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5(금)■
(욥기 1장)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13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14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15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6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7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8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9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묵상/욥 1:6-22)
◆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탄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위의 장면은 욥기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장면이다. 마치 사탄이 하나님께서 부리는 종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탄은 결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사탄도 만드셨지만, 처음부터 사탄으로 만들지는 않으셨고, 그가 교만하여 타락함으로써 사탄이 되었다(사 14:12). 그리고 사탄은 더는 천상에 있지 못하고 세상을 배회하는 존재가 되었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즉시 소멸하지 않으셨을까?
우리의 이해가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경륜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사탄의 반역을 당분간 묵과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고자 하셨다. 무릇 진정한 고수는 하수의 공격을 오히려 승리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단테의 소설에서 사탄은 이렇게 한탄한다. "나는 늘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을 유익하게 하는 자다"
마귀는 사람들을 선동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부추겼지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을 구속하셨다. 그 깊은 뜻을 마귀가 어찌 알겠는가?
세상의 음양설은 선과 악, 빛과 어둠 등 마치 둘이 본래부터 있었고 서로 대등한 것처럼 해석한다. 현상적으로 보면 그럴싸하다. 그러나 옳지 않다. 온 우주는 오직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결국은 모든 것이 그분에게 굴복하게 될 것이다. 오늘 욥기 본문은 사탄이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가 아닌 오히려 왕 앞에 끌려온 도둑과 같은 존재임을 보여준다.
◆ 하나님의 울타리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욥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욥이 형통한 것은 욥의 의로움 때문인가, 하나님의 울타리 때문인가?
둘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 둘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의롭게 살면 그 의를 근거로 복 받고 형통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어린 자녀가 밥을 잘 먹고 빈 그릇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는지를 과시하면 부모는 웃으면서 칭찬한다. 어린 자녀는 그것을 근거로 장난감을 사줄 것을 요구할 때 얼마나 어이없는가? 그리고 그런 것을 권리처럼 여기며 누리다가 막상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큰 은혜 가운데 살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복된 삶을 살게 된 것은 그분이 울타리를 쳐주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은총때문에 우리가 숨 쉬고 하루하루 감사하게 살 수 있다. 오, 그것은 나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총일 뿐이다. 그분께서 울타리를 거둬내신들 우리가 항의할 근거란 없다. 내가 의롭다고 그분에게 복을 내리셔야 할 의무가 있을까?
욥의 친구 엘리후는 이렇게 지적한다. "또 욥께서 의로운 일을 하셨다고 한들 하나님께 무슨 보탬이 되며, 하나님이 어른에게서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욥 35:7. 표준새번역)
하나님은 욥을 치지 않으셨다.
단지 울타리를 거두신 것뿐이다.
인간은 왜 거두십니까 항의할 권리가 없다. 요나가 뜨거운 햇빛에서 고달파할 때 박넝쿨이 솟아올라 그늘이 되자 너무나 기뻐했다. 그런데 박넝쿨이 금방 시들어버리자 하나님을 원망했다(욘 3:6-9). 그런데 그것이 왜 하나님께서 원망들을 일일까? 하나님은 요나를 시원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도대체 누가 주인이고 누가 하인인가?
그런데 사람들은 그 항의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기가 우주의 중심인 줄 알고 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탄은 인간이 울타리 안에서 우쭐대며 사는 것이 너무나 가소롭다. 울타리만 거둬내시면 인간들은 한 주먹 감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욥기를 통해서 우리를 일깨우신다. 우리의 모든 복은 우리의 의로움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 은총의 결과임을.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깨닫기를 원하신다. 이 세상이 엉망진창인 것같아도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에 이렇게 연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욥기가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 중에 하나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움에 기대서 무엇을 요구하지 말자. 우리가 의롭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어야만 할 의무는 없다. 다만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우리의 선한 삶을 기뻐하실 따름이다.
울타리를 쳐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자.
무엇을 구할 때도 우리의 의를 의지해서 구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자.
◆ 욥의 고난
욥의 고난은 며칠에 걸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하루 만에 모두 일어났다.
모든 소유의 상실, 그리고 열 명이나 되는 자녀의 죽음.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어쩌면 그렇게 지독할 정도로 줄줄이 달고 오는지.
갑자기 사업이 망해서 어리벙벙해 있는데, 거기에 자녀까지 죽었다는 소식이 전달된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모든 자녀가 몰살했다. 현실인지 꿈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질 것이다.
욥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다. 욥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21)
욥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고백이다. 누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아주 귀한 신앙의 본이다.
욥의 고난에 비하면 사기당한 것이나 불합격한 것이나, 심지어 불치의 병에 걸린 것조차도 '겨우 그런 것 가지고'라고 할 만하다.
욥의 신앙고백은 조그마한 어려움에도 원망하기 좋아하는 우리의 신앙이야말로 엉터리이며 가짜였음을 깨닫게 한다.
욥이 고난을 겪으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라는 사탄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맞았다.
그러나 욥기가 여기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욥기는 계속 이어진다. 아직 우리에게 주실 교훈이 더 있단 말인가? 있다. 욥기는 우리를 더욱 심오한 신앙의 경지로 이끌어 갈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저의 울타리가 되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제가 이 주님의 울타리 은총때문에 이렇게 복되게 삽니다. 그리고 욥처럼 아름다운 신앙, 곧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입으로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오히려 예배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