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6일(월)■
(창세기 28장)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묵상/창 28:10-22)
◆ 돌베게를 베고 자는 야곱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 까지, 여행을 떠났다.
브엘세바에서 하란 까지는 도보 거리로 대략 850km 정도이며, 벧엘 까지는 대략 도보 거리가 110km다.
길에서 유숙하기 위해 야곱은 돌을 베개 삼아서 잤다.
돌을 베고 자야 하는 야곱의 모습이 초라하고, 처량하다. 거부 이삭의 집에서 풍족하게 살던 야곱이 이렇게 전락했다.
그런데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야곱에게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셨던 약속을 반복하셨다.
이 땅을 주겠다. 네 자손이 티끌같이 많게 될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그런데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는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창 22:18, 창 26:4))라고 하셨지만, 야곱에게는 '너와 네 자손'이라고 하시며 야곱까지 포함시키신다. 이것이 매우 특이하다. 이 말씀은 후에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실 의도를 암시하셨다고 생각한다.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는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에 구주가 되심으로서 성취되었고, 또한 야곱의 이름인 이스라엘은 성경을 기록하여 남긴 것과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함으로써 온 세계에 큰 유익을 주었다.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고 하셨는데, 이 예언의 성취로 복 받게 된 자들이 바로 성도 된 우리다.
할렐루야!
◆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심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시며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이 약속은, 홀로 먼 곳으로 가야 하는 야곱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야곱은 잘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셔서 함께하시고, 지키시고, 이끄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런 전적인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도대체 야곱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이 안 나온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냥 이유 없이 좋아하시기로 작정하신 것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사람들은 구원이나 영생의 원인을 사람의 공로에서 찾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 은혜임을 알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훌륭해서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니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네 하는 것을 봐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다면, 야곱은 자포자기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결단 이전에 이미 찾아오셨고, 그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이다.
어떤 사람들은 '무조건적 선택'이 무척 불공정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무기력한 인간은 이 무조건적인 선택 때문에 살길을 얻을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이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무조건적인 선택이 아니었다면 내가 예수님에게 관심조차 가지지도 못했을 것이고, 믿었을 리도 없으며, 구원을 받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왜 선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선택하지 않고, 이렇게 일부만을 선택하시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선택받은 나로서는 그저 그 은혜에 감격할 따름이다.
◆ 벧엘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이 장소를 벧엘이라고 칭했는데, '벧'은 '집'이란 의미이고, '엘'은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즉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은 무소 부재하시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이 벧엘에 계시다고 믿었다(16). 초신자나 할만한 상상이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경험은 마치 성도들이 자기 생애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야곱은 이때부터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우리도 하나님을 만난 바로 거기에서부터 신앙이 시작된다.
야곱은 자기가 베고 잤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베고 잔 돌이 컸을 리는 없을 테니 지극히 소박한 기둥이다. 그는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자리에 돌아와서 다시 하나님을 경배하겠다는 약속이다.
◆ 야곱의 서원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자기를 찾아오신 하나님께 서원했다.
평생 하나님을 섬길 것을 서원했고,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자기의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이 약속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헌금하기를 아까워하는 자는 단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믿게 되면 헌금이 아깝지 않다.
그런데 당시에 교회도 없고 제사장도 없던 시절에 십일조는 도대체 어디에 드렸을까?
이것은 연구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욥기에서 미루어볼 때, 아마도 당시 나그네와 고아,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베푼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욥 29:12).
야곱이 어떻게 십일조를 드렸는지는 모르지만, 신약에 와서는 확실한 것은 강제적 십일조는 폐지되었으며 오로지 자발적인 헌금만이 유효할 뿐이다(고후 9:7). 오늘날 한국교회에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감사하다. 헌금은 교회를 활력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한국교회는 상당수가 헌금을 오로지 교회에 바칠 때만 유효하다고 가르치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어려운 친척, 이웃, 교회 형제들을 돌아보아야 한다(마 25:40). 나는 이런 헌금관을 깨닫고 난 뒤에 여러 형제들과 나누었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실천한 형제들을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더욱 풍성하게 하셨다. 과거보다 더 많이 드리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더욱 풍족하게 하셨다.
주님,
저를 선택하셔서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약속하신 복이 우리에게 미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