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22(목)■
(에스겔 21장)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에게 예언하라
3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4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5 모든 육체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6 인자야 탄식하되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7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해지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10 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11 그 칼을 손에 잡아 쓸 만하도록 빛나게 하되 죽이는 자의 손에 넘기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빛나게 하였도다 하셨다 하라
12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고관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넘긴 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13 이것이 시험이라 만일 업신여기는 규가 없어지면 어찌할까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이 칼은 죽이는 칼이라 사람들을 둘러싸고 죽이는 큰 칼이로다
15 내가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16 칼아 모이라 오른쪽을 치라 대열을 맞추라 왼쪽을 치라 향한 대로 가라
17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노를 다 풀리로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노라
(묵상/겔 21:1-17)
◆ 재앙 앞에서 무력한 인간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해지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7)
이 예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하기 3-4년 전 즈음에 이루어졌다.
바벨론에서는 에스겔이, 예루살렘 안에서는 예레미야가 똑같은 경고를 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거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는커녕 자신만만했고, 기세가 높았다. 심지어 예루살렘에서 경고하는 예레미야를 때리고 감옥에 가두는 등 박해하였다.
도대체 멸망을 예고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백성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말 불안에 떨고 안달해야 할 자들은 백성들이건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안달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경고하시고 계시다. 관심도 없는 백성들에게 왜 이렇게 끊임없이 경고하시는가? 그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제 재앙이 닥치면, 그 높은 기세는 모두 사라지고, 사람들은 마음이 녹아서 덜덜 떨 것이다. 손에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무릎에 힘이 빠져서 주저앉게 될 것이다. 이들은 재앙이 닥치기 전에 회개했어야 했다.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3)
앞장에서는 푸른 나무, 마른 나무로 비유되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의인과 악인으로 직접적으로 표현하신다. 바벨론의 침략이 이루어지면 악인만 칼에 죽는 것이 아니다. 의인도 함께 죽는다. 이 말씀은 에스겔 18장에서 "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겔 18:30)라고 말씀하신 것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의인이라고 함은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는 단 한 명의 의인도 없었기 때문이다(렘 5:1). 따라서 여기에서 의인과 악인이란 조금 죄를 덜 지은 자와 많이 지은 자 정도의 개념이다.
◆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10)
'내 아들의 규'란 말이나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같은 표현은 70인역 성경에는 없다. 규란 왕의 손에 쥐어진 막대기로서 왕권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칼은 바벨론의 칼이다. 날카롭고 빛나는 칼로서 살육을 위해 잘 연마되었다. 이 칼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무서운 살육이 코 앞에 닥쳤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연덕스럽게 우상을 숭배하고, 여전히 낙천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신다.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문맥상 '너희'를 써야 맞는데, '우리'라고 하신 것이 무척 인상 깊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 편에 있음을 암시하신다. '내 아들의 규'란 다윗의 왕통을 가리킨다고 본다. 비록 유다왕이 타락한 자이지만 그 손에 쥐어진 왕권만큼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인간은 변덕스러워서 쉽게 배신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신실하셔서 끝까지 손을 놓지 않으시고 관계를 끊지 않으신다.
"만일 업신여기는 규가 없어지면 어찌할까"(13)
'업신여기는 규'란 말에서 주어가 생략되는 바람에 해석이 어렵게 되었다. 누가 업신여기는 것일까? 현대어 성경이나 킹제임스성경은 주어를 '칼'로 놓았다. 바벨론 왕은 유다 왕을 죽일 것이다. 그렇게 든든한 존재라고 믿고 의지했던 왕이 죽는다면 백성들은 어찌할까?
사람들은 정부를 의지하고, 대통령을 의지하고, 군대를 의지하지만, 막상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모두 소용없고, 힘도 없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할 뿐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 9:10)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