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집안에서 빈둥대는 장성한 자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지인들 간의 논쟁이 붙었다.
대충 세 부류로 나뉘었다.
윽박지르거나 쫓아 내서라도 일을 하게 해야한다는 강경파
코로나 등 현 시대적 상황이 좋지 않고, 스스로도 고심이 많을 것이니 기다려줘야 한다는 온건파
힘들겠다 싶어 참고 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하겠고 상관없는 일로 화를 내게 된다. 기죽은 모습을 보면서 후회하는 일이 반복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혼란파
딱히 어느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강하게 밀어 붙인다고 모든 자녀들이 다 정신차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기죽거나 엇나가기도 한다.
마냥 기다려주는 것도 마찬가지, 스스로 알아서 하기도 하지만 켕거루족으로 빌붙을 온상이 될 수도 있다.
강하게 밀어 붙이든, 기다려주는 것이든, 그 둘을 상황에 맞게 오가는 것이든, 혹은 상황파악이 틀려 실수하든, 우리는 부모로서 그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 결국 결정하는 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고자 하는 자녀의 의지이고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자식이 어디 부모 마음대로 되던가? 그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거다. 기대없이 욕심없이 자식에게 맡기는 거다.
나도 사실 이 주제로 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알아서 지 길 잘 찾아가면 좋으련만 나만 해바라기하는 아들이 너무 부담스러운 짐이었다. 치유를 하면서도 늘 마음 한켠에는 아들이 내가 원하는데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조바심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어느 시기 몇개의 자잘하고 사소한 갈등을 겪으면서 아들의 깊은 속내를 엿볼 수 있었는데, 그때 나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아들이 자신의 삶에 절실하고 진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든든함, 맡겨 두어도 되겠다는 믿음이 변화의 기대나 집착을 대신해 채워지기 시작했던 때다.
시간이 지나 또 알게 된 것은 삶을 책임지지 않는 것은 아들이 아니고 나였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내 삶을 책임지지 않으면서 아들에게는 알아서 잘 좀 하라고 (내면적으로)다그치는 어이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성인기내내 내 밥벌이 내가 하고 살아서 그런 줄도 몰랐는데, 사실은 생존의 책임으로 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면서 한편으론 돈벌이 안되는 것을 팔자, 신, 운명 핑계로 덮고, 한편으론 명상한다는 우월감으로 가난의 수치를 덮었다. 내면에선 가난의 수치로 썩고 있었고, 다 알고 있었으나 모른 척 했다. 그래야 내 자존심이 버틸 수 있었으니까.
사실 이 부분은 아들에게도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면 삶의 의미가 뭐냐고..내가 젊었을 적 했던 그 말을 또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말해서 흠칫했다.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육체노동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들에겐 믿고 따를만한 강력한 멘토가 필요한건 사실이다.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 줄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아들도 잘 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아들도 그 생각을 계속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외롭고 고집스럽게 오랫동안 혼자만의 길을 탐색하느라 시간을 다 보낼 수도 있다. 어쩌면 나의 변화가 아들의 어떤 전환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되, 나는 아들의 변화보다 나의 치유와 삶의 변화에 더 집중하고 있다. 내면아이를 엄하고 강하게 훈육할 수 있을 만큼 내 치유가 깊어지고 따뜻해지면, 그때는 나도 아들에게 엄하게 꾸짖고 현실에 발딛을 수 있도록 힘을 줄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그 이전에 나의 내면아이의 모습을 귀신같이 알아서 똑같이 비춰주는 아들이, 치유된 내 내면아이를 귀신같이 감지하고 스스로 변화할 수도 있다. 혹은 나의 변화와 무관하게 자신만의 험난한 영적 여정을 선택할 수도..
밥벌이를 위한 일을 시작할 초반 아들은 마음이 심란했는지 살짝 우울해 했다. 익히 예상했던 일이라 어깨를 툭 치며 가볍게 말했었다.
"각자 자신의 할 일을 합시다."
그 말을 듣고는 표정이 밝아지고 많이 편안해 졌다.
그래 각자 자신의 할 일을 하자. 그 길이 어떤 길인지는 몰라도 분명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