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청소일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에 어머니는 성서 연구를 하셨고 침례 받으시고 저도 성서 연구를 따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학교 2학년때 순회대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정부 보조금을 받기도 했는데
시험을 봐서 입학해야 하는 명문 인문계 고등학교에 합격 하였습니다.
그런데 회중의 형님들 (당시의 표현)이 고등 교육은 위험한 것이라면서
고등학교 교육을 만류하였고 파이오니아 봉사를 권장하셨습니다.
저 역시 교련 문제로 고등학교 교육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교련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우연히 알게된
사실은 먼저 졸업했던 형제들 회중의 형제들은 교련을 받으면서
제식 훈련도 전부하고 단지 총검술때 이핑계 저핑계만 대서 총검만 들지 않았음.
교련복을 입고 이중적인 행동을 하면서 이 학교를 졸업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이 문제를 회중에 이야기 하기도 힘들고 결국 순회감독자의 방문때 순감에게 이야기 했더니
순감은 경찰이 제복을 입으면 경찰이고 군인이 제복을 입으면 군인이라고 하면서
교련복을 입은 형제들은 중립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면서 저를 격려하고
고등학교 교육보다는 정규 파이오니아 봉사를 우선순위로 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순감의 격려를 받고 학교에 자퇴서를 내게 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과 교련선생님은 저를 교무실로 부르시더니 제발 관두지 말라
교련복만 입고 그냥 빠져 있어라 그러면 우리가 처리해 주겠다.
너 학교 안다니면 인생 망친다. 커서 정말 후회한다면서 눈물까지 글썽거리신 기억이 생생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 인문계 고등학교는 전국에서 유명한 학교로 서울대를 한해 50명씩 보내던
최상위 학교였거든요.
결국 선생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저는 자퇴서를 학교에 제출하고 순감의 격려에 따라서
파이오니아 봉사자의 길로 걷게 됩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양복 입고 바바리 코트 걸치고 가방들고 전도 하는게 쉽지만은 않았고
한번은 일요일날 전도를 갔다가 중학교 선생님 댁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놀라면서 너 지금 정신 차려야 한다. 지금 뭐하는거냐? 하시면서 따뜻하게
차를 주시면서 다시 학교 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자퇴서 아무 의미 없다. 다시 학교 다닌다고 하면
그 학교는 복학처리해 주는 곳이니까 다시 생각하라고 말이죠.
제가 중학교 성적은 전교에서 10등안에 드는 우수한 성적이였습니다.
같은 동기들중에는 연락이 되지는 않지만 고등학교 홈페이지에 가보니
변호사며 회계사며 치과의사 한의사등등이 많더군요. 기억나는 친구들로요.
참 좋은 교육의 기회를 저버린 생각이 지금와서 듭니다.
아무튼 그런 선생님에게 세대의 예언이 나오는 성귀를 보여주면서 1914년의 출생한 사람들이
죽기전에 아마겟돈이 오니까 세상끝은 가까웠는데 선생님도 성서 공부를 하시라면서
전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진정으로 안타까워 하셨지만 어쩌실 수 없으셨죠.
후에 당시에는 자원봉사자들로 왕국회관과 대회회관을 건축했는데 저는 동북대회장 건축 현장에 가서
일을 합니다. 여기서 첫삽을 뜰때부터 완공을 할때까지 일을 했습니다.
한달에 몇만원 정도가 나오긴 했지만 거의 무보수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지방 회중들을 자원봉사로 건축할대면 제가 벽돌 메지를 넣는 기술자가 되어서 말이 좋지
초대라는 형식으로 숙식만 제공 받고 가서 한달이나 두달간 일해주고 왔습니다.
후에 이러한 건축 방식은 알비씨 조직이 생기면서 사라졌습니다.
결국 영장이 나오고 소년 교도소를 다녀옵니다.
고등학교 3학년과 대학 1학년 시절을 건축 현장에서 건축봉사로 여호화를 섬긴 셈이 되는 것이었죠.
중립을 마치고 나오니 벧엘 건축 봉사가 있었습니다.
이곳을 자원하는 것이 강한 믿음이라고 과거 퇴계원 대회회관 건축 현장에서 일하던 형제들이 저를 불렀습니다.
부모님을 모셔야도 했지만 회중의 형제들도 건축봉사가 더 우선시 되어야 하며
이제 때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가치 있는 일을 하라면서 베델에 가서 건축 봉사를 격려하더군요.
