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9(토)■
(골로새서 4장)
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묵상/골 4:1)
◆ 상전들아
(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은 말단이기 때문에 이 구절이 자기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성인이 되면 좋든 싫든 자기 수하에 사람이 생긴다. 조그마한 가게를 해도 직원이 생기고, 회사에 근무하면 밑에 부하 직원이 생긴다.
군대에 가면 평생 졸병이었을 것 같았어도 몇 개월만 지나면 자기 밑에 신참이 들어오고 조수가 생긴다.
따라서 이 명령과 관계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릇 권력이 생기고, 수하에 사람이 많아지면 교만해지기 쉽다. 그렇게 겸손하고 사람을 잘 섬겼던 사람이 큰 집단의 수장이 되자 건방지고 안하무인이 되는 것을 종종 보았다. 그들을 자신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우리 위에 진짜 상전이 계시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겸손하고, 사람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어야 한다.
먼저, 의를 베풀라고 했다.
사장이라면 고용한 사람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어야 한다. 임금을 미루거나 삭감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생활비를 못 챙겨도 근무하는 직원의 임금은 챙겨주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의다.
학교의 교사는 자기가 맡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대하며,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 살피고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쓰지 말고 국민을 잘 다스리며, 돌아보는 데 써야 한다. 이것이 의를 베푸는 것이다.
의사나 간호사들은 신참을 괴롭히는 것이 전통처럼 되어 있다.
의사들이 인턴에게 욕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나, 간호사들이 소위 '태움'이라는 것으로 신참을 괴롭히는 것은 전통처럼 되었다. 괴롭힘을 못 이겨서 직장을 그만두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데도 이런 것이 고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런 전통을 거절해야 한다. 우리는 신참에게 신경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인내로 가르치고 친절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상전이 베푸는 의다.
또한 공평을 베풀라고 했다.
공평은 '이소테스'라는 말로 동일하게 대하라는 말이다.
사람에 따라 원칙이 바뀌면 안 된다. 누구에게는 별것도 아닌 것으로 야단치고, 누구는 많이 잘못해도 너그럽게 받아주는 식이 되면 안 된다. 직장이나 학교에나 미운털 박힌 사람들이 한두 명씩 있다. 그러나 차별대우하면 안 된다. 아랫 사람을 억울하게 하면 안 된다. 똑같이 대하는 것이 상전의 의무다.
많은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이유는 상사가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상사가 일을 골고루 배분하지 않고 미워하는 사람에게 훨씬 더 많이 담당케 한다면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어떤 교사는 아이들에게 나름대로 잘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에게 아무 관심이 없는 교사보다 평가 점수가 낮았다. 그는 무척 당혹했지만, 곧 이유를 알게 되었다. 차별대우했다는 것이다. 그가 한 잘못이란 누구를 특별히 못살게 군 것이 아니라 어떤 학생들에게 특별히 더 친절하게 대한 것뿐이다. 아이들은 차별대우하는 교사보다는 차라리 모든 학생들을 똑같이 무심하게 대한 교사를 더 좋아한다. 차별은 아이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준다. '공평'이라는 단어를 항상 머리에 새기고 사람을 대해야 한다.
공평이란 질투와 시기로 똘똘 뭉친 인간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서울에서 제자 양육을 받고 잘 훈련된 자매가 직장 때문에 지방에 내려왔다. 그 자매가 시골 교회에 등록하자 목사는 무척 기뻐했다. 그 자매에게 이것저것을 맡겼다. 자매가 척척 잘 해내자 교회가 잘 돌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얼마 후 여집사들이 들고일어났다. 심지어 일부 여집사는 눈물까지 흘렸다. 목사님이 그 자매만을 귀중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시기와 질투다.
이것은 여집사들이 야단맞을 일인가, 목사가 야단맞을 일인가? 시기와 질투는 잘못되었지만, 리더도 매우 잘못한 것이다. 무릇 상전이란 '공평'이란 덕목이 필수다.
나도 리더로서 공평해야 하는 의무를 마음에 새기지 않는 바람에 동역자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이란 공개석상에서 새로 나타난 일꾼을 추어올린 것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동안 늘 칭찬의 중심에 있었던 그에게 상처를 주었나 보다. 그는 말없이 팀을 떠났다.
물론 구별과 차별은 다르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열두 명을 구별하셨고, 그 열둘 중에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구별하셨다. 그리고 셋 중에서 베드로를 구별하셨다. 그렇게 구별하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의 승천 이후 제자들은 크게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제자를 공평하게 대하셨다. 심지어 가룟 유다까지도 발을 씻기셨다. 모든 제자는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을 체험했다. 그러나 방금 칭찬받은 베드로라 할지라도 잘못하자 가차 없이 야단치셨다(마 16:23).
오늘 본문의 말씀을 마음에 잘 새기자.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