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경멸하고 저주했지만 이해와 용서는 빨리 일어났다. 워킹맘으로 생존에 허덕이며 아이들 방치하고, 형태는 다르지만 가족안에서 절대군주로 군림하는 내 모습이 아버지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깊은 연민이 아버지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간혹 느끼곤 했지만 간혹이 아니라 아주 많은 면에서 아버지와 같은 정체성, 삶의 태도, 행동양식으로 살아왔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똑같은데도, 당신처럼 살지 않을 거라는 저항심과 앙심이 너무 깊어 그런줄도 몰랐다. 안그러고 사는 줄 알았다. 아버지와 똑같다는 인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나서야, 아버지가 측은하고 안타까웠고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는 그렇게 내 안에서 용서가 되고 빛이 났다. 그러고 난후 아버지에게 눈치 안보고 화낼수 있게 되었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불쌍하고 안됐지만 엄마의 삶에 가 닿기는 어려웠다. 어쩌면 나는 포악한 절대군주짓 하는 아버지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자로 사는 엄마를 더 경멸했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여자로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불길한 운명을 예언하는 것 같아서였던것 같다. 그 예언이 닿지 않는 다른 세계로 탈출하기 위해 평생을 도망치며 살아온 것이 내 삶이었는지도. 엄마처럼 수동적이고 나약한 여자들이 그렇게 꼴보기 싫고 속이 천불났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불쌍하면서도 거리감을 느꼈던 것은 그런 분노를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당당하고 멋진 여자를 동경했고 그렇게 살고 싶었던 내게 엄마는 좌절감만 안겨줬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노동운동한다고 가출할 때도, 엄마가 깊은 밤 아스팔트에서 머리를 찧고 쓰러져도 이를 악물고 매몰차게 돌아설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은 내가 남자의 제물이 되어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을 거잖아.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는지 이해 못하잖아. 붙잡지 마. 엄마처럼은 절대 안 살아!
분노가 너무 컷고 믿을 수 없었던 엄마..그런 엄마에게서 나와의 동류의식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일전 아침에 치유명상을 하면서 느닷없이 이 문제에 대한 감정적 통찰이 일어났다. 치유심볼들과 DNA코드들을 활성화하고 있는 중에, 무언가 우울한 기분이 들면서 내면아이치유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사라져 버렸다. 다급하게 소리높여 불러 보아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원래부터 없었던 듯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작정하고 찾아 나섰다. 한참을 찾아 다니다 보니 어느 저수지에 도달했고, 맞은편 뚝방에서 이글루를 지어놓고 나무가지를 모으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내면아이를 떠올릴때면 항상 나타나던 ,수줍고 조용하고 혼자서 사부작사부작 모래로 놀면서 자기만의 즐거움에 빠져있던 그 아이.
뭘하고 있니? 왜 여기 있니? 내가 도와줄까? 이것 저것 물어 보아도 답 없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그래 그럼 조용히 앉아 있을 테니 필요하면 얘기해~ 그러고는 뒤로 물러나 앉았다. 뒤로 물러 앉고 나니 아이를 찾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잃어버렸을때의 놀람과 가슴떨림이 말할 수 없는 감정과 함께 밀려오면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어릴 때 언니 오빠들을 놓쳐버려 길 잃고 시장상가를 배회하던 기억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제서야 아이는 왜 울지?하는 표정으로 일어서더니 내 곁에 서서 물끄러미 쳐다 보았는데, 그 순간 역할이 바뀌더니 나는 엄마가 되고 아이는 내가 되었다. 동시에, 엄마가 된 나는 나이면서도 엄마인채로 엄마의 가슴떨림과 두려움이 깊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뒤이어 한 인간으로서, 한 여자로서 엄마의 삶의 애환과 슬픔이 또한 깊이 스며들듯이 밀려왔다. 그건 마치 내가 엄마의 삶을 살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는 억울함도 고통스러움도 아닌 깊은 슬픔, 깊은 외로움, 깊은 좌절감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내 살아온거를 쓰라면 지구 열두바퀴를 돌고도 모자란다"고 하셨던 엄마의 인생 소회. 그 짧은 말 안에 이렇게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겠구나. 내 분노와 상처에 매몰되어 있었던 나는 엄마의 고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네.