저는 중립을 지키고 베델 건축 현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이때가 참 즐거웠습니다. 가난하긴 했지만 몸은 힘들어도 아마겟돈이라는 희망이 있었으니까요.
일을 하고 저녁이면 형제들과 이야기 나누고 간혹 여러 회중들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왔고 새로운 형제나 자매들과도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쯤에 봉사훈련학교 발표가 났고 현장에서 일하던 형제들은 이곳을 지원한다면서 많이 떠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끝까지 베델 증축 현장에 남아 있었고 베텔의 정식 성원 형제들은 이곳에서 일하면
벧엘 성원이 되고 벧엘 성원이 되면 결혼하면 특파를 나간다면서 벧엘 성원이 될것을 격려하였죠.
저는 결국에 계속 남아서 일을 하다가 벧엘 성원까지 됩니다.
교육을 받으면서 베델에서는 이렇게 생활하고 청소하고 뭐 기타 교육과정을 마쳤고
부서에 임명되어서 출판물을 지방에 운송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특파를 나가려던 계획은 봉사훈련학교가 생기면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베델 성원들은 결혼해도 특파가 되지 않고 엠티에스에서만 가능하다는 발표가 있더군요.
이때 과도기였는데 많은 형제들이 마지막 특파가 되기 위해서 결혼을 서둘러서 하고 임명받아 나갔지만
저는 베델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을 뿐더러 바로 결혼해서 나간다는것이 창피하게 느껴져서 하지
못했고 결국 나중에 자매와 결혼해서 특파가 되지 못하고 베델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 옆에서 고생하는 자매를 보면 눈물만이 나옵니다.
베델을 나와서 열쇠 수선공 건강식품 판매 윤선생 영어교실등 닥치는 대로 해 보았지만
수입은 일정하지 않았고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회중에서는 제가 고등학교 교육을 포기하고 건축봉사를 하던 시절에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교련복입고
교련을 어설프게 빼고 대학까지 갔다온 형제들이 경제적 우위를 기반으로 이제는 함께 장로가 되어서
금전적인 힘으로 우위에 서게되고 결국 회중 장로회에서도 금전이 바탕이 되지 않으니
소외되는 느낌이 많았습니다. 이게 가장 화나는 일이였습니다.
특히 자매가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면서 아침에 우유까지 돌리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팠고
저도 파이오니아 봉사를 관두고 자매와 함께 시골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장로 추천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다 제 잘못이겠지만 엠티에스를 졸업한 회중의 장로가운데 하나가 저희 부부의 영성을
문제 삼았고 제가 생활고에 찌들려 약간의 회중 활동을 소홀히 한것을 믿음의 부족으로
추천 결격 사유로 삼은 것입니다.
이때의 충격으로 자매와 저는 무활동이 되었습니다. 제 믿음이 약한 것이겠죠.
아직 아이도 없고 파이오니아 봉사를 한다면서 아이까지 포기하고 일해왔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인생이 너무나
글쎄여
너무나 증인 조직에 이용당했다는 느낌이 강해서 울분이 앞섭니다.
고향의 어머니는 이제 연로하셔서 고혈압과 당뇨로 고생하시고 제가 모셔야 하는데도
생각뿐이고
전시간 봉사자로 파이오니아 봉사를 해왔던 우리 부부가 연합을 안한다는 사실을
아직가지도 어머니는 모르고 계십니다.
만약 아시게 된다면 쓰러지실지도 모르구요.
이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납니다.
증인 형제 자매 청소년 여러분 어떤것이 진리인지 아직은 모르겠으나
조직에서 하라고만 한데로 살아가는게 성공한 삶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네요.
지금 수중에 가진돈도 얼마 안되고 그나마 사랑하는 자매에게 제가 아무것도 해줄수 없다는 것
그리고 연로하신 어머님께 효도하지 못한다는것이 너무나 서글픕니다.
저와 같은 인생은 사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어떻게 하느게 좋을까요. 이 까페에 묻고 싶습니다.
조직에서 하라는데로 하고 살았음에도 인생에서 패배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살펴보면 받지말란 교련 시간에 교련복 입고 제식훈련까지 하면서 고등학교 다니고
중립도 돈을 주고 면제 받고 대학교육까지 받고 같은 대학나온 자매들과 결혼한
친구나 선배들의 인생이 훨씬 좋아보이네요.
