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3(수)■
(골로새서 4장)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묵상/골 4:7-17)
◆ 그리스도 안의 형제들
골로새서 마지막 부분이다.
바울은 여러 형제들을 소개한다.
* 두기고 - 사랑받는 형제, 신실한 일꾼,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
* 아리스다고 - 바울과 함께 갇힌 자, 할례파 (유대인).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자
* 마가 - 바나바의 조카, 유대인, 히브리 본명은 요한이나 로마식 이름으로 마가라고 부름. 마가복음을 기록했음.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자
* 유스도 - 본명이 예수 (아마도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이름을 바꾼 듯 함), 유대인.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자
* 에바브라 - 그리스도 예수의 종. 골로새 형제들을 위해 애써 기도하는 자. 골로새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히에라볼리 교회 등을 돌아보는 자, 많이 수고하는 자.
* 누가 -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는 이방인이지만 늘 바울과 함께했으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음.
* 데마 - 유일하게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는 후에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떠난다(딤후 4:10).
* 눔바 - 여자, 자기 집을 교회 모임 장소로 제공함.
* 아킵보 - 주 안에서 직분을 받음.
바울은 자신과 함께하는 이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라오디게아 교회와 골로새 교회를 서로 연결한다. 이들은 서로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바울에 의해서 연결되고 있다. 이것이 교회다. 이렇게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다. 오직 우리 교회만이 최고라고 하는 자는 아직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다. 아직도 교회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자만이 가지는 오만이고 착각이다. 그리스도께서 주인되시는 교회는 예외없이 귀한 교회다. 반면에 인간이 왕이 된 교회는 더는 교회가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 두기고, 에바브라 등에는 일꾼, 그리스도 예수의 종 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이 말은 교회를 위해 특별히 수고하고 있는 자임을 의미한다. 교회에는 언제나 남보다 수고하는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이 없는 교회는 곧 소멸된다.
그리스도의 일꾼, 주의 종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단어는 수고의 개념이지 신분의 개념이 아니다. 두기고나 에바브라가 '일꾼,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칭해졌다고 해서 그들이 마가나 누가보다 신분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초대교회에서는 주님의 종이나 일꾼이란 말이 다른 사람과 신분을 구분하는 용어로 사용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다만 우리는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자들을 고맙게 여기고 그들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사용된 일꾼이란 단어 '디아코노스'는 시중드는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디모데전서 3장에는 '집사'로 번역되기도 한다(딤전 3:8).
눔바라는 자매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 자매는 자기 집을 교회 모임 장소로 제공했다. 이 정도 되려면 당시 사회에서 매우 재력이 있는 자매이거나 귀족층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여자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약자였지만, 가끔 이렇게 뛰어난 자매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자매들은 교회에 매우 훌륭한 도움을 주었다. 바울은 사역에 있어서 여자와 남자를 구별했지만, 바울 자신도 융통성을 가졌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눔바나 브리스길라(행 18:26)나 뵈뵈(롬 16:1)도 그중에 하나다. 우리는 뛰어난 자매들에게는 사역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아킵보에게는 받은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든 영광스럽게 여기고 충성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직분을 맡길 때 사양하는데, 직분은 감투가 아니다. 섬김이다. 우리가 섬김을 어떻게 사양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이 감투 개념이라면 사양하라.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에는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다. 새로운 사회(New society)다.
우리는 교회의 형제들을 통해서 언어와 행동, 그리고 기독교적 가치관들을 배운다. 그것은 단지 설교로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 함으로써, 그리고 교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것이다. 단순히 예배만 같이 드려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교회는 함께 교제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주님,
형제들이 교회 공동체로 함께 한다는 것이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제가 교회 공동체에 속하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고, 무슨 일이든 함께 기도하는 귀한 공동체를 이루게 해주십시오.
첫댓글 교회가 이런 아름답고 귀한 공동체임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실천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특히 교회 직분이 무슨 큰 감투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바르게 알고 귀한 일군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