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13(목)■
(사도행전 18장)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묵상/행 18:1-11)
◆ 바울의 생업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3)
바울의 생업이 천막을 만드는 것이었다.
바울과 같은 뛰어난 전도자가 자기 생업을 가지고 돈을 벌었다는 것이 매우 신선하다. 바울의 생업은 의외로 수익이 높았던 듯하다. 바울은 자기가 번 수입으로 자기와 함께한 전도팀의 쓸 것을 채웠다고 했다(행 20:34). 바울은 고린도에 거하는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어느 누구의 헌금도 받지 않았고, 거절했다. 바울의 각오를 고린도전서에서 볼 수 있는데, '차라리 죽을지언정'이라는 말을 쓰면서 그는 성도들에게 받을 권리를 쓰지 않겠다고 고백했다(고전 9:15). 그리고 부족한 것은 자기 생업과 그리고 마게도냐 교회에서 후원한 것으로 채웠다(고후 11:9).
바울이 천막을 기울 시간에 전도하러 다니는 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도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바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고린도에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했고(고후 11:9),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구원받는 것임을 그들에게 깨닫게 하고 싶었다(고후 12:14).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고전 9:18,19).
과거에 친구 목사 안수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안수식에서 다음과 같은 서약을 강요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직업도 갖지 않고 오로지 목회에만 전념하겠는가? 오로지 양의 젖으로만 살겠는가?"
나는 목사에게 왜 이런 족쇄를 채우는지 의아했다. 물론 이런 각오가 있어야 오직 목회에만 전념하겠지만, 사실 우리나라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은 너무나 큰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교인이 열 명도 안되는 교회가 부지기수다. 그들에게서 난 헌금으로만 살려면 둘 중의 하나다. 헐벗고 굶주리거나, 교인들을 쥐어짜는 것이다. 성도들이 목사를 존경하고 그들의 필요를 최선을 다해 공급해야 마땅하지만, 사실 얼마 안 되는 교인들에게는 버겁다. 목회의 길을 나선 이유가 무엇인가?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은가?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렇다면 바울처럼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을까?
◆ 실라와 디모데가 오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5)
'실라와 디모데가 오매'라는 말에 유의하라. 그들이 오자 바울은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서 열심히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증거했다.
실라와 디모데가 무슨 활동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바울에게 큰 힘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동역자란 옆에만 있어도 힘이 되는 존재다. 그들이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나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고 자책하는 성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교회당 좌석에만 앉아있어도 목회자들에게는 힘이 된다. 모임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사역자에게 도움이 되며, 기도회 같은 모임에 함께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훌륭한 동역자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디모데가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했다'(빌 2:22)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계속 언급되지 않은 중요한 동역자가 있는데 그는 바로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Luke)다. 누가는 바울의 마지막까지 함께 한 자로 추정된다(딤후 4:11).
◆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9,10)
바울은 안식일마다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다. 거기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유대교를 믿는 헬라인들도 있었다.
디도 유스도는 헬라인이었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전도팀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다. 디도 유스도는 디도서 수신자인 디도와 다른 인물이다. 그리스보은 유대교 회당장이었으므로 분명히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그도 예수님을 믿었다. 이렇게 바울은 힘을 다해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은 자기들이 받을 수 없는 것이로 생각하여 바울을 배척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스라엘을 초월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천지개벽과 같이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으로서의 우월성이 사라지는 일이다. 결국 바울은 옷을 털면서 자신이 이방인에게 갈 것임을 선언했다.
이렇게 바울이 결심을 굳히자, 주님께서는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셨다.
여기에서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께서 고린도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백성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임금 되신 분은 백성을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신 분이시다. 이 나라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큰 복이며 영광이다.
주님께서 바울과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바울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서 무려 1년 6개월이나 고린도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생겼다. 이들은 하나님의 각종 신령한 은사와 성령의 능력을 체험했다(고전 12장). 고린도 교회가 탄생했고, 든든하게 세워졌다.
사람이 아기를 낳으면 신기함을 느낀다. 없던 존재가 갑자기 생긴 것이다. 아기 얼굴만 봐도 기쁘다. 부자가 된 느낌이다. 교회의 탄생도 그렇다. 교회가 없던 지역에 교회가 생길 때 그것은 마치 아기가 탄생한 것처럼 기쁘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믿음 안에 서고 말씀으로 성장하는 것은 참으로 보람되고 기쁜 일이다. 바울처럼 이렇게 복음을 들고 나가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그렇게 하기 어려우면 바울을 도왔던 사람들처럼 옆에서 돕는 사람이라도 되어야 한다.
주님, 이 시대에 아름다운 신약교회가 도처에 세워지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저를 써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