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希望을 전하며
0000회중 여러분에게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제 인생에 매우 중요하고도 심각한 것입니다. 현재까지의 제 인생은 증인이 아닌 삶보다 증인으로서의 삶이 더 길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하듯이 저 역시 증인으로 살아오면서 증인이 아닌 인생을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그래서일지 다른 삶을 선택해서 살아온 지난 6년간은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는 제 인생의 치열했던 전환점을 설명하는 것이기에 매우 길 수밖에 없지만, 여러분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서 최대한 간결하게 쓰고자 합니다.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저의 마음을 부디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교육을 받아 중립을 지키고 회중의 장로로 일하기까지 오랫동안 성서와 워치타워 출판물을 읽어 왔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믿음이 진리라고 생각했으며 지상에서 유일한 참 종교에 속했다고 확신했기에 젊음을 바쳤고 세속적 야망과 기회를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더불어 이 조직에서 만난 선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환경이 더 없이 좋았고 장래에 신세계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모습을 그려 왔습니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사물을 좀 더 종합적이고 분석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급기야 제가 믿고 있던 믿음 중 많은 것들이 성경전체와 조화롭지 않고 오히려 심각한 모순이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차분하게 심층적인 연구를 시작하였고 선입견과 타인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스스로 국내외 학술자료와 협회출판물을 비교분석하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상상할 수 있듯이) 이 과정은 제 인생을 송두리 채 바꿔놓는 매우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발 내가 믿고 있는 증인의 삶이 진리이기를, (발견되는) 반대논리들이 거짓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에 임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제 삶이 과연 제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는가를 처절하게 되 돌아 보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참 하느님과 기름부음받은 지상의 남은 자 반열을 따르고 있다고 확신했던 저였지만 연속되는 재발견과 반전속에서 정신이 아득해 질 지경이었습니다.
약 2년간 연구와 번뇌를 거듭하면서 급기야 회중에서 장로로 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점차 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회중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저의 양심에 배치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쉽사리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장로를 사임하고도 전도인으로 1년을 더 활동하면서 좀 더 많이 검증하고 토론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형제자매들은 반대논리나 교리적 모순에 대해 논의하려는 저를 사탄의 영을 받았다거나 배교적 사상자라고 평가절하하고 비난하였습니다. 또한 저를 교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벧엘에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 만한 판단력이 없겠느냐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성서적으로 저를 설득하는 능력을 보여준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고도 애석한 일입니다. 그분들은 그저 [숲을 보고 가야한다]든지 [언젠가 조정될 것이다]라는 말로 구체적 토론을 회피하였습니다. 제기되어 있는 종교적 모순과 현실을 회피하려는 것은 비성서적이며 참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형제들은 통치체의 지침(출판물)과 하느님의 명령을 동일시할 정도로 복종하면서도 출판물의 모순과 오류를 지적당할 때는 인간들이 쓴 것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떤 (증인들이 말하는 거짓종교세계제국인) 종교조직이 스스로의 모순을 변명하면서 인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라든가 때가 되면 하느님이 조정해 주실 거라고 말한다면 증인들 자신은 이를 용인할 수 있을까요. 다른 종교에게 들이대는 엄격한 잣대를 정작 자신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공정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연구가 거듭될수록, 내가 행하고 있던 그리스도인 행실과 공개적 선포의 본질이 하느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견고히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인간이 정한 세부규칙을 따르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겨났습니다. 방대한 종교사를 공부하면서 완전하지 않은 인간종교조직이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대리한다고 주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앗아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활동 상태로 접어든 이후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제가 깨닫고 느낀 바에 대해 동료들에게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정어린 저의 진심과는 달리 이것은 고발로 이어졌고 회중내에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회중에서는 급기야 이탈처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저의 생각을 충분히 모르는 가족과 벗들에게 상처를 줄 것을 우려하여 사법처리는 유보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종교에 대한생각과 논리가 확립된 저로서는 사법처분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영문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이즈음 저의 사상적 고뇌를 외면한 채 저의 사생활까지 들먹이며 도덕적인 문제로 소문을 지어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의 이탈의 원인이 사상적 문제가 아니라 다른 데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직을 떠났기 때문에 분명히 불행해 질 것이라고 저주의 말까지 하면서 차갑게 저를 내치는 분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런 상황은 중세 마녀사냥과 북한의 인민총화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중의 이탈발표를 계기로 영문도 모르고 마음아파하는 친족들과 지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저의 입장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선택한 삶이 있다는 것은 존중하지만, 모순을 회피하고 진실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불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직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형제자매들은 저를 피하기도 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럴때면 함께 많은 추억을 공유했던 여러분에게 달려가 당장이라도 반가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하지만, 확고한 자기주관이 없는 듯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어색하고도 두렵게 떨리는 여러분의 눈길을 보면 이런 감정을 포기해야 합니다. 진리를 가지고 있다면 도대체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이며 저를 향해 어떤 설득의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여러분은 그런 용기가 없으십니다. 여러분은 저의 얘기 한마디 들어보지도 않은 채 그저 사탄주의자나 배교자로 내모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혹시 조직의 마련이 두려워 저를 멀리하시는 겁니까.
