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16(수)■
(에스겔 3장)
1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4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5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6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7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8 보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보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9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10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11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12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시는데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니
13 이는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생물 곁의 바퀴 소리라 크게 울리는 소리더라
14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
15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 가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 일을 지내니라
(묵상/ 겔 3:1-15)
◆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3)
두루마리에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슬퍼하는 애가와 애곡과 그리고 임할 재앙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겔 2:10). 에스겔에게 이것을 먹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 것을 명령하셨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배에 넣으며 창자에 채우라는 말씀이 의미가 깊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가벼운 말씀이 아니다. 먹고 소화하여 그것이 나를 구성하고 나를 살찌우게 해야 한다.
나는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환상 속의 두루마리가 아니라, 이렇게 글자로 인쇄되어 우리 손에 있다는 것이 놀랍고, 감사하다. 성경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감탄이 나오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임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꽤 신앙이 좋은 편이었던 내 친구가 신학교를 갔다. 나름대로는 하나님께 헌신한답시고 간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신학교에 입학해서 성경이 오류투성이의 책이라고 배우기 시작했고,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고 배웠다. 졸업했을 때, 그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 우연히 여의도 길에서 만났을 때 그는 하얀색 도포를 입고 활보하던 중이었다. 커피숍에 들어가서 몇 마디 나누었는데, 그는 기독교보다 더 뛰어난 종교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내가 너무 안타까워서 성경으로 몇 마디 권고하려고 하자 그는 비웃으면서 자기는 이미 나와 같은 단계를 거쳤다고 했다. 한마디로 내가 유치하다는 것이다. 더욱 깊은 공부를 하게 된다면 자기와 같은 생각에 동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친구가 불쌍할 따름이다. 그것은 더욱 깊은 공부의 결과가 아니다. 단지 마귀에게 속은 것뿐이다. 나에게 있어서 더욱더 깊은 공부란 그런 엉터리 자유주의 신학따위가 아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채우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 선지자의 이마
"보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 보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 보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8)
이마가 굳게 된다는 말이 흥미롭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완악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표현은 '목이 곧은 백성'(출 32:9)이라고도 하시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이마가 굳은 백성'(7) 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목이 곧다는 것이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고 교만한 것을 의미한다면 이마가 굳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반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목이 곧은 것이 소극적 의미의 불순종이라면 이마가 굳은 것은 적극적 의미의 불순종이다. 목이 곧은 것이 타락한 신자의 모습이라면, 이마가 굳은 것은 무신론자, 우상숭배자의 모습이다.
목이 곧은 단계를 넘어서서 이마가 굳어 버린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박치기 잘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은 그들보다 더 박치기를 잘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이마를 '금강석'으로 만드시겠다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마는 '화석'에 불과하다. 화석이 유리는 부술 수 있겠지만 금강석은 부술 수 없다. 수천 개의 화석이 부딪혀도 금강석은 끄덕없다. 오히려 모든 화석이 부서질 것이다.
모름지기 이런 것이 바로 선지자의 자질이다. 하나님 말씀으로 이마가 굳어서 어떤 박치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을 산산조각 내는 자다.
아, 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이 이런 금강석 같은 이마를 가지지 못하고 유리 이마가 되어서 세상 철학과 풍조와 세속적 논리에 깨지는 것이 안타깝다.
◆ 주의 영에 의해서 옮겨지다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14)
에스겔은 특이한 체험을 한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공간 이동을 한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에서 빌립이 체험했던 것과 같다(행 8:39,40).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바벨론 강가 텔아빕으로 이동시키셨다. 텔아빕은 아마도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난민촌과 같은 곳일 것이다.
이때 에스겔은 매우 근심하고 분한 마음이었다.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재앙과 심판이 눈앞에 있는 자기 민족에 대해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모름지기 선지자란 자기감정에만 사로잡혀있으면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권능으로 힘 있게 에스겔을 감동하게 하셨다.
에스겔은 이들 사이에 옮겨져서 7일간을 머물면서 두려워 떨며 지냈다. 두려워 떨었다는 말은 히브리어 '솨멤'을 번역한 것인데, 넋을 잃게 하다, 놀라다라는 의미다. 아마도 에스겔은 자기 민족이 당면한 참담한 미래가 넋을 잃을 정도로 두려웠던 것 같다.
에스겔은 자신이 이들 중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에 대한 것은 기록하지 않았다. 이것은 에스겔서에서 내내 나타나는 특징이다. 아마도 에스겔은 자신의 활동을 드러내고픈 마음이 없었던 듯 하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시는 것을 보면 그는 7일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충성되게 전했을 것이다.
주님, 저도 예수의 증인으로서 이마를 금강석처럼 굳게 해주셔서, 어떤 풍조에도 흔들리지 않게 해주시고, 어떤 사상과 부딪혀도 깨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이론을 부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굴복시키는 그런 자가 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