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군 직할 포병대대에 군의관으로 있을 때 얘기다.
3개 포대(= 보병의 중대에 해당)에서 각각 토끼를 백여마리씩 키우는 부업(?)을 하고 있어, 대대 전체에 사오백마리 토끼가 있었다.
어느 날 토끼 몇마리가 감기증상을 보이는데, 경험 있는 고참 이야기로는 일단 감기든 토끼와, 또 같은 우리에 살던 토끼는 모두 빨리 죽여버려야 한다고 했다.
근데, 일이주 후 포병사령부에서 검열을 나온다고 하고, 그 포병사령부 군수참모가 토끼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검열기간 중 토끼 수를 늘여 놓아야지 줄었으면 야단 맞을 거라고 한다.
토끼사육병이 의무실 위생병에게 의논을 했고, 위생병은 의무실 창고에 오래 된, 즉 유효기간 지난 페니실린이 두어상자(= 합이 약 삼백병 정도) 있다고 했고, 다음 날부터 감기 든 토끼들에게 주사를 놔 주기 시작했다.
약대 출신인 위생병은 그날부터 부대 장병들 왕창에게 페니실린 주사 “가라”처방을 열심히 발급했고…
사람 1인 맞을 양으로 토끼 서른마리 정도 주사할 수 있었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자 1개 포대 토끼 백여마리가 전부 감기에 걸려 콧물 & 기침을 보였고, 또 일주일이 지나자 대대 전체 토끼 수백마리가 병에 걸렸으나, 이 눔들이 빨리 죽진 않고 검열관이 다녀갈 때까진 숫자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검열반이 다녀 간 후 대대장은 사육병을 칭찬하면서 포대장에게 포상휴가를 보내줘라고 했다.
사육병이 휴가를 끝내고 귀대하기 며칠 전부터 토끼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더니, 한 보름 후 온 대대 토끼 수백마리가 모두 폐사해 버렸다.
인근에 있던 다른 포병대대 토끼들은, 처음 감기가 돌기 시작하자 증상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놈들 모두 죽여버렸고, 그 후 남아 있던 몇십마리가 다시 수백마리로 번식을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