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12(월)■
(에스겔 16장)
59 나 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60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61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62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게 하리니
63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묵상/겔 16:59-63)
◆ 깨어진 언약
"나 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59)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서 모세에 이르러 완성된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무조건적이며 깨질 수 없는 언약이다. 그런데 모세를 통해서 한 율법 언약은 조건부 언약이다. 잘 지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한량없는 복을 받지만, 제대로 못 지키면 언약은 깨지고 무서운 저주가 임하게 된다(출 19:5, 6, 신 28:1-68))
그런데 이스라엘이 언약을 깼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완전히 깨고 철저하게 반역했다. 하나님은 어떻게 행하셔야 하는가?
언약 백성이 언약을 깨면 계약 내용대로 모든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율법은 언약을 깬 자들에 대해 가차 없이 저주를 선포한다.
율법의 축복과 저주가 수록된 신명기 28장을 보면 축복은 1절부터 14절까지, 저주는 15절부터 68절까지다. 저주의 내용이 축복보다 무려 4배가 많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저주를 더 상세하게 수록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을 연구해보니까 그 저주의 내용이 바로 미래에 닥칠 이스라엘 역사였다.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이스라엘 역사와 일치하는지…. 그러니 그렇게 내용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율법은 인간이 철저한 죄인임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냈다.
◆ 영원한 언약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60)
이스라엘 백성이 어렸을 때 세운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너로 복 주고 복 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 6:14)고 하신 언약이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깨질 수 없는 맹세 언약이다(히 6:16-18). 이것은 율법처럼 행위 언약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언약이며 은혜의 언약이다(롬 4:1-3). 아브라함과 하신 이 언약은 복음과 맥을 같이 한다(갈 3:14-18).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기억하시고 성취하신다. 이 언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워지고 전파된다.
만일 우리가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으로 이어본다면 그 사이에 모세가 있고 율법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중간에 율법 언약을 두셨는가? 율법 언약은 왜 중간에 가입이 되었는가?
이것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다시 말해서 율법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임시로 더해진 언약이다. 율법은 인간이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에게는 구주가 필요함을 깨우치시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언약은 율법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맺어지는 것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율법적인 삶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새 언약 백성으로 살아남는 방법이다.
◆ 새로운 약속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61)
여기서 형은 북이스라엘을 말하고 아우는 소돔을 말한다(겔 16:46).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남유다의 형과 아우로 칭하셨다가, 이제는 딸이라고 말씀하신다. 형제지간을 넘어서서 부녀지간이 되는 이 놀라운 일을 말씀하셨다. 이 예언 당시에 북이스라엘(사마리아)은 이미 130년 전에 흩어져버렸고, 소돔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완전히 멸망하여서 흔적만 남았다. 이제 사마리아에는 이민족과 혼합 인종이 살고 있고 소돔 땅은 황폐하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마치 이들이 회복되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이것은 비유적인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씀은 미래에 신약에서 이루어지는 영원한 언약이 어떤 언약인가를 암시한다. 오늘 본문의 소돔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멸시했던 이방인들을 대표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성령이 임하면 복음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를 것임을 말씀하셨다(행 1:8)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은혜의 언약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 즉 그들이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이나 저주의 상징으로 여겨진 소돔인 같은 자에게까지 미치는 언약이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연장선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다.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61)
하나님 나라는 혈통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비록 유대인이 처음에 가입되어서 원주민처럼 되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나라가 곧 이스라엘은 아니다. 유대인 중에서 믿지 않은 자들은 모두 떨어져 나가고, 믿는 이방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영적 이스라엘, 제2의 이스라엘 등과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 된다. 그것은 마치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제2의 이스마엘이니, 영적 이스마엘이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색하다.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63)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고, 교만하며 자신이 대단한 것처럼 여겼던 자가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게 되면 그는 놀라고 부끄러워서 입을 열 수 없게 된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동일하다. 복음의 목적 중 하나가 자랑치 못하게 하심이다(엡 2:8,9). 남을 비판하기를 거침없이 하거나 즐기고 있다면 그는 아직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용서받았는지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주님, 소돔의 백성과 같은 저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 겸손한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