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일본인 전범 대신 전범 누명을 쓰고 연합국에 의해 전범으로 사형당하게 하는 것은 그리 좋은 친일 청산 방법이 아니었다.
홍사익 등이 전범 누명을 쓰고 연합국에 의해 사형당하였을 때 우리 민족 전체가 불명예를 안게 되는 것이므로 막아야 했다. 이럴 때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야 했건만 여운형 등 좌익 진영은 오히려 이승만 박사에게 친일파 누명을 씌울 기회로 삼고 맹공격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도 일본인들에게 속아넘어가 홍사익 장군 등은 끝내 전범으로 몰려 사형당하였으니 그때 이승만 박사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매우 컸다. 과연 우리 만족에게 전범의 누명을 쓰도록 하였던 좌익의 선택은 현명한 선택이었는가? 바로 이것이 KBS가 조국을 전범국 만들었던 해방정국 좌익의 어리석은 선택을 미화하는 방식을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오! KBS가 이렇게 무식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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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북한 특집/ Access to Ev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