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6일(수)■
(요한계시록 2장)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묵상/계 2:8-11)
◆ 서머나 교회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일곱 교회 중에 책망받지 않고 위로와 칭찬을 받은 교회가 오직 두 교회뿐인데, 그 중 하나가 서머나 교회다.
서머나는 약탈과 방화와 파괴로 점철된 도시였다고 한다. 무질서와 폭행이 난무하는 도시 속에서 이렇게 주님의 칭찬을 받는 교회가 존재했다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봐도 무척 가난한 자들이었고, 게다가 많은 핍박을 받고 있다. 특히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들을 이단으로 단정하여 핍박하는 것은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서머나 성도들은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서 있었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위로하셨다. 그리고 소위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교회를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가리켜서 '사탄의 회당'이라고 규정하셨다. 무서운 말이다. 본인들은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활동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탄의 회당으로 간주하신다. 참된 지식을 갖지 못함으로써 생긴 비극이다(롬 10:2).
◆ 죽도록 충성하라
(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마귀가 장차 서머나 성도 중에 몇 명을 옥에 가두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를 핍박하는 실체가 어떤 자인지를 분명히 하셨다. 바로 '마귀'다.
세상에는 마귀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자들이 무척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귀가 주는 고통임에도 그것을 하나님 때문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곤 한다.
욥과 욥의 친구들이 고난을 하나님의 형벌로 해석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것과 같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귀가 준 것이다. 하나님은 단지 마귀에게 그 기회를 허락한 것뿐이다.
오늘 서머나 교회도 마귀가 주는 핍박과 고난이 닥칠 것을 예고하신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고난을 피할 길을 말씀하시지 않고 단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주신 도움은 그 환난을 '십 일' 동안 받을 것이라는 정보일 뿐이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이것만으로도 큰 위로며, 힘이다.
수많은 핍박을 받을지라도, 주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그 환난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확신, 결국 승리는 주님께 있다는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견디게 하고 기쁘게 한다.
주님께서는 서머나 성도들에게 가난과 환난을 벗어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어떤 목숨보다도 가치 있는 '생명의 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기서 관이란 마라톤 선수가 우승했을 때 받는 월계관과 같은 것인데, 성도들에게는 월계관이 아니라 생명관이다. 영광스러운 관이며, 승리의 관이다.
꽤 오래전 일이다. 북한에서 몰래 예배드리던 집단이 발견되었다. 북한 공산당은 이들을 급습하여 모두 잡아들이고,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풀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신앙을 지켰다. 그러자 이들을 모두 교수형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이들의 순교를 끝까지 지켜보게 했던 목사는 더욱 악랄하게 처리했다.
불도저의 바퀴에 깔아서 죽이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그를 죽게 하였다. 목사는 불도저가 자기 발을 깔아뭉개자 고통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무릎까지 뭉개지는 지경이 되었을 때 그는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찬양하다가 결국 죽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이렇게 죽을지라도 충성하라는 말씀이다.
당장 이생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사람들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되고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 개입하지 않으시고 지켜보고만 계시는 하나님이 부당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된다. 천국에서 이런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며, 영광스러운 일이다.
종종 성도의 삶은 마라톤처럼 고달프고 쉼이 없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가 중도에서 멈출 순 없다. 뛰지 못하면 걸어서라도, 걷지 못하면 기어서라도 완주해야 할 길이다. 완주해야 참가상이라도 받는다. 그렇게 기쁨으로 충성하다가 중간에 믿음을 버린 사람보다 매일 불평하며 징징대면서도 죽을 때까지 주님을 떠나지 않고 산 사람이 더 훌륭하다.
주님,
이제껏 제가 산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장차 갈 본향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인도해주십시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 딤후 4: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