자진봉사 가서 건축봉사하라는데 그런 노가다는 안뛴다면서 한번도 보이지 않았던 형제들이
이제는 저희 같은 형제들이 노가다 뛰어서 피땀으로 지어놓은 대회장에서 연설하고
좋은차 끌고 대회장에 오는걸 보면서 울분이 치솟습니다.
조직엔 희생이란것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희생한 사람들은 이렇게 매장당해야 하는걸까요? 이게 참 조직인지 묻고 싶네요.
제가 진정으로 희생을 한것인지 조직에서 특권을 받고자 욕심으로 거짓 믿음을 나타낸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순수하게 조직에서 권하는 바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믿어 왔습니다.
청소년 형제 여러분 공부는 꼭 하시고 자진봉사와 같은것은 여유 되실때 여유롭게 하세요.
진심으로 하는 조언입니다.
첫댓글 비록 악한 조직에 속아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희생당했지만
인자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늘 아버지께서는 님의 그 충직하고 진실된 마음을 이미 모두 읽고 계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버지의 선하신 뜻과 은혜가 형제에게 함께 하시어 앞날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한번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언제나..입니다.
정말 그런 하느님이 계시다면 위안이 되네요. 지금이라도 진정한 하느님을 찾고 싶습니다. 제가 교육받은 대로 우리의 인생의 목표는 낙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해지게 되는것을 목격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정한 하느님이 계시다면 저와 같은 형제 자매들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만약에 순진하셨던 어머니께서 진리를 받지만 않으셨어도. 세상 어디에선가 사회 구성원으로 일하고 있을 제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때 학교를 관둘때 선생님께서 정말 진심으로 비록 그분들이 이방인이기는 하셨어도 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이 되네요. 공부를 못해서 학업을 포기한 것도 아닌데 너무 화가나는 인생을 살은듯 합니다. 참 종교는 모든 구성원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데 여호와의 증인 종교는 참 종교가 아니라는 것도 너무나 뚜렸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구성원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는 커녕 사회에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조직을 떠나서는 친구도 직업도 구할 수 없는 불행만을 가져다 주는군요.
그렇다고 가까운 장래에 아마겟돈이라는 심판이 오고 낙원에서 보상 받을 수 있다는 교리도 수정이 되니 그 무책임한 교리 수정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요?
신도들을 모으는 가장 쉬운 방법은 때의 긴급성을 부각시켜서 종말론적으로 신도를 모으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은후에 때가 오지 않는다면 그 종교는 정체되고 맙니다. 쉬운방법으로 급속도로 모아들여서 세를 불린후에 충실했던 신도들에게 즉 형제 자매들에게 아픔을 주는 종교는 참 종교가 아닐 것입니다.
저와 공감되는 부분이 참 많네요... 전 요즘 마음이 많이 떠난지라... 열심히 하는 동생에게도 늘 이야기합니다... 조직에서 하라는대로 순종하면... 개털;;;;이 될 뿐이라고... 대학진학 하면 영성없는 자로 취급할때는 언제고... 이제는 대학을 나와 자리 잡은 사람들이 더 좋게 평가되는...문득 그런생각이 들더군요... 하느님께 나온 진리는 성서자체일 뿐이라고... 협회의 권고와 조언은 그냥 사람이 하는 말일뿐... 그들이 말하는 하느님의 영을 통한 말씀이였다면... 변하지 않았어야 했고 삶을 고되게 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힘내세요~분명 모든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룸에는 확실함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저보다 나중 세대신것 같은데...그래도 저와 비슷한 삶을 사셨습니다. 저는 이제 증인조직의 그늘을 벗어나 자유를 느끼고 있습니다.신권조직이라는 허울은 많은 이들을 좌절시키고 인생을 소모시켰습니다. 할말이 많네요...제가 경험했던 인생을 서로 나누고 싶습니다. 연락한번 주십시오. - 블루스카이
과거를 벗어 던지시고 지금 이순간에 몰입하십시오. 현재의 님은 그토록 울분을 토하는 과거의 결과입니다. 즉, 현재 의식의 눈을 뜨게된것은 그토록 아픈 과거의 덕분이란 말입니다.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다보면... 머지않아 ... 지난날의 아픔이 님을 성장시키는 과정이었음을 알고 오히려 감사의 마음이 생길것입니다. 어떻게 그리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냐구요? 저두... 님과 똑같은 길을 걸어왔거든요. - 모나미 올림
네 공감합니다. 조직에서 하는 말은 딱 2가지지요. 그런 이기적인 동기는 잘못이다. 2. 하늘에 보물을 쌓은것이니 나중에 하나님이 다 상주실것이다.. 같은 입장으로서 동감하고 정말 울분이 납니다만.. 어느조직이나 이세상이치가 약자와 진실되고 순수한자는 교활한 인간들에게 이용당하고 실컷 이용당한후 깨닫게 된후에는 배신감과 허탈감으로 홧병앓다고 죽는 것이지요... 님이나 저나 약자라는것이 죄인것이겟지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글을 보아서는 저와 슷한 연배에 같으신데요. 그동안 증인생활이 인생의 전부 였지만, 이제는 현실을 아셨으니, 좀 어렵겠지만 마음을 다잡으시고 먼저 경제적으로 안정을 하셔야 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지요. 저는 몇년 노력해서 이제는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좀 생겼지요. 제 친구중에 특파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증인이 참조직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아쉽게도 중졸 학력이 전부인데 사회에 나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어쩔수 없어서 특파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힘내세요.