엄마의 슬픔을 깊이 느끼고 나니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엄마역 해주지 않았다 원망스러웠던 어떤이도, 그 외에 더 이상 할 수 없었겠다는 이해와 슬픔, 쓸쓸함이 일어나면서 용서가 되었다.
아이가 된 나는 엄마옆에서 울지 말라고 달래다가 따라 울다가를 하면서 꼭 달라붙어서 자신의 무력함과 무능함에 좌절했다. 엄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었고 엄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엄마가 울지 않고 활짝 웃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아이의 환상일 뿐이었다.
갑작스런 전개를 따라가다가 여기에까지 이르자 아이를 엄마와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시 새로운 보호자가 나타나 엄마의 삶은 엄마에게 맡기라고, 그게 엄마에 대한 존중이고 사랑이고 믿음이라고 설득했다. 한참을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던 아이가 아쉬움의 여운을 남기며 떨어져 나왔다.
잠시 서로 떨어져 울던 엄마와 아이. 어느 순간이 되자 엄마는 스스로의 삶의 책임을 자각한 듯, 뚝방길을 따라 서두름도 없이 느리지도 않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아이는 떠나는 엄마를 보며 훌쩍 훌쩍 복잡한 심경으로, 그러나 떠나보내야 함을 알겠다 결심한 듯 멀어져가는 엄마를 보며 보호자에게 안겨 있었다.
치유명상을 마치고 멍~ 앉아 있었다. 멍~이긴 한데 멍~이라기 보다는 엄마에 대한 과다한 감정정보를 처리하는 시간이었던것 같다. 너무 큰 이슈였는데 치유증상인지 몇 일 간 계속 잠이 쏟아지고 있다. 커피를 마셔도 소용없을 정도로. 눈도 겉으로는 멀쩡한데 운것처럼 계속 퉁퉁 부어 있는 느낌이다. 감정적으로는 아무렇지 않은데 내 몸이 울고 있나 보다.
아버지처럼 엄마도 내안에 똑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 모르지 않았는데 엄마처럼 약자로 희생자로 살까봐 두려워 기를 쓰고 보지 않으려 했다는 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명료하고 깊어져 갔다. 내면아이를 부를때마다 나타난 수줍게, 조용히, 모래놀이를 하며 혼자만의 세계에 살고 있던 그 아이는 나이면서 엄마였고, 엄마이면서 동시에 나였다. 우리는 그렇게 분리되지 않은 채 내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이르고 나니 그제서야 내면아이치유에서 진전되지 않았던 한 가닥이 풀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고 엄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어서, 무슨수를 써서라도 활짝 웃게 하고 싶었던 나. 그러나 결코 엄마를 달랠 수 없었던 무력감에 좌절했던 나.
사람마다 치유의 단계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걸 먼저 봐야했나 보다. 엄마의 고통과 분리되지 않았으면서도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용을 썼던 갈등과 혼란이 먼저 정리되지 않고서는, 한 발도 나아갈 수 없었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한 자리에서 뱅뱅돌기만 했나 보다.
두 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이런 말이 흘러 나왔다.
그래 이제 나는 엄마의 삶의 아픔과 외로움과 슬픔을 진실로 같이 아파할 수 있겠다. 동시에 엄마가 주지 못했던 사랑과 관심, 자신의 고통을 자신도 모르게 내게 푸념하고 화풀이대상으로 삼았을 부당함에 진실로 분노할 수 있겠다. 그 분노가 표면적으로는 당신을 향하겠지만, 그 핵심에서는 엄마같은 엄마를 양산해 내고 아이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세상전체를 향할 수 있겠다. 그건 엄마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잘못된 것이니까.
그래 엄마잘못 아니니까 이제 엄마 눈치 안보고 화내고, 욕하고, 짜증내고 소리칠거야.
이제 진짜 제대로 된 내 내면아이 재양육 할거야.
이제 내 힘으로 설꺼야!
첫댓글 잘 읽었어요
많은 딸들이 공감할 것 같습니다
부모와의 관계 설정에서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자식들이 많지요
대다수가 그렇겠지요
다른 곳에 글을 옮겨도 될까요?
함께 나누고 싶어서요..^^
네~ 옮기셔도 됩니다^^
@앨리스 감사합니다~
@레몬2 공감해 주시고 제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