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17(토)■
(에스겔 20장)
1 일곱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이스라엘 장로 여러 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내 앞에 앉으니
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3 인자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내가 나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 인자야 네가 그들을 심판하려느냐 네가 그들을 심판하려느냐 너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5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내 손을 들어 맹세하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노라
6 그 날에 내가 내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7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눈을 끄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였으나
8 그들이 내게 반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눈을 끄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의 분노를 쏟으며 그들에게 진노를 이루리라 하였노라
9 그러나 내가 그들이 거주하는 이방인의 눈 앞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 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행하였음이라
(묵상/겔 20:1-9)
◆ 하나님께서 거절하심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내가 나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
일곱째 해 다섯째 달에 이스라엘 장로 여러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물으려고 왔다. 일곱째 해란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에 잡혀간 해를 기준으로 산출된 년수다(겔 1:2). 현대력으로 하자면 BC 591년 7,8월에 해당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나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라"
"목숨을 걸고..." 이런 강력한 거절을 들어보았는가?
사실 나는 개역개정의 이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하나님께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오히려 과거 개역성경이 더 낫다.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나니..." 그리고 원어에서는 맹세한다는 표현도 없다. 따라서 한글킹제임스 번역이 제대로 번역했다고 본다. "내가 살아 있는 한...(As I live)".
그러나 번역을 달리했다고 경고의 강력함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말씀하신 것은 그의 존재를 말살시키지 않는 한 결코 변개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강력하게 이스라엘 장로들을 거절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평소에 우상에게 예배하며 충성하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감히 하나님의 의견을 묻겠다고 나아오다니! 이것 자체가 불경이며 범죄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대답해보았자 그들은 참고사항으로 여길 뿐 순종할 생각도 없는 자들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갑이고 하나님이 을이라고 착각한다. 하나님을 자신이 언제라도 물으면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비서처럼 여긴다. 똑같이 입력하면 똑같이 출력하는 컴퓨터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서운 착각이고 오해다.
하나님은 무슨 법칙이나 사물이 아니라 인격체이시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인간만 인격체이고 하나님은 인격체가 아닌 것처럼 대하는 것은 큰 불경이며 착각이다.
인격체와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갑자기 친한 척하면서 하나님을 속일 생각을 버려라.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과 친해지려면 어떤 꼼수도 소용없다. 진심으로 나아가야 하며, 경외함과 사랑으로 대하는 수밖에 없다.
설사 사람이 의롭다고 해도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할 자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일하게 하나님께 책망받지 않은 욥의 친구 엘리후의 충고가 적절하다.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욥 35:7)
그런데 회개해도 모자랄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이것저것을 묻고 요구하며, 자기 말을 안 들어주었다고 원망한다고?
말도 안 된다! 당장 죽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먼저 회개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진심을 쏟아놓아야 한다.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라. 이것이 하나님과 친해지는 길이다. 이런 경외와 공경은 묵상과 예배를 통해서 배워나간다. 그러므로 예배드릴 때마다 마음을 다하고, 하나님 경외함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떤 막힘이나 거리낌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예배가 인간을 기분 좋게 하는 프로그램과 목사의 잡담에 불과한 말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니 하나님 경외함을 배울 길이 없다.
◆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러나 내가 그들이 거주하는 이방인의 눈앞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행하였음이라"(9)
이스라엘 백성들이 착각하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것이 자신들의 의로움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착각을 깨신다. 그들은 의로운 존재들이 아니라 애굽의 우상을 섬기고 애굽의 미신 문화에 찌든 존재들이었다.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렸어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을 마음이 없었던 자들이었다. 꼼짝도 하지 않고 소가 닭 보듯이 모세를 쳐다보았던 그들이었다. 엄청난 선물을 주는데도 멀뚱멀뚱 쳐다보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여 내셨다.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셨다.
나는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해서 일하심을 몹시 감사하다.
그것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내 과거가 무수한 불순종과 죄로 가득 차 있지만, 주님께서 주님의 이름 때문에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이 은혜를 알지 못하면 내가 짐승과 무엇이 다른가? 이 은혜를 감사하자. 그리고 이제는 불순종의 삶에서 벗어나서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
영원히 주님의 이름을 둔 성도로서 살게 해주시고, 주님의 이름을 위해 살고, 주님의 이름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