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3일(금)■
(창세기 27장)
30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31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32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35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36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38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39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42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사람을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니
43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44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묵상/창 27:30-46)
◆ 에서의 통곡
(34)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야곱에게 축복을 마치자, 곧이어 에서가 들어왔다. 야곱이 아슬아슬하게 피한 셈이 되었다.
에서는 아비 이삭으로부터 축복받지 못하게 되자 통곡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더는 축복할 수 없다는 이삭의 태도에 의아해할 것이다.
하나님께 사정을 아뢰고 아까 한 축복을 무효로 돌리고 다시 축복하면 왜 안 될까?
속아서 했다면, 그 축복은 원천 무효가 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축복의 원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축복할 때, 그 축복받는 사람이 거기에 합당할 때 그대로 임하고,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게 되어있다(눅 10:5-6).
그런데 왜 이삭은 에서를 재차 축복하기를 거절했을까?
일단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말로만 한 계약일지라도 결코 번복하지 않는 신실한 사람들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삭은 진작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자기가 의도치 않게 상황이 흘러가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듯하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는 축복은 말뿐이 아니라 실제적이다. 이삭이 야곱에게 한 축복이나, 야곱이 그 자식들에게 한 축복이 역사적으로 그대로 임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예언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에서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으로, 그리고 이삭에서 에서가 아니라 야곱으로 택하심을 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사가 차례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다.
◆ 에서를 향한 이삭의 예언
(39)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야곱에게 복을 빌고, 영적 족보를 넘겨준 이삭에게 더는 남은 것이 없었다.
야곱에게 한 축복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창 27:28)과 견줄만한 축복이 어디 있을까?
에서가 울며 간구하자, 이삭은 예언적인 말을 남긴다.
39, 40절의 말씀은 개역개정이 무척 어렵게 번역해 놓았다. 표준새번역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네가 살 곳은 땅이 기름지지 않고, 하늘에서 이슬도 내리지 않는 곳이다. 너는 칼을 의지하고 살 것이며, 너의 아우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애써 힘을 기르면, 너는, 그가 네 목에 씌운 멍에를 부술 것이다."
도저히 축복이라고 볼 수 없는 예언이다. 그러나 이삭은 사랑하는 에서를 위해 한 가지 힌트를 준다.
"힘을 기르면. 네 목에 씌운 멍에를 부술 것이다."
즉 힘을 기르면, 아우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에서는 야곱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그를 죽이고 싶어 한다. 결국 야곱은 형의 분노를 피해서 삼촌 집으로 피신하게 된다.
과연 이삭의 한 축복은 야곱에게 그대로 임했을까?
이삭의 축복은 야곱 당대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후에 야곱의 자손들이 에돔 자손들을 지배하면서 성취되었지만, 막상 야곱의 생전에는 형을 속이고 아비를 속여서 얻은 이득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막심한 손해를 보았다. 차라리 속이지 않고 형과 사이좋게 지냈으면 이삭의 재산을 절반은 받았을 것이고 그러면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속이는 바람에 야곱은 빈털터리로 삼촌네 집으로 피신해야 했고, 거기에서 삼촌에게서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 겨우 수백 마리의 양과 소들을 얻었을 뿐이었다. 반면에 에서는 아비의 거대한 재산과 종과 곡식과 토지를 모두 물려받았고, 아버지의 조언을 따라 힘을 기른 에서는 후에 야곱과 다시 만날 때, 무려 400명이나 되는 부하를 이끌고 야곱 앞에 나타난다.
만일 야곱이 자기 인생이 이렇게 꼬일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장자의 명분도, 아비의 축복도 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곱은 후에 애굽의 바로가 나이를 묻자, 나이를 말하면서 자기 인생을 이렇게 평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그러나 야곱은 그 험악한 세월 속에서 에서가 갖지 못한 놀라운 것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더 깊이 믿게 된 것이다. 에서의 모든 재산보다 더 위대한 재산이 바로 하나님이었다.
아,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이 성도의 가장 귀한 재산임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거대한 회사를 소유한 재벌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이제 야곱의 고생길을 살펴볼 차례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의 영원한 기업이 되어주심을 감사합니다.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며, 감사가 넘치기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