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8(수)■
(사도행전 27장)
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묵상/행 27:12-26)
◆ 풍랑을 만나다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14)
가이사랴(시리아)에서 배 타고 출발하여 무라(터키), 니도(터키), 미항(그레데)까지 왔는데, 여기에서 바울이 만류하는 것을 무시하고 선주의 말만 믿고 뵈닉스로 출발하다가 죽게 된 것이다. 그레데 섬은 서북과 동남으로 무려 260km나 길게 뻗어있는 그리스 최대의 섬으로서 뵈닉스는 그레데 섬 서북쪽 끝에 있다. 처음에는 남풍이 부니까 서북쪽으로 가기가 수월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밀어닥쳤다. 유라굴로는 유로스(동풍)와 클리돈(격노한 파도)의 합성어로서 한마디로 동쪽에서 부는 광풍이다. 이 광풍이 불자 배는 더는 조종이 불가능했다. 광풍에 밀려서 점점 더그레데에서 멀어지고 지중해 망망대해로 밀려가게 되었다.
가우다라는 작은 섬을 보고도 가까이 갈 수 없을 정도로 광풍에 시달리면서도 바다에 떨어졌던 거루(돛이 없는 작은 구명정)를 간신히 잡아서 위로 끌어올리고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스르디스(바닷가의 모래톱)에 걸릴까 봐 두려워하면서 연장(돛으로 추정됨)을 내리고 풍랑에 배를 맡겼다. 스르디스에 걸리면 배가 오도 가도 못하고, 조류의 엇갈림이 심해서 결국 배가 깨지며, 모든 사람이 물에 빠져 죽게 된다.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이튿날에는 짐을 바다에 버리고 3일째에는 배의 기구들마저 버렸다. 광풍은 여러 날 계속되었다. 해도 보이지 않고 별도 보이지 않았다. 이 말은 배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떠다니게 됨을 의미한다. 모두가 목숨이 하늘에 달린 셈이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인간 전문가의 말을 더 신뢰한 결과다.
이들은 과연 살 수 있을까?
다행히도 이 배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다.
◆ 바울의 권고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22)
풍랑 속에서 바울 일행도 안전할 수는 없었다. 말도 못 한 위험 속에서 굶주림과 더불어 심한 고생을 함께 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배에 있는 바울 일행의 모습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습과도 같다. 아무리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아도 내가 속해 있는 나라와 사회와 집단의 고통에서 나만 비껴가는 것은 어렵다.
간혹 따로 보호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함께 고난을 겪고, 심지어 함께 죽기도 한다. 타락한 세상이 당해야 하는 고통을 구원받은 우리가 함께 당하는 것이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의로운 사람도 병과 고난과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명이다. 이런 부조리가 없어지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이 모두 새로워져야 한다. 그러면 다시는 이런 부조리하고 억울해 보이는 상황에 놓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모든 사람이 절망에 빠져있었을 때,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오히려 담대함과 평안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이렇게 위로한다.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22)
이 풍랑 속에서 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안심하라고 권한다.
과연 이런 말이 위로되겠는가? 그러나 바울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사람들은 바울을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배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배에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기에 이들은 모두 살 게 된 것이다.
이 원리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나, 의인이 단 한 명도 없어서 멸망한 예루살렘(렘 5:1)에도 모두 적용되었다.
오늘날 교회, 사회, 나라는 악인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다.
◆ 내가 섬기는 하나님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23)
나는 이런 말을 하는 바울이 참 멋있게 느껴진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란 말은 언뜻 쉬워 보이지만 양심에 거리낌 없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평소에 하나님보다 돈을 더 섬기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추구했다면 이런 말을 하기가 꺼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평소에 하나님을 최우선순위로 놓는 자,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만이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
사람들 앞에서 담담하게 "내가 속한 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자가 진정한 주의 종이며, 하나님의 사람이다.
내가 이런 확신 가운데 있지 못하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제대로 위로하고 이끌 수 있겠는가? 풍랑이 닥쳐서야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요란 떨지 말고, 평소에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진리를 믿는 마음,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예배드리고, 내 삶의 최우선순위가 하나님이 되게 하자.
하나님 아버지, 저를 의롭다고 칭해주시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바울처럼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도록 평소에 진정한 예배자로서 살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