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래(19·전남수영연맹)는 우승을 확인하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극적인 레이스였다. 17일 오전에 열린 여자 평영 200m 예선을 전체 1위로 통과해 결선에 오르긴 했지만 금메달을 기대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50m를 2위로 지나더니 100m에서 선두로 올라섰다. 정다래는 "100m 턴을 하고나서 보니 제 앞에 아무도 없는 거예요. 우승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마지막 50m가 고비였다.
▲ 태극기를 두르고 시상대에 선 정다래.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경쟁자들이 일제히 스퍼트를 하며 무섭게 쫓아왔다. 정다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역영했고 중국의 쑨예를 0.25초 차이로 따돌리고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중국의 지리펑이 3위(2분25초40), 아시아기록(2분20초72)을 가진 일본의 가네토 리에는 4위(2분25초63)에 머물렀다.
이날 박태환이 남자 자유형 100m에서 우승하고 정다래까지 금메달을 따면서 한국 남녀 수영 선수가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동반 우승을 하는 역사가 새로 쓰였다.
▲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금메달을 깨물어보였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예상치 못한 우승에 감격이 북받친 정다래는 인터뷰에서도 "엄마, 아빠 사랑해요. 평소엔 부모님 말도 잘 안 들었는데…"라고 말하며 펑펑 울었다. 정다래는 '누가 가장 보고 싶으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부모님과 코치님, 그리고 동현이"라고 말했다.
'동현이'는 복싱 청소년 대표 출신인 성동현(한체대)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정다래는 "동현이는 다래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성동현도 인터넷 미니 홈페이지에 '다래야 축하해'라는 글을 띄웠다.
▲ 감격, 기쁨이 어우러진 승자의 웃음은 해맑았다. /연합뉴스
정다래는 여수 구봉초 1학년 때 수영을 시작했다. 동네에 수영장이 없어 1시간 거리인 광양까지 가서 훈련하며 실력을 쌓았다. 베이징올림픽 평영 200m 준결선을 마치고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다. 처음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깜짝 금메달을 따 2012 런던올림픽 입상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됐다.
정다래 이전 모습
2년 전 베이징올림픽 여자 200m 평영 결선 진출에 실패한 후 수영장 줄에 기댄 채 한참을 그렇게 물 속에 머물러 있었다. 낙담한 소녀의 모습은 청순하고도 가련했다. 처음 '수영 얼짱' 정다래(19·전남수영연맹)를 주목하게 된 건 바로 이 한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선수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금메달의 꿈을 품고 광저우에 입성했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보니 '광저우 5대 얼짱'으로 인터넷 검색어 랭킹에 오르고, 개그맨 김경진의 이상형 뉴스로 화제가 됐지만, 선수답게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기대를 모은 16일 평영 50m 결선에서 4위, 아깝게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또 아쉬움 가득한 표정이 흘러나온다.
드디어 해냈다! 엉엉
알고보니 4차원!
"나이에 비해 여리고 잘 흔들려서 훈련 때 좋았던 경기력이 정작 대회에선 잘 발휘되지 않는 편"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한 안종택 코치의 말은 약이 됐던 걸까. 정다래의 몸짓이 달랐다. 여자평영 1인자 정슬기의 그늘에 가려 있던 만년 2인자, 예쁜 얼굴로만 알려져 있던 4차원 소녀는 금메달 신데렐라로 거듭났다.
◇12년만에 아시안게임 여자수영에서 금메달을 따낸 '4차원 수영 얼짱 '정다래가 태극기로 몸을 감싼 채 눈물을 훔치고 있다. 시상식 내내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여자평영 200m 금메달리스트 정다래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한 복싱 선수 성동현
수상 소감에서 코치님, 고속버스를 운전하며 지극 정성 뒷바라지해준 아빠를 찾다 말고 뜬금없이 성동현 복싱대표팀 상비군의 이름을 불렀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요"라는 달랑 한 줄 설명과 함께다. 그녀가 좋아한다는 그 남자는 2009년 전국체전 고등부 밴텀급에서 우승한 성동현(19·한체대)이다.
성동현에게 정다래와의 관계를 물었더니 "친한 친구"라고 했다. 전남 출신, 동갑내기, 만개하지 못한 꽃봉오리같은 선수라는 공통점은 단단한 우정으로 묶였다. 청춘에겐 더더욱 잔인한 승부의 세계에서 함께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태릉선수촌에서 1년간 웃음과 눈물을 나누며 절친이 됐다. 같이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가는 '친구'다. 성동현에게 정다래의 진짜 성격을 물었더니 1초만에 돌아오는 답은 역시 '4차원'이다. "4차원이고요. 정말 착해요. 마음이 여려서 작은 말에도 상처 잘 받고 그래요"한다. 4차원이어도 좋다.
눈물의 메달로 대한민국을 활짝 웃게 한 얼짱 소녀는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을 훌쩍 뛰어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