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8년 고구려가 망한지 30년되던해 대조영은 말갈의 추장 걸사비우와 함께 고구려 부흥운동을 일으킨다. 천문령 계곡에서 이해고의 당군을 격파하고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우니 국호를 대진국 이라고 하였고 연호를 천통이라 하였다. 나라를 세운 대조영은 옛 고구려의 땅을 차지하니 환단고기에는 그가 6천리의 땅을 개척하였다고 하였다. 재위 21년 되던해 세상을 떠나니 시호를 고왕이라 하였다. 이어서 그의 아들 대무예가 왕위에 올랐다.이가 곧 무왕이다. 강력한 군주였다. 그는 대진국을 강성하세 만들기를 원했고 그것은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이어졌다.
그가 영토를 확장하자 동북의 여러 오랑캐들이 두려워하고 그의 신하가 되었다.
- 신당서 발해전 -
서쪽은 거란과 오주목 동쪽 10리에 있는 임황수로 경계를 정하였다.
이해 개마 구다 흑수 여러나라가 모두 신하라 하고 조공을 바쳤다.
- 태백일사 대진국 본기 -
이런 대진국의 확장에 두려움을 느끼던 당은 대진국에게 굴하기를 거부하던 흑수말갈을 이용하여 대진국을 견제코자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무왕의 대응은 단호했다. 그는 당의 이러한 정책에 무력을 동원하기로 한다. 그는 동생 대문예로 하여금 바로 흑수말갈을 공격케 하였다. 그러나 대문예는 이를 반대하였다. 흑수말갈에 대한 공격은 당과의 전면전 이었고 아직 대진국에게는 당을 이길만한 힘이 없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반대는 형 무왕의 분노만을 샀다. 결국 문예는 당으로 망명했고 흑수말갈을 정복한 무왕은 문예의 송환문제를 두고 당과 대립한다. 그러나 당은 문예를 내놓지 않았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무왕은 당과의 일전을 각오한다. 그는 수군장군 장문휴로 하여금 당의 등주를 기습공격케 하였다. 당의 현종은 이러한 대진국의 공격에 분노했다. 그는 신라와 함께 나당연합군을 결성 대진국을 전면공격 했다. 그러나 이공격 에서 나당연합군은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이에 임금이 조서를 내려 보병과 기병 2만을 보내 격파하였다. 때마침 큰 눈이 내려 신라와 당나라 군에 얼어죽는 자가 많았다. 이때를 이용하여 신라와 당나라 군에 얼어 죽는 자가 많았다.
- 태백일사 대진국 본기 -
당의 군사를 격파한 무왕은 육군을 보내 당의 마도산 지역을 공격한다.
이듬해 수비대장 연충린이 말갈과 더불어 요서 대산 남쪽에서 당나라 군사를 크게 이겼다.
- 태백일사 대진국 본기 -
당의 공격을 막아낸 무왕은 지속적인 정복활동을 하였고 이는 대진국이 북방제국이 될수 있도록 하였다. 환단고기에는 이때 대진국의 강역이 구천리에 달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대진국을 넘보던 당의 공격을 막아내고 대진국을 부강하게 했던 무왕 그의 시기를 환단고기는 이렇게 전한다.
천하가 대진국을 해동의 융성하는 나라라 하였다. 심지어 발해사람 셋이 범 하나를 당한다는 말까지 있었다. 이때 임금과 백성이 화락하고 역사를 논하고 의를 즐기고 오곡이 풍년이들고 나라 안이 모두 평안하여 대진육덕을 찬미하는 노래가 있었다.
이듬해 3월 안민현에 감로가 내리자 예간이 하례 드리라고 아뢰어 그 말을 따랐다. 이달 16일에 삼신일체 하느님께 서압록하 위에서 제사를 지냇다. 서압록은 옛 고리국의 땅이다.
- 태백일사 대진국 본기 -
이상은 제가 환단고기 신당서 발해전등을 참고하여 쓴글입니다. 무왕은 제가 발해의 왕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천하를 호령했던 무왕 제 개인적인 생각은 광개토대왕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