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2월6일(월)■
(누가복음 20장)
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5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7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묵상/눅 20:1-8)
◆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2)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나사렛 예수라는 청년이 기가 막혔다.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쫓아내는 등 성전 정결 작업을 하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 도대체 이 사람의 권위는 어디로 부터 왔는가?
이들은 단 한 번도 나사렛 예수를 율법사나 서기관 등으로 임명한 적이 없다. 도대체 누구로부터 권위를 받은 것인가? 그러나 주님의 권위는 인간들 집단에서 받은 권위가 아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종교 시스템은 이렇게 당연한 것을 오히려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게 했다.
이들은 거대한 종교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자신들이 그 속에서 권력을 즐기고 있었다. 이 시스템 속에서 자기들이 권위를 임명하고, 멋대로 자격증을 주었다. 자기들이 인정하지 않는 자는 어떤 권위도 용납하지 않았다. 이들은 단지 자기들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정죄하고(행 24:5, 14), 심지어 바알세불에게 속한 자라고 몰아붙이기까지 했다(눅 11:15).
언제부터 하나님 나라의 선지자가 사람들 집단에서 면허증을 발급받았는가?
도대체 이런 자격증, 면허증 시스템은 누가 만든 것인가?
남북 이스라엘 시대에 일어난 한 예를 살펴보자.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졌을 때, 북쪽 왕 여로보암은 자기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레위 지파의 제사장 직분을 빼앗고, 자기 멋대로 제사장을 임명했다(대하 11:14-15). 본래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만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성경은 명확하게 명기했지만, 북쪽 왕은 그것을 무시했다.
그런데 백성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자신들도 제사장이 될 기회가 열린 셈이었다. 제사장 직분은 신분 상승과 생활을 동시에 해결하는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에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끌고 와서 뇌물을 바치면 제사장이 될 수도 있었다고 한다(대하 13:9).
이런 시스템이 세월이 지나면서 익숙해지면 후에는 진짜 제사장은 오히려 제사를 드릴 수 없고, 종교 집단에서 자격증을 받은 자만이 제사를 드리는 것이 정상이 된다. 사람들은 여기에 익숙해지고, 이들이 세운 종교적 논리에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는다.
종교 시스템의 위험한 점은 자신들을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고 권위를 갖는다는 점이다. 언뜻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시스템의 수장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여로보암 왕이 멋대로 제사장을 임명하는 순간, 그는 하나님 자리에 앉은 것이다. 카톨릭의 그러한 점을 반대한 개신교가 오늘날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 그나마 카톨릭은 공인된 하나의 체제로 질서를 잡지만, 개신교는 누구나 교파를 만들 수 있는 체제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 장로교만 해도 교파가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만일 사설 기관을 누구나 만들 수 있고, 거기에서 자격증을 남발한다면 과연 그 자격증이 권위를 가질 수 있을까? 만일 의사 면허증을 아무 사설 기관에서나 발급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세상에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자격증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다르다. 유진피터슨이 말했듯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는 전문가가 있지만, 교회만큼은 전문가가 없다. 하나님 나라는 세속 국가와 다름을 잊지 말라. 세속 국가를 모방하여 만드는 순간부터 교회는 세속화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권위가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음을 강조했다(갈 1:1).
나는 중국선교에 관심이 많다.
20년 전에 중국을 갔을 때, 국가에서 공인하는 삼자교회를 제외한 모든 가정교회는 훌륭한 영적 리더들이 이끌어가고 있었다. 이들의 권위는 학교 졸업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들 중에는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고, 성령의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들의 뜨거운 열정에 무척 감동하였고, 이들은 진정한 주의 종이란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게 했다.
이들의 영적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그 증거는 은사와 열매들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교회가 그들을 인정하고 세웠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엡 4:12).
오, 신학교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신학교를 나오거나 안수받은 것이 권위를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를 장로로 세움으로써 권위를 가지게 된다. 종교개혁자 칼빈에 의하면 목사는 장로 중에 하나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오늘날 중국교회는 변해도 너무나 많이 변했다. 영적 지도자들은 거의 사라지고, 소위 목사 자격증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지도자 위치에 앉아서 교인들에게 맹종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도저히 지도자가 되면 안 될 사람이 단지 자격증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교인들 위에 군림하고, 엉터리 가르침으로 종교적 학대를 하지만, 교인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부흥은 사라지고 차가운 율법주의 바람만 불고 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권위를 세속기관에서 부여할 수 없다. 신학교는 교육기관으로 필요할 수 있지만, 교회를 대체할 수는 없다. 신학교가 함부로 자격을 부여하면 안 된다. 권위는 오로지 하나님에게서 와야 한다. 이것을 너무나 추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니다. 은사와 열매는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교회는 그러한 자를 발굴하여 세움으로써 그의 사역을 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그러한 곳이다.
◆ 정직한 태도
(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행하는지를 묻는 자들에게 세례 요한을 예로 드신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반문이었다.
당시에 세례 요한은 백성들에게 공인된 선지자였다. 누구도 거기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은 세례 요한을 따르지 않았다. 자기들이 쌓은 종교 권력을 포기할 순 없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 대해 되묻는 질문에 잘못 대답했다가는 낭패당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는 알지 못하노라'(7)라고 대답했다. 정말로 비겁한 대답이고, 진리를 거절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다. 주님, 제가 이런 삶을 살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가 망신당할 것인가, 진리를 거절할 것인가?
이런 선택의 갈림길에서 진리를 거절하느니 차라리 자신이 망신당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그리스도인이고,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다.
나는 40년 이상 사역하면서 수많은 사역자가 자신의 자존심과 이익과 감정 때문에 진리를 외면하는 것을 무수히 보았다. 나도 그렇게 행동한 적이 있다. 정말로 부끄럽다. 특히 늙어가면서 고집이 더 세지고, 자존심만 늘기 쉬운데,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다윗. 시 12:1)
주님, 제가 진실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