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1월11일(화)■
(로마서 7장)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묵상/롬 7:14-20)
◆ 죄 아래 팔린 자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사람이 신앙을 갖게 되면 계명을 지키려고 한다.
그런데 내 속에 계명에 반발하는 그 무엇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 싸움이 시작된다.
컵 안의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없는 것이 아니다. 압력을 가하는 순간 버티기 시작하고 더 큰 압력을 가하면 결국 컵이 터진다.
죄는 공기처럼 실체가 안 보여서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지만, 막상 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순간 그 실체를 드러낸다. 가혹하게 밀어붙이면,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지배해버린다. 내 육신이 내 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그의 종이었다.
자기를 제어하지 않았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자기를 제어하려고 하는 순간부터 싸움이 시작되고, 처절한 고통이 발생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행하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는 것을 행할 때 깜짝 놀란다. 설교는 멋지게 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할 때 나 자신을 멸시하게 되고, 자학하게 된다. 심지어 자기 환멸에 자살하는 자도 있다.
오늘날 강박증 환자나 정신병자 중에 종교인들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자신에 대한 실망과 거기에 따른 자기 멸시, 그리고 자학이 심하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분이 있었다. 폐인이 된 그분 때문에 가족 모두가 고통을 당했다. 부인과 아들이 간절히 호소하고, 본인도 종종 눈물을 흘리며 끊겠다고 했지만, 그 결심은 언제나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란 무척 어렵다.
사람들은 중독이라고 하면 알코올, 도박, 마약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중독은 그런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중독에 빠져있다. 이런 것을 끊으려고 하는 순간 내 온몸이 아우성치는 것을 보면 중독임이 틀림없다.
특히 마음에서 일어나는 죄는 제어가 불가능하다.
성적인 탐심, 미움, 시기, 하나님을 대적하는 생각 등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또렷하게 생각난다.
루터는 복음을 깨닫기 전에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하루에 빵 한 조각, 물 한 컵으로 살기도 하고, 돌베게를 베고 자기도 하고, 금식과 철야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수행했다. 기도 중에 엉뚱한 생각을 하는 자기를 몽둥이로 때려서 기절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결코 마음의 평화와 정화를 체험할 수 없었다.
아무리 고백해도 다 파낼 수 없는 과거의 죄.
끊임없이 발생하는 악한 생각.
한계까지 밀어붙이지만 아직 멀었다고 야단치시는 하나님.
마침내 루터는 자신과 하나님께 분노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나는 그분을 오히려 증오한다!"
루터가 증오한 하나님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 시대의 종교인들이 만들어낸 우상일뿐이었다. 후에 루터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오해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것을 행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 실체를 밝힌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17)
이 죄의 실체를 느껴보았는가?
아직 느껴보지 못했다면, 당신은 한 번도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려고 애써보지 않은 사람이다. 교회만 다닐 뿐, 거듭난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실체를 느끼고 처절한 싸움 속에서 지친 자들에게는 이런 위로를 전하고 싶다.
"이것을 행하는 자는 당신이 아닙니다. 당신 안에 거하는 죄입니다."
이 메시지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단순한 책임회피인가?
죄에 책임을 미루고 속 편하게 살자는 의미인가?
아니다. 이 메시지는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음을 알리는 메시지다. 헛된 노력을 내려놓으라는 메시지다. 너무 자학하지 말라. 하나님도 당신의 연약함을 잘 아신다. 새삼스럽게 변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죄를 지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해방의 길을 제시하려고 함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의지와 노력이 아니다.
내 속에 있는 죄는 그런 것으로 극복될 대상이 아니다.
누군가 구원해주시는 것이다.
내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주가 필요하다.
구주께서 나를 해방하신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갈망이다.
로마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해방의 길을 알려줄 것이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 3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