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빌2:1-11 190725 새벽기도
새 찬송: 323, 324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교회의 협력과 일치를 위한 권면을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 대한 사랑도 있었고,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성도들 간에 하나로 연합하지 못하고 분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4:1-9). 그러나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교훈한 내용은 심각하지 않다고 했던 대로 빌립보교회의 분쟁은 어느 교회에나 교인들 간의 협력을 권면하는 정도에서 해결 가능할 만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성도들이 하나로 연합하는 원리로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권면, 사랑의 위로, 성령의 교제, 긍휼과 자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무슨 권면을 받는 것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권면의 뜻은 많으나 오늘 본문에서는 격려의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 받고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 가운데는 믿음이 약하거나 시험에 빠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격려 받아야 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유념하고, 그들을 격려해야한다는 뜻으로 이런 격려가 교회 안에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 안에서 위로를 받고 있느냐고도 묻습니다. 위로는 설득하고 격려하는 일이라서 위의 권면과 같은 개념의 말이지만 좀 더 부드러운 의미입니다. 이는 영육 간에 고통에 빠진 사람에 대한 태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빠진 위로는 있을 수 없고 진정한 위로가 아닙니다. 사랑의 위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정말 우리는 우리 공동체 내에 이런 사랑의 위로가 있는지 살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무슨 교제가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풍성하면 그것이 교회의 힘이 됩니다. 교회가 성령의 교제를 떠나면 인간적인 교제로 변질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파당이 생기고 분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이 없는 친교는 교회에 해악을 끼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교제가 이루어져야하는 것입니다.
더하여 긍휼과 자비입니다. 긍휼은 이웃의 사정과 형편을 마치 나의 일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이 긍휼은 사랑에서 비롯된 동정이나 애정이고, 또한 자비는 긍휼에서 비롯된 외적 표현입니다. 우리들은 오늘도 주님의 긍휼과 자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의 긍휼과 자비가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연약한 이웃이나 어려움에 빠진 자들에게 주님이 우리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신 것처럼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합니다.
이어서 2절에 보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일치를 위한 바울의 비결을 제시한 것입니다. 비록 전도를 열심히 하고 사도를 전적으로 후원하는 교회였지만 성도간에 완전한 일치는 이루지 못한 교회였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가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교회의 성장 과정이거나 성장통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이견이 있는 것을 너무 방치하면 정말 교회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으니 모두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야할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라는 것은 같은 것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생각하라는 뜻이겠지요? 또 같은 사랑을 가지라는 것도 역시 사랑의 대상이 일치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로지 예수밖에 없는 바울다운 특성을 볼 수 있는 본문입니다.
3-4절은 교회의 일치를 위해 성도들 각자가 지녀야할 구체적인 덕목을 제시한 것입니다. 바울은 아무 일에서든지 다툼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다툼은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을 먼저 내세우기 때문에 생깁니다. 다른 사람보다 나를 앞세우면 결코 화합은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웃의 생각도 들어줄줄 알고 이웃의 처지도 생각해 줄줄 알아야 다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허영으로 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알맹이 없는 영광이라는 한자어 뜻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허영은 결국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남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남과의 화합은 어려운 덕목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우수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자기 일을 돌아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직분을 돌아봐야합니다. 우리 중에는 자기의 사명과 직분을 소흘히 하면서 남의 일에 참견하고 비판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코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남의 일을 참견하기에 앞서서 자기가 받은 사명과 직분에 우선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야하겠습니다.
5절에 보면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마음 중에 겸손한 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돌이켜 보면 교만한 자취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신 곳이 마구간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겸손할 수가 있습니까? 나셔서 처음 누우신 보금자리가 말구유였습니다. 이보다 더 낮아질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젊어서 한 생활 가운데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 그는 친히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만큼 가난한 생활을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가 일생 동안 사귀신 사람들을 보면 어부와 농부 같은, 공부도 거의 못한 사람들과 사귀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세력 있는 사람과 더불어 소위 사교계에 나타나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예수를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웃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주님 앞에 나아 올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과거에 죄를 많이 지었다 할지라도 주님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나올 수 있고, 무식한 사람도 나올 수 있고, 어떤 허물이 있는 사람도 다 나올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얼마나 강퍅합니까? 이런 사회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꼭 품고 살아야겠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디를 가나, 무엇 을 하나 이것을 명심하고 이 세상에 아무리 강포와 포악이 심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 의 마음, 그 정신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향기로 채워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