우리 세대라면 100% 공감가는 내용들 입니다. 하고 싶은대로 자유분방하게 살아왔으면서도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영성이나 믿음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럽니다. 삶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저는 어머님이 더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원글님이 망가진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다면 그 조직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요?
저라도 현실적으로는 희망이 없겠지만, 팔이 하나 짤리고, 눈알이 하나 없어진 채로, 사탄의 조직에서 나올 수만 있다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카페에 잘 오셨고요. 아마도 원글님은 증인들을 많이 빼내시는 일을 제일 잘하실 것 같네요.
만약 그런일을 하신다면
저도 돕고 싶네요. 비타가든.
님의 글을 읽어 보니 눈물이 다나오네요. 여증조직이 이렇게 까진 안할줄 알았는데..
여증의 위선적인 모습에 어이가 없습니다. 작성하신분을 한번 만나뵜으면 합니다.
'이익과 영광은 조직에게 피해와 책임은 개인에게' 이게 워타의 실상입니다. 무활동이시라니까 이제부터 조직의 실체나 다른 형제들과의 비교에 일희일비하거나 분노하기보다 오직 자신과 가족의 복지만을 생각하십시요. 그리고 철저하게 이기적이 되십시요. 님은 경우 배우자와 신뢰관계가 홰손되지 않은 것은 큰 자산입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지금 까지 조직에 희생당한 모든 것 보다 더 큰 가치있는 관계입니다. 부부의 신뢰를 바탕으로 일을하면 경제적 자립, 가족의 화목은 시간 문제일 것 같습니다. 부디 잃어버린 것 보다 남아 있는것을 소중하게 확대해 나가십시요. 시간은 님의 편입니다.
보상은 요원합니다. 하지만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일을 하시고 그들의 좀 더 자유로운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시면.....그것이야말로 나쁜 조직에 보복하는 일이고 나의 인생을 대리보상받는 길이 아닐까요
글 쓰신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매우 화가 납니다.. 제 유년시절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글쓰신분이 답글 보실 수 있을련지 모르겠군요 지금은 어찌 지내시는지요?
제 이야기를 보는 듯 합니다. 저도 고등학교 입학애서 4월에 자퇴서 냈다가 다행히 철회하고 대학가서 조직에서 많은 박해 받았지만 보란듯이 좋은 직장 들어가고 돈 많이 벌고 하니까 최연소 장로도 되고..돈 쓰면 뭐든 잘 나가는 조직이 이곳 입니다. 30년이 훌쩍 넘은 저의 유년 시절이 떠 올라서 몇글자 남겨봅니다. 힘내시고 남은 인생 잘 계획하시기 바랍니다.
먹먹합니다
안아주고 싶고 같이 울어보고 싶네요
힘내세요 배우자하고 뜻을 같이해서 다행입니다
주어도 주어도 부족하다는 워타의 탐욕에 빼앗긴 우리들의 청춘
그 아픔에 토닥토닥
님의 과정이 저와 똑같아서
아픕니다
오랜 글인데 오늘에서야 보게되는군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