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14(금)■
(사도행전 18장)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묵상/행 18:12-23)
◆ 바울을 고발한 내용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13)
아가야는 현재 그리스 최남단에 혹처럼 붙어있는 반도 지역이다. 그 반도의 입구 쪽에 고린도가 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무려 1년 6개월이나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자 고린도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특히 유대교에 입교한 무수히 많은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회당장조차 예수님을 믿을 정도니, 유대교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하자 유대인들은 이 기회에 바울을 제거하려고 고발했다. 다행히도 갈리오는 총명한 사람이었다. 다수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법이 로마법이 아니라 율법임을 파악하고는 그들의 고발을 의미 없는 것으로 판결하였다.
여기서 갈리오의 등장은 바울의 활동시기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있었던 시절이 AD 52-53년이었으니까 이 시기가 AD 52년경으로 추정된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지 20년 남짓한 시기다.
유대인들의 고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울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 말을 풀어보면 율법에 따른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친다는 의미다. 실제로 바울은 율법에 따른 방식이 아닌, 예수를 믿는 믿음에 따른 삶의 방식을 가르쳤다. 우리는 이것을 간단히 줄여서 그리스도의 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법은 율법과 대립이 되는가?
그리스도의 법은 율법과 대립이 되는 법이 아니다. 오히려 율법의 참형상이다. 태양이 뜨면 더는 가로등의 빛이 필요 없다. 가로등은 태양이 없는 동안의 대체물일 뿐이다. 가로등을 끄라고 해서 어두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몰아세우면 안 된다.
그러나 그림자를 참형상으로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바울의 설명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많은 신자가 율법을 삶의 규례로 삼는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서 처음에만 필요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 사람들에게 믿음이란, 교리를 써놓은 글 밑에 있는 '동의함'에 체크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믿음 이후에는 율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생생한 인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접하고, 그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생명의 양식으로 매일 매일 먹고 마시는 자들이어야 한다. 예수님를 통해서 사랑과 겸손과 온유와 충성을 배우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면서 점점 그를 닮아간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간단히 줄여서 그리스도의 법이라고 한다.
교회는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로 양분되지 않는다.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참율법주의가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율법의 실체 곧 참율법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이다. 율법은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로서 존중된다.
18절에서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은 것은 율법을 따른 행위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무시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도행전 21장에서는 머리를 깎는 행위가 바울이 율법을 무시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사용된다(행 21:17-24). 그러나 이런 것은 이방인들에게 전혀 요구하지 않았다(행 21:24,25)
◆ 에베소에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다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19)
바울은 그리스를 떠나서 다시 아시아(터키 지방)의 에베소로 돌아온다. 거기에서 전도팀을 밖에 머무르게 놔두고 다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했다. 바울은 몇 번이나 유대인들에게 거절당하고 핍박을 받으면서, 다시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했다(행 13:46, 18:6). 그러면서도 계속 미련을 못버려서 이렇게 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이게 끊었다고 끊어지는 게 아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1-3)
바울의 민족을 향한 간절함은 우리가 가족과 친척들의 구원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는지를 일깨운다.
에베소 사람들이 바울을 붙잡았으나 바울은 그들을 떠나면서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돌아올 것을 말한다. 과연 후에 바울은 에베소에서 무려 2년이나 머물면서 에베소에 거대한 부흥의 불길을 일으켰다.
◆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이 끝나다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바울은 가이사랴에 상륙해서 교회의 안부를 물었다. 여기서 교회는 아마도 예루살렘일 것이다. 가이사랴를 기준으로 보면 안디옥은 북쪽으로 400km에 위치하고 예루살렘은 100km에 위치한다. 오늘 본문에서 '올라가'란 그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음을 암시한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의 시온산은 언제나 '올라가'는 방향이었다. 방문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안부를 살핀 후에 자신을 최초로 파송한 안디옥으로 내려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은 끝났다. 이제 곧 3차 전도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주님, 바울의 열정을 주십시오. 영혼들을 사랑하고, 복음을 만방에 전하고자 하는 그 열정을 주십시오. 제 마음에 성령의 감동을 주십시오. 교회에 성령의 부흥이 일어나게 해주십시오. 복음이 메마른 지식으로 전해지지 말고 성령의 강력한 능력으로 전해지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