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1:19-30 190724 새벽기도
새 찬송: 321, 322
바울이 감옥에서도 늘 감사하며, 염려해주는 교우들을 향하여 은혜와 감사를 전하고 있지만 바울 자신에게는 생사를 고민하는 힘든 시간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사는 것과 죽는 것을 비교하면서 죽으면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니 좋고, 살아있으면 형제들을 굳게 세워줄 수 있으니 이 또한 더 유익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바로 이런 점들이 바울의 고통이 결코 작지 않음을 증명한다 하겠습니다.
19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갇혀 있는 것이 마침내는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에게 구원을 가져올 줄로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을 매우 크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를 뒷받침해준 성도들의 기도의 중요성을 고백한 것입니다. 바울은 서신을 통하여 자주 성도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살후, 고후, 몬, 롬). 바울 같은 능력있는 사도가 자기 자신은 모든 것을 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기는 물론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구원이 가리키는 말은 감옥에서 석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먼저 무슨 일에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부끄러운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한 재판의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주님의 영광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무죄방면이든지, 아니면 어떤 형벌을 받게 되어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게 되더라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우리라면 어떨까요? 이번 재판에서 무조건 무죄 판결이 나와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판의 결과는 바울의 행위에 대한 판결의 의미가 없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갇혔기 때문에 복음증거 사실을 로마가 싫어하면 형벌이 더해지는 것이고, 복음증거가 로마와 상관없다는 판결이 내려지면 그냥 방면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합니다. 남의 판결로 인해서 좌우되는 삶을 살지 말아야합니다.
바울은 지금도 전과 같이 큰 용기를 가지고 사나 죽으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려 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잠시 용감해지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젊어서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던 신앙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한 사람으로 바뀌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변함없는 신앙으로 살아가야하겠습니다.
바울은 2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의 전부라고 고백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니까 살아있어야 영광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는다고 해서 그리스도께 영광이 못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도 유익하다고 바울이 고백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종종 우리에게 좋은 결과가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될 것이라고 믿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의 살고 죽는 문제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생사를 초월한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좋은 일이 있어야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주장하지 말고, 내게 어떤 일이 생기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만 바울은 이 세상에 살면서 더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사는 것과 죽는 것 사이에서 고민이 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면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니 그렇게 결정하고 싶지만, 성도들을 위해서는 아직 세상에 남아있는 것이 더 유익한 면이 있다고 바울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종종 이땅에서의 사명이 아직 남아 있음을 느끼지 않습니까? 이것 저것 따져보면 빨리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속도 편하고 주님을 뵈올 수 있으니 좋지만 이 땅에서의 사명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으면서, 이런 고난의 삶이 길어지는 것보다는 죽어서 천국에 가는 일을 소망하고 싶지만 아직 성도들을 위한 자신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음에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을 갖게 되니 바울은 재판의 결과도 석방으로 나올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세워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후에 석방되어 빌립보 교회를 다시 찾게 되면 빌립보 교회는 바울과 더불어 그리스도 예수를 더욱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27절 이하에서 바울은 복음 신앙을 사수하기 위하여 협력하고 분투해 줄 것을 성도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복음 진리를 믿음으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동물은 본능으로 살고 불신자들은 이성으로 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또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범사에 그리스도의 언약과 가르침을 믿고 행해야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지 말고 이런 일에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늘 소망 중에 사는 생활입니다. 지금 생활이 불행 중에 빠진 듯이 보일지라도 현실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소망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행하는 생활도 역시 복음에 합당한 삶의 요소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있든 없든 빌립보 교인들이 영향을 받지 말고, 늘 한마음으로 복음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고,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삶이 대적하는 자들을 좌절 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시는 분임을 알아야합니다. 이 진리는 이미 바울 자신의 삶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바울이 복음 증거의 삶을 살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고난을 겸하여 받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고난도 겸하여 주시는 분이심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항상 몸에 좋고 유익한 것을 구하면서, 그 응답이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고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들로서 그리스도와 바울처럼 우리도 고난을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합니다. 그러나 좋은 때이든, 힘든 때이든 오직 우리를 통하여 주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우리도 소망해야합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