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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은 어디에 두고서
安居안거, 그 미치도록 달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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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우리는 그러고 있다.
"너 똑바로 않을래?"
"기분 나쁘니, 앞으로 너 우리 집에 발도 들여 놓지마!"
이런 중심없는 불단의 화마가 거슬러 타올라
이 나라의 불교를 어디까지 태울지 모를
어리석음과 상호불통에 안타까운 많은 불심들께
과연 그 대처할 치료치방의 옳은 방편마저도 혼란스러운 요지경을 보면서,
그래도 다행히 젊은 열정의 불심이 단식투쟁에 꺼지지 않고,
회복에 들어간 소식이 여간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에게나 승적 주지 않는다는 승단에서
뜨겁고 장마 폭우 쏟아지는 여름에는 '하안거'로 머무르고
찬바람 불고 눈 내리는 겨울에는 '동안거'로 머무르며
대승적 차원이 아닌 소승적 이기적 자기중심적 방편을 쫒아 머무르는
그야말로 세파의 격랑을 피하여 '안거'하기에만 머무름이었던가?
진정 '안거'는 '안거'를 목적한 '안거'였단 말이던가?
폭압정권에 휘둘려 홀연히 날아든 만남이야
시절인연이라 여겨 승적도 안겨 줬으면
스승된 입장에서 가르침도 있었었 것이거늘
막되먹은 소행머리 따끔히 일침 가할 부처님의 가르침도 무효하단 말인가?
우리 불단은 원로회도 없는가?
그저 마왕 파순 앞에서 흘리는 붓다의 눈물 뿐이란 말인가?
그 종도 앞에서 소수의 맞불로 소리지르기만 할 수 있을 뿐인가?
붓다의 눈물 마냥, 그저 바라만 보고 눈물 밖에 지을 수 없는 것인가?
지금까지 불교원로회가 없었으면 법랍이라도 헤아려 뭉쳐서
승가의 어른 노릇은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싶은 대다수의 불심인 것이다.
원로회로 뭉쳐 표해지는 바른 대중불사는
그대로 1천만, 2천만 대중불자들의 불심에 등불 밝히리니
그 무엇이 무섭고 두려워 옳은 가르침 한 법어 마저도
사려 삼가하고 조심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우리 승가에 어른이 아니 계신 듯 하니
어리석은 승속이 다 제 잘난 단상소행만으로
쟁의의 끝이 날카로워져만 가는,
세간 못지 않은 불성 그러친
볼성 사나운 작태를 보면서
하나 둘, 이곳 저곳 돌아 앉는 불심 마저도
'그 또한 인연이라' 여겨 방치 방관으로 일관하려는가?
그렇게 눌러 앉은 '안거'는 세상사 다 잊게 하고서
혼자만이 득도할 감로수에 흠뻑 빠져들기에
미치도록 달콤하고 매력적인가?
춥지 않은 동안거 바닥에 엉덩이 붙인
중심은 어디에 두고 있는가?
중심은 ㅡ?
감히 불교를 지키고자 하는
한 불심으로 고해 올립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