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4(금)■
(골로새서 1장)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묵상/골 1:13-23)
◆ 속량, 죄사함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오늘 본문에서 '그'는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지시고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흑암의 권세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과 각종 사상들이다. 아주 건전해 보이는 교훈조차 종종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흑암의 권세는 철학, 종교, 정치, 교육, 예술 등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다. 내가 벗어나기로 결심한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에서 건져내셨다.
그리고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을 바꾸셨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소속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다.
오, 이 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신앙생활은 이것을 자각해야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
바울은 편지마다 성도들에게 이것을 상기시킨다. 이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자각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조금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전혀 없는 자를 누가 부러워하고 그의 신앙에 관심을 보이겠는가?
온통 세상 사람과 똑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이 추구하는 것에 함께 몰두하는 자를 누가 부러워하겠는가? 죄사함, 영생 이런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가? 내가 하나님 나라 시민인 것을 진심으로 자각하는가?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소속과 신분을 기억하고 감사하라.
주님, 죄사함과 영생을 기뻐합니다. 제가 하나님 나라 시민임을 감사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이 구절에서 언급된 '그'는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킨다.
우리가 얻은 죄사함과 하나님 나라 시민을 자각하려면 먼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분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폐암 걸린 한 아주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는 이미 교회를 다니고 있으며, 예수 믿고 있다고 말했지만 죄사함의 확신도 없었고, 천국의 소망도 없었다. 내가 복음을 설명하자 머리로는 복음의 내용을 다 이해했다. 그러나 그 마음과 양심이 동의하지 못했다.
나는 전도 방식을 바꾸었다. 복음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설명했다.
한 시간 이상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했다. 그러자 갑자기 이 아주머니는 눈을 반짝이면서 "아, 알겠어요. 제가 예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이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하늘나라로 갔다. 죽기 일주일 전에 친구 목사가 방문해서 그분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를 물었다. 암이 퍼져서 눈도 안 보이고 말도 잘 못 하는 상황이 된 그 아주머니는 종이에 펜으로 글을 썼다. "죽으면 살리라"
수많은 신학 지식이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분을 모르면 나의 구원은 단지 지식일 뿐 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영생은 어떤 물건이 아니다. 예수님과 내가 서로 아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요 17:3). 내가 구원받았는지 못 받았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주님이 어떤 분인지에 초점을 맞추어라.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이 단지 위대한 스승 정도가 아니다.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셨다(firstborn).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피조물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조물이 아님을 가리킨다.
아무리 자기 집 가구가 비싼 것이라고 해도, 가구와 자기 자식을 동일시하는 부모는 없다. 가구는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아들은 자기가 낳은 존재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 만물의 존재 목적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창조되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모든 천사는 부리기 위해서 창조되었지만, 오직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존재로 하나님께서 낳으신 분이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만일 누가 나를 살리기 위해서 큰 돈을 지출했다면 그것은 은혜다. 그러나 나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지불했다면 그것은 정말 놀라운 은혜다. 평생 다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다. 왜 사람들이 감격하지 않는가? 그분이 어떤 분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만물이 창조된 목적이 바로 그분을 위해서인데, 오히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다니!
이것은 도저히 인간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우리 인간들 사이에서는 자기를 위해 만든 것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일은 절대로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미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그런 일을 하셨다.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충격이며 나로 할 말이 없게 한다. 왜 날 사랑하시는가?
성전에서는 숯을 집는 지저분한 집게마저도 거룩하다.
성전에 속한 기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형편없어 보일지라도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거룩하고 존귀한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어찌 놀랍지 않은가?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얼마나 존귀하고 거룩한 신분이 되었는지를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 얼마나 엄청난 분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이 하신 십자가의 공로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십자가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자기 의를 보태려고 애쓴다.
태양이 1초간 발산하는 에너지가 50억의 인구가 천만년 동안 쓰는 에너지와 같다고 한다. 태양을 알게 되면 그 앞에서 열기에 보탬이 되라고 성냥불을 켜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저 태양 빛을 찾아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누릴 따름이다. 당신이 할 일은 감사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라. 그러면 내 삶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주 예수님,
저를 구원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저를 거룩한 성도로 삼아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어떠하심을 더욱 알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주님께서 베푸신 그 큰 은혜를 제대로 알게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