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4(월)■
(골로새서 3장)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묵상/골 3:12-14)
◆ 신분의 확신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구원의 확신이란 말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신분의 확신이란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분의 확신이야말로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데 절대적이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면서 자신들이 구원받았음을 알았다. 그런데 이들이 끝내 확신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사랑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의 확신이다.
그들은 출애굽 한지 2년 만에 가나안에 도착해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다. 그런데 40일간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오자 그 중에 무려 10명이나 비관적인 보고서를 내밀었다. 가나안 족속이 자신들보다 신체조건이 월등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중략)….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3)
그러자 백성들은 모두 통곡하며 울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탄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민 14:3)
자기들을 메뚜기로 인식하고, 하나님이 자기 같은 자들을 사랑하실 리가 없다고 믿는 이 지독한 열등감...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너무나 만연된 영적 질병이다.
이 질병이 백성 중에 팬데믹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보고 정탐꾼 중에 오직 두 명이 옷을 찢으며 말했다.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민 14:9)
이 두 명만이 자신들이 어떤 신분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자들만이 가나안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 이들이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두 명의 말보다는 열 명의 말을 더 따랐다.
결국 백성들은 가나안을 차지할 자격을 상실하고 정탐꾼이 가나안을 탐지한 40일을 40년으로 환산해서 광야에서 나머지 38년을 헤매다가 모두 죽었다(민 14:34).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끈 그 다음 세대는 가나안 앞에서 열등감과 피해 의식에 싸여서 통곡하며 울던 세대와 달랐다. 이들의 신체조건은 38년 전의 그들의 아비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단 하나 확실히 달라진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분의 확신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강력한 군사임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겨우 믿음 하나 차이일 뿐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 믿음이 얼마나 엄청난 기적을 이루었는지...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신분을 일깨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그렇다. 우리는 택함 받은 자이고 거룩한 자이며 사랑 받는 자다.
이 신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고자 하며, 그러한 삶이 이루어질 것이다.
세상 사람들조차 자기 신분에 걸맞게 살려고 애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신분에 맞게 살기를 요구한다.
하물며 성령께서 오셔서 그 안에 좌정하신 성도들이야말로 신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성령께서 당신 안에 계신 것을 왜 믿지 않는가?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 신분을 불신하게 한다.
아담과 하와 이래로 마귀의 말은 하나님 말씀보다 더 그럴싸했다. 마귀는 선수다. 그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릴지 잘 안다.
내 주변 환경이나 나의 몰골은 마귀의 말이 더 맞음을 증명하는 듯 하다.
그러나 지금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할 때다. 마귀를 대적하며 나는 메뚜기가 아님을 선포해야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주변 환경이나 신체조건을 보지 말고 광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마귀는 내 믿음이 망상이라고 우기며, 이 말씀은 너와 관계가 없다고 속삭이지만, 아니다. 나는 이 말씀을 믿는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침노하는 자는 빼앗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마 11:12). 믿음으로 침노하자. 그리고 믿는 자에게 그 믿음대로 되라는 주님의 은총도 함께 하신다(마 9:29).
◆ 신분에 걸맞는 삶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우리가 정확하게 신분을 인식했을 때,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 이미 방향이 결정되었다.
우리는 겨우 차 하나가 끼어들었다고 고래 고래 소리치는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 이 모든 것 하나 하나가 얼마나 귀한 덕목인가?
이것이 우리 신분에 걸맞는 덕목임을 왜 모르는가?
◆ 용납과 용서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내가 교직에 처음 나갔을 때, 수능 시험장에 책상 수험번호를 잘못 붙이는 큰 실수를 했다. 그것을 당일 수능 시험 치는 중에서야 발견하고는 학교가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교감이 와서 내게 인상을 쓰고 화를 내었다. 그런데 막상 교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뭘"
이런 용납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발견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불만있는 사람이 천지다.
자기도 잘난 것이 없으면서 남탓하고 불만을 터뜨리는 세대다.
아내와 남편도 서로 불만을 가지고 있고, 부하 직원이나 상사도 모두 못마땅하다. 교회 형제들도 단점 투성이며, 지적할 것 투성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도 그렇게 불만스러운 존재다.
오늘 말씀에서 불만이 있거든 미워하거나 지적하지 말고, 용납하고 용서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세상사람들과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풍습을 따르고 전통과 분위기에서 배우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배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용서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운 자들이다.
주님, 제게서 이것이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고 이 모든 덕목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다.
이 말씀은 사랑을 양념처럼 넣으라는 말씀이 아니다.
사랑이 있어야 비로소 이 덕목들이 제대로 발휘되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을 뒷받침한다.
사랑이 없는 행위는 그냥 율법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의지로 제법 흉내낼 수 있지만 곧 메마른다.
사랑은 누구로부터 오는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에게서 배워야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 이 배움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아갈 때 얻을 수 있다. 기도 외에는 이런 능력이 나갈 수 없다 (막 9:29).
우리의 성화는 주님을 믿는 믿음, 딱 그만큼만 이루어진다. 그래서 오늘도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고 그를 붙잡아야 하는 것이다.
주님,
저는 주님의 사람입니다.
저는 주님의 사랑을 받는 거룩한 자입니다.
이 신분의 확신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이 신분에 맞는 삶이 이루어지도록 해주십시오.
주님께 배운 용납과 용서가 제 삶에서 실천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