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26(월)■
(에스겔 22장)
17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8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꺼기가 되었나니 곧 풀무 불 가운데에 있는 놋이나 주석이나 쇠나 납이며 은의 찌꺼기로다
19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다 찌꺼기가 되었은즉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고
20 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쇠나 납이나 주석이나 모아서 풀무 불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노여움과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에 두고 녹이리라
21 내가 너희를 모으고 내 분노의 불을 너희에게 불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되
22 은이 풀무 불 가운데에서 녹는 것 같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으리니 나 여호와가 분노를 너희 위에 쏟은 줄을 너희가 알리라
2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4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25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의 반역함이 우는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그 가운데에 많게 하였으며
26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27 그 가운데에 그 고관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28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였으며
29 이 땅 백성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으므로
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묵상/겔 22:17-31)
◆ 찌꺼기가 된 백성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꺼기가 되었나니"(18)
놋이나 쇠와 같은 금속물을 녹이고 제련을 하다 보면 일명 쇠똥이라는 부스러기가 생긴다. 이것들은 다시 모아서 녹여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작다. 이것들을 한꺼번에 용광로에 집어넣었다는 것은 무엇을 얻고자 함이 아니다. 그냥 내버리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사람들이 이와 같았다. 바벨론은 이미 두 차례나 침략해서 다니엘과 같은 뛰어난 사람들을 모두 잡아갔다. 이제 세 번째 침략이 시작될 것이다. 정신 차릴 만도 하지만, 찌꺼기처럼 된 예루살렘 백성들은 여전히 회개할 생각이 없었다.
대체 당시의 예루살렘의 죄악상이 어떠했을까?
◆ 예루살렘의 죄악상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의 반역함이 우는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 같았도다"(25)
하나님께서 하나씩 들추어내시는 예루살렘의 죄악상은 오늘날 우리들과도 대동소이하다.
먼저 선지자들의 반역이다(25).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명에 살고 죽는 자이어야 하건만, 이들은 그러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유익만을 위해 살았다. 자기들에게 무언가를 갖다주면 축복했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했다(미 3:5).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같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옭아매고 자기 이익을 위해 속였다. 영혼을 삼키고 재산과 보물을 탈취했다. '과부를 그 가운데에 많게 하였다'(26)는 말씀은 이들의 거짓 예언으로 수많은 남자들이 불필요한 전쟁을 치르게 함으로써 희생당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스스로 만든 이야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면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고 떠들어댔다(28). 오늘날 설교자들이 강단에 서서 하나님 말씀은 제쳐놓고 엉뚱한 설교만 하는 꼴이다.
두 번째는 제사장들의 타락이다(26).
이들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행하도록 해야 했다. 백성들에게 거룩함과 속됨을 구별하도록 해야 했다. 그리고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도록 요구해야 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그렇게 살지 않고 그럴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요구하겠는가? 이들의 마음은 제사가 아니라 제물에 가 있다.
세 번째는 고관들의 타락이다(27-28).
이들은 정의를 실천하고 백성을 제대로 다스려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주어진 권력으로 고작 한다는 것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불의를 눈감아 주고 오히려 무죄한 자에게 칼을 휘두른 것이다.
네 번째는 백성들의 타락이다 (29).
지도층만을 탓 할 것이 아니다. 백성들도 뺏고 뺏기는 것은 풍습이 되었다. 사회는 정의와 진리가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힘이 지배하는 짐승들의 장소가 되었다. 힘없고 재산 없는 사람들은 죽어 나갔다.
이러한 죄악상이 오늘날 우리 사회와 많이 닮지 않았는가?
이제는 설교자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반대로 가르쳐도 성도들은 '아멘' 하도록 세뇌되었다.
예수님은 의와 인과 신이 낙타요, 십일조는 하루살이라고 가르쳤지만(마 23:23-24), 이들은 반대로 '십일조'를 성도의 가장 큰 의무요, 낙타로 가르치고 있다. 소경된 인도자들이다. 그래도 성도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선지자, 제사장, 정치인 그리고 백성들까지 타락한 이런 총체적인 부패가 진행될 때 그 사회와 집단은 망한다.
◆ 단 한 사람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30)
하나님을 막아선 사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시고, 많은 기적을 보여주면서 가나안까지 인도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상 가나안 족속들의 장대한 키를 보자 주눅이 들어서 전쟁할 의지를 상실했다. 그리고 자기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원망했다. 배은망덕이다.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그들을 멸하려고 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막아섰다(민 14:11-21). 이러한 막아섬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멸망했을 것이다. 여호수아, 사무엘 등 시대마다 하나님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멸하지 않도록 막아서는 사람, 그런 사람을 찾으셨다. 단 한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그것을 빌미로 용서하려고 하셨다. 그런데 없다. 너무나 신기할 정도로 단 한 명도 없다. 막아서는 사람은커녕, 아예 의인 자체가 한 명도 없다. 과연 이런 성읍을 어떻게 용서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하셨는데, 의인이 단 한 명도 없는 예루살렘을 어떻게 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매일 남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뜨끔해야 한다.
단 한 명만 있어도 되는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탓하겠는가?
나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있으면 교회가 살고 집단이 산다.
비록 내 영향력이 지극히 작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큼은 정직하며 정의가 제대로 행해지도록 하자.
오늘날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성도들은 너무나 찾기 어렵다. 그저 도덕 윤리를 '거룩함'과 착각하는 자들의 외침만이 있을 뿐이다.
거룩함은 윤리적 고상함을 넘어선다. 그것은 금식이나 극기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믿을 때 거룩해지는 것이다.
주님, 제가 남 탓하지 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며 정직하고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거룩한 삶이 실현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