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일(토)■
(요한계시록 1장)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묵상/계 1:4-8)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5)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성도는 그의 피, 곧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죄에서 해방된 사람이다.
아,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 죄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지불되었다. 이처럼 확실한 보증이 어디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불한 값은 온 우주의 모든 것과도 바꿀 수 없이 값진 것이다. 이 아들의 피가 우리로 감히 거룩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용기를 준다.
인생을 돌아보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도 많고, 부끄러운 일도 참 많다. 가슴을 치며 회개해도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순 없다. 정정당당히 죗값을 치르겠다고? 죗값이 사망이며, 지옥임을 알고 있는가? 지옥의 실체를 안다면 겁 없이 그렇게 말할 순 없다. 그리고 내가 그런 고통 속에 있다고 엎질러진 물이 다시 담아지는가?
비겁하다고 욕먹고, 오만가지 비난을 받아도 나는 지옥만큼은 피하고 싶다. 지옥의 무서운 점은 영원이라는 속성 때문이다. 십만 년이 아니라, 십억 년이 아니라 영원히 있다는 것이 정말로 무섭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한없이 비굴해져도 좋고, 한없이 비천해져도 좋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자존심을 버린다. 그분의 긍휼을 한 조각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데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피를 흘리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 대신 죄의 대가를 치르셨다. 이 은총을 어떻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 나라와 제사장이 된 성도들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시고,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많은 성도가 목사만이 제사장으로 알고 있다. 이런 사고가 참된 신약교회관을 잃어버리게 했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구약적이고, 유치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대학생에게 초등학교 시스템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주일날에 예배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사람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있든 없든 그 차이를 못 느낀다. 마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은 지금 나라의 체제가 민주주의인지 왕정인지 별 차이를 못 느끼는 것과 같다. 인권이 박탈되고 나서야 체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된다.
오늘날은 신학교 졸업하고 안수받은 사람을 성직자 계급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평신도 계급으로 나누었다. 도대체 신학교 졸업하고 안수받았다는 이유로 신분이 일반 성도와 다른 성직자로 변화될 수 있다는 발상은 어디서 왔는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이것은 구약적도 아니고, 지극히 세상적일 뿐이다. 오늘날 자격증을 남발하는 세상과 다를 바가 없다.
오늘 본문에 명확하게 우리가 모두 '제사장'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3대 원리 중의 하나가 '만민 제사장'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가 교회의 목사를 가볍게 보거나 무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은 교회의 장로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목회 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자격증만으로 목사 행세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진정한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오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따라서 교회가 세운 장로야말로 진정한 권위다. 신학교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다.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교육시스템일 뿐이다. 심지어 많은 이익이 얽혀있는 세상 교육기관과 다를 바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받은 자격증으로 교회에 신분이 갈린다는 것은 교회를 오히려 세속화시킨다. 칼빈조차 누구에게 안수받아서 목사가 된 자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추대되어서 목사가 된 자다.
장로교 창시자 칼빈은 목사가 장로 중의 하나임을 분명히 했다. 우리나라에 장로교가 많은데, 장로교란 목사도 장로 중에 하나로서 장로들이 교회를 이끌어 가는 체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장로들은 대부분 장로란 목사를 보좌하는 자로 알고 있으니까 진정한 장로교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사역자들은 지배자가 아니라, '돕는 자'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고후 1:24)
이런 정신을 갖지 못한다면, 열심히 사역할지라도 그는 자기 야망과 이익을 추구하는 자일뿐,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성도 된 자들은 목사만이 주님의 종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주님의 종이며, 목사만이 제사장이 아니라 모두가 제사장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신분의 확신이 없이는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만민제사장이란 교리가 목사를 무시하는 것으로 결론 내는 자는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교리가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의식하고, 더욱 헌신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성도는 모두가 복음을 전해야 하며, 모두가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우리는 예외 없이 모두가 예배자로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
목사만이 성찬을 집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집에서 성찬을 하면서 예배드릴 수 있어야 하고, 매일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묵상해야 한다. 구약교회관으로 길든 자들이 참된 신약교회관을 갖기란 무척 어렵다. 구약교회를 모방한 교회는 진정한 신약교회가 아니다. 우린 제사장과 백성으로 구분된 구약교회를 실체로 보지 않고 오히려 그림자로 봐야한다.
주님, 우리 눈을 여셔서 올바른 교회관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 오실 예수님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수많은 사람이 그 광경을 볼 것이다.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무덤에 있는데 어떻게 볼까? 이것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핍박한 자를 총칭한 것이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애곡할 것이다.
모든 족속의 애곡은 '회개의 울음'이 아니다. 끝까지 믿음을 거절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들의 한탄과 후회의 울음이다. 이를 갈며 가슴을 치는 고통의 울음이다.
그러나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을 감격하며 보는 자들이 있다.
바로 성도들이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살전 1:10)
우리가 언제 진짜 신앙을 갖게 되는가?
예수님의 실체를 알게 될 때다. 그럴 때 예배가 예배다워지고, 진정한 헌신이 이루어지게 된다. 예수님의 가치를 모르니까, 모두 이익만을 셈하는 것이다.
주 예수여,
제 눈을 밝히셔서 주님의 어떠하심을 알게 하시고,
진정한 믿음으로 예배에 임하며,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게 하옵소서.