어떤 분들은 (그동안 출판물이 암시하였듯이) 저를 차갑게 대하면 제가 다시 조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을 강압적으로 돌리려는 것은 일차원적인 것이며 성서전체의 특성과도 배치됩니다. 여러분의 (이방인)가족이 여러분을 호되게 반대하고 따돌린다고 여러분이 스스로 신념을 포기하는 일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언제나 그렇듯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집단적 왕따나 처벌이 아닌 진정성있는 대화와 설득입니다. 성서에는 일부 범죄자들에 대해 인사도 하지말라고 하는 성구가 있는 반면 용서하고 설득하라는 성구도 많지 않습니까. 인간조직에 반한다고 성령을 거스른다거나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등의 지침은 조직논리를 앞세운 인간들의 주장입니다. 집단왕따와 절교처벌은 하느님의 권위를 무단으로 차용했던 카톨릭의 파문제도나 공산주의의 인민재판과 같은 것입니다. 정통성이 결여된 집단에서 사용하던 구시대적 인권탄압이지요. 성서전체의 그리스도 사상이 이런 제도를 지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성서적으로 배교란 특정집단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요한 둘째 9,10절에 나오듯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면서 성서를 연구하였습니다. 통치체의 해설이 성서와 부합하는가를 살피는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서를 능가하는 가르침은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통치체의 해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상충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서 마태 24장 3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임재시기를 하느님만 안다고 하였습니다.(이 성구가 가리키는 것은 큰 환난이 아니라 임재입니다. 전후문맥을 잘 살펴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치체는 자신들이 이것을 1914년 이전에 예지하고 인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가 1914년 가을이라고까지 구체적으로 지목하였습니다. 다니엘서와 예레미야서의 일부성구를 대입하여 연대계산식까지 발표하였습니다. 통치체는 오랜 기간동안 이 연대계산과 그리스도 임재를 연계하여 [다가오는 신세계]에 대한 열망을 증인들에게 심어줌으로써 개인의 소중한 것(재능, 학업, 진로, 직업, 사업)들을 기꺼이 희생토록 하였습니다. 증인들 중 많은 이들은 이런 장래희망이 없었다면 다른 삶을 살기 원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는 별도로 인간본연의 욕망에 관한 문제이며 현실적인 선택일 것입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저는 이 장래희망에 대한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1914년과 기원전 607년 관련 연대교리가 성서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이런 오류 때문에 출판물상에도 그간 연대에 대한 많은 번복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1919년 이래 그리스도에 의해 선택되었다고 말하는 [충실하고 지혜로운 종]의 신분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서의 연대와 관련된 성구를 종합하여 살펴보면, 기원전 607년 고대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연대는 논리적으로 검증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 어떤 백과사전을 보아도 기원전 607년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는 전무합니다. 그런데도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그 임재시기를 통치체는 계산했다고 했고 (예루살렘 멸망이 기원전 587년이라는)압도적인 고고학적 증거와 배치되는 성구기록은 무시하였습니다. 통치체는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출판물을 통해 (최근까지) 여러 기사를 썼지만, 출판물에서 누락시킨 (통치체에 불리한) 고고학 자료들과 성서적 논리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신지요. 예루살렘 황폐70년과 관련된 성구들 (예레미야,다니엘,역대기)이 단어해석과 번역에 따라 상이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문자적 70년 황폐기간이 성서적으로 온전히 입증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오히려 고고학과 일치하게 기원전 587년이라는 연대를 고대 예루살렘 멸망으로 받아 들일 때 조화로운 성서해석이 가능하지요. (물론 이 부분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심층적이고 고도의 집중력을 요합니다)
