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5 (수)■
(사도행전 15장)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묵상/행 15:36-41)
◆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39)
성령 충만한 사람들도 서로 다투는가?
나는 성경에서 이 부분이 언제나 흥미로웠다. 평소에 자주 다투는 사람들이야 이런 일이 신기하지 않겠지만, 이들은 성경에서 손가락으로 꼽는 성령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다툼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들의 다툼은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을 계획하는 중에 일어났다. 2차 전도 여행팀에 마가를 포함할 것인가 말 것인가?
바울은 지난 번 1차 전도 여행시에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간 자를 다시 2차 전도 여행팀에 넣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바나바는 그런데도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바나바는 사람이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며, 너그럽게 용서하고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데 그렇게 개인의 입장만을 고려하면 안 되며,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지만, 정에 이끌려서 하나님의 사업에 차질을 빚게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둘 다 일리가 있고 둘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있다.
그런데 의견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심히 다투고 아예 팀을 깨고 서로 갈라서기까지 한 것을 보면 가벼운 결과가 아니다. 누가 옳을까? 바울일까, 바나바일까?
당신은 누가 옳다고 생각하는가?
바나바는 마가의 외삼촌이다(골 4:10). 이런 사실만 보면 바나바가 정에 끌려서 잘못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후에 마가는 마가복음을 씀으로써 교회에 큰 유익을 남긴다. 그리고 바울은 나중에야 마가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를 자신의 동역자요(몬 1:24), 자기를 위로하는 자라고 말한다(골 4:10,11). 이런 것을 보면 바울이 사람의 가능성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너무 섣부르게 판단했던 것처럼 보인다.
이 둘이 갈라설 때, 서로 마음이 상했을 것이다. 이 둘은 모두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까? 왜 이들은 주님께 묻지 않았을까?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더는 다툴 필요가 없었을 텐데...
우리는 다음 두 가지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
(1) 이들 중에 적어도 한 명이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다.
(2) 주님께서 이런 부분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1)일까, (2)일까?
바나바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행11:24)라고 했다. 바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성령충만하여 바예수를 책망하여 눈이 멀게 한 자며(행 13:9-10) 앉은뱅이를 일으킨 자다. 그렇다면 이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을 가능성은 주님께서 침묵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주님의 침묵에 더 큰 가능성을 둔다.
우리의 삶에서 주님 침묵의 영역은 의외로 넓다. 우리가 궁금해서 묻는 부분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일일이 다 대답하지 않으신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자율적인 영역도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다.
어떤 사람은 성령께서 자기에게 모든 것을 말씀하신다고 한다.
심지어 구두 살 때 구두 색깔까지도 지정해주신다고 주장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회의가 든다. 그렇게 주님께서 수시로 말씀하시는 자들이 정작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는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진다. 내가 생각건대 그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뿐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헤어졌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욱더 많은 지역에 복음을 확산하게 하였다. 이후의 사도행전에서는 바울의 행적만을 다루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나바에게도 함께 하시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셨으리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이후의 마가는 너무나 중요하고 훌륭한 사역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나바도 후회하지 않았고, 바울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사심없이 오로지 주님의 영광만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충성을 기쁘게 받으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후로 서로 관계가 서먹서먹해졌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바나바를 언급했다(고전 9:6). 고린도는 이번에 떠나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지다. 후에 이러한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이 바나바를 자기와 나란히 언급한 것을 보면 여전히 바나바를 좋은 동역자요, 귀한 형제로 인식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여러 의견이 충돌될 수 있다. 그럴 때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자기 권위로 억누르거나, 자기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거나, 멋대로 선심 쓰듯이 행하는 것은 몹시 나쁜 태도다. 우리가 겸손하게 주님께 순종하며, 순수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다면 의견 충돌은 얼마든지 용납되어야 한다. 양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다면 그런 충돌조차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할 것이다. 그러나 관계를 깨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마귀가 좋아할 일이다.
주님, 형제와의 의견충돌 시에도 겸손을 잃지 않게 하시고, 제 속에 사심이 없게 하시며, 진심으로 주님의 영광을 추구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