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인 교수 출판기념회
남궁효
지난 8월 18일(토) 오후 5시 행주산성 부근 이기영 교수 천년초 농장에서 배동인 교수의 출간 기념회가 조촐하게 열렸다. 배 교수님은 블로그 ‘새벽(http://blog.daum.net/dibae4u)’에 올려놨던 글을 모아서 『무종교와 좋은 삶』(전예원)을 펴냈다. 초록교육연대에서는 송윤옥 대표와 정기훈 선생, 김광철 전 대표와 내가 참가했다. 그 외로 배 교수님과 이 교수님의 지인들이 참석하였다.
1부는 이기영 교수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이 교수는 미리 책을 읽은 후에 파워포인트로 일일이 준비하여 원활하게 진행해나갔고, 그에 맞춰서 배교수님은 책의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책은 제1부 종교에 대한 이해, 제2부 좋은 삶, 제3부 세상보기, 제4부 삶에 대한 짧은 시 형식의 성찰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래도 이야기는 무종교에 이르게 된 과정에 집중되었다. 고향 광주에서 중학시절 말 잘하고 씩씩한 동급생에 매혹되어 교회를 나가게 된 이후, 배 교수님은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다음에는 목사님의 추천에 따라 장충동 경동교회를 다녔다. 졸업 후 한국은행을 다니다가 독일로 유학을 갔고, 거기서 박정희 정권의 독재정치에 반대하는 유학생 모임에 나가면서 반독재 의식을 일깨웠고, 귀국 기한이 다다르자 비자연장을 신청했으나 허가되지 않자 정치적 망명을 요청하여 학업을 마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배교수님은 독일유학 중인 1975년 말에 버트란트 러셀의 에세이 『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읽고 광신적 기독인에서 무종교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하나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었다고 한다. 경동교회 집사에서 교회탈퇴 선언을 했고 러셀처럼 불가지론자 또는 무신론자가 되었고 점차 종교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한다.
6시쯤에 저녁을 알리는 이기영 교수 사모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들은 잠시 이야기를 끊고 마당에 차려진 저녁상으로 나갔다. 워낙 솜씨가 좋은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사모님은 손수 담근 각종 나물 장아찌와 김치, 돼지고기, 천년초 떡, 천년초 막걸리 등으로 푸짐한 저녁을 베풀어 주셨다. 다들 그 독특한 맛에 감탄사를 연발하였고,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면서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2부도 이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배 교수님은 좋은 삶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는 좋은 삶이란 자유로운 자율적인 삶이라고 정의했다. 내가 생각한대로 살 수 있는 삶은 어렵다. 관습, 제도, 전통, 학연, 지연 등으로 얽혀진 사회에서 오롯이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삶은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평소에 나의 자율성, 나의 자유에 관해 얼마나 의식하면서 살고 있느냐 라는 문제의식이 나의 인간존재로서의 수준과 질을 판가름한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자율적인 삶을 방해하는 중요한 것이 종교라고 한다. 종교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을 억압하고 종교적 전통의 신념체계를 강요한다. 여러 가지 의례, 규범, 교리를 통하여 납득할만한 정당성이나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채로 믿음을 요구한다. 종교의 힘은 그 역사적 전통이 행사하는 권위에 있다. 배 교수님은 러셀의 영향으로 무종교인이 되었고, 참된 내면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나는 비로소 자유인이 되었다는 의식으로 다시 깨어났을 때의 희열과 해방감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배 교수님의 말씀이 끝나고 다들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대체로 종교에 관심사가 집중했던 바, 종교는 비록 과학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힘을 지닌 것으로 이야기했다. 나 역시 젊어서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가 10여 년 전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심신의 건강과 평안을 위한 걸음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도 고교 시절에 버트란트 러셀의 그 책을 읽었다. 당시 나는 미션 스쿨에 다녔지만 꼭 특정 종교를 믿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저 책을 통해서 종교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더욱이 역사를 전공하면서부터는 인류 종교사의 이면을 많이 보게 되어 서양 제국주의의 첨병 노릇을 한 기독교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나이 50이 되어서 내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종교를 찾았고, 실제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얼마 전 향린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갈수록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기독교의 쇠퇴를 예고한 적이 있다. 사실 유럽에서는 종교기관이 여행객이나 찾아가는 박물관이 되다시피 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우리네도 과학이 발달하고 선진국처럼 사회복지제도가 잘 실시되면 될수록 종교에 의존하지 않아도 편안한 삶을 더 많이 누리게 될 것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종교를 거대한 거짓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모를 종교는 구체적 힘을 아직 지니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의 최고 학부 출신에 독일 유학과 대학교수를 역임하신 배 교수님은 현재 가평의 전원마을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다. 그렇다면 종교는 지성이라든가 경제력이라든가 사회적 지위와는 반비례하고, 결핍이라든가 피억압 상황, 부자유, 빈곤, 갈망 등과 비례하는 관계인지도 모를 일이다.
배동인 교수님의 『무종교와 좋은 삶』(전예원) 출간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리면서 초록교육연대 회원 여러분들께 이러한 논쟁적인 내용의 책의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첫댓글 사진, 글 다 훌륭합니다.
배동인교수님 출판 행사를 아주 꼼꼼 하게 기록을 남겨주신 남궁효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도 그 시기로 되돌아간 듯 실감나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