놀랍게도, (그동안의 우리의 이해와는 달리) 과거 성경연구생들은 1914년을 그리스도의 임재로 전혀 예지하거나 인지하지 못했으며 1940년대가 되서야 임재교리를 발표하였습니다(천년왕국 195p 55항). 이것은 제 사상을 바꿔놓은 결정적인 부분으로, 마태 25장에 나오는 슬기로운 처녀반열의 자격을 논할 때 출판물에서 스스로 강조한 부분이 오히려 오류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가 지상의 종을 검사하였다는 1919년 시점에는 (슬기로운 종 반열이라는) 성경연구생 그룹이 (지금의 증인들 관점에서 볼 때) 거짓 교리를 상당 부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 역시 거짓종교제국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인도를 받은)영적 양식이 아닌 사람의 것을 배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반열은 1919년 시점에도 왜 주의 임재를 인지하지 못했을까요. 그간 [돋는 햇볕]논리로 교리를 수정하며 여러 번 마지막 때의 기한을 늘려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치체의 주장에 반하는 자료를 아예 보지도 못하게 하고 논의조차 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증인들은 출판물의 내용만을 가지고 통치체의 가르침을 믿으려 하는 것일까요. 영의 인도를 받았다는 영적양식은 왜 (진리가 아니라는 증거인듯) 수시로 변경되고 번복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이 과연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 진리의 조직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런 의문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증인조직의 역사를 다시 살펴보고 출판물간의 상호부조화, 교리의 원칙없는 변경, 예언에 관한 시대별 말 바꿈, 수혈교리의 변경 등으로 인해 희생된 소중한 목숨이나 개인의 삶들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증인들에게는 성경에 버금가는 권위를 갖게 된 통치체의 지침 한 두가지가 수 백만명의 인생을 좌우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가변적인 통치체의 해설과 지침에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섣부른 결론이나 합리화를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연구를 거듭하였지만, 모순은 더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지성인의 자세라고 생각했으며 성서와 논리를 최종의 잣대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발견된 모순에 대한 체계적인 답을 해주는 형제들이나 출판물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유능한 순회감독자와 벧엘 장로들도 저의 질문을 일축하고 대답을 회피하였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교리적 모순에 더해 워치타워 협회가 행해온 은밀하게 정치세력들과 결탁하고 타협한 일들을 발견하면서 좌절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미국의 워치타워협회는 10년간의 유엔홍보부가입, UNNGO활동, 월킬농장 폐기물 대규모 불법매립 , OSCE 회의참석 등을 통해 통치체가 표방하는 신념과는 다른 행동을 해 왔습니다. 게다가 이런 보고들이 반대자들의 중상이라고 일축하면서 사건을 부인하고 은폐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객관적 자료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물론 사건의 폭로는 반대자들에 의해 행해졌지만, 사건 자체는 진실이었으며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조직을 따르고 있는 회중성원들만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 꼭 조사해 보십시오. 한쪽의 주장만을 읽고 무언가를 사실화하는 것처럼 무모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양쪽의 주장을 공평하게 조사하고 계십니까.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들도 사실확인과 증거수집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보통신시대에 인터넷을 멀리하라는 출판물의 경고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역사적으로 많은 신흥종교들이 그리스도 임재와 관련하여 연대계산을 하여 (다양한 형태의 말세론으로 포장된) 장래희망을 앞세웠고 청렴과 진실을 자랑해 왔습니다. 그들은 조직의 논리에 맞추어 특정성경성구들을 해석하는 반면 반대되는 성구들은 협의(狹義)적용하거나 합리화하는 식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해 왔습니다. 결국 그들의 참 모습은 말 바꾸기와 모순이었으며 종교를 통한 비지니스가 주 목적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조직은 도덕적으로 조직운영의 측면에서도 장점이 많은 종교조직입니다. 하지만, (성서적으로 볼 때) 장점이 많고 적음에 따라 참 종교의 신분이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방주와 같은 구원의 통로를 자임하고 하느님이 인도한다는 조직이라면 (스스로의 지침에 반하는 정치세력과의 타협과 같은) 내부적 모순이나 위선, 폐쇄성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조직이 장래에 대해 그릇된 예언을 하고 교리번복을 하면서 반대자료에 대한 열람이나 토론자체를 금지한다면 조직의 정체성 자체를 의심을 해 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심하고 조사할 것을 권합니다.(사도17:11)세상에는 그릇 인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둘째 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사람들은 더욱더 악해져서, 그릇 인도하기도 하고 그릇 인도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끊임없이 조사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참 종교는 자기합리화나 자화자찬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을 건 종교였다면 사람은 누구나 그 종교에 대해 합리화하려는 유혹에 굴복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습니다. 저 역시 조직을 나오면서 제가 알게 된 사실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조사하였습니다. 가능한 모든 자료를 비교분석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베레아 사람들과 같은 상당한 주의력과 탐구력이 요구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용기가 있으십니까 (사도 17:10, 11; 시 119:33-36)
