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7(화)■
(에스겔 42장)
1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쪽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 뜰을 향하였고 다른 하나는 북쪽 건물을 향하였는데
2 그 방들의 자리의 길이는 백 척이요 너비는 쉰 척이며 그 문은 북쪽을 향하였고
3 그 방 삼층에 회랑들이 있는데 한 방의 회랑은 스무 척 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다른 한 방의 회랑은 바깥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
4 그 두 방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너비는 열 척이요 길이는 백 척이며 그 문들은 북쪽을 향하였으며
5 그 위층의 방은 가장 좁으니 이는 회랑들로 말미암아 아래층과 가운데 층보다 위층이 더 줄어짐이라
6 그 방은 삼층인데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위층이 아래층과 가운데 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
7 그 한 방의 바깥 담 곧 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길이는 쉰 척이니
8 바깥뜰로 향한 방의 길이는 쉰 척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백 척이며
9 이 방들 아래에 동쪽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으니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더라
10 남쪽 골방 뜰 맞은쪽과 남쪽 건물 맞은쪽에도 방 둘이 있는데
11 그 두 방 사이에 길이 있고 그 방들의 모양은 북쪽 방 같고 그 길이와 너비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
12 이 남쪽 방에 출입하는 문이 있는데 담 동쪽 길 어귀에 있더라
13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에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
14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15 그가 안에 있는 성전 측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쪽을 향한 문의 길로 나가서 사방 담을 측량하는데
16 그가 측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17 그 장대로 북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18 그 장대로 남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19 서쪽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측량하니 오백 척이라
20 그가 이같이 그 사방을 측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길이가 오백 척이며 너비가 오백 척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묵상/ 겔 42:1-20)
◆ 성전의 제사장 방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쪽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 뜰을 향하였고 다른 하나는 북쪽 건물을 향하였는데"(1)
오늘 본문은 에스겔이 본 성전 환상에서 제사장의 방을 묘사하고 있다.
성전의 평면도는 두 종류가 있다. 아래 그림을 참고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나는 두 평면도 중에 첫 번째가 더 본문에 부합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방의 길이가 백 척에, 두 개라는 표현과 그 방 사이에 통하는 길이 백 척이라고 했기 때문이다(4).
첫 번째 평면도는 지금까지의 에스겔 성전 상상도 중에서 비교적 최근인 1980년도의 The ArtScroll Tanach Series를 한글화한 것이라고 한다.
제사장의 방은 북쪽에 두 개, 남쪽에 두 개 총 네 개가 있다.
각 방들은 삼층으로 되어있는데, 바깥에서 보면 계단식이다. 줄어든 만큼 앞에 아래층과 넓이의 차이만큼 베란다가 생긴다. 제사장 방은 그렇게 지어질 것이다.
제사장 방은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바친 지성물들을 먹는 곳이며,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곳이고, 제사장들이 바깥 뜰로 나가기 전에 옷을 갈아입는 곳이다.
◆ 성 속의 구별
"그가 이같이 그 사방을 측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길이가 오백 척이며 너비가 오백 척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20)
성전 뜰까지 합친 전체의 모양은 정사각형이며, 각 길이는 500척(약 265m)이다. 이것은 담의 두께(3m)를 뺀 측량 값이다.
두께가 무려 3m, 높이도 3m가 넘는 두꺼운 담은 거룩한 것(성-聖)과 속된 것(속-俗)을 구별하는 담이다. 이것을 통해서 성과 속의 경계선이 필요함을 말씀하신다. 성과 속을 NIV는 이렇게 번역했다. the holy와 the common. 이것이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
오늘날 성과 속을 잘못 구분하는 것도 문제지만 성과 속을 구별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아니, 요즘의 많은 성도와 교회들이 성과 속의 구별이 아예 없어졌다. 교회에서도 세상 잡담이나 하고 있고, 찬양도 자신이 즐기기 위해서 부르는 것이며, 하나님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늘 사랑하시는 아버지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으로만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설교에만 사람들이 몰리며 열광한다.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서 가장 부족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다.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속에 찌들어 살면서도 헛된 구원의 확신 속에서 천국을 꿈꾸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워야 한다.
그 첫 단추가 성과 속을 구별하는 것이다.
그래야 세속에 물들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께 우리는 자녀이면서 동시에 종이고, 친구이면서 연인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면서 동시에 일꾼이다.
이 복합적인 신분을 망각하고 오로지 자기 편한 신분만을 주장하는 것은 편협된 사상이다.
처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오히려 성과 속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공경을 바치려고 한다.
그런데 오래 믿었다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엉망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신앙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면 알수록 더욱 경외가 되는 분이며, 더욱 존경이 되는 분이시다.
성과 속을 구별하는 것에서 실패하면 그의 신앙은 취미생활에 불과할 뿐이다. 아니 하나님을 거스르는 삶이 될 것이다.
주님, 제가 주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성과 속을 제대로 구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