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7(수)■
(사도행전 7장)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묵상/행 7:51-60)
◆ 완고하고 회개를 거부한 사람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54)
스데반의 지적은 너무나 옳았고, 그래서 더 마음이 찔렸다. 그들은 선지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핍박했던 조상들을 늘 비난해왔는데, 막상 자신들에게 선지자보다 더 큰 이가 오시자, 핍박을 넘어서서 아예 십자가에 못박아버렸다. 이들은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다. 스스로도 자신들이 죄없는 자를 죽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지적하는 스데반에 대해 그들의 반발은 너무 극렬했다.
상대방이 나를 책망할 때, 특히 그것이 너무나 옳아서 내 양심이 찔릴 때 반응은 두가지다.
회개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다.
나단 선지자가 신하의 아내를 겁탈한 다윗을 책망하면서 "당신이 그 사람이라"라고 하자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하며 즉시 회개하였다(삼하 12:1-13).
그러나 스데반의 지적을 받은 이들은 회개는 커녕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았다.
둘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반응이 다를까?
도대체 이들은 무엇이 문제일까?
스데반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목이 곧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이란,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어떤 진리의 말씀도 듣지 않는 사람이다. 이들은 몸은 교회에 있고, 심지어 종교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을지라도 사실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범죄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은 변명하지 않는다. 죄를 죄로 인정하고,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한다. 그 책망이 가슴을 후벼파고 내 가치를 한껏 떨어뜨려도 그 책망 뒤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굴복할 줄 안다. 그러나 무늬만 신자인 사람들은 늘 자기 영광을 추구하고 살았기 때문에 책망을 견디지 못한다. 그것은 자기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온갖 행패를 다 저지르고,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비판하지만 막상 자신들이 비판을 받으면 화를 내고 싸우자고 달려든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갈 2:20)고 고백하는 자들은 책망과 판단에서 자유롭다. 그들은 책망을 통해서 자신이 회개할 것을 찾으며, 자신의 옛사람의 습성들을 벗어버릴 기회로 삼기 때문이다. 늘 사람들의 칭찬을 목말라하며 항상 자랑하고 싶어하는 자들은 결코 책망을 견디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요일 1:9). 여기서 '자백'이란 하나님의 지적을 받았을 때 반발하지 않고 그대로 내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주님은 그런 자의 죄를 사하시며 새롭게 하신다.
거듭난 자들은 마음과 귀에 할례받은 자들이다. 들을 귀를 갖고, 겸손한 마음을 갖자.
◆ 스데반의 순교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55)
시편 110편에 보면 다윗의 예언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 110:1)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서부터 성경교사들에게 이 시편에서 언급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분, 다윗이 '내 주'라고 하신 분, 이 분이 바로 우리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시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런데 스데반이 그분이 바로 예수이심을 증언하고 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56)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절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큰소리를 지르고 귀를 막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귀에 할례받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스데반을 끌고 성 밖으로 나갔고, 거기서 돌로 쳐서 죽였다.
스데반의 죽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최초의 순교다.
그는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비록 돌에 맞는 비참한 죽음이지만, 그의 마지막은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60)
자기를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해서 누가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스데반의 이런 아름다운 심성은 그가 섬기는 예수님의 마음을 물려받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으로 사는 사람의 본이다.
스데반의 눈 앞에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이 보였다.
그 위대한 분께서 앉아 계시지 않고 서 계셨다. 스데반을 맞이할 준비를 하신 것일까?
이 장면에서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돌보시는 주님을 본다.
스데반이 부럽다. 마지막 순간에 나를 맞이하고자 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다면 어떠한 죽음일지라도 오히려 행복할 것이다.
58절에 보면 스데반을 죽인 사람들 중에 주동자가 있었는데, 그는 후에 사도 바울이라고 알려진 청년 사울이었다. 사울의 회심은 9장에서 다루어진다. 우리가 스데반의 죽음을 이렇게 생생한 기록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사울의 증언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님, 제 마음과 귀가 할례를 받게 해주십시오. 사람들의 책망과 비판에 지나치게 둔감하거나 지나치게 민감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직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주님의 마음을 배우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죽을 때 주님을 보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