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15(목)■
(사도행전 9장)
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묵상/행 9:32-43)
◆ 8년된 중풍병자를 고침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34)
베드로는 8년된 중풍병자 애니아를 치료할 때 치료자의 주어를 '내가'로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라고 했다. 이것은 겸손하기 위해서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이런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대로 말했다는 것이 훌륭하다. 당연히 사람들은 치료자가 되시는 주님께로 돌아왔다.
기적을 행하면 사람들의 눈은 그 사람에게 고정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를 추앙하며 따르기 시작한다. 이 때가 가장 위험할 때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런 유혹을 제법 잘 이기다가 점점 느순해지고 결국 유혹에 깊이 빠진다.
나중에는 칭찬하지 않는 사람들이 밉고, 영광을 돌리지 않는 사람들이 적으로 간주된다. 나는 예수님을 믿은지 50년이 넘었는데, 나도 그런 유혹에 빠져보았고, 그런 유혹에 빠져서 완전히 타락해버린 사람들도 보았다. 그렇게 순수하고 믿음이 좋았던 사람이었는데, 사람들의 칭찬에 익숙해지면서 교만해지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며 고집 쎄고, 탐욕적인 인간이 되었다. 그런 사람들 중에 가장 애석한 자는 회개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그렇게 살다가 죽어버린 사람들이다.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 한 일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영광과 칭찬을 받으려고 하지 말자. '내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라고 주어를 바꾸어야 한다. 그것만이 주님의 능력이 내 속에 계속 머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 다비다가 부활함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36)
다비다는 아람어로서 영양(gazelle-아프리카 산의 양)이란 뜻이다. 눈이 특히 아름다운 양이라고 한다. 도르가는 그것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다비다를 표현하는 말들이 흥미롭다.
다비다는 '여제자'라고 칭해졌다. 당시에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그는 여자로서 당당히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주님의 제자라는 이 사실 앞에서는 남녀가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심히 많았다. 욥바의 모든 과부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할 정도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인가?
만일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그의 가족이 아닌 외인들이 많이 슬퍼한다면 그는 삶을 제대로 산 사람이다.
이렇게 훌륭한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병들어서 죽었다.
종종 너무나 훌륭한 성도가 불의의 사고나 몹쓸 병으로 죽을 때 우리는 당황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로 해석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인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공정하지 않으시다는 증거가 아니라, 이 세상이 그만큼 왜곡되고 타락했다는 증거다.
하나님의 아들조차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여전히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진정한 심판은 이 세상에서 죽고 사는 것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정죄받아서 영원한 지옥에 가는 것이다.
이제 베드로는 다비다를 위해 기도했고,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비다를 부활시키셨다. 천국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던 다비다로서는 애석한 일이었겠지만,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돌아왔다. 그리고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
나는 오늘 본문에서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35).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42)이란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제자가 할 일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렇게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기적과 사역은 모두 이것을 위한 통로일 뿐이다. 주님의 제자된 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괴로워해야 한다. 오직 주님께로 눈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시 115:1)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