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0일(화)■
(창세기 26장)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묵상/창 26:6-16)
◆ 이삭의 두려움과 오해
(7) 그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삭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을 벗어나지 않았다.
블레셋 사람들의 거주 지역인 그랄에 거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아브라함과 똑같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
부전자전이란 말이 나올 만한 행위다. 정말로 그 당시의 풍습이 남의 아내가 아름다우면 남편을 죽이고 빼앗는 그런 풍습 때문일까, 아니면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지나친 피해의식일까?
아마도 당시에 남편을 죽이고 아내를 빼앗는 사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아비멜렉에게 이 사실을 들켰을 때, 아비멜렉은 그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서 이삭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깜짝 놀라면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자기 백성이 죄를 지을 뻔했음을 지적했다. 한마디로 그들조차 이런 것이 죄임을 인식하고, 그런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삭은 한 두가지 사건을 일반화함으로써 생긴 지나친 두려움과 오해를 가진 듯 하다.
이삭은 이방족속을 모두 '악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게도 양심이 있고, 어느 정도의 기본예절이 있었다. 아직은 하나님께서 멸하실 지경까지는 아니었다.
우리는 매일 지구 어느 구석에서 일어나는 엽기적인 뉴스를 바로 그날그날 접한다. 내 주변에서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는 사건임에도 매일 뉴스가 그런 것으로 도배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모든 사람에 대해 두려움과 피해의식이 생긴다.
이런 피해의식과 두려움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고, 필요 이상의 과잉 반응을 하게 한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지나친 조바심은 우리 영혼을 어둡게 하고, 믿음을 갉아 먹는다(눅 21:34).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눅 12:6,7)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이 세상의 통치자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두움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어두움은 단지 빛이 없는 곳에 생기는 것일 뿐이다.
◆ 이삭이 받은 복과 곤경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무려 백 배가 되는 추수를 하게 하셨다.
이삭이 마침내 거대한 부자가 되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아졌다. 이제는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기로 하면 백배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서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
그리고 이삭에게 떠날 것을 강요한다.
이제 겨우 정착하고, 농사가 제법 잘 되는 상황인데, 경작한 땅과 우물을 모두 버리고 이사 가란다.
백 배나 되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것은 막아주시지 않으실까?
타인의 견제와 시기를 받아보았는가?
단순히 시기로 끝나면 괜찮겠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져서 괴롭히고, 방해하고, 적대한다면 어떨까?
종종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 개입하지 않으시고 공격당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을 보면 속상하고 답답하다. 하나님께서 과연 내게 복을 주시긴 한 것인가 의심이 된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두 그러한 상황을 당했음을 생각하면 위로가 될 것이다.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다고 해서, 사람들이 나를 소외시킨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니다.
이제 쫓겨나게 된 이삭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인생은 이렇게 행복과 곤경이 늘 반복된다.
전도서의 교훈을 명심하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 7: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