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3월27일(월)■
(아모스 5장)
1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2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3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7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8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9 그가 강한 자에게 갑자기 패망이 이르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
10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11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2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13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묵상/암 5:1-13)
◆ 이스라엘을 향한 애가
(2)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처녀 이스라엘...
처녀란 순결하고 순수한 상태이면서 남자의 사모함을 받는 존재임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그러한 아름답고 순결한 처녀가 땅바닥에 구르며 더럽혀지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을 것이다. 처녀 이스라엘이란 표현 속에는 이스라엘의 몰락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들어있다.
이스라엘은 매우 철저하게 몰락한다. 천 명 중에 백 명, 백 명 중에 열 명, 곧 겨우 10%만이 생존한다. 90%의 멸절이라니! 가족도 친구도 대부분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어떻게 하면 이 재앙을 피하고 살 수 있을까?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4)
하나님께서는 벧엘이나 길갈, 브엘세바를 찾지 말라고 하셨다. 그 세 곳은 유서 깊은 지역이며 성지라 불릴 만한 곳이다. 벧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은 곳이고(창 12:8), 야곱이 돌베개에 베고 자다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지었다. 길갈에는 여호수아가 요단강 한복판에서 가져온 돌 12개를 쌓아놓은 곳이다(수 4:20). 브엘세바는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제단을 쌓은 곳이다(창 26:23-25).
그런데 이스라엘 왕은 이렇게 유서 깊은 성지에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어서 분향하도록 했다. 그리고 금송아지를 '여호와'로 부르게 했으니(왕상 12:28), 백성들은 자신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기로 가지 말라고 하신다. 금송아지가 아무리 비싸도 하나님을 대치할 수 없다. 그 지역이 아무리 성지라고 해도 우상숭배가 자행되는 순간 더는 성지가 아니다. 하나님은 지역에 매이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결과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했다. 지극히 적은 수만이 생존했고, 외국인들이 사마리아에 들어와 살면서 그들은 섞이게 되었다. 후에 남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몹시 멸시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은 멸망 후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섬겼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요 4:22)
나는 오늘날 성도들도 똑같은 우를 범할까 염려된다. 금송아지를 섬기면서 스스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착각한다. 설교단에서 금송아지를 찬양하고 있는데, 단지 거기에 '예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제대로 믿고 있다고 착각한다. 어떻게 멸망을 피하겠는가?
◆ 정의를 쓴 쑥처럼 여기는 자들아
(7)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이스라엘의 문제는 종교적인 것만이 아니다. 도덕적인 문제도 심각했다.
정의(judgment-KJV)를 쓴 쑥으로 바꾸는 자란, 정의를 쓴 쑥처럼 여기면서 손사래 치며 거절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공정한 재판에는 관심이 없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어떤 것이 유익할까, 또는 내게 어떤 것이 유익할까만을 생각한다. 이들은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한다(12).
공의(righteousness)를 땅에 던지는 자들이란, 공의를 쓰레기처럼 취급하여 땅에 던져버리는 자들이다. 이들은 힘없는 자를 밟고, 부당한 세를 매기며, 죄를 지적하는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들을 싫어한다(10).
이런 자들이 득실대는 사회를 어떻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시겠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이를 때, 그들이 쌓은 재물과 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나님은 묘성(북두칠성)과 삼성(오리온자리)등 온 우주를 만드신 분이시다.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닷물을 지면에 쏟으실 수도 있는 분이시다. 지혜로운 자라면 누구 비위를 맞추어야 살 수 있을지 판가름할 것이다.
무릇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그는 정의로워야 한다. 그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의에게 너는 내 누이요, 공의에게 너는 내 친족(참조/잠 7:4)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란 하나님의 계명을 꿀보다 더 달게 여기는 자들인데, 어떻게 그들이 정의와 공의에 무심하겠는가?
그들이야말로 정의를 물처럼 흘러내리고,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는 자들이다.
정의를 쓴 쑥처럼 싫어하고, 공의를 쓰레기로 취급하는 이런 기가 막힌 사회에서 정의로운 그리스도인들은 한 줄기의 빛이요, 생명을 살리는 소금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회에서 자행되는 불의와 악행을 모르는 체하면 안 된다. 세상 문화에 휩쓸려서 똑같이 행동하면 안 된다.
적어도 내가 영향을 끼치는 영역에서만큼은 정의와 공의가 제대로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다윗. 시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