최근 들어 파수대에서는 [배교자]나 [제명자]와의 교제금지를 가일층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간음과 같은 범죄자들과의 교제보다도 저와 같이 사상적 이탈자들에 대한 경고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런 파수대의 강조기사는 그만큼 사상적으로 이탈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과 이들의 논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방증(傍證)하는 것입니다. 사상적 이탈자들에 대한 강력한 교제금지 또한 접촉할 경우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것임을 자인하는 것이죠.
인터넷이나 도서로 흘러 다니는 반대자료 중에는 분명히 조잡하고 허무맹랑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성서전체로 대조해 보건대, 진지한 연구자에게도 설득력 있는 자료들이 많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맹목적 종교관념을 깨는데 일조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 등 서구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많은 사상적 반론자들이 워치타워협회에 대해 정보공개와 오류와 모순에 대한 대답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협회의 묵묵부답과 무시로 일관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젠가 아니 여러분의 생이 끝나기 전 어느 순간엔가는 제가 언급한 [여호와의 증인의 오류와 교리적 모순]이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에 대해 한번쯤은 궁금증이 생기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올인하여 신세계와 영원한 생명을 바라지만, 그 순간이 여러분의 생애내에 오지 않는다면, 단 한번만이라도 이 편지를 떠올리기를 바랍니다. 단 몇 시간만의 (객관적이고 마음을 연) 연구만으로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혹여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삶이나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라고 결론 내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저는 의아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인생이란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 소중한 인생의 순간순간을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지 못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축복을 받으려고 희생을 하면서 지난 인생을 살아 왔는데...그 결과가 만약, 만에 하나, 잘못된 선택이었다면, 인간조직의 지침에 복종한 것에 불과하다면, 어찌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삶을 또 다시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아~!.
이런 어마어마한 선택을 다시 한번 재고해보시라고 저는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사해 보십시오. 다시 조사해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진실을 외면하지 마시고 맞닥뜨리기 바랍니다. 우리네 삶은 소중합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PS : 저는 이 편지로 여호와의 증인으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합니다. (오랜 기간의 연구조사 결과) 여호와의 증인조직은 신권조직으로서의 성서적 권위가 없기 때문에 저를 그 어떤 죄목으로도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느님과 저와의 관계는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보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최종 판단은 여호와에게 달려 있습니다. 제가 이 즈음에 여러분과 절교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분과의 이별을 고하지 않겠습니다. 여전히 저는 여러분을 사랑할 것이며 거리에서 만날 때 반갑게 인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저에게 어떤 연락이나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달려 갈 것입니다. 제가 발견하고 연구한 방대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집필하는 일은 제 여생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언제든 자료를 제공하거나 토론할 용의가 있습니다.
