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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이 인용한 '법'과 그 맥락 |
3월 10일, 온 국민이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러나’로 이어가다 마침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말이 나왔다. 이 재판관은 이날 아침 출근길에 분홍빛 헤어롤로 시선을 모았다. 얼마나 일에 몰두했으면 깜박 잊었을까. 일하는 여성의 상징이 되었다. 대통령 임무보다 외모 단장에 힘썼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 여성 대통령과 대조를 이뤘다.
곧이어 사흘 후 이뤄진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퇴임식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간결한 퇴임사의 한 인용구에 언론은 주목했다.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法之爲道 前苦而長利]’는 옛 중국의 고전 한 소절이 주는 지혜는 오늘도 유효할 것입니다.”
『한비자』 를 살펴보았다. ‘육반(六反)’이란 글에 실린 이 인용구는 ‘仁之爲道 偸樂而後窮’와 짝을 이루고 있었다. 이를 함께 해석하면 이렇다. “법(法)을 도(道)로 삼으면 처음엔 고통스럽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롭다. 인(仁)을 도로 삼으면 안락하지만 나중엔 궁해진다.”
‘법’과 ‘인’을 대립시켰다. 바로 유가(儒家)에 대한 법가(法家)의 선언이었다. 『논어』「위정」에 나온 바와 같이, 공자는 “정치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은 형벌을 면하고도 부끄러움이 없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리면 부끄러워할 줄 알고 또한 바르게 된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고 했는데, 이에 대한 반론이었다.
‘육반’이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거꾸로 세상이 칭찬하는 여섯 가지와 유익한데도 거꾸로 세상이 헐뜯는 여섯 가지를 가리킨다. 이 글에서 한비자는 유가적 온정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반대로 신상필벌을 주장했다. 더 나아가 상은 후하게[厚賞], 벌은 엄하게[重刑] 할 것을 주장했다. 상벌의 확실한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한비자』에서의 ‘법’은 신상필벌과 엄벌주의의 의미가 담겼다. 현대 법치주의에서의 ‘법’과 다르다. 법치주의에 따르면 형벌과 같은 제재는 최후의 수단으로 강구될 뿐만 아니라 잘못한 만큼만 최소한으로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재판관의 인용이 단장취의(斷章取義)가 아닌가? ‘법’이란 문구(Text)를 원래 사용된 의미 맥락(Context)을 떠나 사용한 것은 아닌가?
그러나! 역사적 판결의 맥락을 살펴보자. 현직 대통령이 잘못이 있더라도 온정을 베풀 것인가, 아니면 법의 적용을 통해 파면할 것인가. 국정농단의 기미가 몇 차례 드러났는데도 바로잡기는커녕 되레 내부고발자만 피해를 보는 적반하장의 상황이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상대에게 법가적 방침을 택한 결과가, 이 재판관이 말한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는가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이 재판관의 퇴임사를 다시 읽어보자.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을 함에 있어서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절차를 진행하면서, 헌법의 정신을 구현해 내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였습니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통치구조의 위기상황과 사회갈등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인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가치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오늘은 이 진통의 아픔이 클지라도, 우리는 헌법과 법치를 통해 더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비자』의 문구는 이 대목에 이어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인용구는 아무래도 원문처럼 법가의 ‘법’으로 해석할 것은 아니다. 법가의 '법'은 적용의 평등성이란 면에서는 선진적이지만 군주는 법 위의 존재였다. 법치주의의 '법'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평등한 법이며, 인권존중 등을 포함한 헌법적 가치에 어긋나지 않는 정당한 법이다. 헌법재판소는 민의와 헌법에 따라 판결했던 것이다.
‘법(法)’이란 글자를 고증한 것을 보면, ‘형(荊)’이라 풀이하고 있다. 형(荊)은 두 가지 의미와 통한다. 하나는 ‘형(刑)’이고, 또 하나는 ‘형(型)’이다. 다시 말하면 ‘법’이란 글자는 ‘형벌’이란 뜻과 ‘모범’ 또는 ‘제도’란 뜻의 두 가지가 있었다. 그런데 점차 형벌이란 뜻으로만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법치주의의 ‘법’이라면 모범, 즉 제도 규범의 의미가 더 적합하다. 이 재판관이 인용한 ‘법’이란 단어도 이렇게 새겨야 한다. 인용의 맥락에 비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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