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9(화)■
(욥기 4장)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싫증을 내겠느냐,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3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4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5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
6 네 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 네 소망이 네 온전한 길이 아니냐
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8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9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10 사자의 우는 소리와 젊은 사자의 소리가 그치고 어린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11 사자는 사냥한 것이 없어 죽어 가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12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13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14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15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16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18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20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21 장막 줄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은 지혜가 없이 죽느니라
(묵상/욥 4:1-21)
◆ 욥의 친구들
욥기에 등장하는 친구가 모두 네 명인데 처음에 세 명이 왔고, 나중에 한 명이 왔다. 이들의 말들을 분석하면 당대에 인정받을만한 지식인이라고 할 만큼 조리 있고 탁월했다. 매우 합리적이고 오늘날의 우리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도 꽤 많다.
그런데 이들 세 명은 모두 하나님께 진노를 샀다. 그 이유는 이들의 조언이 올바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욥 42:7). 거의 흠이 없어 보이고 심지어 탁월해 보이는 이들의 이론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 엘리바스의 조언
(5)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
3절의 '손이 늘어진 자', '무릎이 약한 자'란 낙심해서 맥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욥은 과거에 그런 자를 보면 격려하며 강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제 완전히 입장이 바뀌었다. 그렇다. 지금 욥에게는 과거 욥이 했던 일을 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 탁월한 상담사가 타인에게 상담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된 셈이다.
엘리바스는 상담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엘리바스는 욥의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모두 욥의 죄에서 비롯되었다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7)
'생각하여 보라'
이 말은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임을 의미한다.
아무 이유 없이 망할 수가 있는가?
그럴 수가 없다. 분명히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너에게 있다.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너무나 맞는 말 같다.
심지어 불교에서는 그 사람의 죄가 발견되지 않으면 그의 전생까지 들먹이며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참 편한 적용이다. 이렇게 하면 억울할 일이 없다. 자기가 죄를 지어서 당하는 것인데 억울할 것이 무언가? 전생 이론은 참으로 심리적으로 탁월한 이론이다. 문제는 그것이 엉터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두 세명에게 적용되는 원리를 일반화하여 수천, 수만 명에게 적용하기를 좋아한다.
엘리바스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단순한 이론가만도 아니다. 자신이 나름대로 영적 체험을 한 사실도 말한다. 어떤 영이 자신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고 했다.
엘리바스에게 나타난 영이 하나님의 영인지 사단의 영인지 여기서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영이 말한 내용은 너무나 완벽한 진리의 말씀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거기에 영적 체험까지 들먹이며 조언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반박하겠는가?
많은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자신의 영적 체험과 지식을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함부로 적용하는 것이다.
엘리바스의 말은 옳지만,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으며, 돌조차도 버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는 법이다(전 3:1-8).
아무리 올바른 말일지라도 때에 맞지 않게 적용하는 순간 그것은 넘어지게 하는 것이며, 왜곡된 길로 이끄는 것이 된다. 엘리바스의 말은 매우 옳지만 욥에게 적용할 말씀은 아니다.
위로받아야 할 때 책망하는 성경 구절을 전하거나, 책망받아야 할 때 위로의 성경 말씀을 건네는 것이 모두 그런 경우다. 나름대로는 성경 말씀을 전했지만, 결과는 그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성경 말씀을 건네며 유혹한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경우에 맞는 말, 때에 맞는 조언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집을 지으려면 망치도 필요하고 대패도 필요하다. 모든 것을 망치로 해결하겠다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주님,
제게 지혜를 주셔서 때에 맞는 말,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도록 해주십시오. 함부로 내 지식, 내 경험을 남발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