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1월7일(금)■
(로마서 6장)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묵상/롬 6:19-23)
◆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오늘 본문에서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라는 의미는 아직 믿음의 비밀과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초신자를 가리킴이다(히 5:12).
믿음의 비밀은 머리만 좋으면 알 수 있는 지적인 영역이 아니라 상당부분이 체험해야 알 수 있는 영역이다. 아이큐가 200이 넘는 아이가 수학에서는 뛰어난 소질을 보이지만 인간의 감정 부분은 무지한 이유와 비슷하다.
바울의 말은 종종 이해하기가 어렵다.
베드로조차도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중에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라고 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와 믿음의 신비를 말해주지만, 놀랍게도 해석은 천차만별이다. 대부분 지식으로 도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들을 위해 간단한 처방을 내린다.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19)
지금까지 율법과 복음을 열심히 설명하다가 모두가 무슨 소리인가 이해를 못 하고 멍하니 있으니까, 갑자기 책을 덮으면서 아무튼 힘써 선을 행하고, 의롭게 살아가시면 된다고 말하는 꼴이다.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이렇게 너무나 당연하면서 간단한 결론을 왜 그토록 열심히, 그리고 난해하게 설명했는가?
이렇게 되면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의롭게 되려는 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대부분의 아이는 수학 공식이 나오는 과정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증명하는 과정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풀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공식이 나오게 된 증명을 잘 이해한 학생들은 대단한 응용력을 가지고, 더 높은 수준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
우리는 바울이 전한 십자가의 도를 잘 배울 필요가 있다.
이해가 잘 안 되어도, 열심히 배워라.
처음에는 이론과 실제가 잘 맞지 않는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배우고 행하다 보면 마침내 믿음의 비밀과 십자가의 도를 조금씩 깨달아지면서 바울이 얼마나 놀라운 진리를 우리에게 말해주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 죄의 삯과 하나님의 은사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의 값은 헌금이나, 봉사나, 선행으로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생명으로만 갚을 수 있다.
'죄의 삯'에 대비되는 말은 '의의 삯'이다.
그런데 바울은 의의 삯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사라는 말로 대비시킨다.
은사란 '임금이 백성에게 내리는 선물'이란 뜻이다.
왜 의의 삯이라고 하지 않고 '은사'라는 말을 사용했는가?
이것이 율법과 대비되는 복음의 핵심이다.
우리가 얻은 영생은 내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다.
내 의의 삯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다.
죄의 삯에 대비되는 말로서 하나님의 은사라는 말씀이 얼마나 감사한가!
영생이 우리의 의의 삯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사라면 우리는 영생을 확신해도 된다. 하나님의 은사는 모자람이 없으니까!
22절에서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라는 말에 의해서 성도는 아직 영생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 앞 구절을 보면 이해가 된다. 그 앞 구절에서 죄의 종으로 사는 삶의 마지막이 사망이라고 했다. 구원받지 못한 자는 이미 영적으로 죽은 자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지옥이다. 거기에 대비해서 구원받은 자는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다.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는 말씀은 영원한 천국을 의미한다.
영생은 미래에 새롭게 얻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얻은 영생이 미래에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요 5:24, 17:3).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하시고 의의 종이 되게 하셔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자다.
앉은뱅이였던 나에게 일어나라고 하신다.
내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믿고 순종하여, 일어나서 걷고 뛰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뛰어다니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하나님의 은사다.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그리고 믿음은 이 모든 것을 현실화시킨다.
주님,
저에게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저를 죄에서 해방하시고, 의의 종으로 살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힘써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