저는 다음 성구가 진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심판은 자비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야고보 2:13, 새번역)
|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나 가슴절절한 내용에 눈물이 날라합니다 제 인생과 너무나도 흡사한 삶을 보면서 깊은 고뇌와 안타까움과 회한이 깃들여 있는 좋은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100%아니 1000%공감하며 감사합니다
너무나도 감동적입니다...버릴게 하나도 없네요...많은 분들이 이글을 보기를 희망합니다...
증인시절 파수대경험담을 통해 격려 받았던 것 보다 100배는 더 감동적입니다. 정말정말 증인들은 제발 개관적 사고로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을 조사해 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잘 읽었읍니다.좋은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잘읽었습니다.
정말 공감합니다...
내 자신의 논리로 확인해 보지 않은 조직에
온 가족을 끌어들인 죄가 너무 커서 후회막급인 1인입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정보를 공유하기 진심으로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어마나 고통스러운과정이었는지 ..ㅠ.ㅠ.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감동을 받았습니다..감사합니다
그 어떤 글에도 견줄수 없는 명문입니다
정말 감동적입니다. 잘읽었습니다.
정말정말 잘 읽었습니다.
힘내십시오. 어느 누구도 님한테 비난할 자격 없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합니다.
외국의 형제가 쓴 글을 번역한 것인가요?
얼마전에 본것과 비슷한것 같아서요..
무슨 말씀,,?? ^^
최근에 제가 장로의 회에 전달한 글입니다. 물론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쓴 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님의 용기에 머리숙입니다. 힘내십시오.
가슴와 닿는 좋은 글이 였습니다. 많은 증인현역들이 이글을 읽고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도 언젠가 이런 글을 쓸날이 오기를 준비 해볼까 합니다. 아직 그냥 포로인퍽 하고 지내고 있지만 ....
앞으로도 많은글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황한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감합니다.
여기 방문한 모두의 맘 아닐까요 , 이런맘 이런생각 같은사람 손 한번해 들어보라고 해 보세요 다 손들겁니다. 님도 강하신것같은데 아직도 지난일들을 꽁공 숨겨놓고 수시로 냄새맙고 슬퍼하지는 않는지요 그냥 버려요 쓰레기처럼 과감하게 다시 생각하지말고 버려야 내가 살수있고 또 이해해지고 용서해지죠 우리 승리자이니까요. 아직도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못하고 맹목적으로 하루하루 스스로도 헤어나오수없는 그 많은 사람들 그들은 우리가 망해서 밑바닥치고 다시 돌아와서 자신들이 참고 묵묵히 견디 걸 스스로 위안삼을 날을 기다리고 있고 우리결코 같이 갈수 없는 ......... 진리라고 믿고 가족도 등한시한 우리들이 뼈에 스린 아품 (홀로한 자의 이중고통) 전버렸는데 님께서는 안되나봅니다.. 오늘 저도 중얼중얼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뇌의 흔적이 편지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블루님의 삶을 처음 들여다 보는군요, 어떤 분인가 했는데, 감동적입니다.
탈증 선구자로서 정규 코스를 밟아 오신 것 같네요.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닌데, 그 시기에 너무나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얄궂은 종이쪼가리에 아주 무성의한 글씨로 탈퇴한다는 말 한 마디만 휘갈겨
장로 두 분에게 건냈답니다. 두 분은 사실 저에게 잘못이 없어셨는데
너무 어이없는 일들을 겪다보니 자제가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달래는 것 말고 저에게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입장이셨는데
결과적으로 그분들에게 화풀이가 되버렸습니다.
정중한 사퇴표명을 받을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이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블루님의 스탠다드 사례를 보니 부끄럽네요
잘 읽었습니다
한번 뵙고 술한잔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