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8(월)■
(욥기 3장)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4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5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6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7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8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9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10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13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14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15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16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18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19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20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21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22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23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24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25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묵상/욥 3:1-26)
◆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하다
(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모든 재산을 잃고, 자식도 죽었다. 게다가 온몸에 종기가 끊임없이 괴롭힌다.
욥은 죽기를 바랬다. 마치 땅속에 있는 보배를 열심히 찾듯이 그렇게 죽음을 구했다(21).
자살하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지만, 욥에게 자살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며, 신앙을 완전히 버려야 가능한데 그것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사는 것이 고통이지만 죽을 수도 없는 욥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욥은 마침내 자기 생일을 저주한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3)
아니, 아예 잉태되지도 못했다면 좋았을 것을. (3)
왜 나는 낙태되지 않았던가? (11)
그랬다면 내가 지금 이런 고통과 비참함을 겪지 않았을 텐데...
생일을 저주한다는 것은 지금 욥이 겪는 고통이 지금까지 누렸던 모든 부귀영화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에 쌓았던 재물과 지식과 명성이 모두 헛되고 헛됨을 선언하는 것이다. 과거란 마치 꿈과 같은 것이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고통 속에 있는 욥의 마음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가 생일을 저주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절망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해보게 된다.
◆ 욥의 내세관
(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욥은 죽음을 찬미하고 있다.
욥에게는 죽어서 가는 스올이 마치 거대한 쉼터였다. 욥의 내세관을 보면 의인이나 악인이나 가는 곳이 똑같은 곳, 곧 스올이었다(전 9:10, 창 42:38).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욥이 훌륭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그의 말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뒤에 욥은 여러 잘못된 생각에 대해 하나님께 책망을 들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의 내세관은 어긋나는 부분들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계시는 예수님의 신약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제대로 드러난다. 계시란 모호한 것에서 뚜렷한 것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모호한 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뚜렷한 것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 시대 사람들의 내세관에 의해서 신약의 진리를 좌우하면 안 된다.
그러나 구약 시대 사람들도 죽고 난 뒤에 분명히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 고난에 대한 질문
(20)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고난은 예로부터 해석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런 고난을 받게 하실 것이라면 왜 태어나게 하셨던가?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인생들.
도대체 인생의 의미가 무엇일까?
"내가 않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24)
전에 어머님 간호 차 병원에 있을 때, 옆 침대에 암에 걸린 할머니가 있었는데, 끊임없이 아이고 아프다를 반복했다. 그의 끊임없는 신음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욥의 끊임없는 고통이 아마도 그와 비슷했을 것이다.
음식을 삼키기도 힘들 정도며 쉬지 않고 신음할 수밖에 없는 육신의 고통(24)
그런 고통을 당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만 있다면 그래도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 있을 텐데, 욥은 침묵하는 하나님 앞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26). 이러한 욥의 고통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진정한 신앙이란 평온할 때는 구별되지 않으나, 고난이 닥치면 비로소 구별된다.
욥은 조금만 힘든 일이 닥쳐도 쉽게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이런 고통 속에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린 것 같은 이런 상황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견디는 욥의 신앙은 참으로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너무나 귀하다.
비록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셨지만, 하나님의 눈은 욥에게 고정되어 있으셨다.
예레미야의 기도가 기억난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애 3: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