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6(수)■
(골로새서 3장)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묵상/골 3:18-19)
◆ 아내들아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오늘 본문은 부부에게 아주 특이한 명령을 한다.
아내에게는 복종하라고 하고, 남편에게는 사랑하라고 한다.
단순히 서로 사랑하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아내에게는 '복종'을, 남편에게는 '사랑'을 명령했을까?
복종하라는 말씀에서 '복종'은 헬라어 '휘포탓소'라는 말로 20절의 부모에게 '순종'하라의 '휘파쿠오'라는 말과 구분된다. 휘포탓소는 로마서 13장 1절에서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라는 단어로도 사용되었다. 베드로가 "젊은 자들아 이와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라"(벧전 5:5)이라고 명령할 때 '순복'이란 단어에도 사용되었다.
즉 복종하라는 이 말씀은 노예처럼 복종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집에서의 질서를 받아들일 것을 권한 것이다. 즉 학교에서 교감과 교장 중에 아무리 교감이 똑똑해도 마지막 결재는 교장이 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복종하라는 명령은 바울 개인의 편향된 사상이 아니다.
베드로도 동일하게 명령하고 있다 (벧전 3:1).
그리고 이 명령의 근거가 당시의 문화가 아니다.
창조 기사에 근거를 둔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고전 11:8, 9)
따라서 이 말씀은 시대에 뒤떨어진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인간의 본질을 꿰뚫은 말씀이다.
물론 남편이 어리석으며 멍청한 사람이라고 믿는 여자들에게는 '복종하라'는 명령이 무척 불편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여자 중에 10명 중 9명은 자신이 남편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상당 부분 맞다. 차라리 성경이 '남편들아 아내에게 복종하라'고 했더라면 이 세상의 모든 가정이 훨씬 더 화목해지고 가정이 더 윤택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더 가정을 잘 돌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양보하지 않는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우리가 믿음에 깊이 들어가면 복종의 위치에 있는 것이 다스리는 위치보다 훨씬 더 복됨을 알 것이다. 최고의 권위는 오로지 하나님뿐이시다. 복종을 배운 사람만이 다스릴 자격이 있다. 내가 으뜸이 되지 않는 것을 불평하는 자는 오히려 천국과 거리가 멀다 (마 20:27). 이것을 깨달으면 으뜸이 되기보다 오히려 종의 자리에 있으려고 할 것이다.
모범적인 가정이란 질서가 있는 가정이다.
매일 싸우는 이유는 서로 자신이 옳다고 우기기 때문이며,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힘으로 상대방을 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매일 싸우는 가정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비극이다. 매일 싸우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본인과 아이들에게 유익하다. 남편이 부족해도 권위를 인정해주고 결론을 내리도록 하면, 남편도 조심할 것이다.
거기에서 아이들도 권위 인정과 복종을 배우면서 안정적으로 자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회생활에서도 항상 권력을 많이 쥔 자들이 문제로 보인다. 학교생활에서도 교감이 차라리 교장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러나 모든 교장이 왕년에 교감이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 남편들아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너무나 뻔해 보이는 이 명령이 오늘날 거의 실천되지 않고 있다.
남편들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충실해야 할 대상이 아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남자가 아내를 제외한 모든 여자에게 충실히 하려고 한다.
많은 남자가 아내에게 실망한 이유로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지만 결국 똑같은 이유로 다시 이혼한다.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명한다.
아내를 칭찬하기는커녕 매일 아내의 잘못을 지적하며 트집 잡고 있다.
화장품 뚜껑을 왜 안 닫았냐?
아침 설겆이거리가 왜 저녁까지 있느냐?
잘못된 지적질이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소위 옳은 지적질이 사람을 괴롭힌다.
지적질에는 관용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율법 아래 있는 자가 왜 저주 아래 있는가? 율법이 옳지 않아서가 아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이 율법 노릇을 하고 있으니 아내가 얼마나 괴롭겠는가?
아내에게 율법 노릇하지 말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처럼 하라.
지적하지 말고 당신이 묵묵히 처리해라. 그것이 사랑이다.
지적하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그것이 괴롭힘에 불과하다.
남편의 권위를 인정해주니까, 정말로 자기가 잘난 줄 알고 폭군처럼 임하는 남자들은 대책이 없는 자다.
무엇이든지 자기 멋대로 하려고 하고 자기 고집이 통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힘으로 누르려고 한다.
많은 남자가 마치 3살짜리 아이가 떼를 쓰는 것처럼 살고 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말라.
부부 사이에 자존심 내세우는 것처럼 못난 것이 없다. 그리고 한번 양보하면 평생 밀릴 것이라는 두려움이야 말로 망상이다. 감자를 소금 찍어 먹는 아내에게 고추장 찍어 먹을 것을 강요하는 남편들아, 정신 차려라. 왜 그런 것이 싸움이 되어야 하는가?
완고함은 우상숭배의 죄와 같은 것이다 (삼상 15:23).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고자 하는 아주 무서운 원죄에서 비롯된 성질이다. 고집을 버려라.
남편들은 10개의 의견 중에 6개 이상을 부인에게 양보할 생각 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면서,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면서 영적으로도 충만해진다. 이것은 모든 성령 충만한 자들의 공통된 간증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오, 많은 부부들이 이 말씀을 상대방에게 지키라고 강요한다.
어리석고 통탄할 일이다. 상대방이 지키든 말든, 나는 내게 주어진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미 많은 허물이 있다.
이것은 나의 회개 제목이다. 이제 오래된 습관을 버려야 할 때다. 남은 생애만이라도 말씀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주님,
내게 주어진 이 명령,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나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아내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